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7
대황본
오마카세.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음식 주문 스타일이다.
'좀 많이 왜곡되긴 했는데.'
커피, 순대, 토종닭 별 게 다 있다.
일본식 코스 요리 느낌으로 알려졌다.
타악!
실제로는 그런 대단한 게 아니다.
가게 주인이 그냥 적당히 해주는 거다.
"이건 뭐에요? 특이하게 생겼는데."
"몰라."
"선배도 모르는 게 있나 봐요?"
"이런 건 모르고 먹으면 되는 거야."
첫 접시가 나온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에피타이저에 대칭되는 음식이다.
'얇게 저민 복어네.'
바다포도와 메네기, 간 무가 플레이팅 돼있다.
복어를 폰즈에 살짝 찍어 입에 가져간다.
쫀득쫀득하다.
숙성을 꽤 오래한 듯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과 감칠맛이 올라온다.
톡! 톡!
입안이 심심해질 때.
바다포도를 한 줄기 집어먹자 짭조름한 해조향이 톡톡 터진다.
"와 맛있다!"
"맛있으면 됐지."
"말아서도 먹어요?"
"대충."
복어 위에 메네기와 간 무를 올린다.
일본에서는 미나리 대신 부추나 메네기를 말아 먹는다.
아그작!
파의 싹, 파순이라 할 수 있다.
무순처럼 별맛 없이 상쾌한 풀맛과 식감으로 먹는다.
'식욕을 돋우는 좋은 조합이야.'
셰프의 선택.
나의 취향과 일치했을 때 음식점을 들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마카세를 하는 것이다.
알아서 잘해주는 곳만큼 마음 편하게 들릴 곳이 없다.
타악!
다음 접시는 간단한 회가 나온다.
일본식 채소절임인 츠케모노가 같이 서비스된다.
'처음부터 기름진 거 먹기 좀 그러니까.'
참치 붉은살, 광어, 개복치, 참돔, 소라고둥.
마일드하고 담백한 것으로 구성되었다.
내 입맛에는 적절하다.
츠케모노도 무, 당근, 주키니 등 여러가지가 있어 색감이 예쁘다.
"술 마려운 조합이구만."
"왜 술 소리 안 하나 했네."
이런 안주에 술을 빼먹는다면 섭한 노릇이다.
쿠보타나 닷사이처럼 대중적인 것도 좋지만.
'기왕 일본에 왔으면.'
더 좋은 선택지도 있다.
맛에서도, 가성비에서도 훨씬 훌륭한 것이 말이다.
『나베시마 키타시즈쿠 준마이다이긴죠 나마』
가게에 있는 것 중 적당한 걸로 시킨다.
회와 잘 어울릴 만한 녀석이다.
"준마이다이긴죠면 고급 사케라는 거죠?"
"기억하고 있네."
"뭔가 더 많이 써있는 것 같긴 한데……."
소라도 일전에 마셔본 적이 있다.
그 심화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베시마에서, 키타시즈쿠라는 쌀로 만든, 준마이다이긴죠급의 사케.'
나마는 생주라는 뜻이다.
한국 막걸리도 해외에 수출할 때는 열처리를 한다.
효모를 죽여야 유통기한이 오래간다.
맛도 떨어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꼴꼴꼴~
그것을 하지 않은 것.
같은 가격대에서 더 우월한 맛을 보여준다.
와인잔에 사케가 따라진다.
고급 술집에서는 이런 식으로도 사케를 즐긴다.
"나무 잔이 아니네요?"
"취하기 위한 술은 그렇게 즐겨도 되지만, 맛을 음미하기에는 전용잔이 더 좋으니까."
"오~."
향을 모아준다.
코를 갖다 대자 향긋한 감귤향이 풍긴다.
그리고 톡 쏘는 소다향은.
'이래서 생주가 좋지.'
약탄산.
막걸리에 탄산이 있는 것처럼 효모가 살아있는 술은 탄산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지친 혀를 산뜻하게 달래준다.
첫맛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끝은 드라이한 깔끔한 술이다.
"맛있는데요?"
"더 맛있게 마시는 방법 알려줘?"
"아, 알아요! 따듯하게 데워 먹는 거."
아츠캉.
사케를 따듯하게 마시는 방법이다.
만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자주 나온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일본에는 좋은 문화들이 많다.
그중 하나를 알아가는 차원에서 시현해본다.
꼴꼴꼴~
사케를 따른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의 잔이 눈앞에 보이고 있다.
"진짜 처뒤질래?"
"아니."
"당장 닦아라."
"눈나 나 주거."
뇨타이모리.
여성의 몸을 그릇으로 쓰는 일본 고유의 전통 문화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일본에 오면 일본 문화를 따라야 한다.
'좋은 일본 문화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지.'
편협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소라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정색을 해댄다.
살이 떨릴 만큼 오싹오싹하다.
가게 내의 손님들, 셰프까지 긴장을 할 만도 하지만.
꿀꺽! 꿀꺽!
아까운 술을 버릴 수는 없다.
가슴골에 코를 박고 후루룩 쩝쩝 맛있게 마셔준다.
'당장 죽어도 이건 마셔야지.'
어지간히 가슴이 커도 시도하기 힘들다.
골짜기 사이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살이 꽉 차있어서 그런지 잘 고인다.
