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354화 (354/450)

EP.354

혐한 제조기

"당신 뭐 하는 사람이에요?"

데이트.

그 종착역은 술 먹이는데 있다.

아니, 조용한 바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아가씨니까.'

떠들썩한 선술집은 익숙하지 않다.

좌불안석이라 분위기를 내기도 힘들 것이다.

"평범한 영업사원인데요?"

"우소!"

"아 들켰네~."

"진지하게 대답 해주세요."

분위기가 풀린다.

술이 들어갈수록 그녀의 묵묵했던 입술이 가벼워진다.

'입술 존나 탐스럽네.'

소라처럼 두툼하진 않다.

전통적인 일본 미인 스타일답게 얇고 도톰하다.

농락하고 싶다.

그런 그녀가 심문을 하는 듯 몰아세우는 것에 어울려준다.

"키타야상은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데요?"

"그야 이상하잖아요……."

"뭐가요?"

"일개 사원이 생각할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에요."

반도체 재고 증가.

확실히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하다.

'나도 아니까 생각이 닿은 거지.'

한국과 일본이 외교 단절을 한다고?

자유무역 시대에 너무 뜬금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설사 증거가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일개 사원이 아니니까요."

"역시!"

"산업 스파이에요."

"또 절 놀리려는 거네요."

"반쯤은 진담인데."

"?"

투자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확신을 가지기 위해.

'실물 조사를 빠듯하게 하는 거지.'

투자를 회사씩이나 차려서 하는 이유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

기업 CEO들과 인맥을 다진다.

투자 자문을 통해 기밀 자료를 엿본다.

"투자 자문이요?"

"네, 제가 정사원은 아니고 오성 그룹 계열사에 투자 자문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입니다."

"헤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기득권들이 판치는 한국에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그것이 흥미롭게 들리는 모양.

적어도 관심을 끈다는 목적은 이뤄낸다.

"사실 한국에서도 비상이 걸렸거든요."

"어, 왜요?"

"고객사에서 주문 요청이 급증하면 제조 회사에서도 생산량 증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신비주의.

여성을 꼬시는 방법이다.

그녀가 나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일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고.'

나로서도 편하다.

명품에만 환장한 년보다 말이 통하는 업계인이 말이다.

"그렇긴 하겠네요."

"일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냐?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파견을 나와서 현지 동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저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

"?"

"당신을 만나게 되었잖아요."

그리고 순진한 년.

솔직히 흔해 빠진 멘트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것이 먹힌다.

클리셰조차 신선하게 느껴지는 희디흰 도화지다.

꿀꺽!

쑥스럽다는 듯이 술잔에 입을 댄다.

손사래를 치던 처음보다는 나아졌다.

'익숙해지긴 했나 보네.'

칭찬을 싫어하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걸.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키타야상은 아니에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바 테이블.

올려 놓은 손 위에 살포시 손을 겹친다.

스킨십이라 치기도 애매하다.

이런 애틋한 시간도 의미가 있다.

철벽 같던 그녀도 조금씩 무뎌져 가고 있으니까.

'본인도 꽤 즐기는 것 같고.'

적절한 난이도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남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서툴러하는 그녀다.

"주문하신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음식이 나온다.

바는 바지만 하이볼 바.

클래식 바와 이자카야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음식도 나름 괜찮게 나오지.'

전문적인 수준까진 아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부채살 스테이크에 불과하지만.

보글보글!

안주를 하기에 적절하다.

자그만 불판에 끓고 있는 소스가 같이 딸려 나온다.

"이거 핫쵸미소네요!"

"그러게요."

"아세요?"

"네, 일본 음식 꽤 좋아해서."

나고야 지방의 콩된장이다.

짙은 붉은 빛이 특징이며 깊은 감칠맛을 가지고 있다.

'이게 맛있긴 한데.'

호불호가 조금 갈린다.

육즙과 후추 등을 넣고 끓여서 어레인지를 가한 모양이다.

우적우적!

스테이크 소스로 꽤 어울린다.

사이드로 나온 래디쉬는 아삭한 식감과 알싸함을 더한다.

"아니, 그냥 통장에 50만 원 있길래."

"있길래요?"

"대충 굴리다 보니까 늘어더라고요."

"그게 돼요?"

맛있는 음식.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나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어온다.

'솔직한 게 강아지 같네.'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헌팅포차에서 이런다면 따먹어달라는 소리밖에 안된다.

"3년만에 50만 원을 500억 원……, 50억 엔으로 만드신 건가요?"

"중간 과정을 생략하자면 그런 셈이죠."

"대단하신 분이네요 찬욱씨."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바라본다.

그녀로서는 순수하게 나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다.

'푼돈 가지고 뭘.'

나에게 있어서는 별 게 아니다.

애시당초 여기까진 스무스하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다음 단계.

그것을 목표로 둔 시점이다.

카에데 같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키타야상도 대단하잖아요."

