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99화 (299/450)

EP.299

갭투자

대치동.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 중 하나다.

띵동~♪

그런 부촌의 아파트를 사러 왔다.

초인종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자.

"집 보러 오신 분?"

50대쯤 돼보이는 아저씨가 문을 연다.

고개만 빼꼼 열고 쳐다본다.

'거 좀 시원하게 열 것이지.'

안전고리도 채 풀지 않았다.

강한 경계감을 내비치고 있다.

위아래로 쓱 훑어보기까지 한다.

기분이 상하려던 참에.

"안녕하세요. 오늘 3시에 약속드린 전수현이에요. 잠시 선생님댁을 둘러볼 수 있을까요?"

"아 전화 주신 분! 어서 들어오시죠 네."

수현이 어깨를 툭 밀친다.

집주인이 환한 미소로 문을 열어준다.

'아주 서윗하구만.'

예쁜 여자.

그것도 정장으로 아주 말끔하고 단정하게 차려 입었다.

신뢰가 꽂힐 만도 하다.

수현을 비서로 데리고 다니는 이유다.

"편하게 둘러보시면 됩니다. 네……. 어지럽히진 마시고요."

여전히 나는 신뢰 못하는 듯하다.

그런 집주인의 심정을 모르진 않다.

이 새끼가 정말 집을 사기는 할 건가?

의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음……."

"어때?"

"전 잘 모르죠. 근데 생각보다 많이 낡았네요."

피해 의식도 있다.

수현이 하는 생각을 모두가 떠올렸을 것이다.

'40년 된 아파트니까.'

이곳저곳이 삭아있다.

임대인 입장에서 가격을 깎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다 둘러보셨나요?"

"네, 깔끔하게 잘 쓰셨더라고요. 근데 거실이랑 아드님 방에……."

"아."

"구멍이랑 자국 같은 게 많더라고요. 그 부분만 수선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저희 아들내미가 어렸을 적에 좀."

그럼에도 산다.

최대한 가격을 깎아서.

집주인과의 대화는 일종의 딜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냥 사도 상관은 없는데.'

영 띠껍게 굴었으니 나도 띠꺼울 부분을 추가해준다.

"벽이랑 바닥이 조금 함몰돼있어 가지고. 그런 부분은 비용이 좀 많이 들거든요."

"그, 그런가요?"

"구체적인 액수는 인테리어 업체에 문의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그 정도는……, 감수를 하겠습니다."

한 2천만 원 깎은 셈이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견적만 받아내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타악!

딜교를 마치고 나온다.

선량한 시민인 듯 부동산 업자의 수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런 곳을 꼭 사야 돼요?"

"왜? 마음에 안 들어?"

"들 리가."

수현으로서는 탐탁지 않아 보인다.

양손을 으쓱 하며 의문을 표시한다.

모르는 것이다.

이곳 대치동.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데일리뉴스− 「입시공화국 풍자 'SKY 캐슬' 신드롬…사교육 현실은?」

교육열로 유명하다.

드라마에서 나온 건 현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상위권 대학, 인기과일수록 사교육이 필수로 든다.

의대 같은 경우는.

'학생당 평균 10억 정도 쓴다고 하지.'

개인 과외.

유명 강사.

듣기 위해서는 그만한 돈이 필요하다.

"에바 아님?"

"너도 한국대 오는데 몇 억 썼을 거 아니야."

"근가?"

대한민국 학생 대부분이 해당된다.

본인은 잘 모를 수 있어도.

'지도 조기 유학 갔다 온 주제에.'

은근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

요즘은 초등학교 전부터 사교육을 하는 추세다.

그 정도 해야만 명문대에 갈 수 있다.

커트 라인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인강도 있지 않음?"

"있겠지."

"아는 애 중에 인강만 들은 애도 있는데……."

"그건 극소수고."

언론에서는 많이 떠든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다느니.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느니.

'우민들 달래기용이지.'

개천에서 용 난다!

계급 이동의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개소리가 된지 수십 년 됐다.

실제 통계는 맛이 가버린지 오래다.

"사교육빨로 대학 간 애들이 손 번쩍 들고 저 돈 발라서 대학 갔어요! 하지 않기 때문에 공론화가 되지 않을 뿐이지."

"오."

아무리 빡대가리라도 돈만 갈아 넣으면 된다.

서울대는 몰라도 연세대나 고려대쯤은 쉽게 간다!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이야기다.

강사들이 대놓고 떠들 정도다.

즉, 학력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니까.'

대치동.

강남 사모님들이 오려고 난리가 나는 것이다.

부자들이 돈을 쓰는 데는 이유가 따른다.

"그래도."

"뭐?"

"개썩었잖아요. 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을 굳이?"

수현은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들었으면 상처 받았을 말을 내뱉는다.

'그럴 만하긴 해.'

그 정도로 좋지가 않다.

이곳 백마 아파트는 1979년에 준공된 곳으로 엄청나게 오래됐다.

아파트 계단과 외벽에 여기저기 금이 쩍쩍 가있다.

조금 과장하면 폐허라고 해도 될 지경이다.

"저기 시계탑 보여?"

"시계탑?"

