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68화 (268/450)

EP.268

그사세

신흥국 투자.

일확천금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스피가 박스피다 뭐다 해도.'

저점 대비 수십 배가 올랐다.

초기에 투자했다면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을 설계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막대한 자금과 기술을 투자해 신흥국들을 발전시키지만.

"한계가 명확하지."

"그렇죠.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고 마니까요."

중진국의 함정.

후진국이 중진국까지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선진국에는 결국 이르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니, 현상이 아니라 법칙이지.'

단 한 나라도 이것을 깨지 못했다.

저렴한 인건비라는 성장 동력을 상실한 후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결국 이 벽을 넘지 못하면 평범한 중진국에 머물게 되는 거야.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거지."

"하지만……."

"응?"

"한국은 그 벽을 넘었잖아요?"

한국 이전까지는 말이다.

레이첼의 말대로 한국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죠? 다른 신흥국들도 그것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 국뽕TV에서나 말하고."

"?"

예쁜 외국인이 나와서 빨아주면 조회수가 팍팍 뽑힐 것이다.

그런 채널들이 실제로 있다.

'여하튼.'

국뽕TV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순한 사실을 말하려는 것 뿐이다.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이런 나라들이 벽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

"한국을 따라하면 가능한 나라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건 서양인들의 시각이고."

"?!"

러시아 사람과 프랑스 사람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같은 아시안 국가들도 차이가 크다.

'오만한 코쟁이들은 이걸 모르지.'

월가의 투자자들.

서양인들의 눈에는 다 같은 아시안으로 취급해버린다.

한국이 됐잖아?

다른 나라도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으로 돈을 쏟아붓는다.

"한국인인 당신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인구, 자원, 지정학적 위치 모든 부분에서 한국보다 잠재 성장력이 뛰어난 나라가 많습니다."

"말했잖아."

"뭘요?"

"그 안에 사람은 없다고."

전문가들이 정리하신 보고서.

최첨단 컴퓨터가 계산한 통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대체 어떻게 계산할 건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방구석에서 숫자만 따지고 있는 월가 샌님들은 말이다.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싶은 건가요?"

"보다 근본적인 부분이야."

"네?"

그중 한 사람.

레이첼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명문가 태생이니까.'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모른다.

그들이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지.

마침 보인다.

산을 내려가는 길.

민가와 작은 밭이 눈에 띈다.

"한국의 시골은 처음 보지?"

"Oh……, 한국의 건물은 다 세련된 줄만 알았어요."

"순서가 바뀌었어."

"순서요?"

녹슨 양철 지붕 주택.

옛날에는 그마저도 최신식이었을 것이다.

정말 볼 품 없는 집에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사고 싶었던 것은 좋은 집이다.

한국의 부동산 열풍은 과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아."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미래가 만들어진 거라는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요."

"나라의 성장도 같아."

그 나라 사람들이 꿈을 꿔야 한다.

다 같이 잘 사는 미래를 상상해야 그것이 이루어진다.

'그런 게 되는 나라가.'

욕심과 향상성.

도덕적 요구치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진 나라는 드물다.

오랜 역사와 통합만이 국민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은 이미 선진국이다.

"한국은 운이 나쁘게도 여러 전쟁을 거치며 가난해져 있었을 뿐이고."

"그런 나라니까……."

"조금만 지원을 해줘도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된 거지."

한국보다 더 많은 지원과 더 많은 혜택을 받고도 중진국의 벽을 못 넘은 나라가 산더미다.

그것은 우연일 수가 없다.

'세상에 우연이 어딨겠어.'

모든 것은 필연.

수백, 수십 명도 아니고 인구 수천 만의 나라가 성장하려면 발이 맞아야 한다.

그것이 되는 나라와 안되는 나라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

해당 나라에 진정 투자를 하고 싶다면.

"역사부터 공부를 해보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은."

"응?"

"언제나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네요. 참고가 되었어요."

레이첼의 질문.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미래에서 이미 다 보고 왔으니까.

'인도도, 중국도, 동남아시아도 말이지.'

곧이곧대로 대답을 해줄 수가 없다.

돌려 말한 것 중에서 자신의 답을 찾은 모양이다.

낮에 만났을 때부터 근심이 가득했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나로서도 보람이 있는 일.

타악!

산 아래에 도착한다.

세워 놓은 차에 타자 그제서야 기억이 난 듯 물어온다.

"운전할 수 있어요?"

"못하지."

"저도 같이 차를 마셔서……. 아니, 정말 술 맞잖아요!"

금설차.

아무리 차라고 생각하며 마셔도 알코올은 당연히 알코올이다.

'이대로면 음주운전이 되겠지.'

시골이라 해도 상식은 지켜야 한다.

애초부터 그것을 노리고 마신 거지만.

"하룻밤 자고 가야겠네?"

"정말 생각도 없이 음주를……."

"그동안 좀 써도 되지?"

"네?"

레이첼 애널의 하루 이용권을 받는다.

* * *

레이첼의 일상.

"본사에서 온 레이첼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한국에 온 이유는 연수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실질적인 임무도 배정된다.

