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1
부산
레이첼의 테이블 앞.
마치 미슐랭 레스토랑에라도 온 것처럼 깔끔하게 정돈돼있다.
국밥도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밥알은 커녕 다대기 한 스푼 넣지 않았다.
"와따 대지구빱에 소금을 느 묵는다꼬?"
"일마 이그 대지구빱 물 줄 모리네."
"국물이 와 맹탕이고!!"
"히익!"
현지인들 입장에서 개빡칠 만도 하다.
돼지국밥을 먹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타악!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공기밥을 넣고, 다대기와 새우젓도 한 스푼씩 투하한다.
본래의 색깔은 온데간데없이 탁해지는 국물.
레이첼의 표정도 일그러질 만하지만.
"붓싼 사람들은 일케 맛난 거 있음 다 쓰까서 묵는다 아이가."
"아, 근데……."
"와?"
"야채는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다시 역린을 건드렸다.
현지인들이 눈깔이 돌아가서 성을 낼 만도 하다.
"마 니 도란나! 정구지를 따로 묵는다고?"
"그, 그게……."
"왐마 다들 이리 와보소! 일마 이거 정구지를 찝으묵는단다!!"
"어느 똘게이가 정구지를 안 적사 묵노?"
"증구지는 쓰까 묵는기다. 와나 일마 이거 안 대겄네~."
정구지.
부산에서 부추를 일컫는 말이다.
돼지국밥을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밑반찬이다.
'그리고 이곳은 부산이니까.'
섞어 먹는 것을 장려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부산의 돼지국밥은 말아 먹어야 한다.
타악!
부추무침을 한 접시 투하한다.
빨갛고 자극적으로 변한 국물 위에 고춧가루와 참기름, 부추가 동동 떠다닌다.
그 비주얼.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당연한 레이첼에게는 충격적이다.
한 편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 이제 먹으면 될 것 같네요. 네, 감사합니다."
"마 이거 대지구빱 무을 줄 모리네!"
"네?"
"저저 식당 이모한테 3번 리필 받아가 대지구빱에 토째로 느뿔고 이르케이르케 팍팍 스까무그야 제마시제."
"???"
진정한 미식의 길은 멀었다.
현지인들이 돼지국밥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전수해준다.
'확실히 본고장의 방법으로 먹는 것이 중요하지.'
레이첼 덕분에 수고 없이 알아낼 수 있었다.
레이첼의 국밥이 이상적인 형태를 띄게 된다.
타악!
타악!
부추무침×3.
아주 알차게 올려진다.
숟가락으로 쓱쓱 스까는 것으로 완성된다.
꿀꺽!
돼지국밥인지, 돼지국부추인지 모를 음식이.
레이첼은 뒤틀린 황천의 머릿고기 찌개라도 본 듯한 표정이다.
"니 으데 가서 이런 맛 절때 못 본다 아이가?"
"퍼뜩 무봐라! 디진다!"
""무봐라! 무봐라!""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돼지국밥 초보 만나서 엄청 신난 현지인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꿀꺽!
숟가락을 든 손을 덜덜 떤다.
용기를 내서 한 스푼 입안에 가져다 댄다.
우물우물 씹고 삼킨다.
그 어떤 미슐랭 식당에서도 하지 않았을 미소를 띄우며.
"맛있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척 치켜든다.
그제서야 만족한 현지인들이 각자의 자리로 가 착석한다.
'원래 좀 참견 마려운 법이지.'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 같아도 김치로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면 김치 싸다구가 마렵다.
데일리뉴스− 「‘김치 칵테일’ 따봉…브라질에 부는 한식 바람」
실제로 말이다.
그 지역의 음식을 제대로 먹어주지 않으면 현지인들 입장에서 섭섭한 노릇이다.
"어째서 맛있는 음식에 이런 짓을……."
"그게 바로 부산이니까."
"설마 다른 음식도 섞어 먹나요?!"
"오징어덮밥은 안 먹길 잘했네."
외지인들 입장에서도 답답할 수 있다.
맛있으면서도 깔끔하게 먹는 방법도 있는데?
'퓨전 요리라는 게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거고.'
현지의 방식.
원류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조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밀키트는 타 지역의 사람들도 먹는다.
모두가 맛있게 먹을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타악!
그것은 나중의 일.
일단 식사부터 마친다.
사이드 메뉴로 시킨 수육이 도착한다.
"이, 이것도 섞어 먹어야 하나요?"
"마! 니 도란나?"
"히익!"
PTSD가 조금 생겼는지 레이첼이 얼어붙는다.
수육을 섞어 먹는 사람은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이곳 부산에 대해 아주 잘 아는 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러지 않는다.
토옥!
수육 한 점.
위에 정구지, 부추를 올린다.
양파와 새우젓까지 완벽하다.
"이대로 먹으면 되나요?"
"그래."
"뭐 더 하는 건 없겠죠?"
"어디 속고만 살았나."
입안에서 연주되는 하모니.
고소한 돼지고기를 베이스로 정구지, 양파, 새우젓이 톡톡 울려 퍼진다.
'맛집이네.'
일본의 돈코츠 라멘도 그렇지만 돼지 육수 특유의 누린내가 있다.
맛집일수록 그것을 잘 잡는다.
"맛있어요."
"그렇지?"
"평범해요."