"저게 진짜 오래된 아파트에만 있는 거거든."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5m가 넘어가는 높은 시계탑이 보인다.

'1970년대니까.'

핸드폰은 커녕 손목 시계도 귀하던 시절이다.

시간을 아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탑.

이제는 존재 의미가 전혀 없는 옛날의 유물이다.

"그래서 여기가 얼마라고요?"

"14억."

"헐."

"그나마 20억에서 떨어진 거야."

가격은 전혀 옛날답지가 않다.

인플레이션을 아주 직빵으로 맞고 있다.

'분양가가 2천만 원이었다고 하니.'

무려 100배나 뻥튀기된 것이다.

40년 전이라는 걸 감안해도 엄청나다.

"이딴 곳을 왜……."

"목돈 주고 사냐고?"

"솔직히 이해 안 감."

수현이 이해하지 못할 만도 하다.

어떻게 봐도 지나치게 비싸 보인다.

'이런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아파트가.'

대치동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우웅~!

차를 타고 근처를 둘러본다.

어느 지역에서나 볼 법한 상가와 학원가지만.

"나 저기 다녔었는데!"

"거봐. 부모님이 돈 쓰셨다니까."

"그러게."

"덕분에 잘 쓰고 있어."

"?"

질이 다르다.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강사들을 전부 이곳 대치동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질이 좋긴 하지.'

수현도 그래서 쫀득쫀득한 것일지 모른다.

배운 보지는 조임부터가 다르다.

"다른 곳에서도 올 수 있지 않아요? 저도 대치동 살진 않았는데."

"왕복 1시간씩 걸리면서?"

"아."

"그거지."

그 배움의 시기.

학생으로 보내는 나날은 짧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전쟁처럼 바쁘다.

'그 1시간만큼 더 공부할 수가 있다는 거잖아.'

대치동에 사는 이유다.

한 마디로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말이 1시간이지.

효율로 따졌을 때는 훨씬 극심한 차이를 보인다.

돈만 바르면 대학을 간다!

이런 소리가 결코 근거 없이 나오는 게 아니다.

끼익−!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다시 본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이곳 백마 아파트가.

"가성비 쩌는 걸 수도?"

"뭐, 그러한 부분도 분명히 포함되지."

대치동에 있다는 이유로 20억을 받을 만하다.

아니, 만약 재건축까지 된다면.

'완전 떡상할 거 아니야.'

부동산 시장의 원리.

주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대감'이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

『백마 아파트 가격 추이』

14.2억 ▼5.8억 (−29%)

[2018년 중순 고점 찍고 내려가는 그래프jpg]

+---------------------------------------------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주식 시장의 상승과 함께 가격이 쭉쭉 올랐다.

상승이 멈춘 이후에도 말이다.

재건축이라는 호재로 마지막 랠리를 불태운 것이다.

"실제로 재건축 예정은 잡혀있지 않지만."

"개미한테 떠넘기는 세력 같네요."

"대충 비슷한 거지."

부동산 시장도 그러하다.

고점에 매물을 떠안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개미들이다.

『주민생명 위협해서 집값안정 웬말이냐!』

『사람답게 살고싶다 서울시장 각성하라!』

울부짖는 것밖에 할 게 없다.

아파트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는 이유다.

"서울 시장님이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아직 안 쳤을 걸?"

"네?"

"아니, 조금 헷갈렸어 시기를."

사고를 친 건 아니고. 칠 예정이긴 하다.

하마터면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주식 투자자가 지켜야 할 원칙.

시장에 절대 대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절대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 이기려고 하면 할수록 큰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

실제로 중요한 부분이다.

재건축을 믿고 부동산을 산 주민들이 그래서 고통 받는다.

'아무튼.'

현 서울 시장님께서 재건축을 완강하게 반대하신다.

기대감을 꺼뜨린 원인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기회.

최근의 하락장으로 부동산 거품이 쏙 빠지게 되었다.

물론 강남권은 영향이 적다.

주식으로 따지면 대형주에 해당하기 때문이지만.

"여기는 엄청 빠졌다면서요?"

"케이스가 다르잖아."

"오."

"기대감 때문에 생긴 거품은 꺼지는 것도 빠른 법이거든."

이곳 백마 아파트의 실제 가치는 낮다.

재건축을 안 하면 정말 쓰레기다.

'근데 원래 주식이.'

부동산도 마찬가지.

기대감이 푹 꺼졌을 때야 말로 저점이라 할 수 있다.

재료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되살아나게 되어있다.

경기가 살아난다면?

이 입지와 재건축 이슈는 최고의 랠리를 만들어줄 것이다.

끼익−!

그리고 나는 경기가 살아나는데 걸고 있다.

증시의 상승은 곧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반영되기 전까지 싹 쓸어담는 거지."

"오케이."

"수현이가 오빠 대신해서 잘 해줘야 돼. 알았지?"

"월급은?"

어떤 자산이든 중요한 건 항상 매수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최적의 타이밍이다.

'여러모로 말이야.'

증시의 상승.

시장의 움직임.

한국의 기형적인 부동산 법률도 아군이 되어준다.

부동산은 무조건 우상향한다!

그 광기의 바다에 한 번 빠져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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