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23화 (223/450)

EP.223

死母펀드

돼지머리.

확실히 일반적인 식재료는 아니다.

'외국에서도 안 쓰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처럼 일상적으로 먹지는 않는다.

하물며 부위를 세분화 하는 일 따위.

"이제 알겠어요."

"뭐가요?"

"소, 돼지가 1Kg에 수십 달러를 호가하는 이 살인적인 물가가 어떻게 유지되나 싶었는데 이런 폐기물 고기가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있었던 거군요?"

"……."

당연히 없다.

기껏해야 갈아서 테린을 만들거나 푹 삶아 육수를 뽑아내는 용도다.

'이렇게 세심하게 잘라서 바비큐를 해먹진 않지.'

혐오스러운 비주얼.

먹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었다.

과거에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기 분류 명칭을 가진 것은 순수하게 자랑할 거리만은 아니다.

"그런 관점도 없진 않겠죠."

"이전에 들었던 한국의 CPI에 대해 의문점이 남아있었는데 이것으로 해소가 되는……."

"좀 닥치고."

다른 나라라면 대충 잘라 먹을 고기.

버리는 부위를 줄이려고 하다 보니 분류 명칭이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생기는 미식도 있어.'

미식이라는 게 꼭 부유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굶주림은 미식을 낳는다'는 말처럼 가난 속에 꽃피기도 한다.

추운 겨울 언 빵을 녹이기 위해 만들어진 퐁듀.

중국 유학생들의 꿀꿀이죽이었던 짬뽕.

프랑스인들이 버린 뼈로 우린 쌀국수.

"폐기물이라고 하지 마세요."

"실례,, 한국을 무시하려는 발언은 아니었어요."

"한 번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이걸……, 먹으라고요?

돼지머리의 부속고기도 훌륭한 미식이 될 수 있다.

기겁을 하는 자본주의의 암퇘지에게 먹여본다.

지글지글~!

두항정.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항정살에서, 머리쪽에 보다 가까운 부위다.

'정육 과정에 생기는 오차인데.'

돼지머리를 섬세하게 자를 수는 없다.

그래서 항정살 부위가 일부 남아있는 것이다.

"평범하게 맛있네요."

"그렇죠?"

"Crunky하면서도 juicy해요. 촘촘한 지방질 덕분에 무리 없이 넘어가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요."

"사견이 많네요."

그래서 頭항정.

돼지에서 가장 비싼 부위인 항정살과 거의 동등한 맛을 가졌다.

지글지글~!

뽈살.

돼지의 턱과 관자놀이에 붙어있는 살로 육즙이 진하고 쫄깃하다.

"지방질이 없는 데도 Dry하지 않아요. 젤라틴이 많이 함유된 부위인가요?"

"그냥 처드세요."

주는 대로 잘 먹는다.

다음으로 구워주는 것은 끝살.

치이익……!

삽겹살+ 곱창 느낌이다.

기름기가 많고, 육질은 쫀득쫀득하다.

"이것은 씹는 맛이 좋네요. 너무 Oily해서 많이는 못 먹겠지만."

"이미 많이 처먹었어요."

그 외에도 많다.

일반적으로 먹는 로스구이 부위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색다르다는 점도 크고.'

레이첼이 시끄러울 만도 하다.

외국에서는 아예 명칭조차 없는 부위다.

애초에 구워 먹을 생각을 하지 않겠지.

앞다리, 등심, 안심이 썩어 나는데.

"흠! 흠! 제법 먹을 가치가 있는 바베큐네요."

"폐기물 시식 잘하셨고?"

"당신이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도 알겠어요."

한국은 고깃값이 비싸다.

싸고 맛있는 고기를 먹자는 노력과 연구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레이첼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습관의 다양성이 물가 상승을 억누르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

백화선 대표도 말했듯이 요식업계는 현재 비상이 걸렸다.

"맛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고기를 발견했다는 거죠?"

"에휴."

"?"

"역시 공주님의 생각은 거기까지밖에 안 닿나 보네."

가격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져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이자카야처럼 허리띠를 졸라 매는 방법도 있지.'

일단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런 건 방구석에서 재무제표 보는 인간들의 생각이고."

"말 다 했어요?!"

"세상은 숫자로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죠."

요식업은 소비자가 사먹기만 하면 되는 산업이다.

* * *

동대문구의 한 삼겹살집.

<외관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주차장은 차가 빽빽하다.

손님들은 2시간이나 웨이팅을 기다리고 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몰러!>

<한 번 먹어보면 삼겹살은 다시는 안 먹지~.>

<전 이거 먹으려고 대구에서 KTX 타고 왔어요.>

먹고 나온 손님들의 평판도 칭찬일색!

기대를 가지고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

테이블은 손님들로 가득 차있다.

음식을 먹고 있는 표정도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아버님~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질문.

단순한 삼겹살이라면 아무리 맛집이어도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지 않다.

<그야 황제 대접을 받고 있어서 그렇지.>

<황제 대접이요?!>

질문을 받은 아저씨는 대답 대신 메뉴판을 가리킨다.

그곳에 답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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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살'은 돼지 한 마리에 250g밖에 생산되지 않는 특수부위입니다.

살코기 사이에 고르게 분포된 지방층이 소고기 같은 진한 풍미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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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이름이 황제살!

어째서 황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는 광경이었다.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익어가고 있다.

