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8
진짜 경영
퇴근길.
"후우……."
고된 일과를 마쳤다.
30대 후반 회사원 유상호는 긴 한숨을 내뱉는다.
남은 것은 집에 가는 것뿐.
내일은 주말이니 오랜만에 푹 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구석이 불편하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셔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한숨을 셔."
"아니, 그냥……. 운도 지지리도 없다 싶어서."
그 이유.
동기인 은태도 알고 있다.
자신도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이자가 너무 많기는 해.'
한 달에 30만 원씩 나가던 게 6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나마 자신은 전세.
상호 녀석은 풀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이자만 100만 원을 넘게 낸다고 들었다.
"진짜 작년 초까지만 해도 이 반도 안됐다고."
"반이 뭐냐. 나도 10만 원밖에 안 냈어."
"내가 사자마자 오르는 게 말이 돼?!"
월급은 300만 원 남짓.
남은 200만 원으로는 입에 풀칠 하는 것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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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님이 로그인 하셨습니다.
대출: 퍼가요~♡
식비: 퍼가요~♡
관리비: 퍼가요~♡
교통비: 퍼가요~♡
보험료: 퍼가요~♡
월급님이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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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50만 원 넣는 적금을 해지하고도 겨우 버틸 지경이다.
역정을 낼 만도 한 일.
"어쩌겠어. 미연준이 지랄염병을 한다는데."
"그걸 왜 지금 하냐고!"
"우리 같은 서민들이 뭐 힘이 있냐? 됐고! 오늘은 형이 쏠 테니까 한 잔 적시러 가자."
"그럴까?"
그런 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정도 뿐이니까.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이 한 턱 내는 거지.'
물론 자신이라고 여유가 넘치는 건 아니다.
똑같은 월급 받는 월급쟁이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맛난 걸 먹을 수 있다.
음식점을 찾고 있는 은태의 눈에.
『고토리자케』
『도쿄포차』
이자카야가 눈에 띈다.
은태가 가장 좋아하는 술집으로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은 다녔다.
'일본놈들이 술은 잘 만들어.'
사케는 한 모금 머금기만 해도 환상적이다.
소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목넘김.
하이볼은 달달하고 향긋해서 꿀떡꿀떡 넘어간다.
맥주와는 다른 풍미가 있다.
"이자카야 갈까?"
"됐어! 무슨 이자카야야."
"왜? 맛있잖아."
"그냥 냉삼이나 먹지 뭘……."
상호도 좋아한다.
같이 갔기 때문에, 닦달을 한 게 상호이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
'쪽발이 새끼들이 비싸게 팔아 가지고.'
안주값도 다른 음식점보다 비싸다.
술값까지 따로 쓰니 지갑이 남아나지 않는다.
꿀꺽!
이전에 갔던 곳은 고토리자케.
비싸긴 하지만 비싼 값을 하는 음식을 만들어준다.
주머니 사정이 열악하다.
상대적으로 싼 도쿄포차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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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진토닉/사케 무한 리필!
첫 잔 드시면 다음 잔부터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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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간판이 보인다.
그것도 저렴한 도쿄포차가 아닌, 고토리자케에 내걸린 것이었다.
"야, 저거 봐봐! 무한 리필이래!"
"그래, 무한 리필집이나 가자."
"아니, 술이 무한이라고!"
술이 복사가 된다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자카야는 술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안주값만 내는 거면 살 만하지.'
때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만큼.
술값을 아낄 수 있다면 비싼 안주값을 지불할 만하다.
"이랏샤이마세!"
당당한 걸음걸이로 들어간다.
마치 일본이라도 온 것처럼 일본 인사말을 건네온다.
'여기가 진짜 분위기도 좋고 맛도 있는데.'
그놈의 가격.
음식이 너무 비싸다.
술값까지 더하면 허리가 휘청인다.
하지만 무한 리필이다.
