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0
내기2
찬욱의 성추행.
레이첼로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아직도 목에 걸려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팔뚝만한 것을 삼키게 만든다.
거칠게 넣었다 뺐다 하니 턱도, 목도 아프다.
그리고 액체.
벌써 몇 번이나 먹었음에도 적응되지 않는 괴상한 향을 풍긴다.
켁! 켁!
식감도 이상해서 목에 이물감이 남는다.
도대체 이런 것을 왜 먹이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왜 도와 달라고 하는 건지도.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큰 사회적 문제다.
신생아 10명 중 4명이 미혼모 출산으로 기록될 정도다.
남자들의 무책임한 성욕 때문.
이성적으로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은 케이스다.
그렇기에 더 생각이 복잡하다.
완전히 덮친 것이라면 평생 그를 미워하기로 작정했을 텐데.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성행위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다.
그의 머릿속을 뜯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한 명의 투자자로서 무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한국 주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주식이야 말로 자신의 전문 분야다.
남에게 어설픈 조언을 들을 만한 위치가 아니다.
'경쟁도 아니고 수익이라니. 대체 저를 얼마나 얕보고 있는 거죠?'
내기의 내용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주식을 해서 수익을 내면 이긴 걸로 치겠다.
주식 초보자도 약간의 운만 있으면 가능한 일.
전문가인 자신은 애초에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아드득!
입안에 물고 있는 사탕.
아직도 남아있는 괴상한 이물감을 없애기 위해 먹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로 깨물어 부순다.
그는 절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밟았다.
'이렇게 박살이 나는 것도 좋겠네요. 더 이상 추찹한 짓 하고 다니지 못하게.'
얕보고 있다.
운 좋게 한 번 이겼다고 그 우연이 두 번, 세 번 반복될 줄 안다.
아니, 사실은 1승 1패.
그는 당연히 모르고 있겠지만.
'내가 너 따위 마음만 먹으면…….'
암호화폐 때 승리했던 것은 자신이다.
운용 자금의 규모가 다르다.
타닥, 탁!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일도 되돌려준다.
─도박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번에는 방심했다.
한국 시장에 대한 조사도, 이해도 부족했다는 걸 인정한다.
'대략적인 흐름은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의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업데이트를 마쳤다.
타닥, 탁!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적정 주가를 계산한다.
현재 코스피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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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지수』
2160.74 ▲39.21 (+1.82%)
[최근 1주일간 살짝 오른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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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0을 찍고 반등했군요.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라고 보긴 일러요.'
차트를 분석을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볼린저 밴드'를 살피는 것이다.
미국의 재무 분석가 존 볼린저가 1980년대 개발한 기술적 분석이다.
20일 이동평균선을 기준으로 현재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것에 의하면 저평가 단계.
타 증시의 추세와 비교해도 코스피의 하락은 과매도라고 볼 수 있지만.
타닥, 탁!
지난번 찬욱과의 내기에서 범했던 실수다.
투자자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수치나 다름없다.
'한국의 숨은 인플레 상황을 고려해보면……'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
1년예 무려 16%를 올린 건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신흥국에서 화폐 가치의 절하로 그러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화폐 가치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희한하다.
'사회적으로 혼란이 생길 수 있고, 그것을 예측한 펀드에서 대규모 베팅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보인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의 선물/옵션 베팅을 보자 흔적이 남아있다.
일반 투자자들을 볼 수 없는 정보.
자신은 그것이 가능한 정보망이 존재한다.
'흠! 딱히 반칙이라고 할 건 아니겠죠.'
그토록 자신을 우습게 봤으니 말이다.
물론 이 이상으로 손을 벌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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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전자
│900주 │+0.52%
오성생명
│420주 │+0.20%
CD금융
│796주 │+1.05%
우라노스헬스케어│512주 │+2.01%
헬지오플러스 │2801주│+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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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구성만 해도 충분하다.
분산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안정적인 투자법이다.
'한국 주식을 몰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답니다.'
코스피에서 가장 큰 대기업.
금리 인상기 수혜주인 보험주와 금융주.
경기 침체기 방어주에 속하는 헬스케어와 통신.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인지도가 있는 것들로 골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오성과 가전기기로 유명한 헬지 정도는 알고 있다.
우라노스헬스케어는 재무 건전성이 뛰어났다.
전부 시가 총액 수십억 달러로 흔들릴 일 없는 회사다.
'당신이 그렇게 도발을 하니까…….'
만약 하락장이 지속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기관들이 앞으로 매집하게 될 섹터들이다.
차트상으로도 눌림목 구간.
고점 매수를 한 것도 아니니 손실을 보는 것은 불가능할 지경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치사한 짓을 했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내기는 기다릴 것도 없이 자신의 승리.