돼지고기스럽지 않은 풍부한 마블링은 군침이 넘어가게 만든다.

푸짐한 밑반찬 또한.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밖에서 사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황제 대접 받는 것 같아요!>>

가게 안의 손님들이 단체로 따봉을 날린다.

그렇게 훈훈하게 영상은 막을 내리지만.

"사기를 치는 걸 보여준다는 거에요?"

"사기라니. 듣는 사람 거북하게시리."

"하지만 이게 왜……."

실상을 알고 있다면 의아할 수 있다.

아니, 어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제살이냐고.'

두항정.

레이첼도 먹어봤던 부위다.

가게에서는 '황제살'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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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들살'은 돼지 한 마리에 400g밖에 생산되지 않는 특수부위입니다.

삼겹살보다 진한 고소함과 쫄깃함으로 미식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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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살'은 돼지 한 마리에 300g밖에 생산되지 않는 특수부위입니다.

펼쳐보면 악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목살의 고소함과 갈비살의 쫄깃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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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살'은 돼지 한 마리에 75g밖에 생산되지 않는 특수부위입니다.

쫀득한 식감과 진한 육즙을 느낄 수 있고, 지방이 적고 젤라틴이 풍부하여 여성 다이어트에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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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위들도 마찬가지.

이름을 바꾸거나 그럴 듯한 설명을 추가해 귀한 부위인 것처럼 꾸몄다.

'그야 돼지머리에서 나오는데 몇g 안되겠지.'

실상은 전혀 귀하지 않다.

가격으로만 따져도 삼겹살의 ½도 안되는 굉장히 저렴한 고기다.

"사기는 아니네요."

"아니라니까요."

"허위공시지."

"……."

고지식하고,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레이첼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확실히 일반 부위라면 불법이다.

'예를 들어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삼겹살을 오겹살이라고 판다던지.'

원산지, 유통기한처럼 고기 부위도 표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머리는 해당하지 않는다.

"양심을 팔아먹은 거지 사기까진 아니에요."

"정말 뻔뻔하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네요."

"알빠임?"

"하지만 사업 효율로서는 괜찮네요."

두항정→황제살

끝살→꼬들살

등심추리→악어살

이름을 바꿔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희귀 부위처럼 포장해서 비싸게 팔아먹는 거지.'

레이첼도 어떤 것인지 눈치는 채고 있다.

법이 빡센 미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다.

"와 맛있다!"

"여기가 TV에서 나온 본점 맞죠?"

"아줌마, 황제살 2인분 추가요~!"

그것이 먹힌다는 것 또한.

돈을 주고 촬영한 방송의 홍보 효과가 아주 쏠쏠하다.

'이런 건 인지도 싸움이라.'

간판 하나 단다고 믿을 리 없다.

하지만 TV에서 나오면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다.

그것이 사람의 심리.

높은 마진률을 광고비에 퍼부어서 선순환을 일으킨다.

"당신, 재미있는 생각을 할 줄 아네요."

"인정해주는 거에요?"

"범죄와 한 끗 차이긴 하지만요."

"크흠!"

소비자들도 만족한다.

경제 한파가 닥친 이 시기에 일반 외식과 같은 가격으로 황제처럼 즐긴다.

'그만큼 밑반찬에 신경을 써주고 있으니까.'

만족도는 훨씬 높을 것이다.

삽겹살과 같은 가격에 더 다양하고 맛있는 부위를 먹을 수 있다.

소비자도 판매자도 Win−Win.

수단과 방법을 가리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선과 기준은 있는 편이다.

"당신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요."

"벌써?"

"흥! 딱히 칭찬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편이 결국 나에게 이득이 되어 돌아온다.

모든 것은 신뢰를 쌓는 과정에 불과하니까.

'나중에 한탕 먹고 튈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전까지는 말이다.

이쪽 업계에서 신용은 돈과 동의어로 취급이 된다.

"이런 세상도 있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폐기물 고기 먹는 게 그렇게 신기해요?"

"더 이상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요 근래 함께 다니면서 레이첼은 꽤나 흥미를 느꼈다.

의심과 혐오만 담겨있던 눈초리도 조금은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둥글둥글해졌다.

치이익……!

컨설팅은 완료되었다.

계속 보고를 받기는 하겠지만, 유의미한 반격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썩 능력이 있어 보이진 않더라고.'

돈육家.

할 줄 아는 건 맞세일뿐이다.

본사가 일을 안 하는 건지, 무능한 건진 몰라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레이첼과 고기를 먹고 돌아간다.

컨설팅 핑계로 즐기는 무료 식사를 빼먹어서야 섭할 노릇이다.

"즐거웠어요."

"거 봐요. 맛있죠?"

"맛도 맛이지만……, 한국에 대해 또 알게 된 것 같아서요."

단순한 식사.

조금 특이한 식재료이긴 해도 한국인에게는 별 다를 것도 아니다.

외국인에게는 다를 수 있다.

식습관만큼 그 나라를 잘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현지 조사를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랑 타입은 달라도 바라보는 방향은 비슷하다.

모든 것이 경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소득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 잘 먹었어요. 다음에는 제가 한 턱 쏠게요."

"그걸로 충분해요?"

"그럼 충분하죠 왜 또……."

"후식은 먹고 가야죠."

"???"

한국 남자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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