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08화 (408/450)

EP.408

리딩방

객장.

증권사 1층마다 있는 고객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있지.'

피터 터크만이 있는 곳이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지금 하락장인지 알 수 있는 방법

[머리 잡아 뜯는 할아버지 사진.jpg]

이 할아버지 표정 보면 됨

└이거 ㄹㅇ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내 기사들도 이 할아버지 사진 많이 쓰더라

└이 할아버지 이름 뭐임?

└월가 리액션 담당

월가의 할아버지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다.

"그 사진 찍는 곳이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이거든."

"그야 뭐……, 알죠."

주식.

지금이야 폰으로도 가능하다.

1초만에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다.

'옛날에는 당연히.'

그러지 않았다.

전산매매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직접 증권사까지 가야 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각 증권사들의 지점은 투자자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요즘은 안 가잖아요?"

"그래서 요즘 증권사 지점에는 객장이 없는 곳이 많지."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객장을 두지 않는다.

있던 곳도 없애고 있는 추세다.

시대의 변화.

키움증권처럼 객장 없이 인터넷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나타났다.

'그것이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니까.'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짧은 시간이다.

끼익−!

당시의 사고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들을 만나러 가본다.

『고려투자증권』

여의도 증권타운에 말이다.

소라와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한다.

1층에 구비되어있다.

화려한 시세 전광판이 이목을 모은다.

"너 같은 MZ는 본 적도 없겠지."

"있거든요."

주식의 가격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컴퓨터가 보편화된 지금은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옛날에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 돼서.'

정보의 불균형.

굉장히 심했던 시대다.

개인이 실시간 시세를 알려면 객장에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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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증권』

헬지화재 050900 1000 0800 0300 000232

오성화재 285000 5500 4500 7000 000079

미래해상 033000 3100 2850 0250 001532

헬지증권 108500 9000 8000 2000 000197

TK증권 022700 2750 2600 0200 001050

오성증권 051900 2000 1700 0800 000805

혼자증권 030400 0450 0300 0300 001508

다우증권 009980 0000 9930 0080 01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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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가 넘어가는 대형 전광판에 띄워져 있다.

각 섹터별로 주가가 정리되어있다.

소라가 어리둥절할 만도 하다.

화면에 모든 걸 표시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디지털이요?"

"디지털이 뭐냐, 돼지털은 안다."

"뭔 돼지소리야."

암퇘지 같이 생긴 주제에 모르고 있다.

2001년을 강타한 인기 광고를.

시장할머니: 그게 무야? (영상 통화를 보며)

회사원: 디지털 세상이잖아요

시장할머니: 돼지털~?

잼민이: ㅋㅋ

한때 시대를 풍미했다.

21세기가 온 걸 실감케 만든 상징적인 유행어다.

"7세그먼트 디스플레이는 불편했거든. 최소한의 숫자로 최대한의 정보를 표시해야 했지."

"그래서 만 원 단위는 자르고 천 원 단위만 표시한 거에요?"

"맞아."

전자시계에 많이 쓰이는 그 방식이다.

전광판에 띄워진 건 대충 이렇게 해석된다.

헬지화재 050900 1000 0800 0300 000232

헬지화재라는 주식이.

현재 주가가 50900원이고.

매도 호가가 51000원이고.

매수 호가가 50800원이고

최근 거래량이 232개다.

'지금이야 화면에 다 쓸 수 있지만.'

HTS만 들어가도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7세그먼트는 개떡 같이 써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했다.

"삐삐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 486은 사랑해, 1750 일찍 와 이런 식으로."

"틀딱은 선배 아니에요?"

"니 애미."

90년도 삐삐 시대.

인싸는 이 삐삐로 얼마나 다양한 메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냐로 정해졌다.

'그 문화가 현재에도 남아서.'

파프리카TV를 보면 별풍선 숫자에 의미를 담는다.

그것이 삐삐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 번 만들어진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웅성웅성!

이곳 객장도 마찬가지.

그 편린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수확은 충분히 있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요? 객장 오는 사람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말이지."

"?"

과거의 유물.

그런 것 치고 상당히 붐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는 거지.'

전광판 앞에는 영화관처럼 의자가 늘어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긴 하지만.

"내가 왕년에 오성전자를 1만 주나 가지고 있었는데……."

"어이, 김씨! 아가리 닥치고 호가나 봐."

연령층이 한정돼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IMF 시절도 나오고, 닷컴버블 시절도 나오고, 이전 대통령 시절 타령도 하는 등 별별 소리가 다 들린다.

'세상 이야기하고 노는 거지.'

한참 전에 은퇴하고 심심하기 그지없다.

매일 같이 지하철을 점거하는 것보다 훨씬 건전하다.

데일리뉴스− 「"탑골공원? 안가" 요즘 노인들이 푹 빠진 이곳은…」

탑골공원과 함께 3대 명소로 손꼽힌다.

증권사 객장은 노인들의 놀이터가 돼버린지 오래다.

"정말 노인분들밖에 없네요."

"그래, 임플란트 하나 없는 네 녀석은 여기 올 자격이 없다는 거지."

객장을 올 이유?

솔직하게 없다.

컴퓨터는 커녕 스마트폰만 있어도 매매는 충분하다.

