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32화 (232/450)

EP.232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백화점.

쇼핑을 하기에도, 기분 전환을 하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

여자들은 말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도중 수현을 만났다.

'휴, 혼자 왔네.'

캐주얼한 차림.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신발도, 백도 명품으로 치장해있다.

쇼핑을 하러 온 모양이다.

자주 데리고 왔으니 이곳으로 온 거겠지.

"맞아. 사귀고 있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뭐 같은데?"

"섹프?"

"?!"

레이첼로서는 청천벽력.

아까부터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하루의 수치로 끝날 줄 알았을 테니까.

평생의 흑역사로 기록될 수 있다.

학교에서 소문이라도 퍼지게 되면.

두근! 두근!

가슴까지 내리고 있는 손.

심장의 맥박이 다이렉트로 느껴진다.

이 냉혈한 같은 여자도 따듯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그것을 증명한 것만으로도.

"맞아. 섹프야."

"아닌 거 같은데."

"눈치챘어?"

"둘이 한 듯한 분위기가 아님."

충분한 재미를 보았다.

수현으로서는 아직인 듯 장난을 쳐온다.

검지와 엄지.

동그랗게 말아서 그 안으로 슉! 슉! 손가락을 넣었다 뺀다.

레이첼이 더 꼿꼿하게 굳는다.

이런 화제에 영 면역이 없어 보인다.

"맞아. 지금은 처녀인데."

"오."

"내일 보면 아닐 수도 있지."

"오~!"

"!!"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다.

손에 힘을 주자 심장이 더 세차게 뛰어온다.

'역시 성희롱을 할 때 가장 반응이 좋단 말이야.'

이전 생에서도 그래서 도발을 했다.

이번 생에서는 아예 내 여자로 만들 것이다.

촤악!

가림용으로 구매한 코트.

안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야하게 차려 입은 오늘의 코디가 보인다.

"오빠 진심인가 보네."

"그러니까 입혔지."

"대체 무슨 약점을 잡은 거에요? 쉽게 허락해줄 언니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큭."

백화점의 싸늘한 에어컨 바람이 코트 안으로 들어온다.

추워서 그런 건지, 수치스러워서 그런 건지 레이첼이 입술을 깨물고 있다.

'죽여?'

공주기사 같은 짓을 잘도 해댄다.

일부러 맛있게 따먹으라고 양념을 뿌려주는 걸지도 모른다.

"참고로 뚫릴 때 엄청 아파요."

"!!"

"이 오빠께 커서……. 아, 서양 남자들이랑 비교하면 또 다르려나."

"내 게 더 커."

수현이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다.

강직도와 모양이라는 측면에서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한 번 박혀보면 물렁좆 따위 쳐다도 안 보지.'

비교 대상도 없을 것 같은 여자다.

고고하고, 도도한 것은 고독한 것과 한 끗 차이다.

"이 남자와 그런 일을 하려고 하는 건……."

"할 예정이지."

"당신은 좀 닥치고 있어요!"

"같이 닥칠까?"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육체를 맛본 남자.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골이 나있다.

레이첼의 턱을 잡고 가볍게 입술을 먹는다.

가슴을 꽈악 하고 쥐자 반항하지 못한다.

'아주 부드러워.'

소라는 탱탱하다.

약간 단단하다는 느낌도 있어서 주무르다 보면 내 손이 아프다.

레이첼은 부들부들.

드러낸 맨가슴은 조금만 움직여도 표면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이미 진도 나갈 만큼 나갔네."

"그치?"

"그래도 살살 해줘요. 저처럼 거칠게 하면 원래대로 안 돌아올지도."

뻐엉!

입으로 낸 소리.

흠칫 놀라는 레이첼을 보고 수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경험자로서의 우위가 있다.

수현이 레이첼에게 이겨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 것이다.

"장난 그만 쳐.'

"그럴까요?"

"오빠가 용돈 줄 테니까 쇼핑하고 놀고 있어.""

