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90화 (290/450)

EP.290

부산

얼마 전에 갔던 기업.

본사의 재무 책임자(CFO)는 납득을 했지만, 현장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었다.

"아이, 선생님? 말이 안된다 안 캅니까!"

딱히 화가 나신 것이 아니다.

단순히 말투가, 억양이 드센 것 뿐이다.

'아무래도.'

사투리.

경상도쪽의 방언은 처음 들으면 공격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CFO께 드린 설명으로는 납득이 안되신 걸까요?"

"그게 말이 안된다 안 캅니까!"

"아, 그렇게 되네요."

진짜 그런 걸 수도 있고.

환율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럴 만하지.'

오성중공업.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선사 중 하나다.

그리고 조선사에는 한 가지 PTSD가 있다.

한국신문− 「조선 노동자 2만명 떠난 통영, ‘KIKO 상처’ 그대로」

2008년경의 사건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환율이 1500원까지 급등했다.

환헷지를 했던 조선사들은 조 단위의 손실을 입었다.

환율에 PTSD가 존재한다.

"선생님이 몰라서 그러십니더. 이곳 부산에 피바람이 불었다 안 캅니까?!"

현장 담당자가 목에 핏대를 세울 만도 하다.

그로 인해 파산한 조선사며, 실직한 노동자도 보통 규모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온 거지.'

실제 기업은 사무와 현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IT가 아닌, 중공업 계열은 특히 그럴 수밖에 없다.

본사는 서울.

조선소는 부산.

한국의 끝과 끝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여기 사람들 설득할 생각 마이소."

"저도 반장님 생각은 알겠는데."

"본사가 몇 푼 아끼려다 잘리는 건 우리 노동자 아입니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

CFO가 가서 설득 좀 해달라며 미션을 부여한 것이다.

'영업직이라는 게 다 그렇지.'

투자 자문사도 일종의 영업직.

분석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업이 사줘야만 한다.

이런 잡일을 떠넘겨올 때도 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환율이라는 게 1500원까지 뛰는 일은 국가 위기급의 사태 빼고는 없어요."

"내가 IMF 때도, 조선소 무너질 때도 경험했다 하지 않습니꺼?"

"그런 일이 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만."

노동자 계층.

못 배워 처먹었다 시발.

아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타격을 입었을 때 가장 먼저 잘려나간다.

나이가 나이니 재취업도 힘들어 인생이 망가진다.

'사실 투자자도 다르진 않지.'

주식으로 큰 돈을 잃은 경험은 평생 못 잊는다.

트라우마가 되어 주식을 쳐다도 보지 않게 돼버린다.

「주식 하면 패가망신 하는 겨!」− 라떼 노인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하는 소리.

반박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잘린 분들 어찌 사는지 아시는지예? 죽지 모테 살고 있다 아입니꺼!"

"알빠노."

"머라꼬요?"

"아니, 너무 과민하시다 이거죠."

감성적으로 나오고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다.

직업 특성상 관점이 다르기도 하다.

'정리해고 하면 주가 오르는 호재인데.'

원가 절감이 되기 때문에 호재성 뉴스로 분류된다.

몇만 명씩 팍팍 자르라고 물 떠놓고 기도하기도 한다.

"환율이 안 오른다고 어찌 믿으라는 건지 그것부터가 이해가 안되겠심더."

"그야 파월은 천국을 못 갈 사람이니까."

"그 양반 사람이라도 죽인 겁니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일을 했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 계층의 생각은 잘 이해가 안된다.

'사실 뭐 많이 죽이긴 했겠지.'

월스트리트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의 30% 정도는 파월이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특히 많다.

자본주의에 근간을 둔 사고방식.

일개 노동자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심을 하고 있던 참에.

"Only hawks get to go to central banker heaven."

"뭐, 뭡니꺼? 까막눈이라 모르겠심더."

"현재 미국의 연준의장인 파월이 강경한 정책을 지속할 만큼 매파적인 성향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아니, 외국 처자가 와이리 한국말을 잘하노?"

잠자고 듣고 있던 레이첼이 입을 열어온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문맥만 듣고도 파악을 했다.

'뭐, 상식이긴 하지.'

투자자에게는 말이다.

연준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며 시장에 돈을 푼다.

언젠가는 다시 거둬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인플레이션 및 버블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둘기파 의원들은 그것을 망설인다.

금융권, 정치권에서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경제가 박살이라도 나면 어떡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꺾는다.

「중앙은행가들은 매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 로버트 맥티어(Robert McTeer)

세간의 비판을 무시하고 금리를 올리는 것.

매파가 옳다는 걸 상기시키는 격언이다.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시지 않아도 돼요. 조금은 위안이 되셨을까요?"

"무슨 인형이 말도 하네! 외국 처자라 외국 일을 잘 아는 모양이지예?"

"뭐 그런가 보네요."

딱히 알 바가 아니다.

감성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설득력을 중요시 하고 있다.

'여자가 말하니까 헬렐레 하는 거지 시발.'

외모빨.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일은 없을 수는 없다.

외국인이 한국말까지 잘하니 호감이 생길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제안이 있습니다만."

"아 선생님도 있었지예. 말씀하이소."

"……역으로 돌려줄 기회라는 거죠."

"와예?"

물꼬가 틔었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말 자체를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였으니까.