"제가요?"

"키타야 전기의 후계자인데."

"저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는 것 뿐이니까요."

알코올은 진솔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자신의 이야기도 이것저것 늘어놓는다.

그녀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하소연을 들어준다.

공감해주는 척하며.

'오케이.'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성공한다.

거부 반응이 없다는 건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다.

"술잔 비었네요. 여기 하이볼 한 잔 더……."

"하이볼도 좋지만~."

"네?"

"한국 술은 없나요? 히끅."

목소리도 풀린다.

본인이 적극적으로 요구를 해오는 건 좋은 변화인 게 사실이다.

'소주 먹이긴 좀 그래.'

한국식 술집에 안 간 이유.

음식의 향이 진해서도 있다.

따먹을 때 냄새 나면 신경 쓰인다.

술도 좀 그렇다.

희석식 소주와 양산형 막걸리는 우리술이라고 소개하기 부끄럽다.

"여기 맥주 두 잔이랑."

"앗!"

"훈와리도 두 잔 주세요."

"훈와리요?"

"하이! 주문 받았습니다."

마침 적당한 것이 있다.

우리술이지만 우리술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것이 존재하다.

'순하리 있잖아.'

그 일본 버전.

아니, 원판이다.

훈와리를 한국식으로 바꾼 게 순하리 소주다.

"이게 한국 술이었어요?"

"같은 회사에서 만들거든요."

"그랬어요?!"

꼴데에서 만든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제조 공정을 거치니 맛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데일리뉴스− 「순하리의 달라진 맛 진실공방…정답은 '레시피 변경?'」

첫 출시 당시만 해도 그러했다.

헬적화를 거치면서 맛이 다운그레이드됐을 뿐이다.

'개씹새끼들이지.'

순하리는 싸구려 주정을 쓴다.

훈와리는 쌀, 보리 등으로 만든 제대로 된 소주다.

"그건 알겠는데."

"네."

"이러면 평소 먹는 거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비교도 안되게 맛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잘 팔린다.

카에데도 종종 마시고 있을 정도다.

'거기까지는 그렇겠지만.'

한국인들만 하는 음주 문화가 있다.

그 나라의 방식으로 마시는 것도 그 나라의 술이다.

퐁당!

소주가 든 샷잔.

맥주잔 안에 빠뜨린다.

맥주와 소주가 자연스럽게 섞이며.

"이거 알아요! 소맥이죠?"

"이렇게 말아 먹는 거거든요."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만드는 모습이 확실히 임팩트가 있다.

'꼬추로 치는 것도 있는데.'

좀 더 친해지면 보여줘도 될 것이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술 문화다.

꿀꺽! 꿀꺽!

그렇게 마시는 이유.

단순한 칵테일이 아니다.

일본과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냥 맥주에 소주 섞은 건가 했거든요."

"먹어보니 어때요?"

"생각보다 더 맛있어요."

"입에 쫙쫙 달라붙는 느낌이죠."

"네, 그거에요!"

일본인들도 섞어 마시는 거 좋아한다.

하이볼, 레몬사와, 츄하이 등이 대중적이다.

'그건 진짜 순수하게 맛 때문에 섞는 거고.'

소맥.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다.

폭발하는 감칠맛으로 인해 쭉쭉 들어간다.

털썩!

자신의 주량을 망각한 채.

MT에서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또 들어도 맛 가는 사람이 나오는 이유다.

"키타야상 괜찮아요?"

"네에……."

"제 어깨 잡으세요. 호텔 데려다 드릴 테니까."

맛있게 잘 익었다.

맛이 가버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암묵적 동의를 한다.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위험한 행위지.'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였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여기는 일본.

그리고 그녀는 일본인이다.

어깨를 부축해서 택시에 태운다.

부우웅~!

일본 애들과도 꽤 어울린 적이 있다.

투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요한 나라다.

'일본이 성장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제로금리로 엔화를 살포한다.

그 엔화를 빌려서 투자하는 방식이 존재한다.,

엔캐리트레이드.

현대의 금융 시장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 중 하나다.

끼익−!

일본의 현지 사정은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따먹는 것이다.

'일본년들 중에.'

박히고 나서 순종적이지 않은 년이 없었다.

일본 여자들의 성격과 문화가 그러하다.

"키타야상 졸려요?"

"네에……."

"졸리면 한숨 자러 갈까요?"

호텔에 데리고 간다.

이 정도면 상호 합의 하에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교를 잘해야 할 텐데.'

반반한 얼굴.

고급스런 분위기.

그녀의 뒷배경도 굉장히 탐이 난다.

일본이란 나라는 사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국가와 국민들이 개쫄보라는 것이 문제다.

정작 자신들은 제로금리를 이용하지 못한다.

살포해준 돈으로 투자는 커녕 제밥그릇 지키기 바쁘다.

나의 손에 떨어진다면 아주 잘 이용해줄 수 있다.

그녀의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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