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19화 (219/450)

EP.219

진짜 경영

헤일즈푸드.

업계 3위 규모를 자랑하는 요식업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도쿄포차가?!"

사장인 곽우석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아래층의 직원들에게도 전달이 되었을 만큼.

"보고 올라갔나 보네."

"목소리 크기 보니까 오늘 부서 하나 작살 나겠다~."

심심하면 한 번씩 생기는 일이다.

50대 사장인 그는 성질이 불같이 급하다.

직원들이 실수하는 꼴을 가만히 넘겨주지 않는다.

하물며 도쿄포차는.

'아니, 내가 거기 들인 돈이 얼만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경쟁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승리했다.

기대를 가지는 게 당연한 일.

갑자기 악보를 전해오니 짜증이 치민다.

"잘되고 있다며?"

"네……, 얼마 전까지는 그랬는데."

"1주일 사이에 땅이 무너지나 아니면 하늘이 무너지나. 제대로 설명 안 해?!"

"보고할 시간은 주셔야죠."

보고를 하러 온 김현우 과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사장의 고함에 완전히 묻힌다.

'에휴, 누가 좆소 아니랄까 봐.'

사장이 왕이다.

목소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커녕 의견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화풀이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보고의 내용은 다행이었다.

"맛있는 TV 기억하십니까?"

"그야 뭐……, 기억하지. 애청하던 프로그램이었으니까. 크흠!"

"한국대편에서 나온 그 청년이 원흉입니다."

"뭣이라?!"

어그로가 쏠린다.

물어뜯을 먹이를 던져주면 적어도 자신이 책임을 지진 않을 것이다.

'내가 손익좌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프로그램 방영 이후.

해당 한국대 학생에게 요식업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싹이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스카우트를 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경쟁사인 푸드마켓에서 그를 스카웃 해갔다고 합니다."

"이 새끼가 우리 제안은 거절했다고 하더니……."

"네, 생각보다 능력이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요식업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면 직원 제안이 끝.

하지만 그는 손익좌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스타격의 존재다.

─손익좌 봄이 방송 나와서 뭔 말함??

다시보기 보고 싶은데 구독자 공개라 못 보네 ㅅㅂ

└봄이 구독해!

└그냥 별 말 안 함. 애초에 주식 유튜버도 아니라

└손익좌도 요즘 한국 주식 안 산다던데?

글쓴이− ㄹㅇ? 그게 시그널인 거 아님?

주식 시장에서 떠들썩하다.

유명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하며 더욱 화제성이 높아졌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스카웃 제안을 거절할 만도 하다.

본인이 만지는 돈만 수십 억이 넘어간다고 들었다.

겨우 대리?

자신 같아도 코웃음을 치며 거절할 것이다.

아니, 쌍욕을 박아도 이상하지 않다.

"어린 노무 새끼가 뭐 알면 얼마나 안다고? 엉? 그 새끼가 뭐 대수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본때를 보여주면 되지. 우리가 가만히 있었더니 진짜 가마니로 보이나!"

"그러게요."

그 사실.

주식을 안 하는 사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알려고도 하지 않겠지.

'컴퓨터도 안 만지는데 어려운 얘기해봤자 뭐 알겠어?'

배울 생각이 없다.

저 늙은 사장은 지가 잘나서 회사가 운영되는 줄 안다.

다 아버지 덕인 것도 모른 채.

선대 사장이 건실한 회사를 물려주셨다.

"그래서? 그 새끼가 뭔 짓을 한 건데?"

"이벤트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뭔?!"

"예, 하이볼과 사케를 무한 리필로 제공한 것이 제법 성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 사장은 그것을 까먹고 있다.

사업 규모는 절반 가까이 축소되었고, 재정도 더 이상 안정적이라 볼 수 없다.

직원들 탓으로 돌리며 역정을 낸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자기 탓인 건 업황 핑계를 대며 합리화한다.

'이 새끼가 감히 출혈 장사로 승부를 걸어?'

그런 우석에게 있어 도쿄포차는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성공 사례다.

자신의 대에서 이루어낸 프랜차이즈.

그것이 위협 받고 있다.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정면 승부를 걸어왔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매출이 떨어졌다는 거지?"

"네……."

"이 새끼들이 감히 우리한테 시비를 걸어? 전쟁 하자는 거잖아!"

요식업계에서는 선전포고로 분류된다.

한 가게가 세일을 하면 손님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같은 업종.

영향을 받을 거라는 건 지들도 모르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야!"

"겁쟁이야."

"그래, 그 겁쟁이 새끼들은 한 방 먹여줘야 정신을 차리지."

"네."

자신들도 그랬으니까.

도쿄포차와 고토리자케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초기부터 기획되었다.

푸드마켓이 세우는 이자카야 옆에 가게를 세우자고.

'그 어린 사장 놈이 부동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본단 말이야.'

음식점은 음식을 잘 만들어 팔아야 한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부동산이다.

소위 말하는 입지.

손님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자리 잡는다.

"늦었어. 우리가 이미 단골 다 확보했는데."

"그렇죠……."

"자리도 잡을 만큼 잡았고. 이제 와서 출혈 경쟁으로 승부를 보겠다? 우습지."

"맞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점마다 어울리는 상권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점은 임대비가 낮고, 교통망이 좋은 곳.

카페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치는 번화가.

이자카야도 걸맞은 위치를 찾아야 한다.

시간도, 돈도 엄청나게 허비되는 일이다.

'그런 거에 돈 쓸 필요가 어딨어. 자리 잡은 곳에 같이 둥지 틀면 되는 거지.'

따라하는 것으로 인건비를 아꼈다.

뒤늦게 대응에 나선 모양이지만 한참은 늦었다.