확신을 해도 될 만큼 수비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그래도 하나쯤은 남겨줄까요.'
측은한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도 자신이 해낼 것을 알면서 내기를 제안한 걸지도 모른다.
성격이 뒤틀려있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찬욱이 소개해준 한국의 모습은 매번 흥미로웠다.
꿀꺽!
어쩌면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걸 수도.
그래서 자꾸 관심을 끌고, 성추행을 하는 거라면 이해가 간다.
'승부는 승부니까요. 봐주는 것 없이 임하겠어요.'
적어도 그가 이야기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
찬욱의 관점은 참고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로서의 역량은 자신이 앞선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위를 잡으려고 했는데.
* * *
월드컵의 경과.
<네……, 어차피 한국은 도전자의 입장이었고.>
<이번 패배를 교훈 삼아 다음 경기, 다음 월드컵에서는 좀 더 좋은 결과를 노려봐야겠죠!>
스웨덴에 이어 멕시코전까지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한다.
그나마 1골 먹여줬다는 게 위안이지만.
"슈팅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 진짜 우리손 뭐하냐고!"
"우리손은 시발 느그손이지."
패배는 패배.
응원을 하는 학생들의 얼굴도, 대화도 실망감이 엿보일 만하다.
2패를 해버렸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16강은 물 건너갔거니와.
"다음은 독일이야?"
'독일 잘해?'
"미친놈아 피파랭킹 1위야.'
"그럼 또 지겠네……."
3패가 확실시된다.
사실 2002 월드컵과 같은 기적을 기대하는 한국팬들은 없다.
어느 정도 선전을 하길 바란다.
적어도 올해는 힘들게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와아~!!"
""오오!""
"믿고 있었다고 쥐엔장~!"
매국 베팅을 한 주식 동아리의 학생들은 기모링을 하고 난리가 났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
돈을 벌었기 때문.
자신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는 것도 투자자로서 최고의 쾌감이다.
"나라 팔아 먹어서 돈 버니까 좋냐?'
"존나 좋은데."
"내가 용자 돌림인 이유가 있어!"
인간으로서는 죄악감이 들 수 있다.
그 무게를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투자자.
주식 동아리의 인원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말이다.
"아, 매국할 걸……."
"아, 친일할 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동아리 가입한다."
"그건 안돼."
반대로 돈을 잃은 인원들도 있다.
양심의 가책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러한 동아리원들의 심정.
단 한 명만큼은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우앗!"
"뭐해요?"
"갑자기 뭔가요!"
"궁금해서 그렇지."
레이첼이 동아리실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어깨에 손을 올리자 흠칫 놀란다.
'만져서 놀란 건 아닌 거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사소한 스킨십 정도로 눈길을 피할 만큼 그녀는 온순하지 않다.
다른 사정이 있기 때문.
처음 사정을 가르쳐준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다.
"내기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흥! 당신이 걱정할 것 없답니다."
"정말로?"
"……."
"그럼 보여줘도 상관없겠네."
꿀리는 게 있다면 더더욱.
바로 보여주지 않고 기싸움을 하는 걸 보니 확정이다.
'얼굴만 봐도 알 것 같지만.'
온실 속의 화초다.
평소 고고한 척하는 사람일수록 도박판에서 더 이성을 잃기 마련이다.
그녀가 어떤 일을 당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말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보여줘요."
"싫거든요!"
"당신의 부끄러운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게 싫어요?"
"……."
선을 넘는다는 걸 알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주는 것이다.
'깨물어주고 싶네.'
물린 것으로 놀리지 않기.
월가의 마녀다 뭐다 해도 지금은 내 손바닥 위다.
고개를 휙 돌리고 있다.
새침한 척하는 얼굴을 무너뜨려주는 게 가장 재밌다.
"싫어요?"
"싫습니다."
"대신 더 부끄러운 장소를 보여줄래요?"
"!!"
"아니면 동아리 애들한테 레이첼이 주식을 하고 있다고……."
동아리실로 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는 척하자.
"보, 보여줄 테니까……."
셔츠 자락을 당겨온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이 레이첼이다.
'그렇겠지.'
프라이드는 그 어느 것보다 우선시된다.
투자자의 마음을 모를 수가 없다.
몸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부끄럽다.
본인에게서 허락을 받아낸다.
"뭐라고 부탁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나요?"
"기억 안 나요."
"레이첼이 주식을……!"
"아, 아! 말할 테니까."
형식적이라도 중요하다.
이 철벽 같은 여자는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
"Bozi해주세요."
"이 악물고 영어로 발음하네."
"흥!"
"말한다?"
"아, 아!"
보픈부터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