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300화 (300/450)

EP.300

소문

매집.

물량을 모아나가고 있다.

주식과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아 가지고……."

매물이 말을 한다는 점이다.

전화로 분명 이야기를 끝내 놨던 집주인이 횡설수설을 해댄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왜 안 뜨냐고!'

마지막까지 사인이 완료돼야 한다.

그 과정이 하루이틀 걸리는 게 아니다.

부동산 매매가 쉽지 않은 이유.

바쁜 내가 일일이 설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저희가 선생님의 고민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수현에게 비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얼굴을 가까이 내민다.

집주인 아저씨가 당황해 하면서도 실실 웃는다.

마음의 문이 단박에 열린다.

'효과 직빵이지.'

부동산 매매는 직접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언변과 첫 인상이 중요하다.

전자는 해보면서 익혀야 한다.

후자는 타고난 외모를 이용하면 쉬운 일이다.

"허허, 아가씨가 신경 쓸 일은 아닌데."

"선생님께서 고민이 있으시면 저희도 불편해서요. 함께 해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허허허, 그럴까?"

집주인들.

십중팔구는 아저씨들이다.

에쁜 아가씨가 말을 걸면 좋아 죽는다.

그 점을 공략하고 있다.

머리카락을 다시 검정으로 염색하고, 섹시+단정한 정장을 입힌 이유다.

'경리가 괜히 아저씨들의 이상형이 아니거든.'

일상 속에 숨어있는 비일상이다.

인연만 생기면 어떻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머릿속 상상을 자극한다.

마치 호의가 있는 듯이 행동해주기만 하면 된다.

"사모님과 사이가 안 좋으시구나……."

"자꾸 집값 올랐을 때 팔라고 훈수나 두고."

"마음이 많이 심란하시겠어요."

"에휴, 그렇지 뭐……. 응??"

"제 생각에는요."

이혼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고민도 많고, 어깨도 축 쳐져 있을 만도 하다.

수현이 아저씨의 손을 꼭 잡는다.

두 손으로 살포시 감싼 채 눈도 마주 본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에 있으면,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나게 되거든요."

"그, 그러게?"

"만약 오른다고 해도 그동안 힘든 건 선생님 아닐까요?"

"그렇지……."

아저씨가 늦은 나이에 로망을 찾으신다.

헤벌레 웃는 것이 마음이 동한 듯 보인다.

'그렇지.'

결국 마음 문제다.

사소한 계기가 주어지는 것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방긋 웃으며 결정타를 날린다.

듣고 싶었을 말을 들려주는 것이다.

"계약을 하시면 그동안 선생님이 지내실 장소는 저희가 마련해드릴게요."

"그런 것도 해주나?"

"네, 계약 조건에서 요구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꼭 좋은 곳으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불안감.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집이다.

보금자리를 떠나는 건 누구라도 망설여진다.

그 고민을 해결해준다.

전세를 놓을 집 중 놀고 있는 곳을 적당히 임대해주면 될 것이다.

"힘드시면 꼭 연락하시고요. 사모님 때문에 너무 상처 받지 마세요."

그리고 희망.

계약 서류에 사인을 한 뒤, 한 번 더 립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행복회로만큼 성능 좋은 회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어떤 IT회사도 개발하지 못한다.

자동으로 열과 행복을 생산하는 꿈의 반도체다.

"아가씨 실례가 안된다면……."

"말씀하세요 선생님."

"아직 고민이 있는 게 좀 있어서. 상담을 해도 될까 싶은데."

"네, 언제든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그것을 풀로 가동하게 만든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특기인 분야다.

"한 건 올렸네."

"생각보다 날먹인 듯?"

"거짓말을 잘한다니까."

"오빠한테 하는 것도 거짓말일 수도."

"……."

대놓고 바람도 필 정도다.

보이는 것과 달리 아주 당돌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더 꼴리는 거고.'

외모와 복장.

너무 갑갑해서도, 천박해서도 안된다.

신뢰라는 것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수현은 잘 소화한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시크하고, 신비감 있는 타입의 여성이다.

"여보 그때 팔라고 했잖아요!"

"아, 그때는 더 갈 줄 알았지……."

"내가 정말 당신 때문에 못 살아!"

그런 것이 안 먹히는 가정도 있다.

집값 상승은 긍정적인 영향만 있는 건 아니다.

'강남 가정 불화 원인 1순위거든.'

라고 할 때 팔 걸!

부동산 시장도 똑같다.

아파트값이 내려가면 아쉬움에 속이 탄다.

고점일 때 왜 안 팔았냐며 싸우는 것이다.

그 외 실질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당신이 카드 쓴 건 어떻고……."

"뭐 이 영감탱이야?"

"내가 틀린 말했어! 이자 갚기도 버거워 죽겠는데 집값 올랐다고 펑펑 쓰더니."

내가 20억 건물주인데!

씀씀이가 커진다.

실제로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그 반작용도 씨게 오지.'

통장에 찍힌 적도 없던 돈이다.

거품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

한국신문− 「거래절벽 지속…정부 "부동산 가격 정상화 과정"」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신문이 보인다.

대문짝만하게 나온 기사가 모든 걸 말해준다.

"두 분께서 나누실 말씀이 많으신가 봐요."

"아, 그게……."