"눈물을 흘릴 정도야?"
레이첼도 몹시 만족한 모양이다.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감탄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이래서 3일에 한 번, 아니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레이첼의 지나치게 까다로운 입맛과 TMI도 조금은 고쳐졌을지 모른다.
조용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치익……!
맛있는 음식에는 술을 곁들이지 않으면 섭하다.
준비해온 막걸리의 병뚜껑을 딴다.
"또 한국의 술인가요?"
"그래."
"그 술은 알 것 같습니다. 막걸리라고 했었죠. 맛은 괜찮았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대중적인 술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에게도 레트로 열풍을 타고 자리 잡고 있다.
'맛은 확실히 있지.'
하지만 단점 또한 명확하다.
시큼한 느낌과 텁텁한 질감, 그리고 마시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숙취.
"그거랑은 다를 거야."
"당신이 주는 술이라면 믿을 만하죠."
"약 타서 줘도 꿀꺽꿀꺽 먹겠네."
"When are you going to prison?"
그것은 제대로 된 막걸리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부 양산형에서 나오는 단점이다.
『해창 12도』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막걸리는 전혀 다르다.
레이첼의 양은잔에 한 잔 가득히 따라준다.
꼴꼴~~
아주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빛을 투과시키지 않는 아주 탁한 백색 액체가 말이다.
"내 정액 보는 것 같네."
"당신은 정말……, 상식이라는 게 없군요."
"자주 듣는 소리지."
그만큼 걸쭉하다.
입술에 처음 닿는 감각은 술이 아닌, 미숫가루를 탄 우유 같은 느낌이다.
꿀꺽!
하지만 전혀 다르다.
입안 가득 머금어도 텁텁함 한 점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사과의 산미, 부드러운 곡식의 단맛. 그리고 땅콩과 옥수수의 고소함도 느껴지네요. 혀를 톡 쏘고 지나가는 탄산은 기분 좋은 피니쉬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마! 니 도란나?"
"히익!"
맛도 향도 풍부하다.
같은 막걸리로 분류돼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른 술이다.
'재료부터가.'
양산형 막걸리는 밀을 많이 쓴다.
특유의 텁텁함은 이 밀 때문에 비롯된다.
전통 막걸리는 쌀.
일반 막걸리보다 걸쭉함에도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이건 훌륭한 술이네요."
"그렇지?"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습니다."
국밥에는 소주가 정석이지만, 이 막걸리는 조금 특별하다.
12도에 육박하는 술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다.
부산 앞바다의 쌀쌀한 바닷바람은 술기운을 깨게 만들기 충분했다.
"식사 전에 했던 질문입니다만……, 당신 같은 사람이 어째서 그런 잡무를 떠맡고 있는 거죠?"
"내 맘인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빨갰던 볼.
평소처럼 하얗고 창백하게 돌아왔다.
도도한 공주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진짜 공주님이긴 하지.'
효율을 따지는 건 단순한 성격만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사회 전반을 보는 시각이다.
나의 능력.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레이첼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할 만한 일이니까 그렇지."
"그런 일이요?"
"아니, 전부."
"?"
현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말이다.
내가 받는 보수는 결코 적지 않지만.
'내가 하기에는.'
소소한 것도 사실이다.
더 큰 일을 벌일 깜냥도, 능력도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나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
어쩌면 스카웃할 인재로 눈여겨보는 걸지도 모른다.
"낮에 들렸던 기업."
'오성중공업 말이지요?"
"밀키트 업무를 해준다고 한 기업."
"둘마트라고 했나요?"
"다 오성 계열사야."
"네?"
그것이야 말로 작은 물.
나라 단위가 아니라면 나에게는 미적지근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 괜히 오성 공화국이 아니거든.'
오성을 달고 있는 계열사만이 아니다.
친가와 외가가 하는 한솥, 구세계, DJ, 메리트, 중앙 등.
헬지와도 성혼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국내 웬만한 대기업들과 혈연 관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이 재벌 공화국이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상상 이상이지."
내부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미 꽤나 진척이 되어있다.
'언제나 첫 단추가 어려운 법이지.'
이곳 부산도 말이다.
차후 글로벌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될 도시다.
"북극항로를 말하는 거군요?"
"그래."
"확실히 위치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부산을 대체할 도시는 없겠죠."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를 넘어 세계의 지정학적 가치를 바꾸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북극항로다.
부산이 주요 항구가 된다.
그리고 한국은.
'전세계 조선업의 중심지니까.'
지금은 비실비실해도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산업이다.
시대가 그렇게 흘러간다.
오성중공업을 포함한 조선사들을 도와준 것.
언젠가 뚫고 나올 싹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너무 뜬구름 잡는 미래이긴 하지만요."
"크흠!"
"당신의 관점은 흥미로워요. 마치 제가 보지 못하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 같아요."
회귀.
알고 있기 때문에 준비할 수도 있다.
큰 그림이다기 보다는 해야 할 일이다.
레이첼로서는 그것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너무 지나치게 떠벌린 감도 있지만.
"아!"
"응?"
"또 정신 없이 술을……, 이번에도 설마 하룻밤 자고 갈 건가요?"
"괜찮아. 심심하지 않도록 장난감을 잔뜩 준비해왔으니까."
"장난감이요?"
조교만 잘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