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0
토토충
우주크래프트2.
e스포츠 유행을 만들어낸 우주크래프트의 후속작이다.
'거의 민속놀이 취급을 받지.'
90년대생이라면 안 해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한 전작의 위상을 계승하지 못했다.
우주크래프트2는 한국에서 흥행하는데 실패했지만.
<2018 글로벌 우주 리그 시즌3를 지금부터! 여러분의 뜨거운 환호!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의외로 잘 나가고 있는 분야가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우주크래프트2 대회가 펼쳐지는 장소다.
사회자의 익숙한 고함 소리와 함께 막을 올린다.
"제발, 제발……."
"진짜 나 돈 전재산 다 걸었단 말이야."
그렇게 분위기를 띄운 것 치고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한다.
관중석의 공기는 딴판이다.
초조한 얼굴들.
손톱까지 씹으며 충혈된 눈을 하고 있다.
척 봐도 일반적인 관중처럼 보이지 않는다.
"엄청 팬인가 봐요."
"팬?"
"응원하는 선수가 질까 봐 불안해 하는 거 아니에요?"
"뭐, 그런 관점도 있겠네.'
혜리와 함께 경기장에 왔다.
혜리가 하는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거라면 건전한 팬들이겠지.'
완전히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동상이몽.
그들 사이에 적당히 앉는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말이다.
이윽고 양팀 선수들이 부스에 입장한다.
"스타 경기 보러오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온 적 있어?'
"스타 좋아했거든요. 학교 애들이랑 한 번 갔었는데……."
혜리가 쫑알쫑알 추억담을 늘어놓는다.
세대 차이가 살짝 나긴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겹치긴 하나 보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대세였다.
여자 애들도 우주크래프트 정도는 알았다.
콘서트 가는 느낌으로 대회도 갈 정도.
그렇게 힙했던 시절도 존재했다.
다 옛날 일.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느끼는 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요즘은 그런 거 안 해요?"
"뭐?"
"그거 있잖아요. 그거! 막 화이팅 하는 거."
혜리가 귀엽게 팔을 흔들어 댄다.
우주크래프트의 전통적인 팬문화다.
'롤판도 초창기까지는 영향을 받았을 만큼.'
××× 화이팅!
선수 얼굴과 스타팅 위치가 비춰졌을 때 큰 목소리로 소리 친다.
일종의 팬덤 싸움이기도 하다.
함성 소리로 기선제압을 해버린다.
"그런 걸 하기에는."
"사람이 좀 적긴 하네요."
"경기장에 온 목적부터가 다르지."
"?"
지금도 그런 목소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부 팬들의 아우성에서 끝난다.
'대부분은 선수에겐 관심이 없어서.'
중요한 건 승패.
거기까지라면 게임을 즐기는 코어팬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동건 선수가 상대 전적에서 밀리고 있거든요?>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테란 대 프로토스의 종족전 승률이 미세하게 테란 쪽에 웃어주는 만큼 엄 대 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해설진의 평가.
그와 동시에 옆자리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어떻게 엄 대 엄이야!"
"박이삭이 토스 승률 개깎아 먹은 걸 가지고……."
"엄."
잔뜩 성이 돋아있다.
누가 들어도 장난으로 웃고 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불편충이 많네요."
"그렇지."
"자세를 고쳐 앉으면 좋을 텐데."
"돈이 걸린 일에는 눈이 돌아가는 거지."
"돈이요?"
사람이 이성을 잃고 감정적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진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 때 말이다.
'마치 주식이라도 물린 것처럼.'
경기를 보는 관중들.
그들 대다수의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몇몇은 경기보다 더 자주 살펴본다.
핸드폰 중독인 사람들이 많으니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애써 경기장까지 왔다는 걸 생각하면.
"아니, 시발……. 배율이 2배 차인데."
"존나 좆같네. 왜 내가 걸면 지는 거지."
목적 자체가 다른데 있다.
우주크래프트2는 가장 핫한 e스포츠 토토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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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L B조 1경기』
고동건(T) 2.40 VS 1.30 황광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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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이트에 들어가면 경기 목록과 배율이 있다.
승패를 예측해 돈을 거는 시스템이다.
"예측이 맞으면 정말 돈 주는 거에요?"
"그래."
"와……, 근데 그런 짓 해도 되는 건가."
"당연히 불법이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토토는 있다.
국가가 인정한 100% 합법 도박이다.
'근데 배당률이 짜서.'
종목도 한정돼있다.
도박을 좋아하는 토토충들 입장에서 꼴리지가 않는다.
"토토충이요?'
"그래, 스포츠 토토하는 애들을 그렇게 부르거든."
"그냥 도박 중독자 아니에요?"
"조금 차이가 있지."
토토를 즐기는 사람들.
도박꾼이 맞지만, 단순히 홀짝에 돈을 거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들이 스마트(?)하다고 생각한다.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분석이 가능하니까.'
우주크래프트2가 토토충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다.
현재 진행되는 경기.
사각! 사각! 사각!
테란의 폭탄 드랍이 쏟아되고 있다.
땅거미 지뢰가 미네랄을 캐는 일꾼들을 노린다.
퍼엉! 퍼엉!
강렬하게 쏘아지는 한 방.
스플래쉬 데미지에 휘말린 일꾼들이 대량 참사를 당한다.
<이건 치명타인데요 황광조 선수?!>
<아예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선불사조인데! 설마 드랍을 올 거라고 예상 자체를 하지 못한 거죠.>
우주크래프트가 가진 특징이다.
