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5
미친년
2018 월드컵 조별 리그 F조.
전세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대이변이 벌어진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이겼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독일이 조별 리그에서 짐을 싸고 있어요!!>
FIFA 랭킹 1위 독일이 상대였다.
그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패배를 직감할 수밖에 없는 격차.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기적은 일어난다.
한국신문− 「김○권·손○민 '연속골'…'세계 1위'독일 꺾었다」
팩트뉴스− 「대한민국, 독일에 2:0 기적 같은 승리…16강 탈락」
데일리뉴스− 「카잔의 기적 원동력?…붉은악마 ‘열정 응원’ 있었다!」
세간에서는 '카잔의 기적'이라 불리고 있다.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치러진 경기이기 때문이다.
독일을 상대로 2 대 0의 완승.
FIFA 랭킹 57위가 FIFA 랭킹 1위를 꺾어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이종격투기 − 「월드컵 독일전 요약.jpg」
樂 SOCCER − 「독일전 승리가 지릴 수밖에 없는 이유」
도탁스(DOTAX) − 「멕시코 현지 카잔의 기적 반응 ㅋㅋㅋㅋㅋ」
커뮤니티가 난리가 날 만도 하다.
연속된 패배로 침울해있던 축구팬들이 활기를 되찾는다.
─독일전 승리가 지릴 수밖에 없는 이유
현 FIFA 랭킹 1위
역대 볼 점유율 1위
최강팀 상대로 경기 내내 공 뺏겼는데 이겼다는 거 ㅇㅇ
└심지어 최강팀 탈락시킴 ㅋㅋㅋㅋㅋㅋㅋㅋ
└멕시코가 스웨덴만 이겼으면 ㅅㅂ
└3위지만 만족한다
└전반전 끝나고 잤는데 왜 이겨있음?????
물론 의미는 없다.
멕시코가 스웨덴에게 패배하며 한국은 3위를 확정지었다.
16강 탈락.
그럼에도 국민들은 열광한다.
독일을 이긴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독일전 요약.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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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 빡치라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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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명짤이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마따
└승부의 원초적 재미를 관통하시는……
└???:: 너 개못하잖아
독일을 조별따리시켰으니까.
FIFA 랭킹 1위에게 잊을 수 없는 흑역사를 선물했다.
어차피 우승은 목표도 아니었다.
발목 한 번 제대로 잡은 것으로 만족한다.
"야, 어제 월드컵 봤냐?"
"와, 시발……. 갑자기 기숙사 뒤집어져서 깜짝 놀랐어."
"미쳤잖아 우리손!"
다음날 한국대.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두 눈이 뻘겋게 충혈돼있다.
새벽 늦게까지 축구를 시청한 여파다.
여운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주모!"
"주모!"
"국밥 콜?"
"국밥 먹으러 가자."
학생들이 국뽕을 외칠 만도 하다.
없던 애국심도 생길 만한 경기였다.
한국대 전체에 월드컵 화제가 한창이다.
유독 더 심한 곳도 존재했다.
""3!""
""2!""
""1!""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식 동아리.
오전 9시 00:00이 되기 무섭게 동아리방이 조용해진다.
10초쯤 지났을까?
여기저기서 아쉬움과 후회가 담긴 탄성이 터져 나온다.
"동시호가부터 이렇게 쏜다고?"
"아니, 시발……."
"아, 애국할 걸!"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의 동아리원들이 한국이 지는 쪽에 베팅했다.
"에휴, 매국노들."
"매국노가 아니지!"
"그럼 뭔데."
"이성적인 투자자."
부원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게 이성적인 관점에서 말이 안된다.
한국신문− 「월드컵 '1% 기적' 독일 꺾고도 조별리그 탈락(종합)」
팩트뉴스− 「베팅업체 ‘한국, 독일전 승리’ 역대급 이변 3위」
단 1%에 불과했다.
진심 전력을 낸 독일을 상대로 한국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애국 베팅을 하던 부원들도 이번에는 Hoxy?
높은 확률에 기대 투자를 해봤지만.
"한국이 독일을 이기는 게 말이 되냐고!"
"지금까지 잘만 지다가 왜 갑자기?"
"우리나라 왜 잘하는 건데!"
결과는 승리.
스웨덴, 멕시코전의 패배로 눌려있던 주가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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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소맥』
21,500원 ▲2200원 (+11.39%)
[장 시작하자마자 떡상하고 있는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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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선물 숏을 쳤고, 개중에는 대담하게 풋옵션을 매수한 야수들도 있었다.
"내 옵션 어떡해……."
"진짜 개처물렸네."
"계속 올라 시발. 지금이라도 손익 확정 봐야 하나."
선물은 리스크가 높다.
개별주보다 호가창이 얇고, 레버리지도 더 마음껏 가능하다.
옵션은 더더욱.
하루 아침에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진짜 도박꾼들의 세계다.
"어떡하지? 존버할까?"
"하긴 손절만 안 하면 잃은 게 아니지."
"좋겠다~. 난 옵션 상폐라 존버도 못하는데."
한 가지 다행인 건 투자다.
토토와 같은 진짜 도박이 아니다.
기다리면 본전 구간에 올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에서 월드컵은 끝났다.
한국팀이 경기를 안 하는 이상 큰 화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데일리뉴스− 「독일 전 승리한 날 편의점 매출도 신바람…맥주 최대 807% 증가」
사람의 심리는 얄팍하다.