"입막음비에요?"

"까분다."

카드를 꺼내서 쥐어준다.

내가 명품을 사준 이후로 꽤나 씀씀이가 커진 수현이다.

모델 일을 하는 이유.

내 여자가 예뻐진다는데 돈 몇 푼 아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알았어요. 비밀로 해줄게요."

"그래."

"이 길로 하러 갈 거에요?"

"너도 3P 낄래?"

"저는 흔우 만나러 가야 돼서요~!"

"에이."

내 여자는 아니지만.

지난번에 대판 싸웠던 흔우와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야 더 흥분되지.'

여자친구에 대한 이해심 하나는 한국대에서 제일일지도 모른다.

"남자친구가 있다고요?"

"응."

"당신이 전남친……."

"아닌데."

"네?"

레이첼의 얼굴이 혐오로 일그러진다.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이 혐오를 만들어내는 거거든.'

실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는 법이다.

끼익−!

주식도 사정이 있다

레이첼과 함께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차를 타고 15분 거리.

간단히 식사를 할 만한 레스토랑이다.

"당신이 왜 손해를 봤는지 알아요?"

"모른다고 했잖아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한국을……, 요?"

아니, 음식점.

외국인 입장에서는 크게 차이가 있진 않을 것이다.

『청둥오리탕』

먹어보면 이해가 간다.

주차를 하고, 레이첼과 함께 안으로 입장한다.

"뭐죠?"

"응?"

"다 저를 쳐다보는데……."

"그런 옷을 입고 한식집 들어오는 미친년은 달리 없을 테니까."

"뭐라고요?!"

메뉴의 특성상 50대 이상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주를 이룬다.

등산 마치고 온 듯한 복장도 보인다.

'근데 원래 이런 곳이 맛집이야.'

현지인 아닌 이상 올 수가 없는 식당.

진짜 한식이 무엇인지 맛을 봐야 한다.

"오리탕 중자 나왔습니다!"

테이블에 착석한다.

조금 기다리자 한참을 끓여야 하는 오리탕 냄비가 나온다.

"안 벗어?"

"신경 쓰지 마시죠."

"어차피 호텔에서 벗어야 하는데."

"ssibal놈……."

한국 욕도 배운 모양이다.

사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첫 번째로 배우는 한국어다.

'욕의 나라거든.'

자극적이다.

심심할 겨를이 없다.

그것이 한국이 아이덴티티라는 사실은.

보글보글!

음식을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소라와 여행을 갔을 때도 강조했던 부분이다.

'한국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지.'

그 나라의 음식과 술.

먹어보면 문화를 알 수 있다.

적당히 씨부리는 말이 아니다

"샤브샤브……, 같은 건가요?"

"일단은."

"일단은?"

"국물에 푹 담가서 익히는 것부터."

미나리가 같이 나온다.

국물 위쪽에 띄워 놓으면 미나리가 익게 돼있다.

후루룩!

그걸 건져서 우물우물 씹는 것.

오리탕을 먹는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샐러드인가요?"

"그렇게도 보일 수 있죠."

조금 많이 특이하다.

퐁듀처럼 샐러드를 찍어 먹는다고 보일지도 모른다.

우적우적

맛 또한.

미나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다.

미나리를 씹는 레이첼의 표정이 밝지 않다.

예상을 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정 먹기 힘들면."

"?"

"술이랑 마셔봐요."

음식은 술과 함께 즐겨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나라의 식생활을 경험해봤다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 어주』

가지고 온 술병.

콜키지비를 내고 개봉한다.

오롯이 쌀과 효모로만 빚어진 전통주다.

"지난번에 먹을 때도 느꼈지만."

"음?"

"니혼슈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느낌이……."

니혼슈.

한국에서 사케라 불리는 그것이다.

청아한 맛을 베이스로 여러가지 케이스가 꽃핀다.

'사케에도, 일식에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녹아있지.'

