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78화 (278/450)

EP.278

파월어 리스닝 테스트

파월의 등판.

전세계 투자자들이 고대하고, 두려워하는 이벤트다.

지난 FOMC의 폭탄 발언 때문이다.

그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등판한다.

공식 스케줄에 연설 일정이 잡혀있었던 것이다.

"팔아! 팔아! 싹 다 팔아!"

"팬티까지?"

"팬티는 일단 남기고."

PTSD가 올 만도 하다.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은 긴장을 바짝 세운다.

파월이 또 시장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폭락을 가속화시켜도 이상하지 않다.

<아메리칸 이코노미는 스트롱합니다.>

(+0.3%)

의외로 덤덤하다.

시작된 파월의 연설을 이렇다 할 특이점이 없었다.

"별말 안 하는데?"

"그냥 통상적인 발언……."

"어, 이러면 주식 사도 될지도."

한껏 쫄아있었다.

FOMC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나온다고?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의외로 별다른 발언이 없다.

<미국 GDP는 3% 이상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목표치에도 little 성과를 보았습니다.>

(+0.7%)

시장에 호의적인 발언.

매수세가 조금씩 생기게 된다.

추세 전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성과를 봤대!

"인플레이션 잡힌다!"

"최종 금리를 더 낮게 봐도 된다는 소리잖아?"

성과를 봤다는 말이었다.

1주일 전에는 없었던 표현이다.

그 이유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지표를 봤나 보네!'

신규실업수당청구건수.

University Michigan 5년 인플레이션.

고용과 기대 인플레는 연준이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였다.

기존의 강경한 태도가 누그러질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는데.

<우리는 데이터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다만 금리를 some increases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1.0%)

본인 입으로 꺼냈다.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이 말이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고 공식적인 오피셜은 없다.

"경제도 좋고."

"금리도 덜 올리면?"

"이거 완전 골디락스 아니야!"

금리를 올리는 것이 꼭 악재만은 아니다.

그동안 주가가 끝도 없이 고공행진 해온 이유가 있다.

골디락스.

높은 성장을 이루고 있음에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이상적인 경제 상황.

파월은 그것을 시사하고 있는 걸지 모른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투자자는 눈치가 빨라야 하는 생물이다.

남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한 발 앞서 들어간다.

〔미국 주식 갤러리〕

─인륜적 반등 시작

─파월 발언 좆도 무의미한 이유 알려준다ㅋㅋㅋㅋㅋㅋㅋ.txt

─호재인과?

─숏충이들 깝칠 때부터 알아봤지 컄

그렇게 주가가 오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방금의 발언이 호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월 뜬다고 해서 다 팔았는데

└인간지표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가 막힌 최저점 손절이었고요~

└니가 파니까 오르지 ㅄ아

└항상 야맙다!

파월이 어떤 말을 하는지.

개미들로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호재인지 악재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아니, 설사 생각을 하고 있어도.

─미국 경제 좋다는 게 왜 호재임??

금리 계속 올릴 수 있다는 말 아님?

└똑같은 말했으니 호재지 ㅋㅋㅋㅋㅋㅋㅋ

└악재 해소

└숏충이 대가리 뜨겁누?

└아들 ~ 요즘 주식 많이 올랐다던데 우리 아들 돈 번 거 맞지? 엄마는 아들 믿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변동성이 심한 장세에서 자신의 주관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주가가 오른다.

사람들도 그렇게 말한다.

어중간한 신념 따위 금방 꺾이게 된다.

─파월 발언 좆도 무의미한 이유 알려준다ㅋㅋㅋㅋㅋㅋㅋ.txt

니가 까막눈으로 문장 하나하나 해석할 때 이미 월가에서 다 처올리거나 처내리거나 함ㅋㅋㅋㅋㅋㅋㅋㅋ

└걔넨 원어민이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월가를 거슬려? 걍 죽어!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애들이 오른다면 오르는 거지 ㅉㅉ

그렇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

그리고 그것은 모든 투자자들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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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종합지수』

7,523.65 ▲125.76 (+1.70%)

[갑자기 장대 양봉이 꽂혀버린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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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했다.

언젠가 오게 될 반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너도 나도 주식을 사며 주가는 가속도가 붙으며 급상승을 하게 된다.

"하, 씨발 좆된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커버를 하는 게……."

"빨랑 사!"

그리고 상승은 상승을 부른다.

증시는 꼭 양의 방향으로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숏커버링.

풋베팅과 공매도 등을 쳤던 세력들은 손실이 커지기 전에 주워 담아야 한다.

<미국에 침체는 없을 것이며.>

(+2.1%)

그럼에도 희망을 가진다.

파월이 다시 매파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

<연준은 시장 참여자들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 하고 있고.>

(+2.3%)

연설이 점점 진행될수록 사라진다.

생각보다 매파적이지 않았던 것을 넘어.

"시장 상황을 알고 있네."

"나스닥을 진짜 죽일 생각인지 알았잖아."

"아무리 깝쳐봤자 트럼프 손바닥 위인 거지~."

시장이 원하고 있던 말을 해주는 것이다.

나스닥이 지나치게 폭락해버리면?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이 없는 게 아니다.

