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2
혐한 제조기
"안된다. 돌아가라."
키타야 전기.
사장실에 방문한 카에데는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
'최소한 이유는 가르쳐주셔야지.'
실무 담당자로서 답답할 수밖에 없다.
보통 큰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제가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네가 담당하고 있는 건 관리지, 회사가 아니다."
3배나 되는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그냥 재고가 쌓였다고 퉁칠 일이 아니다.
'물류 보관비와 이자가 밑도 끝도 없이 셀 텐데.'
제조 기업의 마진율은 높지 않다.
전자레인지 하나를 팔면 10~30%가 남는다.
유통, 홍보비 등을 빼면 순이익은 쥐꼬리다.
저가 경쟁이 심해진 최근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버……."
"카에데 이사."
"네, 사장님."
"사적인 이야기는 사석에서 하거라."
그러한 실무의 고충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말이다.
'잘……, 모르겠어.'
후계자 수업.
받게 된 이후로 알게 되었다.
자랑스럽게만 생각하던 아버지의 회사를.
곳간이 새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
타악!
하지만 따르는 수밖에 없다.
손타쿠 (そんたく).
일본 회사는 상명하복의 기조가 강하다.
윗사람이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눈치껏 해야 한다.
그것이 윗사람이 원하는 바라면.
<네가 알기에는 너무 일러.>
그것을 알고 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자신만의 마음대로만 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일개 사원이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후계자로서, 아버지의 회사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르다는 소리를 했을 것이다.
아무 대답도 못 듣고 사장실에서 쫓겨난다.
후우~
한숨.
회의감이 들게 된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건지 길을 잃은 기분이다.
"피로가 쌓이신 것 같습니다 아가씨."
"아, 아저씨……."
"조금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그럴 때마다 기운을 주는 사람이 있다.
시무라 유우신.
키타야家의 집사이자 비서다.
'아저씨도 일이 힘에 부치실 텐데.'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만큼이나 고맙게 여기는 존재다.
자신의 안에서는 여전히 아저씨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르르~
홍차를 따르시는 모습도 위태위태하다.
마음 같아서는 은퇴하고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다 됐습니다 아가씨."
"다과는 뭔가요?"
"몬지 바나나입니다. 상태가 좋아 보여서 집었습니다."
"와~."
하지만 시무라 아저씨가 끓여주는 홍차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마실 때마다 행복감이 차오른다.
'홍차 너무 맛있어.'
왜 이렇게 맛있지?
아저씨께 조르고 졸라 비법을 알아낸 적이 있다.
똑같이 끓여도 똑같은 맛이 안 난다.
우적!
다과를 고르는 초이스도 따라갈 수 없다.
껍질째로 먹는 바나나인 몬지 바나나가 입안에서 씹힌다.
강한 단맛.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의 복합미.
같이 먹는 홍차와의 궁합도 딱 맞는다.
"피로가 좀 달아나셨나요?"
"네, 덕분에."
"저는 이 바나나를 보면 꼭 옛날 생각이 납니다."
"?"
그리고 이야기.
연세가 지긋하시다니 보니 자신이 모르는 일도 많이 아신다.
'아 나도 들은 적 있는데!'
하지만 자신도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다.
과거에 바나나가 비쌌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노인 어렸을 적엔 바나나가 정말 달고 맛있었습니다."
"귀한 과일이었어서 그렇게 느낀 건가요?"
"아니죠. 병충해가 돌기 전이라 품종이 달라서 진짜로 맛있었습니다. 요즘 바나나는 에잉."
"……."
엉뚱한 이야기도 종종 하신다.
과거의 일이라는 게 아름다운 미담만 있진 않다.
'그래도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꽁하던 마음이 풀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달래주는 것은 늘 아저씨였다.
"정부의 수입 통제 품목에 올라있던 탓에 그 맛있던 바나나를 많이 먹지 못했죠."
"그, 그런가요."
"어쩌면 아가씨께서도 비슷한 일을 겪고 계시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
언중유골.
돌이켜보면 항상 의미가 있었다.
이번에도 전하려는 말이 있는 걸 수 있다.
'설마.'
고개를 올려 아저씨를 바라본다.
자신은 모르는 일인양 어느새 먼산에 초점을 두고 계신다.
"고마워요 아저씨."
"제가 무슨 말을 했던가요? 이 나이가 되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진짜 은퇴하실 때가 되셨나 보네요."
"……성장하셨군요."
일개 비서라고 할 수 없다.
회사 사람을 넘어 가족의 일원 같은 존재다.
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들으셨거나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시다.
'아저씨한테는 도움만 받네.'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넌지시 말을 건넨다.
