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1
발판
둘마트.
한국 유통 업계의 전통 강자다.
'말을 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일반인들이 더 잘 안다.
장 보고 온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둘마트일 거 아니야.
"이, 이 무슨."
"회장님 설명을 해주십시오!"
"외부 인사를 초청할 거면 최소한 전문적인 인력으로……."
정작 본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
둘마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말이다.
'원래 그래.'
인간의 눈에는 개미가 협동적인 동물로 보인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힘을 합쳐 짐을 옮기는 것 같아도, 몇 마리는 그냥 들고만 있다.
일을 하는 흉내만 낸다.
마찬가지.
회사에도 임금만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많다.
특히 임원들 중에 그런 놈들이 있다는 건.
"왜 이렇게 소란입니까?"
"회장님, 이건 회사의 위신이 걸린 문제입니다!"
"위신이요?"
"외부 인사가 들락거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의 이미지와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신들이 한 일이 평가 받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꿀보직 들키면 눈치 보이잖아.'
임원은 무슨 일을 할까?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업무의 기준이 없다.
바쁘려면 얼마든지 바쁠 수 있고, 편하려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다.
"이사들이 말하는 위신이라는 건."
"그렇습니다."
"회장님 이건 쉽게 결정할 문제가……."
"반년만에 ⅓이 날아간 주가를 말하는 건가요?"
""…….""
"아니면 루팡에 밀리고 있는 업계 입지? 어느 쪽인지 명쾌하게 대답해주실 이사 계십니까?"
대기업일수록 더 그러하다.
'사내정치'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임원들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일해줄 말.'
임원들 사이에서도 급이 나뉜다.
단순히 전무이사, 상무이사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인맥.
재벌들이 핏줄만으로 회장 자리를 꿰차듯 임원들도 별 다를 바 없는 놈들이 존재한다.
능력이 없다.
성과를 못 낸다.
그래서 신인 임원들에게 신임을 대가로 업무 성과를 빼앗으며 살아왔다.
"없는 것 같군요."
"회장님."
"할 말이 있나요 전주성 상무?"
"회장님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이사진의 걱정도 일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아무래도 너무 급작스러운 감이 있어서요."
사내 정치의 대략적인 구조다.
그것을 하는 늙다리들에게 정상적인 업무 평가는 독약을 삼키라는 것이나 다름없겠지.
'그래서 외부 인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
회장이 있는 상석에 가장 가깝다.
인자한 얼굴을 한 장년 남성이 분위기를 순식간에 가라앉힌다.
그가 이곳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모르긴 몰라도 임원 중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설명은 충분히 하지 않았나요?"
"네, 그래서 드리는 중재안입니다. 초청하신 저 외부 인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들어보고 결정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비공식으로 말이죠."
테이블에 앉아있는 임원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여론이 모아진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사내 정치 좀 해본 이들이라면 단박에 파악한다.
'꼽을 주고 싶다는 거잖아.'
세상 모든 일이 쉽게 보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남이 하는 일에 훈수를 두는 것이다.
─편의점샛별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왜 점멸 안 씀??
<부쉬에서 날아오는데 점멸 반응을 어떻게 해! 페○커도 이건 못하겠다.>
−좆청자 훈수 ㅋㅋㅋㅋㅋㅋㅋ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세요
−챌린저가 못하면 그런갑다 하지
−팩트) 전성기 빠커면 했다
인터넷 방송에서도 흔히 있는 일.
자신은 못하면서 타인의 사소한 실수에는 엄근진하다.
그것이 기업의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사내 정치가 무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타악!
그 정도의 난관.
생각하지 않고 왔을 리 없다.
적진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하!"
"이봐요. 여기 둘마트 이사회에요. 어디 중소기업인지 알아요?"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아시냐고요."
""?!""
대기업답게 스크린이 아닌 화질 좋은 대형 TV가 준비되어있다.
준비해온 자료를 가리킨다.
---------------------------------------------+
『둘마트』
211,500원 ▼112,000원 (−34.63%)
[최근 반년간 폭락하고 있는 그래프.jpg]
+---------------------------------------------
최근 둘마트의 주가 말이다.
이미 그것으로 타박을 받은 만큼 임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커험!"
"크흠!"
"최근에 좀 불안정하긴 한데……,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수준이라고는."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시가 총액이 3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상승장의 거품이 꺼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차트에는 답이 나와있거든.'
차트충.
선 찍찍 그어 놓고 주가 향방이 어쩌고 하는 것은 투자를 우습게 보는 일이다.
하지만 참고 지표로는 의미가 있다.
특히 과거를 분석할 때는 정확도가 높다.
"차트가 꺾이더라도 임펄스로 꺾이냐, 코렉티브로 꺾이냐에 따라 다른데 둘마트는 임펄스로 꺾이고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인가?"
"여기는 IR부서가 모여있는 자리가 아닐세!"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시장에서 이 기업을 평가 절하하고 있다는 겁니다."
