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16화 (216/450)

EP.216

투자 자문사

Bar.

"저 손님? 영업 방해하러 온 거면 나가주시죠?"

세간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훤칠하게 생긴 바텐더가 손님을 협박하고 있다.

'이마에 #가 표시가 보이는 것 같네.'

화가 많이 나보인다.

아무래도 평소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모양이다.

"갑자기 무슨 미친 소리에요!"

"내가?"

"그럼 너지 시발아."

소라도 화가 많아 보인다.

요즘도 방구석에서 컵라면이나 까먹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바텐더도 놀라네.'

맛있어 보이는 애가 욕을 하니 놀랄 만도 하다.

소라도 진실만을 말하는 화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남자친구분이 많이 취하셨나 본데 빨리 데리고 나가주세요."

원래라면 좀 더 험하게 쫓아냈을 것이다.

여자 앞이라고 꼴에 폼을 잡고 있다.

'더러운 일 하는 놈들이.'

슈트 좀 쫙 빼입었다고 건실한 자영업자인 줄 안다.

현실 파악을 시켜줘야 할 모양이다.

"글렌리벳 13년."

"네?"

"올드 포레스터 1920, 사마롤리 보모어, 포스퀘어 1998, 에즈라 브룩스 15년, 가루이자와 15년."

"그, 그 술들은……."

"구하기 힘든 술이 참 많네요?"

""…….""

바텐더와 사장.

표정이 급격히 얼어붙는다.

내가 한 거라고는 술의 이름을 말한 것 뿐인데.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나 보지.'

내가 말한 술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태도가 위치에 걸맞게 참 공손해진다.

"정식 통관 안된 걸로 아는데 용케도 구하셨네요."

"일단 앉으시죠."

"혹시 사장님께서 기억이 안 나시는 거면 세관에서 일하는 제 친구한테 한 번 물어봐 드릴 수도 있는데."

"……손님 말로 하시죠. 말로."

한국 주세법.

음식점의 술은 주류 도매업자를 통해서만 구입해야 한다.

'근데 가격도 높고.'

종류까지 많지 않다.

레어하고 오래된 술은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공수해온다.

남대문 같은 곳을 가거나, 직접 수입을 하는 등.

"그래서 불법이라는 거지."

"그건 알겠는데."

"뭐?"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음."

주류 판매에는 주세 뿐 아니라 추가적인 세금이 부과된다.

괜히 음식점 소주가 5천 원씩 하는 게 아니다.

'세금이 얼마나 많겠어.'

그 세금을 떼먹으면?

고스란히 수익이 된다.

위스키는 특히 더 세금이 많은 주종이다.

종량세가 아닌 종가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원가가 비쌀수록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나가는 방식이다.

"외국에서 10만원짜리 술을 한국에 들여오면 25만 5천 원이 돼."

"엄청 붙나 보네요."

"업소용은 도매 마진이 추가로 붙고, 업장에서 소득세가 또 붙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데요?"

소라의 말대로다.

바 사장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저 세금만 안 내도 마진이 얼마인데!

'그것이 탈세로 이어지는 거고.'

국내 바의 90%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탈세를 하고 있다.

이곳은 그중에서도 심한 곳이다.

"위스키 보틀 판매도 하고 있잖아."

"그런가 보네요."

"그것도 일부는 탈세를 한 거겠지. 흔히 병갈이라고 하는데……."

딱 보면 보인다.

업계 관계자로서 촉이 온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아니나 다를까.

타악!

틀리지 않았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사장이 튤립 모양의 노징 글라스를 내려놓는다.

"……맥캘란 1997 25년입니다. 목소리 조금만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서비스.

입막음 비용이다.

바 내에는 소수지만 손님들이 있다.

'혹시 소문이라도 나면.'

세금을 한두 푼 물어야 하는 게 아니다.

업계의 관점에서 봐도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

한국 바의 주 수입원.

사실은 술과 음식 판매가 아니라 탈세에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어요."

"뭐가?"

"선배도 이상한 것 같고, 탈세 하는 바도 정상은 아닌 것 같고……."

그러한 현실.

소라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한 모양이다.

'이 정도의 임팩트는 있어야 기억에 남거든.'

이는 바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탈세를 부수입으로 활용한다.

현금으로 받는 것은 양반일 노릇.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산처럼 많다.

"그게 진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야."

"꼭 알아야 되는 거에요?"

"직시할 줄 알아야지."

요식업으로만 한정해도 말이다.

다른 업종의 것들은 아무래도 난이도가 있다.

'스타트로는 괜찮겠지.'

동전의 뒷면.

확실히 불편하다.

사람들이 편한 거짓말을 믿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투자자라면 눈길을 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거니까.

끼릭! 끼릭!

해당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투자에 반영해야 한다.

"하이볼 만드는 거죠?"

"보면 몰라?"

"우씨! 축제 때 만들던 거랑 달라서 그렇거든요."

바텐더가 하이볼을 만들어주고 있다.

축제 당시 손목이 빠져라 만들었던 그것이다.

'가볍게 마시기 좋지.'

첫 잔으로 안성맞춤.

초보자도 만들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칵테일이지만.

촤악~!

끼릭! 끼릭!

프로가 만들면 다르다.

목이 긴 글라스에 얼음을 넣어 칠링을 한다.