파월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1.8%)

중간중간 매파적 발언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시장 예상보다 비둘기적이었다.

즉, 좋았다.

이전과 같은 폭탄 발언도 없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땡큐.>

(+2.7%)

별 사고 없이 끝이 난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연설이 마무리되자.

"갑자기 확 변했네."

"갑자기가 아니지. 지표도 좋게 떴고, 트럼프도 가만히 안 있잖아."

"하긴! 요즘 트윗 맨날 띄우더라."

월가에서는 아주 신이 난다.

시장과 연준의 싸움.

시장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된 것이다.

주가를 마음 놓고 올릴 근거가 생겼다.

풋베팅을 청산시키며 섹스 파티를 벌인다.

<훗.>

파월의 썩소를 보지 못한 채.

* * *

시장과 연준의 줄다리기.

어제오늘 있었던 일은 아니다.

'연준이 푸는 돈으로 올리는 시장이니까.'

미국 주식은 왜 우상향하는 거지?

그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연준의 방향성과 주식 시장의 방향성은 95% 일치한다.

실제 검증이 된 논문이다.

"와 주가 오르고 있어."

"미국 경제 세다는데요?"

"대충 좋게 말하는 거 같은데……."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시장이 연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연준에 의해 내려질 수도 있다는 거니까.'

연준의 발언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다.

절대 1차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저게 좋은 말 같아?"

"네."

"저 이래 봬도 토익 900대 후반인데."

"난 토플 110대."

"뭐 틀린 해석이라도 있어요?"

영어 좀 잘한다고 다가 아니다.

직역을 하다가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파월이 하고자 하는 말의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그런 양반이라서.'

연준 의장.

전통적으로 경제학자가 자리를 맡는다.

파월은 최초의 비경제학자 출신 의장이다.

"전공부터 법학, 정치학을 전공한 변호사 출신이지."

"그렇구나."

"아니, 왜 변호사가 연준 의장을……."

"말을 잘하니까."

현대의 연준 의장은 단순히 경제만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시장과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시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능수능란한 화술.

어려운 경제 용어를 쓰는 연준 의장들보다 훨씬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

처음에는 시장이 환호했다.

웬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며 축배를 들었지만.

<미국 GDP는 3% 이상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목표치에도 little 성과를 보았습니다.>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변호사가 어째서 무서운 직업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인플레이션 성과를 봤다는데요?"

"또 오른다."

"막 올라."

"좋게 말하는 거 맞잖아요!"

"아니야."

말장난.

변호사의 특기라고 할 수 있다.

단어 한두 개로 전체 문맥을 왜곡시킨다.

'a little이 아니라 little이니까.'

약간의 성과를 봤다는 게 아니다.

성과를 조금밖에 보지 못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데이터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다만 금리를 some increases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Increases.

복수형을 썼다.

최소 두 번 이상의 금리 인상을 하겠다는 뜻이다.

어조는 부드러울지언정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그렇지 않다.

소위 말하는 언중유골형의 골치 아픈 스타일이다.

"완전히 어감이 달라지네요."

"아직 한참은 금리 인상하겠다는 뜻 같은데……."

"그거야."

한국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그것이 꼭 한국에만 적용되는 소리는 아닌 것이다.

'이런 숨은 의도를 캐치하는 시험이지.'

파월어 리스닝 테스트라고 볼 수 있다.

차후 FOMC가 전세계가 주목하는 쇼가 되는 이유다.

"그래도 경제가 강하다는데."

"그것도 관점이 달라."

"관점이요?"

변호사 출신.

파월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결코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다.

처음에 말한 경제가 강하다는 것도.

「Donald J. Trump」

1주 전。

#연준#미친놈

연준이 미쳐버렸다.

「Donald J. Trump」

5일 전。

#경제#살려야한다

경제의 유일한 문제는 연준이다.

「Donald J. Trump」

3일 전。

#경제#연준#문제

미국 경제는 내 덕분에 너무 좋은데, 연준(problem)이 자꾸 망친다.

최근의 상황을 의식해서 한 말이다.

트위터에서 자신을 저격하는 한 남자가 있다.

"트럼프 들으라고 한 소리지."

"아."

"경제가 좋다는 게요?'

"경제 망친 거 아니니까 금리 인상 더 팍팍해도 된다고."

아니, 대통령.

굳이 첫 마디로 순서를 배정한 것에도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해석하면 뜻이 달라진다.

기존의 입장을 굽힐 생각이 0.1도 없다.

<금리 계속 올릴 건데?>

<인플레 잡히려면 멀었다니까~.>

다른 연준 의원들.

파월의 연설이 끝난 이후에 일정이 잡혀있었다.

연준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다시 전달해준다.

"와, 진짜 떨어지네."

"살얼음판이다 살얼음판……."

"파월은 말을 왜 좆같이 하는 거에요?"

"그야 재밌으니까."

딱딱할지언정 직설적이었던 이전의 연준 의장들이 그리워질 정도로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골머리를 쥐어 싸게 만드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떼돈을 벌 기회가 되는 거지.'

파월어 리스닝 테스트의 만점을 받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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