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59화 (259/450)

EP.259

합법적 탈세

인기.

유명해지는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중압감이라고 하잖아.'

일반인과 다르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주목 받을 수 있다.

그것에 또 해석이 붙는다.

유명인들이 마음 고생을 하는 이유.

"……."

소라도 그 무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모니터도 안 켜진 책상 앞에 엎어져 있다.

'원래부터 무겁긴 했지.'

신체의 특정 부위가 말이다.

방송에서도 꽤나 이슈가 되었던 부분이다.

한국신문− 「드림걸즈 '윤소라' 은밀한 사생활? 네티즌 찬반 논쟁」

팩트뉴스− 「'윤소라' 과거 행적 밝혀져……, 그녀가 가진 두 얼굴」

방송이 끝난 이후로도 계속.

드림걸즈는 끝났지만, 관심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가지고.'

커뮤니티를 추천하긴 했다.

이 정도로 완벽히 적응했을 거라곤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자냐?"

"몰라요."

"뭘 모르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잊어버리고 싶어요."

오랜만에 온 소라의 자취방.

완전히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아프다.

'사실 그렇게 큰 논란은 아닌데.'

말투가 조금 특이했을 뿐이다.

딱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을 올리지도 않았다.

귀엽다는 반응.

조금 깬다는 반응.

굳이 따지면 그 두 가지의 분류다.

"죽어버릴래 그냥……."

그마저도 괴로울 수 있다.

가슴 무게 이외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라면 한 번쯤 거쳐가는 과도기지.'

번아웃 현상.

매스컴을 타고 유명해지면 사생활이 간섭을 받게 된다.

원하지 않던 정보가 퍼질 때 있다.

소라가 힘들어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다 너 때문이야."

"나?"

"너 때문에 내가 그런데 나가서. 쪽팔리게 진짜……."

다른 사람의 탓을 하고 싶어질 만큼.

하지만 방금의 말은 실언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K팝 아이돌들에게 못하는 말이 없네.'

절대 쪽팔린 일이 아니다.

비록 탈락하긴 했어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탈락해서 다행이지 진짜!"

"어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또 뭐?"

"몰라!"

소리를 빽 지르더니 다시 책상에 엎드린다.

요즘 애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하튼.'

소라의 자취방에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동안의 성과를 치하해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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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욱님의 총 자산』

23,005,026,974원

+12,902,000,892(+12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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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주.

도움을 준 동아리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약속했다.

'줄 게 없지만.'

본인 실력으로 얻어낸 것이라면 50%를 가져가는 게 업계 관행이다.

그렇지 않다.

내 지시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손발을 움직인 것밖에 없으니 인센티브도 그만큼 작아진다.

"단타 치다가 까먹기도 했고."

"단톡방에서 보긴 봤는데……."

"지 돈 아니라고 막 굴리다가 오히려 손해 봤다니까?"

"그런 일도 있었어요?

사고도 쳤다.

탐욕.

과도한 수익 경쟁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뭐, 그것까지 감안했지만.'

애시당초 실수를 할 걸 알고 있었다.

단타를 치다 보면 욕심이 욕심을 부른다.

한 번쯤 크게 데어봐야 정신을 차린다.

인센티브 대신 경험치만 많이 얻어갔다.

---------------------------------------------+

자기앞수표

₩1,000,000,000(금십억원정)

서울은행 팔달영업부 부장 金英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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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라는 다르다.

아무리 나의 주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재료가 있었으니 이만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거지.'

그것을 제공했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아니, 펀드의 에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금 문제랑 기타 여러가지 사유로 많이 줄 수는 없지만……."

"시, 십억이요?"

"어."

'지금……, 장난 치는 거죠?"

내가 이딴 푼돈 받으려고 트레이드를 하냐?

월스트리트에서는 종종 나오는 화제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어 보이지.'

나도 그럭저럭 적응을 했다.

일반인들에게 10억은 큰 돈이고, 충분히 놀랄 수 있다.

내가 준 수표를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는다.

만족할 만한 액수가 찍혀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받아도 되는 돈이에요?"

"그래."

"나중에 딴 말하면 안돼요?"

"너도 이제 공범이야."

"야."

100% 합법적인 돈은 아니다.

내부자 정보 자체가 떳떳한 일은 아니거니와.

'여러가지 비합법적인 수단도 사용했으니까.'

입만 다물면 OK.

기관과 외국인이 하는 짓을 생각하면 양심에 찔릴 것도 없다.

"좋아?"

"네."

"조금 전까지 삐져 있었잖아."

"돈 받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어느새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엉덩이에 뿔 하나 박아주고 싶네.'

지난 몇 주.

아이돌 트레이닝을 받은 것은 의미가 없지 않았다.

적어도 외적인 부분에서 말이다.

전체적으로 샤프해졌다.

원래도 군살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훨씬 더 아름답게 다듬어졌다.

"선배……?"

입술을 훔치고 싶을 만큼.

화장기 하나 없음에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아리따운 얼굴이다.

'맛도 있고.'

가볍게 삼킨다.

오랜만에 먹는 소라의 입술은 입에 쫙 달라붙어서 계속 빨아 먹고 싶다.

쪼옥! 쪼옥!

당황했던 것도 잠시.

눈을 꼭 감은 채 턱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가 가르쳐준 키스를 몸이 기억하고 있다.

'몸 개야해졌네.'

트레이닝을 해온 보람이 있다.

한 손으로 잡히는 얇은 허리는 전보다 탄탄해졌다.