그 안에 힌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회사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아저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잣말입니다만……, 최근 일본 기업들의 반도체 주문이 급증하고 있더군요.>
그런 아저씨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거래처인 오성전자 재팬의 담당자였다.
'기존에 추리하던 것과도 일치해.'
갑작스런 주문량 증가.
그것은 오직 반도체에 한했다.
다른 부품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즉, 반도체 재고를 쌓아둘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회사 내부 사정이 아닌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꿀꺽!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엊그제의 자신이었다면 손사래를 쳤을지도 모른다.
신오쿠보는 이색적인 장소였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부류다.
"아가씨?"
"홍차 잘 마셨어요. 저는 일이 있어서."
"하시는 일 잘 풀리시길 바랍니다."
직접 봤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현재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정상적이지 않다.
'무언가 일이 터져도 이상하진 않겠죠.'
무역 장벽.
허물어지고 세계가 자유무역이 된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또다시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반도체 재고 강화는 그것을 대비한 포석일 수도.
타닥, 탁!
개인 사무실에 도착한 카에데는 조사에 들어간다.
조사라고 해봤자 별 건 없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업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해가 지는 나날을 보냈다.
외부의 일에는 신경 자체를 안 썼다.
이번 기회에 알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VAHOO! JAPAN』-약 142,000,000건 1페이지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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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 관심이 없던 걸지도 모른다.
수많은 검색 결과와 연관 검색어들이 주르륵 뜬다.
'확실히 좀 많이……, 상반되네요.'
그 내용도 심상치 않다.
좋다는 반응과 싫다는 반응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마치 신오쿠보처럼.
한류와 혐한이 공존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찬욱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신은 굳이 따진다면 혐한쪽이다.
그들의 시위를 하는 배경은 납득이 간다.
거부 반응이 일어날 만하다.
어째서 한류에 빠져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타닥, 탁!
때문에 찾아본다.
반대쪽.
한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류를 좋아하는 이유를.
'미생? 사랑의 물시착? 뭘 봐야 되는 거지…….'
조사를 위해 봤을 뿐이었지만.
* * *
한류.
퍼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냥 적당히 생각해도.'
일본은 만화의 영향이 지나치다.
그런 문화가 유명하다 정도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일상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조금 보게 되었거든요."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네?"
"여기."
드라마, 예능, 영화까지.
만화가 아님에도 만화 같은 말투와 행동을 한다.
'킹반인이 봤을 때는.'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
그것을 일본인이라고 안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크서클 심하네요."
"티 나나요?"
"좀 많이."
"아, 야하리……."
특히 여자들.
만화 좋아하는 사람 보고 씹덕이라고만 안 해도 대단히 이해심 깊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싫어하거든.'
일본도 反만화 정서가 의외로 강하다.
주류 문화가 만화다 보니 표출이 안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들어온 것이다.
여성들의 판타지를 긁어주는 소위 '보르노'가 말이다.
"미생, 사랑의 물시착, 달에서 온 그대 여러가지가 있더라고요."
"아~ 어떤 거 봤어요?"
"그게……, 다 봤어요."
그것에 익숙한 한국 여성들도 없으면 못 산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본 여성들에겐.
'거의 마약 수준이겠지.'
일본 사회는 남성 중심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한국 드라마는 가히 환상적이다.
아니, 환상 그 자체다.
자신들이 심층 욕구를 100%를 넘어 그 이상까지 충족시켜준다.
키타야 카에데.
일 외에는 전혀 관심 없을 것처럼 생긴 그녀가 빠져든 것도 이상하지 않다.
"분량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염치가 없게도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자각한 건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귀하와의 약속에 차질을 빚게 만들어 사죄드립니다."
"성격은 여전하네요."
빠져드는 정도를 넘어 광기.
한류가 만들어지는 것은 분석이 필요한 일조차 아니다.
'세세한 과정은 스킵해서 좋네.'
사실은 추천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수고를 들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도 인맥이 필요하다.
그 인맥은 진득한 편이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타악!
카페에서의 만남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다.
자고로 봇물은 처음 터트리는 게 어렵지.
"그 다음도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 다음이요?"
"지금은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신오쿠보에 오는 사람들의 심리를."
"아!"
한 번만 터트리면 폭포수를 이룬다.
봇물 터지듯 한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여러 의미로.'
그 광경.
지켜보는 일본 남성들로서는 오만 가지 감정이 교체하게 된다.
"보기만 하는 것보다 자세한 조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그렇겠네요."
"바로 갈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치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혐한이 일어나는 가장 주요한 이유인.
'혐한 제조기가 되어보실까.'
K−NT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