"호호."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요즘 금리가 워낙 높다 보니까, 그리고 더 올라갈 예정이라고 하다 보니 난리도 아니거든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에 맞춰서 대응한다.

처음 만났던 아저씨가 마음의 안정을 원했듯.

'이 사람들에게는 팔 근거를 만들어주면 되니까.'

매도자가 원하는 말을 골라서 해주는 것이다.

물론 내 이름을 팔면 문제가 되겠지만.

"닥터둠 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닥터둠이요?"

"네, 대학교 교수님이신데 애널리스트도 겸직하고 계신 경제계에서 유명하신 분입니다."

"와~!"

"그럼 믿을 만하지요."

업계 전문가분의 식견을 빌리면 된다.

한 치도 거짓말도 없는 사실이다.

'아님 말고.'

내가 말한 것도 아닌데 뭐.

틀린다면 그분이 어련히 잘 책임지실 것이다.

"그래도 교수님이라고 무조건 맞는 건 아닐 텐데……."

"여보! 저승 갈 때 그 돈 다 가져갈 거야?"

"알았어 이 여편네야!"

권위의 법칙.

유명하신 분이 말씀하셨다고 하니 덥썩 믿는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가 있다.

확인을 시켜주니 바로 계약이 이루어진다.

사각! 사각!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이다.

주식처럼 어떻게 흘러가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콜에 베팅했을 뿐.

이곳 백마 아파트에 대한 투자를 점점 늘려나간다.

"부인이 있으면 할 수가 없네요 미인계."

"있어도 넘어가는 게 남자야."

"에바."

"넌 다르냐?"

"오."

급매물로 나오는 건 대개 사정이 있는 물건이다.

기본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것이 옳다.

'그런 걸 조율하는 것도 갖춰야 할 능력이지.'

부동산은 전문 투자자가 아닌 개인들의 시장이다.

투자 지식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모른다.

장만 구워 삶으면 좋은 가격에 매물을 확보할 수 있다.

아니, 서로가 만족하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찌이익~!

수현도 말이다.

꼴림 포인트로 입힌 검은 스타킹을 손톱으로 쓰윽 긁어버린다.

"이 다 나갔네."

"이러려고 입힌 건데."

"오빠 진짜 개변태네요."

비서 역할을 잘 수행해주고 있다.

몸도 마음도 아주 최적화가 되었다.

무덤덤하기만 하던 표정에도 색기가 묻어난다.

여러 의미로 성장을 했다.

* * *

부동산 시장.

〔부동산 갤러리〕

─닥터둠이 보는 한국 부동산 상황.txt

─대치동 사는 부붕이 손익좌 봤다

─드디어 현실이 된 역전세난 ㄷㄷ

─내년에 부동산 볼만할 거야 ㅋㅋ

날이 갈수록 심리는 악화된다.

안 좋아지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현실이 된 역전세난 ㄷㄷ

['역전세난 확산'…전세 10채 중 4채, 2년새 보증금 하락.News]

갭투자 곧 터짐

└이거 심각한 거 아니냐?

└깡통전세 물량 법원에 ㅈㄴ 나오겠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동네도 지금 전세 안 구해지더라

└부동산 거품 꺼지는 건 시간 문제

여러 뉴스.

아니, 현실에서 느껴진다.

부동산은 '실생활' 그 자체다.

와 닿는 정도가 다르다.

공포감이 훨씬 더 뼛속 깊이 울려 퍼지고 있다.

─내년에 부동산 볼만 할 거야 ㅋㅋ

지금 부동산 떨어진다고 징징대는 거 코웃음도 안 나옴

18년 고점 전세 만기가 내년에 도래하는데

그 갭투가 터져야 진짜 하락이 시작되는 거 ㅇㅇ

└찐하락은 시작도 안 함

└영끌이들 좋아 죽으려고 하겠누 ㅋㅋ

└이론상 맞는데 한국이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그렇게 안됨

글쓴이− 무슨 부동산 신화가 평생 갈 줄 아네 ㅄ ㅋㅋㅋㅋㅋ

경제가 붕괴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라 볼 일만은 아니다.

공포 심리가 퍼지고 있다.

시장을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원인 중 하나.

─닥터둠이 보는 한국 부동산 상황.txt

[닥터둠 교수 새 영상.Youtube]

일본 부동산 버블이랑 소름 돋게 비슷하다고 함

최대한 보수적으로 봐도

집값은 한 번 떨어지면 최소 3~4년 가는 거라서 길게 인내하라고

└닥터둠은 개추

└와 ㅅㅂ 여기까진 생각 못했는데

└일본 부동산 버블급이면 30년 가는 거 아니냐?

└한국 멸망을 보시는구나

부채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닥터둠은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 받는다.

지금까지 다 맞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침체될수록 닥터둠의 명성도 높아져 간다.

그렇게 되어가야 했다.

그의 명성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대치동 사는 부붕이 손익좌 봤다

[백마 아파트 길거리 사진.jpg]

집 보러 다니는 분위기던데

손익좌가 집 본다는 건 저점이라는 소리 아님?

└손익좌가 누군데 씹덕아

└지금 집을 사는 병신이 있다? 뿌슝빠슝!

└최소 살 만한 가격이라는 소린데

└설마 주식 하는 그 손익좌?

업계에 뉴페이스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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