음식은 적당한 거 하나 시키고, 술은 원 없이 마시려고 했더니.
『메뉴판』
<このわた/고노와다>
도미 고노와다 28.0
광어 고노와다 25.0
멍게 고노와다 25.0
모듬 고노와다 40.0
<刺身/사시미>
특 사시미 70.0
모듬 사시미 45.0
사시미 산텐모리 30.0
<たたき/타다끼>
참치 타다끼 20.0
연어 타다끼 20.0
소고기 타다끼 23.0
·
·
·
펼친 메뉴판.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가격이 쓰여진 방식이 말이다.
'25.0은 2만 5천 원이란 뜻인가?'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은태는 바로 가성비 좋은 메뉴를 찾는다.
국물 음식.
그리고 사이드 하나 시키면 술이 술술 넘어갈 것이다.
"아니, 무슨 오뎅탕이 2만 원이야!"
"여기가 원래 좀 비싸."
"그렇긴 한데……, 그럴 거면 사시미를 시키던가 모듬 꼬치를 시키던가 하지."
가격이 조금 비싸다.
무엇보다 평소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기왕 맛있는 음식집에 온 거.'
본격적인 일식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은 기분.
"사시미 산텐모리랑, 모듬 꼬치 시간 차로 주세요."
"주문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이볼이랑 사케."
"하이볼 하나, 사케 하나 주문 받았습니다~."
"술은……, 무한 리필인 거 맞죠?"
"네! 안주 메뉴 시키신 분에 한해 무한 리필 서비스 드리고 있습니다."
술값으로 돈을 아꼈으니 말이다.
15분 정도 기다리자 메뉴가 도착한다.
사시미 산텐모리.
일종의 모듬회로 각각의 사시미가 세 점씩 올라간다.
모듬 꼬치는 흔히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외관도, 맛도 훨씬 본격적이다.
"저기 앞집이랑 비교가 안되네~!"
"당연하지."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술을 부르는 음식들이다.
술값이 비싸다면 이렇게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할 것이다.
꿀꺽! 꿀꺽!
그럴 염려가 없다.
무한 리필.
하이볼이 목구멍을 타고 술렁술렁 넘어간다.
우적!
회 한 조각.
우물우물 씹자 천국이 따로 없다.
무한히 반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야, 회는 사케랑 먹어야지."
"나 사케 아닌데?"
"바꿔 먹으면 되지."
"그래도 되나?"
"안될 게 어딨어~ 들키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하면 거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해온다.
상호가 마시고 있는 사케.
꿀꺽!
반드시 어울릴 것이다.
회 한 점에 사케 한 모금을 넘기면 말이다.
가게 내부 규정에는 어긋날 수 있다.
흘끗 하고 점원 눈치를 보자.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나 하나쯤이야!
시키지 않은 메뉴를 먹는 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점원도 딱히 신경을 안 쓴다.
죄책감을 억누르고 넘긴 사케의 맛은.
"쥑인다."
"나도 하이볼 마신다?"
"이건 꼬치랑 잘 어울릴 걸?"
"그러겠네!"
살얼음이 둥둥 떠있다.
6월 초여름의 짜증 나는 습기를 싹 날려버리는 기분이다.
'젊은 애들 오는 곳이라 물도 좋고.'
점원 눈치를 보던 중 찾았다.
창가 쪽 좌석에 여대생 무리가 앉아있다.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
젊음의 활기가 느껴진다.
강남 아니랄까 봐 수준이 매우 높다.
그중에서 한 명은 연예인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가장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싶어진다.
"10년만 젊었으면."
"와이프는?"
"마누라만 잠깐 없었으면."
"야 나두."
같은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음식도, 술도 계속해서 들어간다.
'진짜네.'
그 광경.
소라는 친구들과 음식을 먹고 있다.
선배가 컨설팅을 하는 이자카야에서 말이다.
"진짜 공짜야?"
