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5
진짜 탐방
기업 탐방.
"안녕하세요! 오성엔지니어링 IR을 맡고 있는 이재규입니다."
"전화드렸던 이찬욱입니다."
사실 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의 인지도를 감안한다면 말이다.
"선생님께서 저희 기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몰랐네요~."
"절 아시나요?"
"당연하죠! 요즘 주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익좌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
그 말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받아준다는 의미다.
'신뢰 때문에라도.'
기업 탐방을 받지 않아?
혹시 이 기업이 문제를 숨긴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어중이떠중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혹시 저희 기업에 투자 계획이 있으신 건지……."
"그걸 오늘 알아가려고요."
"아~ 그렇죠! 혹시 궁금한 부분이 계시다면 각 부서의 담당자분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디테일한 설명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유명 애널리스트 정도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야기에 파급력이 붙는다.
'그만한 수준은 된다는 거지.'
현재 나의 입지.
엄청나다고는 할 수 없다.
금융 업계는 스케일이 다르다.
유튜브 수입이 100억?
프로게이머 연봉이 100억?
해당 업계에서 전설적일 것이다.
"그런데 같이 오신 여성분은?"
"제 좆집입니다."
"아오."
"아, 좆집이시군요. 가끔씩 데리고 오는 분이 계시죠."
금융에서는 명함을 만들 정도도 되지 않는다.
아직은 한참은 부족하다.
'이렇게 쉽게 IR담당자를 만나게 해주진 않지.'
예정을 잡는 데만 달 단위가 소요된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문턱은 높다.
"전에는 어려워서 못 온다면서요."
"어떻게든 됐어."
"어떻게든 되나 보네."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쉬운 일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조선, 아니 한국에서는 말이야.'
인맥으로 안되는 것은 없다.
강무열 회장의 소개로 하이패스가 뚫렸다.
"여기 말고 다른 오성 계열사들도 둘러볼 거야."
"그렇게나 많이요?"
"본사가 다 강남에 있으니 시간상 안될 건 없지."
"시간 문제가 아니라……."
재벌가가 괜히 재벌가가 아닌 것.
권력의 힘으로 기업 탐방 풀코스를 잡았다.
'물론 오성 그룹 한정이지만.'
다른 기업에까지 입김이 닿는 것은 힘들다.
자칫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다.
충분하다.
기업 탐방을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러온 소라에게는 말이다.
"이렇게 큰 기업을 올 줄은 몰랐어요. 오성중공업만 가봐도 충분한데."
"가면 니가 알 것 같아?"
"우씨!"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거지."
"?"
초보 투자자에게는 적절한 코스다.
대기업.
특히 오성 그룹의 계열사들은 FM이다.
타악!
IR담당자가 회사의 주요 부서들을 소개해준다.
건설사인 만큼 현장은 여기서 볼 수 없지만.
"저희 오성엔지니어링은 플랜트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포괄적인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입니다."
"네."
"원유를 정제하는 화공플랜트, 폐수를 처리하는 환경플랜트, 산업 소재를 만드는 산업플랜트를 주력으로 삼고 있으며.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미주, 유럽 등에 현재 절찬리에 수출 중입니다! 최근에는 자원이 많은 남미와 성장성이 높은 동남아 고객들의 수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대략적인 사업 개요는 들을 수 있다.
플랜트 회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자들도 소개해준다.
그러한 이야기.
당장 와 닿지 않는다.
소라는 잘 모르겠는지 옆에서 듣고만 있다.
"무슨 얘기하는 거에요?"
"우리 회사에 와서 환영한다고."
"아니, 좀 제대로 설명해주면 안돼요?"
"그게 제대로 설명한 거야."
'뭐, 굳이 따지면.'
중동에서 덤핑 하다 좆된 데스.
내수로 빨아먹을 게 없는 데스.
해외 수주로 간신히 살아있는 데스.
그래도 기술력은 있는 데스.
남미랑 동남아에서 먹을 게 있는 데스.
닝겐상 투자 좀 해주는 데스.
"……."
"회사의 기본적인 사업 내용과 현 상황을 설명한 거지."
"확실히 사전 지식이 필요할 만하네요."
"참피 쪽으로 말이지."
요약하자면 이럴 것이다.
뭔가 의미가 있는 내용 같지만, 사실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기업 탐방은 이런 느낌이야.'
딜교환을 잘한다.
어지간히 칼을 갈고 가는 게 아닌 이상 투자 정보를 캐내는 게 불가능하다.
일반 투자자가 요행을 발견할 일은 없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차라리 담당자와 친분을 만들어서 내부자 정보를 빼내는 것이 낫다.
"으엑."
"니가 미인계로 한 번 꼬셔 봐봐."
"그런 거 못하거든요."
"에휴, 아다가 뭘 알겠냐.'
"^$@#$^%@$!"
실제로 후자가 더 많다.
소위 말하는 '여의도 찌라시'가 그렇게 생긴다.
'조선, 아니 한국에는 한국에 맞는 투자법이 있는 거지.'
각 나라에 최적화된 투자법.
투자자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안내를 받으며 본사를 한 바퀴 둘러본다.
그것만으로도 11시가 돼버린다.
"결국 별 소득은 없는 거네요."
"공짜밥은 먹고 갈 수 있잖아."
"에휴."
"그것 때문에 기업 탐방을 온 건데?"
"?"
소라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민다.
첫 탐방을 많이 기대했는지 정장까지 빼입고 왔다.
'이래서 사내 연애를 금지해도 말릴 수가 없는 거겠지.'