'강력한 트라우마를 가진 만큼.'

원망 또한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KIKO를 권유한 은행에게 말이다.

"은행 선생님들이 이번에도 위험하다고 하셨는데……."

"그게 상술이거든요."

"제가 또 속고 있는 거였습니꺼?"

"보험 상품 팔아 먹으려고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떤 거죠."

대한민국 정치권에서도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편 가르기를 해야 잘 속는다.

'아니, 잘 믿지.'

적어도 은행에게 속는 것보다는 낫다.

편하게 이자 장사하려고 별짓을 다 한다.

"아따 선생님이랑 미인 선생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예! 살펴 가이소!"

현장의 불신.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본인들도 만족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덕분에 수월하게 잘 끝났네."

"제가 억지를 부려서 온 거니까요."

"효율 따지는 니가 노동자 걱정을 해줄지는 몰랐지만."

레이첼 덕분이다.

첫 물꼬를 잘 터줘서 이후의 설득도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유능한 비서 데리고 다니는 느낌.

우씨 거리기만 하는 누구와는 차원이 다르다.

'효율 따지는 녀석이 노동자 걱정을 해줄지는 몰랐지만.'

나 이상이다.

효율에 대한 광적인 집착.

노동자의 권익 따윈 신경 안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효율 이전에 인간성의 문제입니다."

"크흠!"

"당신에게 기대할 부분은 아니겠지요."

관점이 조금 달랐던 것이다.

같은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씨발련이.'

레이첼과 대립을 했던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사건건 지랄이다.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넌 항문만 쓴다니까."

"?"

그럼에도 들러붙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다시 차에 타려고 하던 찰나에.

위이잉~!

전화가 온다.

귀찮다고 무시를 하기에는 발신자와의 관계가 우려된다.

<오 찬욱이!>

"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강무열 회장이다.

그와의 친분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러 기업들에 투자 자문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신뢰성이 가장 필요하다.

그리고 신뢰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치다.

실적을 아무리 쌓아도 무시 받을 수 있다.

실적이 없어도 높은 사람 말 한 마디면 되는 게.

<요즘 일 잘하고 있다더만!>

"회장님이 소개해주신 덕분이죠."

<하하하! 어디 소개해준다고 다 되나? 본인이 능력이 있어야지.>

한국 사회.

둘마트 회장인 강무열 회장의 한 마디면 어지간한 기업은 프리패스다.

<부산까지 갔다고?>

"출장을 가야만 하는 일이 생겨서요."

<그래서 말인데……, 부산에 간 김에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겠나? 강요하는 건 아니고.>

도움을 받고 있다.

부탁을 해오는 것을 거절하기 힘든 입장이다.

'나로서도 괜찮지만.'

최근 경제는 침체기.

그에 따라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생겼다.

둘마트도 이에 적응하고 있다.

그것에 도움을 달라는 이야기다.

"잠깐 밥 좀 먹으러 갈까?"

"또 무슨 일을 받은 건가요?"

"그래, 그 일의 연장선이지."

밀키트.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양념 등을 한 세트로 구성한 간편식.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 관심이 높아진다.

'비싸니까.'

경기 활황기에 소비 수준은 높아졌다.

돈을 버니까 좋은 걸 사먹는 것이다.

침체기와 함께 얇아진 지갑.

높아진 입맛을 충족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밀키트를 대안으로 삼는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거리적인 측면도 있고."

싼 값에 높은 품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것도 맛집의 음식을 말이다.

'그게 이상론인데.'

둘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고객들을 끌어모을 수단이다.

이미 물밑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것 치고 아직 성과는 뜨뜻미지근하다.

질 때문이다.

밀키트로 높은 맛을 구현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질이요?"

"너는 평생 쓸 일 없는 거."

"?"

그것을 해결해 달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일단은 요식업 관계자로서 만난 사이다.

'잘된다면.'

푸드마켓과 헤일즈푸드.

나의 지분이 있는 프랜차이즈의 음식도 둘마트에 입점시킬 수 있다.

끼익−!

맛집에 도착한다.

강무열 회장이 부산에 간 김에 부탁을 할 만한 곳이다.

"국밥이군요."

"부산 하면 돼지국밥이지. 여긴 돼지국밥 맛집이고."

"국밥은 저도 먹어봤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주식에 가깝게 먹는다.

레이첼도 경험이 있는 모양.

하지만 이곳 부산에서는 다를 것이다.

"일본의 돈코츠 라멘이 생각 나는 진한 맛이네요. 그보다 담백하면서도 숨어있는 깊은 감칠맛이 돋보입니다. 소금만 조금 넣으면 완벽할 것 같아요."

"마! 니 도란나?"

"네?"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미식가처럼 음미를 해댄다.

그것만으로도 선을 넘었지만.

'여기서는 말이지.'

현지인들로서는 뒷목을 잡을 만한 것이 있다.

무려 소금을 넣어 먹으려고 한다.

"소……금……? "

"소금을 느 묵는다고?"

"어느 똘게이가 대지구빱에 소금을 느 묵는다 캈노?"

가게 안이 난리가 날 만도 하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부터 차례로 들고 일어난다.

어느새 우리 테이블 주위로 모여든다.

그토록 고고하고 당당하던 레이첼이 얼어붙는다.

"하, 한국말로 하면 안될까요……."

부산의 세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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