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6
혐한 제조기
장인 정신.
"오~"
"이게 바로 대일본제국의 기술력이란 말이쥐."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문화다.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여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일본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데.'
손재섭은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 왔다.
그는 일본의 문화에 듬뿍 심취해있다.
아니, 문화뿐만이 아니다.
기술, 경제, 역사 무엇 하나 우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게 바로 하이엔드 스피커란 말이쥐."
"하이엔드가 뭐야?"
"하이엔드도 몰라 너?"
"뭐……."
그러한 시각.
대체로 맞는 말이다.
일본의 가전제품은 우수하다.
하이엔드 제품이 대표적이다.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품질과 성능, 그리고 사양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ESOTERIC Grandioso』
눈앞에 보이는 오디오.
보기만 해도 압도된다.
사람 키만한 스피커 2개가 서있다.
전문적인 기기들도 보인다.
울려오는 소리가 뭔가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국이 양산 제품 만들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이런 하이엔드 제품들을 만든단 말이야."
"그러게……."
"장인 정신이 없어 이 조센징들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할 만하다.
박광우는 친구인 재섭이 일본에 빠져있는 것을 알고 있다.
'대단하긴 해.'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없다.
이런 장인 정신이 들어간 제품들이.
『캐논 ME20F-SHN』
희한하게 생긴 카메라.
조그마한 것이 무려 360만 엔이라고 한다.
"360만 원이라도 안 살 거 같은데."
"야 이 병신아!"
"어?"
"카메라 매니아들이 못 사서 안달난 제품이야!"
엄청난 기술력이 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하겠지.
'대단한 건 맞는데.'
지나친 가격.
지나친 오버스펙.
저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근데 있잖아."
"대일본제국의 기술력이 말이야~!"
"너 저거 살 돈 있냐?"
"……."
일반인들은 살 일이 없다.
하다 못해 선망을 할 만한 대상도 아니다.
'요즘 오디오, 카메라 누가 산다고.'
돈 많은 사람들은 돈지랄을 할지도 모른다.
절대 다수는 그렇지 않다.
기술이 발달했다.
가성비 제품들도 훌륭하다.
카메라는 폰카로도 떡을 친다.
『키타야 오븐레인지, 1인용, 심플, 간단조리, 모든 규격 60hz 50hz』
『아이리스 오야마 전자 레인지 플랫 레인지 오븐 15L MO-T1501 턴테이블』
『턴테이블 레인지 서일본 소형 간단조리 세련된 맥스젠 JM17BGZ01 60hz 서일본 전용』
일반인들이 찾는 것은 평범한 제품이다.
가격과 성능.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부류 말이다.
와글와글!
매장 고객 대다수가 몰리고 있다.
광우는 재섭과 함께 사람들이 붐비는 코너로 찾아간다.
"여긴 좀 그런데?"
"이런 건 일본 제품이 아니야! 분명 중국 공장에 하청 넣어서……."
"일본의 유명 브랜드 제품 코너라고 돼있는데."
"……."
그 제품들.
아무리 빈말로 포장해도 훌륭하다고는 못할 레벨이다.
크기는 작다.
디자인은 촌티 난다.
기능도 10년 이상 뒤쳐져 있다.
하다 못해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든다.
가게에는 한국 제품도 진열돼있다.
"조센 제품을 누가 사냐고 누가!"
"솔직히 더 낫잖아."
"칙쇼오오!!"
일뽕인 재섭이마저 부정하지 못한다.
두 나라의 제품의 품질 차이는 역력하다.
'진짜 갈라파고스라 그런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애국심을 고려해도 일본 제품을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
"스미마센."
"하이! 찾으시는 물품 있으므니까?"
"키타야 제품을 사려고 하려고 사므니다."
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의 손님들이 찾고 있는 제품은.
'그나마 키타야 게 나아 보이네.'
자신의 판단과 일치한다.
키타야 제품은 상대적으로 좋아 보인다.
반대로 말하면 그뿐이다.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나라였다.
* * *
갈라파고스화.
일본의 장인 정신이 낳은 일종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MZ용어로 우틀않이라고 하는데.'
먹혔을 때는 찬사를 받는다.
먹히지 않았을 때는 어떤 결과가 도래하는지.
<경쟁사들의 제품을 보시면 크게 두 종류로 나뉘고 있습니다.>
롤챔스만 꼬박꼬박 시청해도 알게 된다.
장인 정신과 아집은 한 끗 차이다.
'일본 가전제품들이 그렇거든.'
회의실에서 PPT가 진행된다.
직원이 일본 제품들의 문제점을 잘 꼬집고 있다.
지나칠 정도의 오버스펙.
잡기능 많은 저질 제품.
대체로 이 두 가지다.
<일본의 장인 정신은 훌륭하지만 이 과포화된 시장에서 지금의 정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장인 정신으로 한 제품을 파고 판 결과다.
소비자의 요구를 이상한 방향으로 충족시킨다.
