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88화 (288/450)

EP.288

승리의 여신

여의도.

한국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그곳에서는 최근 특이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툭!

담배 꽁초 하나가 떨어진다.

무심코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어느 곳에나 있지만.

"씨발."

"씨발."

"씨발."

조금 많다.

뭔 발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다 핀 담배를 버리고 있다.

벤치 주변이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릴 지경이다.

얼핏 철없는 양아치 무리로 보여도.

"애미 씨발 진짜."

"내가 주식을 하는 건지, 도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농담 아니고 강원랜드에서 슬롯 머신 돌리는 게 딸 확률 더 높을 걸?"

직장인이다.

이곳 여의도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여의도는 한국 금융의 중심지다.

후우~

타들어가는 것은 사실 담배가 아니라 증권사 관계자들의 속이었다.

최근 증시의 하락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그냥 매크로만 발라 먹으라니까?"

"그게 말이나 쉽지."

"지금은 진짜 주식할 시기가 아니야. 내가 개미였으면 한 1년은 예금 굴렸어."

그럴 수밖에 없다.

기관 투자자.

좋든 싫든 돈을 굴려야 한다.

최대한 안정적인 트레이딩을 하고 있지만.

'변동성이 시발.'

그조차 먹힐 수가 없는 장이다.

롤러코스터 수준으로 흔들어대니 예상이 안된다.

이렇게 변동성이 극심하면 헷지도 안 통한다.

위로도 아래로도 언제든지 튈 수 있다.

펀더멘탈로는 저평가 상태.

하지만 하락 압력이 너무 강한 기묘한 시장 흐름이다.

"펀더멘탈도 못 믿어."

"그렇지……."

"지금처럼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 경제 시스템에서 어딘가 하나는 터질지도 몰라."

그럴 만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투자자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또 뭐 어디 은행 하나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1987년 블랙 먼데이.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경제에 영향을 미친 대사건이다.

이 세 사태의 공통점은.

"하긴 쎄하긴 해."

"그 정도로 많이 올리진 않았는데……."

"그때랑은 다르잖아. 아직 기준 금리 3%도 안됐어!"

미국의 지나친 긴축이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미친 듯이 올리자 경제 시스템 한 곳이 망가진다.

'그래서 음모론도 있지.'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

의도적으로 경제를 붕괴시켜서 달러 패권을 강화하고, 해외 자산을 싼 값에 사들이려는 목적이다.

후우~

한국 금융인들로서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실제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다.

1997년 외환 위기.

미국이 신흥국 시장을 먹기 위해 터트렸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5%는 돼야 터지던가 말던가 하지."

"5%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요즘처럼 국가 부채랑 레버리지 많은 시기에 5%면……, 지구 종말급 위기 오고도 남겠네."

그 정도의 위기까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의도 금융인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조건 반사.

레몬맛을 아는 사람만이 레몬을 봤을 때 침이 줄줄 새어 나오는 법이다.

"은행들 대손충당금 늘어나는 것도 심상찮고."

"ERP도 지난 10년 평균보다 아직 낮지."

"주식위험프리미엄 말이지?"

많은 것을 안다.

또 많은 걸 경험했다.

그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판단을 망설이게 만든다.

'또 2011년처럼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지도 모르고.'

불안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문가인 것과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별개인 이유다.

"그래, 주식 살 때는 아니야."

"하따 잘못 치다가는 뻥튀기처럼 될 수도 있고."

"뻥튀기?"

"나스닥 한다고 깝치던 놈들 있어. 잘난 척하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지 쯔쯧."

흉흉한 소문도 들려온다.

주가가 이 정도로 폭락을 했으니 실패한 투자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미국 주식 펀드가 과하게 핫하다 했어.'

미국 주식 시장은 지난 1년간 계속 올랐다.

한국 주식 시장이 죽을 쑤는 와중에도 말이다.

미국 주식을 하는 펀드들은 큰 수익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부러움을 받았지만.

데일리뉴스− 「美주식 급락에……, 잘 나가던 미국 펀드도 '수익률 뚝'」

꼭 그럴 때가 고점이다.

기사에서 부드럽게 표현했을 뿐, 실상은 자살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레버리지 크게 땡겼나 보네."

"에휴, 미친놈들……."

"우리도 남말 할 때 아니야. 조심해야지."

공포 분위기가 확산됐다.

아직 투자은행으로까지 번지진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타악!

7년차 프랍트레이더인 김익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회사로 올라온다.

각자 다른 증권사에 속해있다.

하지만 뷰는 비슷.

최근 시장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추세가 정해질 때까지 숨만 돌리려고 했는데.

"반등을 한다고?"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누가. 어떤 애널리스트가."

트레이딩팀의 신입 녀석이 헛소리를 해온다.

다년차 베테랑들조차 쉬쉬하는 판국에 말이다.

'뭐, 일반트레이더들 중에는.'

미친 짓을 하는 애들도 더러 있다.

고객 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다.