"나 지갑 안 들고 왔는데……."
"공짜니까 마음껏 먹어."
""아싸!!""
그것이 자신의 일.
공짜 음식에 신난 친구들과 달리 소라는 선배의 목적을 알고 있다.
'남자 손님 꼬실라고 하는 거겠지.'
힐끗힐끗 쳐다보는 40대 아저씨들처럼 말이다.
그 외에도 많다.
창가 자리.
이쪽에 앉게 한 이유부터가 지나가는 손님들을 호객하기 위함이겠지.
"여기는 근데 하이볼을 무한 리필 해주네?"
"공짜 아니어도 올 것 같애!"
"그러게."
술도 말이다.
이자카야에 오는 목적.
선배의 말대로 하이볼에 있는 경우가 많다.
'술을 무한으로 리필해주니.'
가성비 손님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할 만하다.
하지만 그만큼 손해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면 너무 출혈 장사가 되는데…….>
점원 대리씨도 반대를 했다.
그럼에도 선배가 밀어붙였고, 본사에서 지침이 떨어지며 강행됐다.
실제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가게 내부가 어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붐비고 있지만.
"너무 맛있다 하이볼! 한 잔 더 시켜야지~."
"근데 이렇게 시키면 장사 남나?"
"내 말이."
이것으로 정말 가게를 살릴 수 있을지.
소라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 * *
컨설팅.
"……까지는 알겠는데요."
"너도 생각은 있구나."
"우씨!"
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한 건 별 거 없다.
하루만에도 가능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어찌 보면 작은 것들.
그 하나하나가 합쳐지며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게 바로 경제다.
그리고 시장 상권도 경제다.
이 조그마한 규모도 흔들지 못하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여기 꼬치 추가요! 하이볼, 사케 리필도 해주세요!"
소라를 흘끌흘끗 보는 40대 아저씨들.
아니나 다를까 안주를 추가하게 된다.
"제가 호객한 덕분 맞죠?"
"그것도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
예쁜 여자 앞에서 돈 아끼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남자라는 생물이다.
'그래서 세워둔 거기도 하고.'
하지만 프랜차이즈다.
강남점 말고도 다수의 지점이 존재한다.
그 모든 곳에 색녀를 고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악!
메뉴판을 펼친다.
25,000원이라는 표기 대신 25.0이라는 애매한 숫자가 가격을 짐작케한다.
"이런 식의 표기를 하는 가게 저도 봤는데 왜 이러는 거에요?"
"인간의 뇌."
"?"
"판단력을 흐려지게 만들거든."
온라인 게임에서도 흔하다.
굳이 크리스탈이나 토큰 같은 걸 먼저 사게 한다.
'단위가 작으면 돈을 쓰는 감각이 흐려져서.'
10만 원은 커보이지만 100달러는 괜찮은 것 같은 착시 효과.
화폐 단위가 작으면 생기게 된다.
그 외에도 많다.
가게 인사를 일본어로 하게 한 것도,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것도 전부 이어진다.
"여행지에서 돈을 더 쓰게 되는 것처럼요?"
"그래."
"오뎅탕 가격 올려서 다른 음식 사게 한 것도……."
"그것도."
"와, 하루만에 다섯 가지나 되는 전략을 준비하다니 허세는 아니었네요."
소라가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본다.
일류 사모펀드 매니저가 진심을 낸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일 테니까.
'다섯 가지? 농담도 잘하네.'
모든 것이 다 전략이다.
이곳 상권을 뿌리 채 흔들.
처음부터 목적은 단 하나뿐이었다.
창 밖으로 경쟁 점포가 보인다.
우리에게 손님을 뺏겼어도 그럭저럭 장사가 되고 있지만.
"너 PPI랑 CPI가 뭔지 아냐?"
"그런 건 선배보다 잘 알 걸요."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방법은 모르겠지."
"?"
체크메이트는 이미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