5파로 꺾이는 것이 임펄스.
3파로 꺾이는 것이 코렉티브.
같은 기간에 몇 번 위아래로 움직였는지를 뜻한다.
'후자면 반등의 여지가 있다는 건데.'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저가 매수 세력이 붙었다는 것이다.
왜?
이 기업이 좋으니까.
반대로 저가 매수 세력이 없으면 완만하게 쭈욱~! 내려간다.
지지선을 낮추면서 천천히.
"그 결과가 차트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5파로 꺾였다는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징조?"
"여기가 무슨 굿판인 줄 아나!"
"그렇게 잘 알면 주식으로 떼돈을 벌었겠네 하하!"
""하하하!!""
"이미 벌었습니다."
""…….""
차트로 미래를 예상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하지만 과거가 보인다는 사실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차트로만 보는 것도 아니잖아.'
현재 둘마트의 상황.
임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년 전과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IR부서에서는 풋옵션 헷지를 했습니까? 아시는 분 계십니까?"
"일부 헷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요?"
"지금의 위기를 가볍게 보고 있다면 1년 뒤에 사표 쓰실 분이 이 자리의 절반은 더 되실 것 같네요."
경쟁자가 생겼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이점을 내세워 점유율을 갉아먹고 있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주가에 프리미엄이 생기게 돼있는데.'
2등 기업이 영업 이익 대비 주가가 싸다!
그렇게 생각해서 매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식 시장의 평가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다.
1등과 2등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쁘띠건희
세계 최고의 2등 기업 회장님이 하신 명언처럼 말이다.
주가에 프리미엄을 받는다.
그 프리미엄이 빠지고 있다.
둘마트가 시장을 선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웅성웅성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높은 곳에서 임금만 따박따박 받아가는 이사진은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겠지.'
위기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이다.
당장의 지표에서 티가 나지 않기도 하다.
미루고 미룬다.
책임질 때가 되면 적당한 사람 골라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이 사내 정치.
"흠! 흠!"
강무열 회장도 눈치는 채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것은 실로 거대하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
회장이라 하더라도 전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임원들이 있는 거고.'
보고를 받는다.
보고하는 내용은 쓴 사람의 사견이 섞여있을 수밖에 없다.
축소 보고.
논점 흐리기.
자료에 오류가 있으면 회장도 오판을 내리게 된다.
"오늘 그를 이 자리에 데리고 온 이유는 납득이 된 것 같군요."
"회장님."
"아직 이 사람은 회사에 대해 모릅니다. 저희 IR부서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이니……."
"그 소리는 2개월 전에도 들었는데 그때보다 개선된 부분 있나요?"
""…….""
능력 없는 임원진.
사내 정치로 연명하는 그들을 회사라고 자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마치 암세포처럼.'
처음에는 죽이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생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자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말기 암처럼 퍼져 있다.
"대안은 있습니까?"
"현장에서도 이를 파악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다만, 성과가 나오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한정된 예산도 일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젊은 이사진을 중심으로 공감의 여론이 피어오른다.
문제점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잘리는 건 지들이니까.'
해결할 방법이 없을 뿐.
늙다리들의 연명을 위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희생되는 구조다.
사내 정치는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듣고 있는 입장에서 편하지 않군요."
"우리 기업이 사소한 난관을 맞이한 건 사실이지만……, 외부인이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비효율 덕분에 높은 연봉을 받는다.
늙은 이사진들은 어떻게든 여론을 돌리려고 하고 있다.
훈수질을 하는 건 쉽다.
인생 편하게 사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현실을 가르쳐준다.
"최근에 온라인 배송이 떠들썩하다 보니 루팡이 주목을 받고 있는 거지. 저희도 온라인 플랫폼에 힘을 쓴다면 점유율을 다시 빼앗는 건 시간 문제겠지요."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니들은 늙었다는 걸.
둘마트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온라인이 주류가 된다는 건 10년도 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루팡 전에도 옥션, 22번가가 있었는데.'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생 기업인 루팡에게 선두의 자리를 내주게 된 건 의외로 하찮기 짝이 없는 이유다.
"그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걸립니까?'
"흐음……, 1년 정도 있으면 성과를 기대하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장님."
"저라면 한 달이면 가능합니다."
"뭐, 뭐어?!"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1년이 아니라 그 배의 시간이 지나도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 되면 변명거리 한두 개 생기고도 남겠지.'
늙은 임원들이 기생하는 방법.
책임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안되면 희생양을 만들어 덮어 씌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회사를 갉아먹는다.
그들에게 수십 억을 주며 낭비를 할 바에야.
"제가 한 달 안에 둘마트 앱의 점유율을 2배로 올려보죠. 아니, 3배."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나에게 주는 편이 낫다는 걸 상기시켜준다.
루팡이 잘 나가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혁신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혁신이 만약 복잡한 것이라면 대중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