'혁신 없이 옆그레이드만 되는 거지.'
그래서 저런 제품들이 탄생한다.
희망편도 있지만, 절망편은 더 셀 수 없이 많다.
키타야 전기도 그중 하나였다.
오늘을 시작으로 다른 길을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짝! 짝! 짝!
회의실 내 참석자들.
직원을 제외하면 다 임원진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훌륭합니다."
"스바라시데스네~."
"양사의 협력 관계가 돈독하게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그러기로 했기 때문이다.
키타야 전기와 오성전자의 일본법인은 계약을 체결했다.
'JDM이라고.'
쉽게 말해 하청이다.
오성전자의 물건을 키타야 전기에서 위탁생산한다.
해외 진출을 위해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그 나라의 브랜드인 척하면 잘 팔린다.
한국신문− 「오성 '스페이스', 작년 일본서 샤프 누르고 점유율 '2위'」
팩트뉴스− 「'한국폰 무덤' 日서 일냈다…'오성' 뗀 스페이스, 애플 이어 2위」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
오성전자의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다른 가전제품들도 노리던 와중.
괜찮은 제안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게 되었다.
"찬욱씨의 역할이 컸어."
"과찬이십니다."
"이런 대어를 물어오라고 보낸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렇게 쉽게 풀리는 문제는 아니다.
기업간의 협력이라는 것은.
'스케일이 보통 크지가 않거든.'
수십, 수백 억 정도가 아니다
최소 수천 억이 오가는 거대한 시장이다.
어떤 난관이 있을지 모른다.
몇 년씩 검토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안이다.
"그리고 보내드렸던 보고서는……."
"오늘 같은 날에 골 아픈 얘기하면 쓰나~."
"이 친구가 일에 미쳐 사는 친구라 그래."
"젊을 때는 그래야죠! 역시 회장님이 추천하실 만합니다."
강무열 회장과의 인맥.
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일본법인 대표와도 연이 닿아있다.
판단의 속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내 돈도 출자할 수 있었고.'
협업이 종이 쪼가리 하나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서로 볼모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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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야 전기』
2,720円 ▲400円 (+17.24%)
[장 시작하자마자 상한가 찍은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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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말이다.
오성전자 일본법인이 키타야 전기의 지분을 3회에 걸쳐 인수하기로 했다.
그것에 내 돈을 보탰다.
500억이라는 거금이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호재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시장에서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공시가 뜨자마자 바로 상한가에 직행했다.
지난 30년간 우하향한 주식이라 공매도가 쌓여있다.
숏커버링도 터질 것이다.
또각!
이사진과 대주주.
JDM에 동의해준 이유다.
그들의 자산도 늘어나게 된다.
'회사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한때 글로벌 대기업이었던 키타야 전기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당사자가 등장한다.
사장님이 된 카에데가 오성전자 일본법인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온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려운 결정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어려운 건 이제부터인데요."
"그렇죠~ 저희도 현지화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실은 현실.
남은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애시당초 일본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기업이었으니까.'
카에데를 통해 살펴보았다.
일본인들의 자국 브랜드 선호 덕분에 유지되고 있었다.
오성전자와의 협업을 택한 것은 좋은 결정이다.
JDM은 OEM과 달리 완전한 하청은 아니다.
"저희 키타야 전기의 노하우와 오성전자의 기술력을 합한다면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습니다 사장님~ 꼭 부탁드리고 싶던 부분었거든요."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는 셈이다.
고작 그 이유 하나로 계약했을 리는 없다.
일본인들이 일본 제품만 사는 이유.
자국 제품이기 때문도 분명히 있다.
'그것 말고도.'
노하우가 존재한다.
썩어도 준치.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키타야 전기는 빠삭하다.
그것을 살리기로 했다.
공동으로 협력해 개발하는 JDM이라면 그 장점을 키울 수 있다.
짝! 짝! 짝!
서로에게 Win−Win이 되는 계약.
성사시킨 것은 나로서도 좋은 일이다.
'실적 하나 딴 거지.'
출자를 받아준 뒷사정이다.
자기들끼리 해먹는데 끼어준 것이다.
사업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수혜를 누린다.
주식의 평가 가치가 올라간다.
까톡!
몇백 억의 시세 차익.
그것을 노리고자 이런 난장판을 벌인 것은 아니다.
〔카에데〕
「찬욱씨 말대로 했어요」
「저 잘했으니까……」
「만나주실 거죠?」
사실 그녀도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의 경영 방식에 말이다.
'우수해서 좋아.'
이사진 일부를 포섭해두었다.
언젠가 오게 될 그날을 위해.
원래라면 그 정도로 끝났을 일이다.
나는 그 다음을 보고 있다.
토독, 톡!
잃어버린 30년.
일본이 망한 진짜 이유.
아버지 세대가 투자에 PTSD를 가지게 된 사정.
'우리 세대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거든.'
키타야 전기를 투자 회사로 변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