일상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배덕감.
하얀 블라우스츨 감싸고 있는 상의의 단추를 풀어주고 싶다.
토독! 톡!
알아서 푼다.
구내 식당.
음식을 받고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섹시 도발을 해온다.
"유혹하는 거야?"
"밥 먹기 전엔 원래 푸는데."
"평소엔 안 풀었잖아."
"단추 있는 옷은 답답해서 잘 안 입으니까요."
똥배 나온 사람이 밥 먹기 전에 바지 후크를 풀 듯, 소라도 큰 가슴이 밥 먹을 때 불편한 모양이다.
터억!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먹음직스러움 골짜기를 보자 없던 식욕도 생길 지경이다.
'실제로 맛있기도 하고.'
식단.
대기업답게 수준이 높다.
얇은 밀가루빵에 속을 채워 넣은 타코를 메인으로 밑반찬까지 알차게 차렸다.
"학교 급식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먹는 음식 같네요?"
"완전 MZ하지?"
"뭐에요 그 억지밈은."
나쵸와 샐러드, 악센트를 더해줄 오이고추 김치까지 나왔다.
20대 여자 애들도 좋아하며 먹을 만한 메뉴다.
아그작!
정말로 잘 먹는다.
누가 고추 좋아하지 않는달까 봐 오이고추 김치를 입안에 넣고 아삭아삭 씹어 댄다.
직원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각자 입맛대로 좋아하는 메뉴를 찾아서 먹고 있다.
"맛있었어요."
"회사밥도 먹을 만하지?"
"근데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에요? 졸업하고 여기 취직할 것도 아니고……."
"공짜잖아."
"야."
오성엔지니어링의 식당.
직원들이 만족하고 먹고 있다.
'회사'라는 단체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다.
끼익−!
기업 탐방은 아직 많이 남았다.
다음 장소에 도착한다.
오성엔지니어링에 이어 오성디스플레이다.
"2012년 설립된 오성디스플레이는 오성전자에 OLED와 LCD 패널을 공급하는 핵심 부품사로……."
IR담당자가 설명을 해준다.
역시나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군생활도 FM으로 했겠네.'
병크 하나 터트려야 재미있는 법인데.
대기업들은 정말 탐방하는 보람이 없다.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리고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간다.
"오~! 전형적인 한식이네요. 맛있겠다."
"니 가슴이 더 맛있어."
"알거든요."
대파를 송송 썰어넣은 뚝배기 김치찌개를 메인으로 화려한 7첩 반상이 깔렸다.
한국인이라면 최소한 거르지는 않는다.
'그래, 맛있잖아.'
이미 한 끼 먹고 왔음에도 술술 들어간다.
가슴의 크기를 유지하는데 열량이 많이 필요한 모양이다.
끼익−!
다음은 오성바이오로직스.
IR담당자에게 대충 설명을 듣는다.
바로 구내 식당으로 가 음식을 받는다.
"브런치 느낌인 것도 있네요."
"또 들어가?"
"단추 하나 더 풀면."
"오."
노릇노릇하게 구운 빵과 단호박 파이, 그리고 아보카도에 연어 샐러드 토핑을 올렸다.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다.
'회사에 여직원 비율이 높아 보였지.'
식단도 그에 맞춰준다.
회사가 사원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이 엿보이는 것이다.
끼익−!
저녁은 오성전자에서 먹는다.
사원 복지로 유명한 기업답게 식사도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밖에서 사먹으면 바보일 정도인데요?"
"그러게."
"식당에서 돈 주고 사먹을 만한 퀄리티인데……."
튀긴 마늘이 뿌려진 두툼한 돈까스.
나이프로 써걱써걱 썰어 먹는 재미가 있다.
'돈이 굉장히 많이 들 걸?'
재료값만이 아니다.
전문 영양사.
질리지 않는 식단.
일반 구내식당의 2배 이상은 지출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것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회사 다닐 맛이 날 것 같아요."
"그냥 회사가 아니잖아."
"하긴 오성이니까…….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하나 같이 다 훌륭하네요."
회사를 다닐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어준다.
직원들의 충성도가 올라가게 된다.
'다 계산적인 거야.'
자본주의 사회에 거저는 없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사소한 것에도 다 이유가 숨어있다.
느낀 것이 있는 걸까?
소라의 얼굴이 그늘 져있다.
너무 많이 처먹은 부작용일 것이다.
끼익−!
마지막 장소.
이미 해가 어둑어둑하다.
그럼에도 꼭 이곳을 들리기로 정했다.
"이젠 진짜 배부른데요."
"단추 하나 더 안 풀어?"
"그건 걍 치녀잖아요."
"알긴 아네."
고등학생들이 학식에 환상을 가지듯 대학생인 소라도 구내식이 신기해보일 수 있다.
실제로 맛이 좋았다.
그러니까 꾸역꾸역 먹었다.
단추를 하나둘 풀던 소라도 슬슬 위장이 가득 찬 모양이다.
"괜찮아."
"제 배가 안 괜찮다니까요?"
"어차피 먹을 일도 없으니까."
"?"
오성중공업.
소라가 단도직입적으로 와보고 싶다고 한 장소다.
그럼에도 빙빙 돌린 이유가 있다.
마지막 탐방으로 이곳을 선택한 건.
"아줌마 마이 주이소!"
"마이 드렸심더."
"아따! 손 작음씨네~!"
비교가 되기 때문.
식당의 분위기부터 다르다.
식판 위 내용물을 보면 더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이 있잖아.'
머슴 생활도 대감집에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