잔에 있던 얼음을 버린다.

새 얼음을 잔에 채우고 위스키를 붓는다.

"왜 아깝게 버리는 거에요?"

"일체감."

"?"

하이볼을 만드는 교과서적인 방법.

소라의 말대로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근데 다 이유가 있어.'

얼음으로 잔을 차갑게 식힌다.

위스키를 어느 곳으로 따라도 균일하게 온도가 식는다.

꼴꼴꼴~!

그 위에 탄산수를 붓는다.

얼음에서 녹은 물과 섞인 위스키가 탄산에 녹아든다.

마무리로 레몬 필.

레몬 껍질을 비틀어 짠 후 글라스 안에 가니쉬로 넣어준다.

"하이볼 나왔습니다."

"잘 먹을게요!"

"그쪽 분도 잘 드시죠."

"어딜 가도 굶지는 않는 타입이라."

눈칫밥도 주신다.

안주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비스로 넣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꿀꺽! 꿀꺽!

하이볼.

바로 한 모금 크게 들이킨다.

따끔하게 목을 자극하는 탄산감과 함께.

'이게 하이볼이지.'

위스키의 맛이 느껴진다.

레몬 필이 악센트를 더하며 술술 넘어간다.

"저도 축제 때 하이볼 많이 탔는데. 제가 탄 거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의미 없지 않았지?"

"네."

일체감.

단순히 섞은 것이 아닌 한 잔의 칵테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이볼이 아닌 하이볼이라는 이름의 칵테일.'

만화 바텐더의 명언처럼 말이다.

일반 업장에서는 이렇게 만들기 힘들다.

탄산수 대신 토닉워터를 타는 이유다.

어설픈 기술을 단맛으로 가리기 위해.

"그렇구나……."

"열화판도 원본을 알아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거야."

"알 것 같아요."

시장 조사는 FM으로 해야 한다.

원형을 알지 못하면 반푼이밖에 되지 않는다.

'요식업이라는 게.'

잘 나가는 음식.

베끼거나,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천종원씨가 해외 여행을 다니는 이유가 있다.

"진토닉 나왔습니다."

경험은 중요하다.

아다티를 솔솔 내고 다니면 하는 건 결국 섹스가 아니라 딸이다.

"와!"

"제철 과일인 복숭아를 사용했습니다. 과일은 칵테일 픽으로 드셔도 됩니다."

"저는 픽이 없는데요."

"깜빡했네요."

다음은 진토닉.

하이볼과 함께 가장 만들기 쉬운 칵테일의 쌍두마차를 달린다.

'그런 것도 프로가 만들면.'

그럴 듯하다.

와인잔처럼 넓은 잔 안에 예쁘게 썰은 복숭아가 담겨있다.

가니쉬 역할.

진토닉에 복숭아향을 더해주고, 안주 대신으로 집어 먹을 수도 있다.

"하몽과 멜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메이플스토리입니다."

"메이플스토리요?"

"네, 같은 이름의 망겜과는 다르게 달달하고 컨텐츠가 풍부하며 완성도가 높습니다."

"와~!"

본래의 레시피와 다르다.

규모 있는 바는 자신들만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추구한다.

'나쁘지 않아.'

가장 전통스러운 칵테일.

올드 패션드의 IBA 버전을 어레인지했을 것이다.

술이 들어갔다.

안주도 나왔다.

조금 독해도 잘 만든 칵테일이라면.

"전 법사였어요."

"난 해적."

"어쩐지 범죄를 잘 저지를 것 같더니~."

"도적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라."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어느새 볼이 빨개진 소라가 헬렐레 떠든다.

쪼옥!

나도 안주를 한입 먹는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내 여자야.'

바텐더.

여자 꼬시기 좋은 직종이다.

아까부터 자꾸 치근덕거리는 이유일 것이다.

원한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섹스 머신 같은 여자에게 사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남자가 아니다.

"뭐에요 갑자기."

"오빠 마음이지."

"그럼 저도 제 마음대로 해버려도 되는 거죠?"

과시하기 위함.

소라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여기가 어떤 장소인지 잊어버린 건지.

쪽! 쪽! 쪼옥♡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그대로 격한 키스를 해온다.

좁은 바 안.

타액과 혀가 움직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진다.

'정기를 뽑아 먹을 기세네.'

아주 색녀가 다 되었다.

처녀의 키스라는 사실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저 손님……."

시끄럽던 바텐더도 허리를 굽히고 있다.

손님들도 술잔을 멈추고 이쪽을 구경한다.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서지 않을 나이인 사장님만이 조용히 와서 말려온다.

"차에 가서 할까?"

"그럴래요?"

"대리 좀 불러주세요. 빨리."

마실 만큼 마시기도 했다.

소라와 팔짱을 끼고 바턴더에게 카드를 건넨다.

아까와 달리 얼굴을 펴지 못한다.

니 따위 게 꼬실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선배 오늘 너무 좋았어요."

"그래?"

"저 따먹고 싶어서 데리고 온 거죠?"

나도 아직 못 먹었지만.

취한 소라가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부비 해온다.

'자고 일어나니 처녀막이 사라져 있는 마술을 보여줘야 되나.'

소라를 데려온 이유.

겨우 칵테일 한 잔 먹이기 위함이 아니다.

기업이 굴러가는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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