초반 빌드 싸움이 게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퍼엉! 퍼엉!
드랍된 땅거미 지뢰.
일회용인 스타1 지뢰와 달리 제거가 되기 전까지 계속 공격한다.
스타게이트를 먼저 올린 프로토스는 옵저버가 늦다.
지뢰를 빨리 제거하지 못하고.
<그동안 자원 채취 하나도 못했거든요?!>
<고동건 선수 한 방 병력 모아서 나옵니다. 지금 프로토스 병력으로는 막을 수가 없어요.>
체크메이트.
초반의 빌드 차이가, 사소한 실수 하나가 승패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수가 토토충들의 마음에 쏙 든 거지."
"오~."
"게임을 잘 알수록 베팅 승률이 올라가니까."
"그렇겠네요."
우주크래프트에 토토 세력이 많이 얽혀있는 뒷사정이다.
우주크래프트2는 전작 이상이다.
'판 자체가 토토충 덕분에 굴러가는 수준이지.'
오죽하면 토토충 빼면 시청자가 안 남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관중들도 상당수가 베팅을 한 이들.
"히, 히히. 병신들."
좌측 사선 방향의 두 칸 아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이 경기장까지 오게 만든 녀석이다.
'음, 좋구만.'
생각보다 광기에 잠겨있다.
눈깔도 살짝 돌아간 것이 훌륭한 도박꾼의 표본이다.
웅성! 웅성!
1경기가 끝나고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다.
그 사이 좌석을 옮겨 앉는다.
경기장이 꽉 차있지 않다.
듬성듬성 앉아있기 때문에 임의로 좌석을 옮겨도 괜찮다.
"거기. 내 자리"
"안녕~."
"딱히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쿨뷰티 미녀, 몸매 S급, 처녀임은 아닌데."
"?"
화장실에 다녀온 모양이다.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우리들이 있자 당황한 듯 보인다.
'일단 처녀부터가 아니지.'
혜리가 반갑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사실 전혀 반갑지 않을 텐데 친화력이 좋다.
"아~ 선배들."
"부모님께서도 전화를 하셨거든. 여자애가 혼자 그러고 다니는 거 걱정된다고."
"오지랖 대박."
그와 반대.
요즘 애들답게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경제학과 1학년 신입생인 신다율이라고 한다.
'한 똘끼 하나 보네.'
딱 봐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 같아도 한창 개잡주 단타 치는데 참견을 하면 기분이 썩 좋진 않을 것이다.
"난 따서 괜찮다고!"
"그래도 학교는 나오면서 해야지."
"내 엄마야?"
"니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혜리도 살짝 빡이 쳤다.
합법적 탈룰라를 하면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 사이 경기가 진행된다.
2경기는 저그 대 프로토스로 그중 한 명이 외국 선수였다.
'그래도 나름 스타니까.'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외국 선수가 국내 리그에 참전할 정도로 말이다.
"벌면 그만 아님?"
"부모님 걱정은 안 시켜야지."
"직관 안 왔다가 잃으면 책임질 거냐고!!"
"그게 상관이 있어?"
나름대로 디테일한 측면이 있다.
다율이 주장하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심리적인 부분이라.'
외국 선수.
한국보다 프로 정신이 부족하다.
개인 차가 있지만 와필즈는 특히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상대 토스 선수는 장기전이 특징이란 말이야."
"그래서 뭐?"
"그래서 뭐라니!"
"얘는 진짜 모르는 거야."
혜리가 스타를 좋아했을지언정 전략을 이해하면서 보진 않았을 것이다.
순수하게 팬문화만 즐겼다.
'다율은 나름 분석을 한 것 같고.'
게임의 승패.
나누는 것은 실력만이 아니다.
빌드 싸움도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
<와필즈 선수, 벌써 4번째 해처리 올리고 있거든요? 이러면 저그가 자원이 넘쳐나게 됩니다!>
<부자 저그에요 부자 저그.>
결국 게임을 하는 것은 사람이다.
후반에 갈수록 집중력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저 새끼 표정 봐봐."
"외국 선수분?"
"그래, 완전 그냥 똥 씹었잖아. 분명 뻘짓 하나 저지를 거야."
우주크래프트는 그런 게임이다.
전작에서도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이제동맥경화라던가.'
아무리 유리한 게임도 뻘짓 한 번에 말아 먹을 수 있다.
그것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저그는 인구수 200 채웠어요! 심지어 고급 유닛으로!>
<병력의 질적인 면에서도 앞서고 있기 때문에 프로토스가 막는 것이 힘들어 보이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도저히 이성적인 분석이 아니다.
해설자들이 하는 말이 더 와 닿는다.
투둑, 툭!
무리군주.
저그의 후반 최종 테크 유닛이 무더기로 쌓였다.
그것을 저지할 만한 병력이 충분치 않다.
양으로도, 질적으로도 말이다.
위이잉!
사실상 졌다.
프로토스를 하는 선수도 그것을 알고 도박수라도 둬보려고 한다.
아니, 작은 장난에 불과하다.
할루시네이션으로 캐리어를 만들어서 출격시켰는데.
<저게 진짜 캐리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완전히 밀립니다. 힘싸움이 아예 안되죠. 여기서 밀리면 토스는 본진까지 내줄 수밖에 없고. GG~! 어?>
<<저그가 GG를 쳤는데요?!>>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