배꼽의 양옆.

엄지손가락으로 쓱 쓸어 내릴 수 있는 길은 아마 11자 복근일 것이다.

"오빠랑 여행 갈래?"

"네?"

"기분 꿀꿀하다며. 그럴 때는 여행이지."

"너무 갑작스러운데……"

안 그래도 꽉 조일 곳이 근육까지 둘렀다.

사용감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이 안 간다.

'자고 있을 때 몰래 한 번 쓰고 싶네.'

여행을 빌미로 말이다.

멘탈이 무너졌을 때는 바람을 쐬러 가는 것도 좋다.

"갈래?"

"갈래."

"착하지."

소라의 허락을 받아낸다.

* * *

끼룩! 끼룩!

하늘 위를 노다니는 갈매기가 점점 멀어져 간다.

해안가에서 멀어졌다는 뜻.

"바닷바람 시원하지 않아?"

"……."

"파도도 그렇고."

"……뭐."

호화 유람선을 타고 있다.

선상 위에서 보는 바닷물결은 그야말로 장관인데.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나 보네.'

타기 전까지는 별일 없었다.

그날이라도 되는지 심정의 변화가 급작스럽다.

"주식존예여신께서 기분이 안 좋으면 추종자들이 슬퍼하잖아."

"야!"

"뭐, 어때."

"아!"

그런 복잡한 생각.

다 잊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소라의 뒤지게 큰 가슴에 손을 쑤셔 넣는다.

'내 건데.'

군살은 빠진 주제에 가슴은 이전의 크기 그대로다.

한 손에 들어오지 않는 그 푸짐함을 간직하고 있다.

"진짜 미친놈아!"

"왜?"

"사람들이 보잖아……."

"그러니까 뭐 어때서?"

"어?"

달고 다니기만 해도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호화 유람선.

그것도 다국적 선박이다.

개방적인 차림의 여행자들을 아주 널려있다.

쭉빵한 누님들 말이다.

불륜인지 순애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이가 뜨거운 언니들도 보인다.

"여기가 이런 곳이야."

"올 때는 몰랐는데……."

"사회에서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는 거니까."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다.

사회적 신분과 자산이 보증된 사람만이 추천을 받아 가입할 수 있다.

'인맥을 넓힌 덕분이지.'

사생활이 보장 받는 공간.

유람선 내에서라면 복잡한 고민 따위 잠시 접어둬도 된다.

끼릭−!

그것을 도와줄 도구도 있다.

투자자라면 반드시 친해져야 하는 물건을 소라의 손에 쥐어준다.

"마셔."

"콜록! 콜록! 이게 뭔데?!"

"뭐긴 뭐야 술이지."

힙 플라스크.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멋진 금속병이다.

꿀꺽!

위스키를 담아 마시기 때문에 포켓 위스키라고도 불린다.

한 입 입에 머금자 달큰한 향이 퍼진다.

'좋아.'

글렌리벳의 18년.

좋은 오크통을 썼다는 걸 방증하듯 잘 익은 과일향이 입안에서 풍성하게 퍼진다.

고급스러운 올드 셰리, 그리고 약간의 피트가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언제 마셔도 좋은 위스키다.

"너도 마셔."

"낮이거든요?!"

"낮술을 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

약간의 술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꿔준다.

노르웨이의 심리학자 및 정신과 의사의 주장이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일 때 가장 이상적이다.」− 핀 스코르데루(Finn Skårderud)

'어나더 라운드'라는 영화도 한 편 나와있다.

정말로 신빙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꿀꺽!

잠시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라의 가늘고 하얀 목을 통해 위스키가 이동한다.

"독하네요."

"그렇지."

"맛있네요."

"그래."

좋은 위스키는 즐거운 음주를 가능하게 해준다.

술을 마신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게 된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더 그렇고.'

0.05%.

유지하는 선에서 조금씩 마시고 돌아다니면 인생이 한층 행복해질 수 있다.

잠깐의 일탈에 불과하다고 해도 말이다.

투자자에게는 그러한 현실 도피도 필요하다.

"처물려서 고민이 들 때는 술이 답이거든."

"그래서 선배가 술을 좋아하는 거에요?"

"맞아."

"딸꾹!"

나라고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탑급으로 거론되는 다른 투자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게 인간이니까.'

멘탈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런 자신을 케어하고, 바로잡는 것도 투자자의 덕목이다.

여행.

절대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동시에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다면.

"Ladies and gentlemen!"

배 중앙의 홀로 이동한다.

술을 마시며 따라오던 소라는 몰랐지만.

"와……,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

"보면 몰라?"

"몰라 시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어느새 조명도 어두워져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다.

단 한 곳을 빼고 말이다.

중앙의 무대.

사회자가 천으로 가려진 무언가를 가지고 온다.

"1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매각 희망가 2만 달러 부르신 물건입니다!"

경매.

값비싼 물품들을 공개 입찰하는 곳으로 이곳 유람선의 최대 이벤트다.

'목적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이다.

술을 마시던 소라가 관심이 있는지 눈을 빛낸다.

"와……, 예술품 경매 난생 처음 봐봐요."

"투자자라면 예술품에 관심 가져야지."

"왜요? 그것도 투자 대상이라?"

"아니, 탈세해야 하니까."

"……."

그런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다.

마침 타이밍이 딱 좋다고 할 수 있다.

'탈세, 아니 절세를 할 수 있겠네.'

합법적인 탈세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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