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14화 (214/450)

EP.214

투자 자문사

처음부터 눈독을 들인 건 아니었다.

"손익좌로서도 활동을 하고 있고."

"또?"

"주점 메뉴도 그가 독점적으로 고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능한 인재.

그리고 이슈화.

사실 진짜 목적은 후자다.

'아니, 학생이.'

그래봤자 결국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이 기반으로 깔려있다.

교이쿠상에게 망신을 준 건 대단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그랬으니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능력이나 경력보다 앞설 만큼.

"출처는?"

"해당 동아리의 학생들을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조사는 아니니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만……."

"충분해."

연공제 문화가 뿌리 깊이 내려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손익좌라면 그럴 만하지.'

그런 화선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손익좌.

최근 증권 업계에서 떠오르는 신성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어린 놈이 알면 얼마나 아나 싶었는데.

"진행시켜."

"졸업 후에 정규직 직원을 조건으로 걸어볼까요?"

"아니, 정식으로 의뢰해."

"네?"

목 마른 자가 우물을 찾기 마련이다.

화선은 그가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 안다.

회사 사장.

그 이전에 사생활도 있다.

마누라 몰래 굴리는 자금이 있다.

'내가 그때 오성전자를 털어서 망정이지.'

큰 손해를 볼 뻔했다.

회사 사장으로서 고급 정보망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회사 소속의 증권팀.

그들이 전혀 감지하지 못하던 것을 손익좌는 알고 있었다.

<오성전자는 지배구조상 올라갈 수가 없어요.>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한 기업의 CEO로서 공감 가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최우선 보고사항으로 우선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해보겠습니다."

기업 구조.

확실히 문제가 있다.

자신 같아도 오성전자 주가를 올리기 싫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매도했다.

덕분에 피 같은 비상금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 손익좌라니.'

생각이 진지해질 만도 한 일.

돈이 움직이는 일에 자존심을 개입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일개 학생이 아니다.

그 이상이 능력과 포텐셜을 갖추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선은 비서를 통해 그와의 접선을 시도한다.

* * *

기업.

확실히 옛날에는 미개했다.

<이건 뭐가 잘못된 거 아니야?>

<코스피 지수가 벌써 반등한다는 게 말이 돼? 어?!>

<뉴욕 한복판에서 테러로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어. 근데 왜, 왜, 왜!!>

TV에서 나오는 배우처럼.

회사 사장이 못 배워 먹은 놈들 처지였다.

'겨우 3천 명밖에 안 죽었으니까 그렇지. 대가리가 딸리나?'

일반인들에게는 많아 보일 수 있다.

저렇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를 만도 하다.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1년 자살자만 1만 명이 훌쩍 넘어간다.

9·11테러보다 더 지옥 같다.

그럼에도 별일이 안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소규모 전쟁은 매수 기회로 보는 것이 통계적으로도 증명이 돼있는데.'

세상을 감정적으로 보니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관점이 다르다.

투자 기회.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업 가치는 변하지 않았는데 주가만 떨어진 셈이니까.

"무슨 얘기하고 있었죠?"

<주변이 시끄러운가요? 제 말이 전달이 잘 안된 모양입니다?>

"드라마가 재밌는 부분이라."

<드라마라니…….>

통화 중에.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지 모르고 있다.

'저 사장 같은 바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거든.'

대표적으로 조선사가 있다.

우리나라 조선 사업이 망한 이유는 단순히 업황이 안 좋아져서가 아니다.

한국신문− 「조선 노동자 2만명 떠난 통영, ‘KIKO 상처’ 그대로」

파생상품.

조선사는 환율이 하락하면 손해를 본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KIKO라는 환헷지 상품에 가입했다.

'대충 환율이 900~1050원 사이면 이득, 900원 밑이면 계약 무효, 1050원 이상이면 손해를 입는 내용이었던가?'

평상시에는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환율이 1500원까지 급등하며 조선사들은 뿌리가 흔들렸다.

<졸업 후 저희 헤일즈푸드에 들어오시면 바로 대리급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아~ 대리요?"

<네, 보통은 5년 정도 현장에서 뛰어야 달 수 있는 직책입니다.>

"대리는 술 먹고 부르는 것밖에 모르는데."

<하하, 농담도 참…….>

중형 조선사들은 떼몰살.

대형 조선사는 간신히 버텼지만, 향후 주가가 1/20 토막이 나버린다.

시가 총액만 수백 조가 증발했다.

당시 반도체와 함께 국가 기반 산업이었던 조선이 말이다.

'그 이후로 CEO들이 정신을 차리게 된 거지.'

금융이 엄청나게 중요하구나!

은행 말만 믿고 파생상품 잘못 샀다가는 회사가 작살 나겠구나.

<미연준의 금리 인하로 시장의 유동성이 증가한 탓이 큽니다.>

<지금 같은 상승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입니다!>

TV 속 비서가 하는 변명.

잠자코 들어줄 정도로 요즘 회사의 CEO들은 무능하지 않다.

'자체적인 증권팀 정도는 만드니까.'

증시의 전체 흐름을 예상하는 건 확실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역을 좁힌다면?

회사의 사업 분야로 한정한다.

현업이기 때문에 업계 정보가 빠르게 들어온다.

