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39화 (239/450)

EP.239

기업 탐방

창고형 마트.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말 좋다.

'싸니까.'

사소한 단점은 다 갖다 던져도 된다.

가격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확실히 저렴하네요. 여길 보니까 물가가 안정될 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효과가 있지."

한국의 물가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비효율적인 생산과 기형적인 유통 구조.

'그것의 완충제 역할을 해주는 게.'

대형 유통사들의 경쟁이다.

그중에서도 소비자 식탁과 가장 가까운 것이.

『신선식품 코너 100g당』

미국산냉장부채살 1,980원

호주산와규부채살 5,280원

한우채끝 8,480원

한우등심 8,690원

노르웨이생연어 2,980원

국내산횟감광어 4,980원

호주산와규함박스테이크 3,165원

양념LA식갈비구이 2,990원

양념돼지갈비구이 1,532원

양념소불고기 1,425원

둘마트.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싸게 팔아주는 덕에 가계 물가가 그럭저럭 유지된다.

"그래도 대량으로 파는 거잖아요. 소비자랑 마트 서로 Win−Win을 하는 게 아닐까요?"

"아닌데."

비슷한 전략을 쓰는 유통사는 있다.

대표적으로 코스트코.

'존나 싸게 팔잖아.'

특히 수입산 식품은 비교할 곳이 없다.

한국 최고의 치즈케이크 가게는 코스트코라고 해도 무방하다.

양은 물론 질까지 우수.

소품종 대량 판매 전략을 통해 원가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때문인데.

"코스트코는 회원제잖아. 점포 수도 많지 않고."

"주위에 없어서 못 가요."

"안 가는 사람들은 어차피 둘마트 가게 돼있어."

트레이더스는 다르다.

똑같은 창고형 마트지만 딱히 싸게 팔기 위해서 설립된 것이 아니다.

'제 살 깎아먹기거든.'

둘마트의 매출이 둘마트 트레이더스로 옮겨질 뿐이다.

감가상각과 영업이익률을 따지면 손해.

"그럼 왜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

"기업 탐방을 오는 거지."

하지만 시장은 큰 그림으로 움직인다.

지금 루팡이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를 감수하는 것처럼.

한국신문− 「루팡 적자 불어나도 '새벽 배송' 포기 않는 이유」

팩트뉴스− 「"적자 규모 안 중요해"… 이커머스 '승자 독식'위해 출혈 경쟁」

승자 독식.

이커머스 업계를 독점하면 대량 판매를 통해 흑자 전환을 노릴 수 있다.

'구독 경제 같은 것도 하고.'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

그러면 까까오처럼 문어발 사업도 가능해진다.

그것이 루팡의 최종적인 목표.

마찬가지로 둘마트도 지향하는 사업 구조가 있는 것이다.

『간편식품 코너』

후레쉬스시 20입 14,980원

프리미엄스시 28입 19,980원

프리미엄활광어회 36,800원

훈제삼겹살 1.4kg 21,960원

두마리치킨 14,980원

순살치킨샐러드 9,980원

어니연어샐러드 7,342원

식품 코너를 보면 알 수 있다.

소라도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지 말을 걸어온다.

"제가 쭉 보면서 느낀 건데."

"뭔데?"

"초밥 하나 사갈까요? 가격 생각하면 동네 초밥집 가는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 그쵸?"

"……."

쓸데없는 것만 보고 있었다.

투자자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선식품 코너부터 쭉 이어지잖아.'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팔다 남은 것들을 간편식품으로 만들어 다시 파는 구조다.

"소고기는 냉장, 냉동, 소불고기, 피자 토핑 재료가 되고. 생연어는 회, 초밥, 연어 샐러드 재료가 되는 거지."

"……."

"한 마디로 너는 잔반처리반이야."

"야."

다른 재료들도 마찬가지.

재활용의 재활용 끝에 골수까지 우려먹히고 나서야 폐기가 고려된다.

'굉장히 효율적이지.'

물론 음식점 재활용과는 다르다.

관련 법규를 준수하는 합법적이고, 위생적으로 처리된다.

"그래도 먹을래요."

"안돼."

"왜요!"

"넌 주식 물린 만큼 할인 스티커 붙으면 사."

"우씨!"

8시가 넘으면 마감 세일.

15~50%씩 할인을 해도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물론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

다음 코너를 간다.

비슷한 구조인 제빵, 야채, 과일 코너를 지나 보다 깊숙한 곳.

어른의 공간에 도착한다.

일단은 19금이 필요한 시설인 건 맞다.

"술이네요."

"그렇지."

"별거 없는."

"별거 있다니까."

와인과 위스키 등의 주류.

최근 대형 마트에서 가장 신경 쓰는 상품이다.

'이건 배달이 안되거든.'

한국 주류법상 전통주를 제외한 술은 배달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즉, 소비자가 와야 한다.

"그러네요?"

"가격도 그렇고, 간편식품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소비자가 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거지."

"그래도 온라인 구매가 편한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창고형 마트.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글자 그대로 창고가 된다.

'오프라인 마트는 물류창고가 대단히 중요한 거점이라.'

그 역할을 겸한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트레이더스들이 말이다.

온라인쪽도 신경을 쓰고 있다.

루팡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둘 다.

"이걸 옴니채널 전략이라고 부르지. 온·오프라인을 통합했다는 느낌."

"오……."

"언론에서는 루팡의 혁신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사실은 둘마트도 만만치 않게 칼을 갈고 있는 거야."

반대로 이것을 하지 않고 있는 회사들.

꼴데마트, 집플러스 등은 시장에서 도태된다.

'방구석에서 보면 똑같은 회사 같아도.'

사업 구조도, 회사의 비전도 다르다.