자기 주장이 약하다.

그리고 섬세하다.

그러한 일본인들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돼있다.

그게 뭔 개억지지?

세계의 모든 음식을 먹어보면 음식과 나라가 연결되어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 한국은요?"

"음식을 먹어봐요."

"네?"

"음식이랑 술을."

전통주도 마찬가지.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에서 풍미가 폭발한다.

'자기 주장이 존나게 세지.'

한국의 약주(청주)는 찹쌀을 많이 쓴다.

일반 쌀보다 달고 질감이 짙다.

효모도 향이 다채롭다.

섬세하진 않지만, 와일드한 매력이 있는 술이다.

우적우적

음식도 마찬가지.

뭐 하나 심심한 게 없다.

소스에 푹 찍은 미나리에 술 한 모금을 머금자.

"맛이……."

"입맛에 안 맞아요?"

"그건 아닌데 뭐라고 테이스팅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굳이 말하자면 폭력적이랄까."

"나처럼?"

항상 음식에 대한 코멘트가 과하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혀가 매우 깐깐하시다.

'깜짝 놀랐겠지.'

그런 그녀도 처음 느껴볼 것이다.

미나리의 강한 향과 전통주의 감칠맛이 입안에서 부딪힌다.

정신이 확 드는 맛.

미묘하게 기울어진 밸런스는 음식과 술 어느 한쪽을 찾아 먹게 만든다.

"슬슬 고기도 익었으니까."

"안에 있는 게 메인이었군요?"

"국물이랑 떠서 한 번 먹어봐요."

오리 다리와 국물 한 국자를 앞접시에 퍼준다.

언제 튕겼나는 듯 허겁지겁 술과 음식을 퍼먹는다.

'굉장히 독특한 현상이지.'

일식의 경우 꺾인다.

한쪽이 스미마셍 해버린다.

하이엔드급일수록 더 극단적으로 와 닿는다.

맞짱 떠서 진 쪽이 대가리를 박는다.

값비싼 음식 혹은 술이 놀라울 정도로 맛이 없어지는 것이다.

"맛있어요?"

"중독되는 것 같은 그런 맛이네요."

"맞아요. 사실 필로폰 넣었어요."

"What?!"

"안 넣었으니 안심하고 먹어요."

일본인의 특징과도 맞아 떨어진다.

음식과 나라가 연결돼있다는 게 그런 의미다.

'한국도.'

한국인의 특징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지금 먹는 오리탕과 전통주처럼 서로 엄청나게 싸운다.

"후우……."

폭력적이라고 할 만도 하다.

한국인의 '빨리빨리'가 음식과 술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다.

'근데 알아서 잘하거든.'

그 안에서 효율성이 꽃핀다.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고, 취할 건 취하면서 상승 효과.

숨을 돌리는 레이첼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먹었다.

"특이하지만……, 맛있네요. 확실히."

"그쵸?"

"이 작은 사이즈의 오리는 국물에 깊은 감칠맛을 더하고 있어요. 몇 번이나 넣었던 미나리의 향과 단맛도 녹아있고, 그 국물이 살 속 깊숙이 배인 오리 고기는 일류 레스토랑의 메인에 못지 않아요."

한국 음식은 자극적이다.

단순한 밑반찬들조차 하나하나가 발효 음식 투성이다.

'이 많은 음식들과 마리아주가 가능한 건 전통주뿐이지.'

굉장한 특이한 방식.

알아서 잘 어떻게든 해내는 한국인의 특징이 녹아 들어있다.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르다.

외국인의 방식으로 한국을 평가하려고 하다가는 큰코다친다.

"확실히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죠. 이토록 빠르게 성장한 나라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주식 시장은 예외지만."

"크흠!"

주식도 같은 선상.

레이첼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다시는 K−주식을 무시하지 마라.'

이 양키 코쟁이 새끼야.

오만방자한 레이첼에게 한국 주식의 비밀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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