그것을 토대로 대응하는 부서.

손해를 최소화하거나 도리어 이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직도 드라마 보시네요?>

"네."

<네가 아니고…….>

"드라마가 너무 재밌어서 전화 좀 끊을게요."

<네, 네? 자, 잠깐!>

그것이 현대의 기업이다.

물로켓을 쏘아 올리던 드라마 속 2000년대 초와는 다르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맛있는 TV가 방영된 이후.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기업측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그것 자체는 좋다.

내가 원하던 일이니까.

문제는 제대로 된 제안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물로켓을 쏘아 올리던 시대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거지.'

그럴 만하다.

요식업의 규모는 크지 않다.

가장 큰 회사도 국내 대기업에 비빌 정도는 안된다.

자체적인 증권팀.

둔다고 해도 소규모일 것이다.

대우도 일반 직장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겠지.

위이잉~!

대기업에서 제안이 와야 한다.

가치를 알고 있는 자만이 적절한 대우를 해준다.

그것이 불가능해서 문제.

아직 내가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찬욱씨 되시죠?>

"아, 네."

<실례했습니다. 요식업 전문 기업 푸드마켓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찬욱씨를 꼭 만나뵙고 싶어하십니다.>

또다시 걸려온 전화.

퉁명하게 대꾸했음에도 어조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온다.

지금까지는 상전 같은 인간들 뿐이었다.

선심 써서 일자리를 준다는 듯 말을 한다.

<저희 측의 착각이라면 죄송한데, 인터넷상에서 손익좌님과 동일인이시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근데요?"

<저희 대표님이 애청을 하시고 계십니다. 업계 사정까지 알고 있다면 말이 잘 통할 것 같다고…….>

조금은 다른 모양이다.

최소한 대화를 할 태도는 되었다는 게 느껴진다.

* * *

푸드마켓.

다수의 요식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기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그 대표를 만나러 왔다.

40대 후반의 아저씨로 머리는 아직 안 벗겨졌다.

하지만 곧 벗겨질지도 모른다.

최근 하고 있는 사업이 난관을 맞이했다.

"사업 확장을 무리하게 했다?"

"부끄럽게도……. 아니, 이 정도로 가파르게 경기 침체가 올 줄 몰랐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보통 사업 구상은 경제 활황기에 준비한다.

잘 팔릴 것 같으니 판을 벌리는 것이다.

막상 그것이 준비되었을 때.

'아다리가 안 맞는 경우가 많지.'

백화선씨의 사업도 그러했다.

사람들의 소비 수준이 올라가고, 미식에 관심도 많아졌다.

프리미엄 프랜차이즈를 오픈하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고 고급 이자카야를 열었는데.

"초기에는 반응이 좋았는데 말이죠."

"요즘은 사람들이 지갑을 잠그는 추세니까요."

"아, 말씀대로 입니다! 역시 선생님은 알고 계셨네요!"

그 중요한 시기에 코스피가 처박고 있다.

주가는 실물 경기를 선행한다.

앞으로는 더 안 좋아지겠네?

기업 CEO로서 위기 의식이 안 들 수가 없다.

"저희 직원도 선생님의 주점을 가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자카야의 컨설팅을 부탁드리고, 재무가 안 좋은 부실 지점도 솎아 내주셨으면 합니다."

"쉬운 일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올해 경기를 반영해서."

그것을 신경 쓰는 것 보면 기본기는 되어있다.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바보 같은 사장은 아니다.

'목적도 확실히 있는 것 같고.'

나에게 원하는 것.

아마 전자가 아닌 후자다.

컨설팅도, 지점 조사도 충분히 할 수 있겠지.

그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다.

굳이 나에게 의뢰를 할 만큼 손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올해 경기요?"

"네……. 손익좌님의 명성을 익히 들었거든요."

"그러면 지금 일 벌린 거 다 접으셔야 할 텐데."

"네?!"

손익좌.

내가 출연하는 방송을 찾아볼 정도의 팬이라고 한다.

봄이 방송에 출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 자문은 신뢰가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이는 내가 업계에서 이름을 날릴수록 커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저한테 맡기시면 전부 해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부실 지점도 정리할 필요 없고요."

"어……,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못 믿겠다?"

"네?"

그 첫 번째 손님.

조금 서비스를 해줘도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요식업은 자신이 전문가다.

아무리 대학 주점을 성공시켰다고 해도 아마추어로 보일 테지만.

"절 못 믿은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시죠?"

"아……, 그렇죠. 몇 번이나 봤으니까요."

"대표님도 그렇게 되실래요?"

"……."

그것은 지금의 이미지다.

이곳을 시작으로 하여 모든 것을 바꾸어나간다.

'여차하면 다른 곳에서 해도 상관없고.'

어차피 시간은 많다.

아까 말한 건 과장이 아니다.

죽는 소리 하는 기업은 날로 많아질 것이다.

신중한 표정.

두 손으로 깍지를 꽉 쥔 채 고민하고 있다.

복잡하게 갈 것 없는 이야기다.

"대표님께서 결정할 건 단 하나입니다."

"네, 어떤……."

"절 믿냐. 믿지 않냐. 그것만 말해주면 돼요."

간단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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