따끈하게 데워져서 마시기 좋은 온도다.
"짝! 짝! 짝!"
"스게에에~!!"
그 광경.
한국이라면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여성에 대한 오지랖이 아주 극심하다.
'여긴 대황본이거든.'
문화가 먼저다.
아니,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원할 수밖에 없는 행위다.
"부럽스므니다!"
"맛있스므니까?"
"혼또니 오이시데스요 고레."
여행의 묘미.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데 있다.
그 나라에 섞여 들어간 기분이 든다.
'뭐, 그렇겠지.'
음식 퀄리티만 봐도 싼마이한 곳은 아니다.
손님들의 직업도 변호사, 관료, 대기업 부장 등 상류층이다.
타악!
그러니까 이런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중뱃살, 잿방어, 보리새우, 엔가와 등 기름진 생선으로 만든 스시가 나온다.
타악!
배를 채우기 좋은 군함말이.
성게알, 연어알, 고노가와, 네기토로 등을 사용해 풍성하게 꾸렸다.
"성게알이나 연어알은 알겠는데 이건 뭐에요?"
"해삼 정액통."
"지랄 마라."
"진짜로."
맛도, 구성도 상당히 알찬 오마카세다.
진짜 상류층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지만.
'네기토로 같은 걸 내놓는 것 보면."
참치 뼈에서 긁은 살을 뭉친 것이다.
저급 식재료라는 이미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니도 오가와 혹은 히라카와.
야채가 품은 단맛도 브랜드가 있는 건 아니어 보인다.
"맛만 있는데요?"
"뭐, 그렇지."
"가격도 이 정도면 괜찮고."
어디까지나 진짜가 아닐 뿐.
고급 주점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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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자리요금×2 2,000円
주말요금×2 2,000円
특별요금×2 2,000円
맡기기×2 12,000円
소비세 1,440円
총합 19,440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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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적이 남아있다.
인당 6000엔의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뻥튀기됐다.
"뭐에요 이거? 관광객이라고 등쳐 먹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현지인도 등쳐 먹고 있어."
소비세.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한다.
물건값의 8%만큼 더 내는 것이다.
'그거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시키지도 않은 요금이 왜 따따블로 붙는 거지?
버블 시대의 흔적이다.
과거 잘 먹고 잘 살던 시절에 별의별 방식으로 요금을 받은 것이다.
"그게 아직도 남아있다고요?"
"그래."
"지금 일본이 그렇게까지 부유한 것도 아니고 저런 걸 유지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그런 가게들.
당연히 많지는 않다.
버블은 30년 전에 끝나버렸다.
'아직도 버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지.'
과거를 못 잊은 노인들이 있구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단카이 세대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단카이 세대요?"
"우리나라로 치면 586."
"아! 베이비 부머 말하는 거네요."
일본은 대단한 나라임이 맞다.
일뽕이 생기는 것도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50년을 찍어버린 데는.'
당연하게도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는 암세포가 존재한다.
* * *
키타야.
한때 재계 서열 5위권에 들었던 일본 굴지의 대기업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아가씨.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장님께서도 도장을 찍으신 확실한 물량과 액수입니다."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혔다.
키타야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나라가 없을 정도였지만.
'갑자기 반도체를 3배나 주문한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현재는 몰락했다.
팔다리를 다 자르고, 비교적 건재했던 전자기기를 독립해 살아남았다.
그마저도 매년 역성장을 하고 있다.
수출은 물론이고 내수마저 목표치를 밑돌게 되었다.
"이만한 물량을 우리가 소화할 수 없는 실정이에요. 재고를 쌓아둘 만큼 뚜렷한 업황 개선이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가씨 말씀도 맞지요."
"네, 그러니까……."
"하지만 사장님 마음이 변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료 주문을 3배로 넣은 것이다.
도저히 정상적인 변경이 아니다.
'현장은 내가 가장 잘 아는데.'
키타야 카에데.
키타야 전기의 실무 담당자이자 기업의 후계자인 그녀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키타야 전기는 이제 흔하디 흔한 전자기기 회사 중 하나다.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 없다.
뚜우─ 뚜우─
3배의 주문?
소화할 역량이 안된다.
현장의 사정을 아버지이자 사장인 카이세이에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
"저는 전달을 했을 뿐입니다 아가씨."
"알겠어요 아저씨. 물러가세요."
"예."
완전히 고집불통이다.
사장의 명령을 일개 이사가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내가 모르는 뒷사정이 있어.'
이러한 상황.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다.
과거에도 무리한 투자가 화근이 되었던 일이 있다.
업황이 개선이 될 것이다!
이번만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다!
외부에서 유무형의 압력을 받았다.
사람 좋기만한 아버님은 곧이곧대로 믿었다.
글로벌 대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몰락하는 수모를 겪은 이유다.
토독, 톡!
자신의 대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이 회사와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만큼은 지켜야만 한다.
'담당자를 만나보는 수밖에 없어.'
상대 회사의 꼬드김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실무 협상을 통해 다른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카에데는 해당 부품사에 연락해 찾아낸다.
당사와의 거래를 위해 파견된 근무자를 말이다.
'이찬욱씨라……. 말이 잘 통해야 할 텐데.'
그와의 미팅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