자신들도 행동에 나설 것이다.

서로 출혈 경쟁을 펼치면 승자는 정해져 있다.

"똑같이 세일하면 우리가 당연히 이기지."

"암요, 사장님 말이 맞죠."

"당장 가서 세일하라 그래! 그 새끼들 문 닫을 때까지!"

헤일즈푸드는 맞불을 놓았지만.

* * *

무한 리필.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꿀꺽! 꿀꺽!

남자 손님이 하이볼을 시원하게 들이킨다.

아주 원샷을 하고 있다.

"저 손님 엄청 마시네요."

"그러게."

"하이볼만으로 완전 본전 뽑을 기센데."

소라의 걱정.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흑역사가 있다.

무한 리필을 해줬다가 업체가 된통 당했던 일들이.

─양파 거지가 한 마디 드리지요

코스트코 양파가 왜 공짜이겠습니까?

자기들 입장에서 충분히 이익이 되기 때문이지요

저만 해도 한 번 갈 때마다 20만 원씩 사갑니다

양파를 좀 넉넉히 가져와서 냉동실에 넣어 놓고

볶음밥이던지, 된장찌개에 두어번 넣습니다

우리집은 늘 이렇게 싸들고 집에 옵니다

코스트코 글 쓰신분, 댁의 입장에선 이게 거지입니까?

네?!

돈을 코스트코에 그리 써대는데 그조차도 대우 못 받습니까!

코스트코 양파 거지., 버거킹 콜라 거지, 이케아 연필 거지 등.

기상천외한 사태들이 일어났다.

'옛날에는 뷔페 가면 락앤락 통 들고 오는 아줌마들 흔했거든.'

물론 지금은 달라졌다.

그럼에도 무한 리필이라는 건 기업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된다.

꿀꺽! 꿀꺽!

아무리 원가를 낮춰도 말이다.

저렇게 물처럼 마셔대면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너 앉은 자리에서 소주 3병은 비운다며?"

"아니, 그냥……."

"그냥 뭐?"

"술만 먹긴 좀 그래서 그렇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주량 자랑을 하던 남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안주를 집어먹는다.

풍덩!

그 이유.

하이볼의 레시피 때문이다.

생 레몬이 아닌, 설탕과 구연산에 절인 것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모르지.'

얼음과 함께 서서히 녹는다.

시간이 지나도 하이볼의 농도가 연해지지 않는다.

"신선도 관리를 안 해도 되니 원가 절감도 되죠."

"오셨습니까?"

"상상 이상으로 잘해주었어요. 앞면에서도 뒷면에서도."

생각만큼 많이 마실 수가 없다.

알코올 빠진 하이볼은 설탕물이나 다름없으니까.

사케는 반쯤 얼리는 편법을 썼다.

싸구려 술은 차게 먹으면 맛을 숨길 수 있다.

'뒷면도 말이지.'

대표도 알고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아니, 내가 먼저 말할 줄은 몰랐겠지.

"무한 리필이라니 너무 과격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 유도리 있게 하는 거잖아요?"

"허허허, 그렇죠."

무한 리필.

술이 얼마나 소비가 되었는지 정확하게 집계할 수 없다.

'세금을 덜 내도 모른다는 거지.'

일명 '병갈이'라고 부른다.

가정용으로 산 술을 업소에서 몰래 파는 것이다.

매출과 재고가 안 맞으면 들킬 수 있는 일.

무한 리필의 특성상 확률이 낮다.

"바에서는 그렇게 쌍욕을 해놓고……."

"이쪽의 아가씨는?"

"제 좆집입니다."

"뒤질래 진짜?"

소라로서는 얼척이 없을 수 있다.

얼마 전 갔던 바도 불법 영업이었으니까.

'중급 닌자시험 몰라?'

안 들키면 범죄가 아니다.

걔네들은 들켰고, 나는 들키지 않았다.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아, 좆집이라면 괜찮겠죠."

"미친놈들아."

장사라는 게 원래 그렇다.

불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들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이 BM을 짜는 것 자체가 실력인 거야.'

비즈니스 모델 (business model).

투자 자문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어느 정도의 일을 해줬는지 기업가라면 더 잘 알 것이다.

"도쿄포차도 무한 리필을 따라하나 보네요."

"자멸 버튼을 누른 거나 다름없죠."

"설마 이거까지 계산을?"

"네."

그만한 기량은 있다.

상대 업체는 안타깝게도 없는 모양이다.

'안 그래도 싸게 파는 가게가.'

출혈 서비스를 한다?

재정이 버틸 수가 없다.

요즘 같은 인플레 시기에는 더더욱.

지난 몇 년간 연준이 돈을 푼 부작용이다.

금리까지 올리는 바람에 사업 하기 안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인건비도 엄청나게 올랐죠."

"저희도 큰 부담입니다."

"엄살은요. 프리미엄 매장인데."

"허허허!"

고토리자케.

애초에 비싼 메뉴를 판다.

거기에는 '분위기값'이 포함돼있다.

'초기 비용은 가게 만들 때 다 지출했고.'

영업이익률이 높다.

물가가 올라도 버틸 만하다.

당장 음식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에 반해 도쿄포차.

상대적으로 싼 음식을 판다.

당장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운영이 힘들다.

"도쿄포차도 무한 리필하네!"

"안돼, 가지 마."

"왜?"

"은근슬쩍 1000원씩 올렸더라. 그러면 고토리자케 가지."

가격을 올린다.

그럴수록 손님은 더 줄어든다.

박리다매 가게에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재고가 엄청나게 쌓이고, 다음 재고의 납품가도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자영업은 잘되는 것 같은 가게도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는 하지.'

그것을 인위적으로 일으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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