로스차일드가가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금융사들.

그 한국 지부를 감사하는 것이다.

"이곳인가요?"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으음……."

40대의 직원의 기다리고 있다.

웃는 인상.

겉보기에는 환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띠익!

ID카드.

체크인 레코더에 갖다 댄다.

이렇게 인식을 시켜야 문이 열리는 구조다.

'앞장서지 않는 건가요.'

단순한 사원증이 아니다.

금융사의 ID카드는 신분의 보증을 넘어 금융 시스템의 이용 권한과도 직결된다.

높은 직급의 사람일수록 회사의 기밀과 자금에 더 깊이 손을 댈 수 있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쪽 룸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자신이 문을 여는 것을 기다렸다.

상급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FM은 그것이 맞겠죠.'

큰 돈이 오가는 업계인 만큼 민감하다.

신분을 속인 사기꾼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 생활.

유도리가 적용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다.

"딱히 보고된 문제는 없습니다. 아니,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통은 깍듯이 대한다.

본사 직원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절 만만히 보고 있군요.'

그런데 새파랗게 어린 여자.

경력도 적고, 성격도 무르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종종 겪는 일이다.

레이첼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진행한다.

"보고된 부분에 문제는 없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특별히 염려하지 않으셔도……."

"그럼 보고되지 않은 부분에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요."

"네, 네……?"

나이가 어리다는 건, 여자라는 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 금융업은.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구워 삶을 수 있을 줄 아나 본데요.'

경력이 높이 평가된다.

이 업계에서는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곧 실력이다.

실탄 대신 돈을 쓰는 전쟁터.

산전수전 겪어온 베테랑의 눈에는 애송이라 보일 수 있지만.

"여기는 트레이딩 부서인가요?"

"그렇습니다! 매해 높은 실적을 내고 있는 저희 지사의 자랑이죠."

"서류상으로는 그렇지 않은데요."

"어, 어? 어떤 부분이……."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다.

전장이 다르다.

경험이 적을지언정 질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있다.

'월가에서는 이런 비효율을 방치하지 않아요.'

한국 지사.

구시대적 방식이 눈에 띈다.

지나치게 많은 트레이더를 운용하는 것이다.

"시스템으로 대체가 되는 인력은 감원하라는 본사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나요?"

"어, 그게……. 현지 상황을 고려해 당장 적용하진 않았습니다."

"이유는요?"

"전문 인력이라는 것이 한 번 줄이면 보충이 힘든지라."

과거에는 그러했다.

돈 놓고 돈 먹기.

실적이 좋은 트레이더들을 얼마나 보유하냐의 싸움이었다.

'지사 수준에서는.'

지금도 안 먹히는 건 아니다.

월가에는 날고 기는 괴물들이 있고, 매 분기 천문학적인 인센티브를 가져간다.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실적에 긍정적이라는 건가요?"

"네, 제 판단으로는……."

"당신의 책임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면 좋겠네요."

"!!"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다.

그마저도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아니, 기준이 높아져 가는 것이다.

'어설픈 인력보다 시스템이 높은 효율을 보여주니까요.'

시스템 트레이딩.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한다.

현대의 투자는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듬는데 있다.

"이곳 지사의 운영 목적은 데이터 축적에 있습니다. 아직도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데이터의 질에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겠죠."

"그, 그건."

"당신에 대한 평가에도 반영이 될 겁니다."

월가에서는 상식.

무서운 속도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아직 스타트가 늦고 있다.

'한국도 많이 늦네요.'

한국 기관들은 여전히 구시대적 방식이다.

이곳 지사가 변화에 둔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시정을 할 테니 부디 선처를!"

솔직하게 보고했다면 엄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2배나 많은 직원이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개선만 한다면 저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진 않습니다.'

그러한 광경.

레이첼로서도 썩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는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 지부들을 개선해나갈 것이다.

언젠가 한국이 성장했을 때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와, 정말 살벌하네 살벌해……."

"그 사람이 소문의 마녀인가 봐요."

"마녀?"

"지사 직원들 사이에서 파다해요. 아름답지만 무서운 본사 사원이 있다고."

레이첼이 떠난 한국 지부.

방금의 광경을 목격한 직원들이 혀를 내두른다.

그녀의 아름다음에도, 엄격함에도.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다.

끼익−!

어디에서도 완벽한 평가를 받는다.

감사를 마친 레이첼은 자신의 자취방에 돌아온다.

다시 대학원생으로서 생활을 하기 위함.

정말 빡빡하고 고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윽, 잠깐만요. 하필 지금.'

정작 레이첼을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답답한 스타킹을 입고 있었던 엉덩이가 근질거린다.

찌걱!

스타킹을 벗는다.

해방감을 맛보던 것도 잠시.

간지러웠던 곳이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냐고옷!'

그렇게 되었다.

찬욱과 만날 때마다 사용이 된 구멍은 어느샌가 성감대로 변해버렸다.

개발이란 걸 한다고 하루종일 만져댄 후로 더 심해졌다.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간다, 간다, 간다앗♡'

후장 자위도 레이첼의 일상이 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