때마침 떠오르는 기사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러다 분기 매출 역대급으로 찍으면……."
"2분기 실적 발표일이 언제지?"
"8월."
"8월까지 존나 밑도 끝도 없이 올리는 거 아니냐?"
"난 그냥 지금 손절할래!"
분명 이성은 알고 있다.
재료가 없어졌으니 장기적으로 우하향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불안에 휩싸인 부원들을 중심으로 손절매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주식이 어려운 거지.'
투자는 결국 확률 싸움이다.
투자자가 하는 것은 보다 높은 쪽에 돈을 거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
실제 투자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아오, 병신들."
"심각해 죽겠는데……."
"한국이 이길 거라고 왜 안 가르쳐줬어요?"
"맞아, 맞아. 손익좌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미친놈들아."
바로 욕심.
승률이 1%다 뭐다 하니까 눈깔이 돌아가서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을 베팅한다.
'알려줘도 안 믿지. 이미 이성을 잃었는데.'
한 명의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하나는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만드는 것.
둘은 그것을 지키는 것.
「첫 번째 규칙, 절대 돈을 잃지 마라」− 워렌 버핏(Warren Buffett)
「두 번째 규칙, 첫 번째 규칙을 절대 잊지 마라」− 워렌 버핏(Warren Buffett)
첫 번째는 어떻게든 된다.
투자를 오래하다 보면, 노력하다 보면 지식적으로라도 배운다.
진짜 어려운 건 두 번째.
워렌 버핏의 조언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세상에 절대는 없어. 요행으로 돈 벌려고 하지 마."
"칙쇼오오~!"
"매국이 답이 아니었다니."
"당연히 독일이 이길 줄 알았죠."
동아리원들도 알 때가 되었다.
투자자로서의 진정한 성장은 지식이 아닌 마음에 있다.
'깡통 좀 차봐야 깨닫는 게 있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좋아하는 속담은 아니지만, 주식에 한정하면 맞는 이야기다.
늙어서 시드가 커지면 타격이 크다.
지금 몇 백, 몇 천 잃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아 진짜 망했어……."
"나 이번 달 생활비도 안 남았어."
"이래서 도박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거구나."
"투자인데?"
"투자나 도박이나."
당장은 고통일 수 있다.
동아리 운영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지.'
혜리가 옆에서 째려본다.
도박을 종용한 게 나였던 것도 사실이다.
가끔은 당근도 던져줘야 한다.
이렇게 큰 이벤트가 벌어지면.
"지금 가만히 있을 때야?
"가만히 있기도 힘들어요."
"숨이 안 쉬어져."
"우리손이 골을 넣었는데?"
""?!""
증시 전체가 출렁인다.
그리고 그것은 투자 심리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동안 관심을 못 받았던 주식에.'
투심이 몰릴 만큼 영향력이 넘친다.
얼마 전 반일 관련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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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볼펜』
3385원 ▼85원 (−2.51%)
[고점 찍고 계속 내리고 있는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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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회성의 단기 호재다.
해당 주식은 이후로 쭉 흘러내리기만 한다.
"우리손?"
"우리손푸드!"
"에이, 설마 주식이 장난도 아니고……."
"진짜 오르고 있어!!"
하지만 미리 알 수 있다면?
단기 차익을 먹고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방법은.'
심리를 먼저 읽는 것이다.
힌트를 하나 던져주자 눈치 빠른 부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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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손푸드』
2,450원 ▲160 (+6.98%)
[갑자기 슈팅하고 있는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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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육류 관련주이기도 하다.
시장의 관심만 받는다면 오를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 주식 시장.
주가에 거품이 붙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손!"
"우리손~!"
"이름이 같다고 오르는 거야?"
"말도 안돼……."
"손○민이 골 넣었는데 당연히 올라야지!"
그것의 축소판이다.
착각과 욕심에 의해서도 슈팅이 나올 수 있다.
'물론 금방 가라앉겠지만.'
돈이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먹고 나온 부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또 없어?"
"하나만 제발……."
"어제 축구뽕 맞은 애들이 피파온라인 한다는데? 돈슨게임즈 사볼 만하지 않을까?"
"난 산다!"
그런 주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머리만 잘 굴리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이게 바로 K−주식이지.'
단타꾼들이 수익을 내는 방식.
투자자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또 이상한 투자를 하고 있군요."
"그 이상한 투자보다 수익 못 냈잖아."
"흥! 그것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레이첼로서는 못마땅한 모양이다.
어느새 다가와 또 시비를 걸고 있다.
'이년이 덜 박혔나.'
어제는 그렇게 앙앙대며 울어댄 주제에.
한 번 더 똥고집을 풀어줘야 하나 했더니.
쪼옥!
갑자기 입맞춤을 해온다.
순간 발이라도 헛디딘 줄 알았다.
입술에 힘을 주는 것 보면 그것도 아니다.
채 판단을 내릴 새도 없이.
타악!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손바닥에 딱 들어오는 작은 상자였다.
"이건 뭔데?"
"뭐긴 뭐에요. 약혼 반지지."
"뭐어……?"
"정식 결혼 전에 거쳐가는 것이니 간단하게 준비했어요. 아, 식은 어디서 올릴 건가요? 전 모국에서 하는 편을 선호합니다만……."
미친년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