마트를 쭉 둘러보기만 해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기업 탐방을 하는 이유.

처녀처럼 해본 적 없는 소라가 입을 헤~ 벌린 채 쳐다본다.

"완전 아만보네요."

"그렇지."

"저는 백날천날 둘러본다고 이런 거 안 보일 거 같은데."

그러한 사실.

결국 알아야 보인다.

기업 탐방은 얼마나 알고, 얼마나 준비했냐로 판가름이 난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보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쏙쏙 골라서 홍보용으로 이용하고 싶지.

특히 약점은 기를 쓰고 숨긴다.

기업 탐방은 회사와 투자자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너 같은 애송이가 가기에는 10만 년은 일러."

"그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만 지나도 할머니인데요."

어설프게 가면 능욕만 당한다.

IR담당자에게 가스라이팅 당해서 기업의 가치를 잘못 보고한다.

'증권사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미스지.'

우수한 직원이 필요한 이유.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단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낫 놓고 ㄱ자는 알아야 배워가는 것이 있지."

"맞는 말이라 더 빡치네요."

"어쩔티비?'

"저쩔티비."

인터넷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시장의 변화와 기업들의 사업 구조를 말이다.

'그러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의 성장 동력을 살핀다.

투자자가 기업 탐방을 가서 하는 일은 그런 것이다.

둘마트.

이렇게 대놓고 보여주는 것도 읽지 못해서야 숨기고 있는 것은 더더욱 볼 수가 없다.

포옥!

그러니까 공부나 더 하라고.

소라를 데리고 온 목적은 기본기나 충실히 갈고 닦으라는 것인데.

"선배."

"응?"

"둘이서 장 보니까 신혼 느낌 나지 않아요?"

"지랄하지 마."

"지랄은 좀 심했다."

소라도 여기 온 목적도 하나는 아니었다.

갑자기 팔짱을 끼며 달라붙는다.

'얘까지 소름 돋게 왜 그래.'

최근에 PTSD가 돋을 일이 있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솔직히 좋잖아요. 그쵸?"

"파이즈리에 소질 있네."

"지랄 마요."

소라의 가슴이 팔을 감싼다.

꾹 하고 힘을 주자 탱탱한 살덩이가 압박감을 선사한다.

'가슴만 뒤지게 커가지고.'

레이첼은 침대에서라도 조져놨지만, 소라는 침대에서 붙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여보 나 술 한 병만 사고 싶은데……."

"용돈으로 사."

"아니~ 용돈이 너무 적어서 그렇지."

그렇게 된 남자의 말로.

최근 대한민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편상이 옆에 지나가고 있다.

'저렇게 살면 재미가 있으려나.'

본인들이 원해서 하는 일이니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나라면 그러기 싫다는 것 뿐이다.

"우리도 주위에서 부부라고 보일까요?"

"스폰이라 보이겠지."

"미친놈아."

이렇게 쭉빵한 여자를 끼고 노는 것이 더 좋다.

소라가 데이트 같다면서 히히덕거린다.

'뭐, 나도 하나는 아니지만.'

둘마트.

한국 경제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업이란 보수적인 것이다.

한국은 특히 더 그러한 측면이 있다.

까톡!

내부에 파고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지금의 나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 * *

둘마트.

한국에서 가장 많은 대형 마트를 소유한 기업이다.

전국민이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들릴 수가 없는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보십니까?"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다.

가로 10m, 세로 3m의 회의 테이블 상석에 위치한 사람이 입을 연다.

분위기는 진중하다.

딱히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분위기를 휘어잡는 위압감이 있다.

"현재 주가가 안 좋은 것은 증시의 하락세와 원자재 상승분의 영향으로……."

"지금 제가 그런 것을 묻고 있나요?"

"아닌 것 같습니다."

테이블 양쪽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혹은 백발이 군데군데 보인다.

최소 임원급의 직급.

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부사장과 사장까지 일반 직원들은 눈도 마주치기 힘든 이들이다.

"제가 뻔한 이야기나 듣자고 이 시간에, 바쁜 여러분을 소집했겠습니까? 한 달 월급이 일반 직원 연봉이신 분들을?"

그런 그들조차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자신들의 연봉을 챙겨주는 장본인이니까.

'일찍 퇴근하긴 글렀구만.'

'주가 관리팀을 닦달할 걸 그랬나?'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안 나설 줄은 몰랐지.'

회장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잘리기 싫으면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란 것이다.

최근 둘마트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주가가 반년 사이에 ⅓이 날아갔다.

증시의 하락세와 원자재 상승분의 영향이라고 우겨댈 수 없는 수치다.

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아무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나 보군요."

"아, 그게……."

"뭔가요?"

"시간이 좀 부족했습니다. 다음 이 시간까지 준비를 해올 테니."

"그 사이에 파트 타임 직원 수 명분의 연봉이 또 날아가 있겠군요."

""…….""

이사라고 하면 엄청나게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 같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하루아침에 아니게 될 수 있어서 문제지.

높은 연봉을 받는 만큼 잘리는 것도 한순간이다.

'돈 받은 만큼 일하는 놈이 없단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싹 다 교체해버리고 싶다.

회장인 강무열로서는 답답하다.

그럴 수 없는 게 회사 일.

그런 면에서 봤을 때는 그는 굉장히 속 시원한 사람이었다.

"역시나 아무도 준비해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송구합니다 회장님."

"저희도 안팎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됐습니다. 제가 준비했으니까요."

""네??""

무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기다렸다는 듯, 아니 기다리기 싫다는 듯 회의실의 문이 열린다.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

그 상식을 가볍게 깨부순다.

"안녕하세요. 초대를 받은 이찬욱입니다."

그런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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