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7
헌팅
졸업.
"자네도 올해로 대학 생활의 마지막 1년을 보내게 될 텐데……."
남일이 아니게 되었다.
일단은 3년째 대학을 다니는 중이니까.
'이딴 걸 3년이나 다니네.'
아니, 4년.
입대를 하기 전 시간까지 포함하면 그러하다.
누구는 여기서 몇 년 더 다닌다.
대학원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어떻겠나? 학위를 딸 때까지 신경을 써줄 수 있네만."
"나보고 노예를 하라고요?"
"흐음! 노예라니 듣는 사람 거북하게."
"맞잖아요."
"……."
실상은 아무 의미 없다.
대단한 연구직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은 필요 없거든.'
윗세대는 고졸로도 하던 직업들이다.
그 정도로 업무가 어렵지 않다.
학벌 인플레이션.
대졸자가 많아지다 보니 회사가 요구치를 높였을 뿐이다.
"그 말도 틀리진 않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따서 나쁠 건 없잖나?"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유럽, 일본 서구권 사회에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한국이 유독 심하긴 하지.'
최명철 교수.
물로켓을 쏘아 올리던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솔직히 정론이다.
대한민국에서 학력만큼 잘 먹히는 명함은 없다.
"대학원은 커녕 자퇴를 고려하고 있는데요."
"자퇴?!"
"아무래도 일도 많아지고 있고, 출석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돼서."
그딴 것이 먹히는 세계가 아닐 뿐이지.
미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미신이 있다.
'그 회사가 투자할 만한지 알아보려면 창업자가 자퇴를 했는지 보라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빌게이츠 등.
유명 빅테크 창업자들이 자퇴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를 낭비하지 않고 불태우고 싶었다.
"자네 같은 졸업생이 나와야 후배들도 기가 살지 않겠나? 부디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그건 후배들 입장이고."
"……."
"제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학벌이 가져다주는 어드밴티지.
그보다 학교를 다니는 시간이 더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렇진 않은데.'
그들의 경우는 그러했다.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온갖 개꿀은 다 빨았으니까.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한다.
혈연, 지연, 학연이 괜히 손꼽히는 것이 아니다.
〔혜리〕
「올해 동아리 대박!」
−소라빨로?
「소라도 소란데」
「좀 아는 애들 사이에서는 오빠가 더 유명한 듯?」
그 학연을 이용해 꾸미고 있는 것이 있다.
혜리가 운영하고 있는 동아리가.
'아주 번창하고 있으니까.'
대학을 다닌 이유.
확고한 목적이 존재했다.
회사라는 것은 인재 영입이 가장 힘들다.
"흐음……, 자네가 하고 있는 일도 있고, 졸업반이기도 하니 학점에 관해서는 신경을 써보도록 하겠네."
"다른 강의들도 있는데."
"다른 교수들한테도 말을 해둘 테니 염려 말게나. 다들 자네한테 기대하고 있는 바가 크니 이견은 없을 거야."
막대한 자금.
좋은 아이디어.
있다고 해도 사람이 없으면 굴러갈 수 없다.
대기업들이 명문대 재단에 괜히 기부를 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는.
'노예들이 있어야 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좋은 나라다.
학벌 인플레이션.
고급 노예들을 싼 값에 굴릴 수 있다.
대학원처럼 아무렇게나 굴리지 않을 뿐이다.
목화를 따면 딴 만큼 돈을 주는 성과제다.
"개인 시간만 보장된다면 저도 자퇴까진 생각 안 해도 되겠죠."
"우발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앞으로는 꼭 상담을 해주게나."
"네."
"그리고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려를 해보는 것이……."
어디까지나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을 뿐이다.
조금 엄포를 놓자 교수가 알아서 기어온다.
'돈을 적당히 벌면 졸부 소리 듣는데.'
대한민국 사회.
돈을 천박하게 생각한다.
사실은 누구보다 벌고 싶으면서 말이다.
굉장히 많이 벌면 인정을 받게 된다.
아니, 시기조차 할 생각이 안 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까톡!
콧대 높은 교수들에게 허락을 받는다.
미시경제학 교수도 마지 못해 수긍했다고 한다.
'포트폴리오 조언까지 해주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앞으로는 강의에 쓰잘데기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할애할 수 있다.
「그래서 오빠도 한 번 와줘야 할 듯?」
−귀찮게
「맨날 나한테만 맡겨!」
「파업합니다」
「(화가 단단히 난 곰 콘.jpg)」
혜리가 보내온 카톡.
내용이 좀 더 있었다.
어째서 진징대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주식이라는 게.'
첫 단추가 어렵다.
주식을 시작하는 사람 대부분이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가치투자!
어디선가 들어본 그럴 듯한 이야기를 진리라고 굳게 믿는다.
