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85화 (285/450)

EP.285

Hello

누구에게나 사생활이 있다.

그것은 전세계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대빵도 예외가 아니다.

"Hello."

커피 전문점.

한 할아버지가 인사를 건네온다.

주식 투자자로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본능이다.

'한 1% 깎아주나?'

가게 사장과 알고 지내는 듯한 기류는 없다.

그냥 평범하게 카페를 들린 듯한 손님이지만.

"Hello."

"서, 선배."

"알아.'

"저 할아버지 아무리 봐도……"

낯익은 얼굴.

소라도 눈치챌 정도다.

단순히 닮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아채고 있었다.

'그럴 수 있지.'

구태여 의식할 필요는 없다.

인사를 건네온 것도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미국 문화.

아니,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주문은?"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

"미국에 아메리카노는 없어."

"?"

한국도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도시화가 되며 사회가 삭막해졌을 뿐이다.

'미국에 왔으면 미국의 방식을 따라야지.'

커피도 마찬가지.

아메리카노라고 해서 아메리카에서 마실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똑! 똑! 똑!

드립 커피가 일반적이다.

사람이 손수 내리는 것은 아니고 기계를 사용한다.

"오~ 향이 좋네요."

"평범한 브라질, 콜롬비아 스까네."

"평범하다고요?"

"그래."

그럼에도 아메리카노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아메리카노는 일반적인 커피가 아니다.

'군대 짬밥 같은 거니까.'

드립 커피 보급이 끊긴 미군들.

꿩 대신 닭으로 에스프레소가 입에 안 맞아 물에 타먹은 게 기원이다.

그 과정에서 커피 본래의 향이 망가진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는 커피향을 즐기기 적합하지 않다.

후룹~

한 모금 입에 들어간다.

브라질과 콜롬비아산을 블렌딩한 원두답게 대중적이고 마일드한 맛이다.

'똑같이 커피를 타더라도.'

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나 농도는 비슷하다.

하지만 직접 우려낸 스프와 인스턴트 스프급의 차이가 있다.

"레몬 머핀이랑 체리 스콘도 맛있고."

"먹을 만하지."

"미국 카페는 처음인데 좋네요. 근데 이럴 때가 아니잖아요!"

산도 들도 눈으로 덮여있는 오지.

잭슨홀에서 몸을 녹이기에는 충분한 한 잔이다.

'그런 한가함을.'

즐기고 싶은 것은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이다.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음, 스콘이 나스닥처럼 바삭하게 부숴지는군요."

체리 스콘.

그냥 먹기는 딱딱하고 퍼석하지만 따듯한 음료와 함께 마시면 잘 어울린다.

그것을 즐기고 있다.

파월 본인으로 추정되는 노인이 한가로운 티타임을 보낸다.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법이지.'

투자자는 더 그러하다.

숫자와 그래프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보면 현실 감각이 옅어진다.

가끔씩 진짜 현실을 봐야만 한다.

대자연을 찾아 여행을 오게 되는 이유다.

"올해도 겨울에 오셨군요."

"저는 겨울의 잭슨홀을 좋아합니다."

"여름이 더 즐길 거리가 많은데요?"

"여름의 잭슨홀은……, 원체 귀찮은 일이 많아서."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적절하다.

자연 그 자체이면서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장소니까.

'마치 8월마다 잭슨홀을 오기라도 하는 것 같네.'

카페 주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꽤나 단골인 듯 메뉴 추천까지 해준다.

"오늘은 생강 쿠키가 잘 구워졌습니다."

"그것도 식감이 좋나요?"

"절묘합니다. 자신 있게 추천 드리죠."

"나스닥처럼 잘 부스러지면 좋겠네요."

"HaHa! 농담도."

최근의 나스닥의 하락세를 장난스럽게 빗댄다.

누가 보면 100bp 인상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톡! 톡!

소라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긴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긴박한 표정이다.

'야스 마렵나?'

개꼴리는 문신.

빨리 하러 가자고 보채는 치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떡 치러 가자고?"

"아니!! 좀 보라고……."

소리를 치려는 건지, 속삭이려는 건지 모르겠다.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다.

파월이 확실한 것 같다며 말이다.

소라가 유난을 떠는 것도 이해는 된다.

"맞잖아 내 말이."

"근데 뭐 어쩌라고."

"뭐?"

하지만 알아본다고 변하는 건 없다.

가서 따지고 들 거야 뭘 할 거야?

'지 주식 처물렸다고 울고 불고 할 거냐고.'

그런 사람.

한둘이 아닐 것이다.

개인 투자자가 아니라, 기관 투자자와 정부 관계자 중에도 있다.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아야 한다.

전세계의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쉽게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긴 하겠네요."

"그러니까 오빠가 말하는 대로 해봐."

"어떻게?"

"……이렇게."

"미쳤어!?"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또 아니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정말 하늘에 있는 존재 같아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이거든.'