하지만 프랍트레이더.

회사의 돈을 운용한다.

절대 잃으면 안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게 그……."

"그러니까 누군데?"

"애널리스트는 아니고요."

"트레이더? 아니면 이코노미?"

"유튜버입니다."

"……."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아직도 일반트레이더 시절의 감각이 남아있는 것이다.

'어떤 놈이 선동을 했는지는 몰라도.'

종종 있는 일이다.

주식 시장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유명인의 발언으로 투심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때.

프랍트레이더라면 보수적인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하는데.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생각이 조금 바뀔 것 같기도 하다.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오오!"

"이 정도의 변동성이 끝나면 추세가 바뀔 만도 하지."

"그런 거……, 같아."

트레이딩팀의 직원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열광한다.

한사코 장난스럽게만 볼 일은 아니었다.

─에그타르트님께서 1,000원 후원!

아는 오빠분은 뭐라고 하심??

<그 오빠도 파월은 매둘기라 매파적 기조를 길게 가져가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남친 입갤 ㄷㄷ

−오 그분도 뷰를 바꿨구나

−매둘기가 뭐에요?

−뻥튀기 대표님보다 잘 맞추시는 분 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과의 이야기 중에 나왔던 화제.

이 방송에서도 알고 있었다.

'뻥튀기?'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다.

해당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시청했다.

조언까지 해줬다고 한다.

지금이야 말로 주식을 살 적기라고 말이다.

"저도 그 이야기 듣고 보게 됐거든요."

"그전에는 안 보고?"

"아, 그게 안 본 건 아니고…… 헤헤."

롱.

Wrong이 돼버리며 이후의 상황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같았다.

'자산운용사 대표가 말을 하면 믿을 만도 한데.'

여캠 같은 겉모습과 달리 주관이 뚜렷하다.

자신만의 뷰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

반대쪽의 조언을 해준 아는 오빠가 누군지도 궁금하게 된다.

"추세 전환?"

"그 사람은 그렇게 본다고 하더라고요."

"일러도 한참 이른 거 같은데……."

"그러니까 화제가 되는 거죠."

최근 장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뿌옇게 낀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 같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

한 명의 투자자로서 존경심이 들기 마련이다.

'뭐, 맞았을 때의 이야기겠지만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 * *

최근의 시장.

"저희 회사가 환차손이 커지면 수입하고 있는 원자재 가격 협상에 난항이 생길 수가 있어서……."

죽을 맛인 것은 투자자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완전히 비상이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렇지.'

미국이 한국 수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2위.

아니, 사실은 압도적이다.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은 대부분 중간재다.

가공되어서 미국에 간다.

"실례지만 귀사의 증권팀 뷰는?"

"아, 보수적인 시각입니다. 최근 국제 정세가 예상 이상으로 불안정하다고 하네요."

"그러면 비용이 많이 들겠네요."

"그렇게 되겠죠……."

미국 경기가 안 좋으면?

한국은 직격탄을 오지게 처맞게 되어있다.

'매번 이런 침체기를 버텨나가는 것이 한국 경제고.'

호황기에 잔뜩 벌어서 침체기에 버텨낸다.

대기업들은 알아서 잘한다.

적응했기 때문이다.

오성전자가 현금성 자산을 200조씩 들고 있는 이유다.

"확실히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만한 상황입니다만."

"아, 네……."

"저는 조금 시각이 다릅니다. 너무 과민반응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네요."

"그, 그런가요?"

그 이하의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돈을 막무가내로 들고 있을 수가 없다.

'적정한 선을 찾아야지.'

너무 많으면 시장에서 뒤쳐진다.

너무 적으면 불황을 버티지 못한다.

그것을 판단해주는 것이 내 일이다.

쌓아 올린 명성과 인맥을 이용해.

"최근 미국 채권 시장이 얼어붙어 있어서."

"채권 시장요?"

"네, 이렇게 금리 인상을 급격하게 해버리면 미 정부에서 발행하는 채권이 안 팔리게 되거든요."

기업의 투자 자문을 해주고 있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장사다.

'기업은 쓸데없이 들어갈 돈을 아끼고.'

나는 차익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는다.

동시에 내부 정보도 얻어간다.

"그럼 환율이 떨어진다는 말씀?"

"거기까지는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만."

"아……."

"연준의 기조가 조금만 누그러져도 글로벌 투기 세력들이 달러 강세에 베팅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즉, 환율이 안정된다는 소리입니다."

"아!"

눈앞에 있는 남자.

회사의 재무 책임자(CFO)의 낯빛이 급격히 반색한다.

원하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나로서도 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 식으로.'

각 기업의 내부 정보들을 얻어간다.

투자 자문사를 자처하는 진짜 이유다.

한국 시장의 본모습.

파악하기 위해서는 겉이 아닌 속에서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위이잉~

오늘도 한 건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부에서의 인맥과 성과를 넓혀가고 있는데.

'레이첼?'

똥꼬가 마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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