미래의 노예들을 교육시킨다.
진짜 주식이라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 * *
손익좌.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세 글자가 되었다.
"진짜야?"
"부장 언니가 그랬어!"
"와, 실감이 안 나는데……."
한국대 학생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하다.
입학 전부터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신입생 톡방〕
「얼마나 벌었는데?」
「(초록창 손익좌 기사.News)」
「ㅁㅊㅋㅋ」
「학생인데 수백 억을 가지고 있음?」
「개돌았네」
「이런 사람이 선배라니 ㄷㄷ」
우리 학교의 자랑!
우리 학교가 뭔지도 모르는 새내기들은 기준이 필요하다.
손익좌가 그것이 되고 있다.
만날 일도 없는 CEO, 연예인, 정치인보다 훨씬 와 닿는다.
"이미 왔어?"
"진짜 왔어!"
"잘생겼어?"
"그건 좀……."
주식 동아리가 붐비는 이유.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니, 학교의 자랑이라고 하니 안 볼 수가 없다.
동기 부여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학과를 가리지 않고 모여들고 있는 이유인데.
"주식은 헌팅과도 같다."
예상과는 달랐다.
동아리방의 중앙.
그다지 포스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남자가 앉아있다.
아주 껄렁껄렁한 자세로 말이다.
입밖으로 내뱉는 소리도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다.
"헌팅이요?"
"여자!"
"그런 천박한 의미겠냐? 무슨 사냥 같은 걸 뜻하는 거겠지."
"본능적인 감이 필요하다던가……."
뉴스로 접한 그는 대단하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신격화까지 되었다.
주식 고수!
시장의 흐름을 읽는 선견지명의 소유자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일반인과는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
그 예상이 결과적으로는 적중한다.
"먹었으면 버려라."
"네?"
"순정으로 사귀다가는 더 맛있는 애들을 못 먹는다."
""…….""
의미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신입생들이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질 만도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저딴 게 전문가?"
"픽업아티스트를 잘못 데리고 왔나 본데."
"선배님……?"
신입생들에 한정된다.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관음님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주식 동아리 선배들은 감동의 쓰나미다.
기립박수까지 터진다.
동아리방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 놓고 있다.
짝! 짝! 짝! 짝! 짝!
그동안의 행적들.
신뢰를 심어주기 충분하다.
아니, 똥을 싸도 박수를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아리방은 광기에 차오른다.
그 유명한 손익좌의 강연을 들었다는 사실에 흥분한 것이다.
"뭔 소리야 대체?"
"미쳤나 봐 진짜……."
"이 동아리 역시 이상해."
그러한 광경.
어떤 이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냥 여자에 미친 새끼잖아.'
경제학과 1학년 서은은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그녀는 주식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말이다.
경제학과를 나와서 일류 금융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여자한테 환상 가지면 어떻게 되지?"
"데이죠."
"주식도 마찬가지다. 환상 가지지 마라."
""오오!""
적어도 저런 느낌은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금융인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손익좌인지 뭔지는 몰라도.'
하루종일 여자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을 신뢰하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
"진짜 이상한 선배야."
"그치!"
"그래도 돈은 많이 벌었다는데……."
"저렇게 이상한 짓 해서 번 거겠지."
서은의 그룹.
동아리원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무슨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전혀 도움이 돼보이지 않는다.
같이 있다가는 오염만 될 것 같다.
손익좌와는 거리를 두고 싶다.
그럼에도 주식 동아리에 가입한 건.
"소라 선배는?"
"오늘은 못 온다는데."
"진짜? 어떻게 알아?"
"얘 소라 선배랑 카톡하잖아."
"부럽다!"
윤소라.
서은의 롤모델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길을 먼저 나아가고 있다.
'나도 소라 선배처럼 될 거야.'
그 길을 답습할 것이다.
동아리 선배들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다.
모의투자로 준비했다.
수익을 보는 방법을 배운 다음 실전에 뛰어들었다.
"갈까?"
"걍 가자."
"내가 저번에 맛있는 떡볶이집 발견했는데……."
"미안, 난 나중에."
"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 성장한 것이다.
자신도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인기도.'
욕심이 난다.
소라 선배는 방송에도 나오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게 되고 싶다.
드림걸즈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할 용기는 없지만.
"시청자들이랑 약속했거든."
"시청자?"
"얘 방송하잖아!"
"소라 선배처럼 방송하는 거야?"
개인 방송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서은은 얼마 전부터 방송을 하고 있다.
'아직은 시청자 수도, 수익도 적긴 한데.'
조금씩 성과는 보인다.
주식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만약 엄청난 수익을 낸다면?
시청자 수도 늘어날 것이다.
화제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대에 새로운 주식 고수가 나타났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