이성적인 관점에서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성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젊을 때 더 많은 섹스를 했으면 좋겠다.」− 켄 피셔(Kenneth Fisher)

「강세장은 섹스와도 같다.」− 워렌 버핏(Warren Buffett)

월가 노친네들 치고 속이 시꺼멓지 않은 인간은 없다.

소라라면 충분히 해내고도 남는다.

타악!

작전을 실행한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상당히 절실했던 모양이다.

"Excuse me?"

소라의 엉덩이가 실례를 한다.

테이블 위에 걸터앉으며 도발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무슨 일인가요 아가씨?"

"잠시 당신의 시간을 잠깐 빼앗아도 될까요? ……오빠."

겉보기에는 말이다.

사실은 수치스러워서 얼굴 근육이 뒤틀릴 지경으로 바르르 떨고 있다.

동양인의 표정 변화.

눈치를 채지 못하는 건지,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인자한 미소를 띄운다.

"마침 한가하군요."

"아싸!"

"제가 아가씨에게 흥미를 끌 요소가 있었던 걸까요?"

"아, 그게 말이죠."

아니, 남자인 것이다.

아무리 근엄하고 무거운 척 분위기를 잡아봤자.

'어떤 남자도 꺼추는 거역 못하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어있다.

소라가 작심하고 꼬시면 성과를 내볼 만하다.

"제가 투자를 하고 있거든요."

"어떤?"

"주식을 좀 하고 있는데……."

"주식 말이죠."

하지만 직업 윤리.

연준 의장의 발언은 한 국가의 수장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다.

사석이라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타악!

그런 걸 무너뜨리는 게 미인계다.

자세를 고쳐 앉으면 청바지를 슬쩍 내린다.

쌔끈한 골반.

백옥 같은 피부 위로 어울리지 않는 아찔한 장미가 수놓아 있다.

"요즘 금리가 너무 올라가서 힘들어용."

"으음……, 그럴 때는 예금을 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아앙~ 오빠가 금리 내려주면 되잖아용."

"Huh……, 절 알고 있나 보군요?"

머가리가 완전히 굳어있던 1학년 때와는 다르다.

방송을 하며 나름대로 숫기가 붙었다.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애교 좀 부렸다고 수정할 수 있을 만한 사안이 아니다.

"금리 언제쯤 내려줄 거에요~?"

하지만 소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최종병기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젖탱이.

A5 와규급의 살점을 눈앞에 흔들면 남자는 반드시 눈이 돌아가게 돼있다.

'음흉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표정 관리는 하는 주제에 눈동자는 확실히 그곳을 향한다.

노친네 호강하고 계신다.

"소라가 많은 걸 원하는 건 아니고. 조금만, 조금만 부드럽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부드러운……?"

"부드럽게 해주지 않으면 싫어."

아예 집중시켜 버린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노친네의 주름진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고정되는 시선.

말을 할 때마다 가슴에 새긴 레터링이 흔들리니 신경 쓰여 죽을 것이다.

"장난기 많은 아가씨군요."

"금리 인하 한 번만 응? 응?"

"유감스럽지만, 예쁜 아가씨가 부탁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앙!"

소라도 필사적이다.

평소 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는 것이 계좌의 상태를 짐작케 해준다.

'어지간히 처물렸나 보네.'

그럼에도 직업 의식이 앞선다.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하는 꽉 막힌 노친네다.

자존심까지 내려놨음에도 불구.

성과 없이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아가씨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우……."

"그래도 인플레이션이 a little 성과가 보이고 있고, 금리 인상도 언젠가는 중단이 될 테니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나빴어."

주식에 물린 아가씨.

귀엽게 보인 모양이다.

스윗하게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준다.

공식석상에서는 하지 않은 말이다.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응? a little?'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 * *

인플레이션.

잡는 것은 금리만 올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아가씨도 있군요.'

사람들의 심리를 꺾어야 한다.

앞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을 거라고 느끼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

시장에 공포를 주는 것이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가능하다.

'그 화끈한 아가씨에게는 미안하게 됐어요.'

자신이 최근 매파적인 연설을 하고 있는 이유다.

시장에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사실은 금리 이상을 슬슬 끝낼 생각이다.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잡히고 있다.

그것으로 추측이 가는 데이터가 보고된다.

연설에서는 겁을 주고 있는 것뿐이다.

그녀를 달래준 건 단순한 위로만은 아니다.

'괜히 빠르게 손절해서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귀여운 아가씨였다.

화끈한 면도 있어서 오랜만에 가슴이 설렜다.

30년, 아니 20년만 더 젊었더라면.

조금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다.

그래서는 안되는 입장이다.

마인드 컨트롤 잘했다고 파월은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아, 잠깐. 제가 a liittle이라고 했나요?'

성과를 약간 봤다는 뜻.

연설문에 사용한 것보다 한 단계 완화적인 표현이다.

만약 연설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엄청난 실수다.

월스트리트에서 반드시 알아챈다.

그 화끈한 아가씨로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파월은 흐뭇했던 기억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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