'정보도 다 찾아볼 수 있고.'

하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전부였다.

주식 정보를 알 수 있는 핫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오오!"

"스게에~!"

"스게는 쪽바리 말이고 이 영감아!"

그들의 시야에 주식은 어떻게 보이는지.

한 번쯤 체험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힙해진다.

2개 국어를 종사하시는 분들이 본색을 드러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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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투어』

52,900원 ▲7,800원 (+14.74%)

[미친 듯이 쭉쭉 상승하는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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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관련주.

수출 규제 여파로 폭락했다.

최근에 들어 큰 폭으로 반등하고 있다.

'이런 걸 모니터 화면으로 봐도 눈 돌아가는데.'

증권사 객장에서 본다면?

FOMO의 정도가 비교할 수 없다.

"저게 저렇게 올라?"

"김영감 말 들을 걸 그랬어."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여. 내가 왕년에 오성전자를 1만주나 가지고 있었는데……."

모니터의 수십 배는 되는 전광판.

볼 수 있는 시야는 제한돼있다.

주가가 오르는 주식에만 눈길이 쏠린다.

심지어 주위에서.

'자랑이 실시간으로 들려오잖아.'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주식을 사지 않은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아, 나도 살 걸!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커뮤니티의 비틱과는 격이 다르다.

─함께투어 사라했제 ㅋㅋㅋㅋㅋㅋㅋ 안 산 흑두루미 없제

[씰룩씰룩 하는 홍철이 사진.jpg]

앜ㅋㅋㅋㅋ 달다 달앜ㅋㅋㅋㅋ 오늘은 쏘고기다

└입 닺아

└내가 먼저 했는데 ㅡㅡ

└이 새낀 맞을 때만 지랄이네

└응 상상매수인 거 다 알아

기껏해야 했제충들 정도다.

주식 초보가 아닌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닷컴버블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해돼?"

"와……, 진짜 그럴 만한 것 같아요."

객장에서는 손쉽게 현혹이 된다.

너도 나도 주식을 사려고 안달이 난다.

'물론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그렇게 주식을 산 사람.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는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 내려가는데?"

"김영감 함께투어 올라간다며!"

"내가 내려간다고 했제?"

패가망신.

대한민국에서 주식 이미지가 나빠지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투자 실패는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는 거지.'

스스로 사고해서 투자한 사람은 경험치를 얻는다.

소위 말하는 '수업료'다.

하지만 타인의 말만 들은 사람은?

더 좋은 추천을 해줄 사람만을 찾게 된다.

"실제로 남 말 들어서 성공한 사람도 봤을 거 아니야."

"우슬람들이 딱 그 케이스 아니에요?

"그래."

50대 이상의 노인분들.

한국의 고성장 시대를 향유했다.

인생을 성공하기 아주 쉬웠던 시기다.

'정말 나랑 별 차이도 없는 놈이 운 하나 좋아 가지고.';

사장 되고, 회장 돼서 떵떵거린다.

무슨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인 중에 한두 명씩 존재한다.

나도 되고 싶은 것이다.

어르신들이 이상한 사기, 다단계, 사이비 잘 당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 어르신들이 요즘 맛 들린 게 있는데……."

"어?"

안 그래도 교육을 못 받은 세대.

주위에서 성공담까지 들려오니 눈이 휙휙 돌아간다.

투자자라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의 기득권은 그들이니까.

"아이고, 아버님들. 식사들 하셨어요?"

"식사 했제."

"식사 하라고 했제!"

"어이, 김씨 아가리 닥치고 함께투어나 어떻게 해봐."

대한민국의 부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최대 고객이라 할 수 있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

할아버지들 사이에 파고들어 열심히 고객 유치를 한다.

딱히 드문 광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소라의 눈길이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어, 소라야!"

"아빠……, 뭐 해요?"

"일하고 있지! 여기는 어쩐 일이야? 아빠 보러 왔어?"

그 이유.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저의 아버지께서 월가에서 근무하다 현재 여의도 증권사 상무를 보고 있어요. 당신보다 훨씬…….》

나보다 잘났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왜 여기서 영업이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님이 일하시는 곳이면 말하지."

"말하면 선배가 무슨 일할지 모르니까."

"잘 아네."

그런 재미있는 이벤트를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야속하다.

어찌 됐든 만나게 되었으니 되었다.

소라를 알아보시고 이쪽으로 오신다.

소싯적 공부 좀 하셨을 것 같은 교수님 스타일이다.

'소라 아빠일 만하네.'

양복 핏이 훌륭하다.

젊었을 때는 분명 미남 소리 들었을 또렷한 이목구비의 소유자다.

"학교 선배랑 잠깐 증권사 탐방 왔거든요."

"그래? 선배분이야?"

"네, 근데 그냥 선배는 아니고."

"?"

하지만 아버지.

나에 대한 경계감을 내비친다.

딸내미가 남자와 함께 있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댁네 딸인 것은 맞지만.'

앞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살짝만 맛 보여드리기로 한다.

쪼옥!

쪼오옥~♡

소라의 가는 턱을 잡는다.

그대로 당겨 입술을 맛있게 먹어 치운다.

잘 조련된 몸.

본능적으로 프렌치 키스에 응하지만 이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사이입니다."

합법적 NTR을 저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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