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07화 (207/450)

EP.207

주문은 봄이입니까?

만족스러운 촬영.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무지한 인간들은 꼭 보여줘야만 믿는단 말이야.'

자신의 능력을 시기하는 연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인터넷에 숨어서.

자신의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키보드만 들면 아주 미식가다.

『맛있는TV 9화』

그것도 이제 끝.

작년 한국대 축제에서 일어난 사소한 트러블을 깔끔하게 정리할 순간이다.

<이 진한 맛은……, 세아부라를 썼군요.>

<그리고 간장……, 일본 간장을 쓴 건가요?>

TV에서 방송이 나온다.

자신에게 빅엿을 선사했던 그 녀석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자신의 날카로운 지적에 얼어붙은 것이다.

'이러니까 신의 혀지.'

작정하고 맛을 본다면?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났다고 한 장금이처럼 모든 맛을 꿰뚫어볼 수 있다.

발가벗고 서있는 기분일 테다.

자기 주제를 여실히 깨달았겠지.

더 이상 기고만장하지 못할 것이다.

<정진, 또 정진하도록.>

명언도 기가 막힌다.

그렇게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진하라고 하신 교이쿠 선생님…….>

<그런데!>

그 뒤가 있었다.

교이쿠상은 생각지 못한 자막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있었다고?'

방송 촬영 중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모르는 장면이란 것이다.

대체 어떤 서프라이즈인지.

화면을 확인한 교이쿠상의 표정이 굳어진다.

보글보글!

주방이었다.

라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과정을 공개한 것이다.

'설마.'

자신의 미각이 틀렸을 리 없다.

돈코츠 베이스의 세아부라계 라멘.

한국 최초 맛 칼럼니스트의 명예를 걸고 확신한다.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촤악─!

역시나 있었다.

몽글몽글하게 풀린 세아부라를 한 국자 떠서 라멘 그릇에 넣는다.

색깔이 약간 짙다.

그리고 노란 빛은 간장과 간 마늘의 흔적이 분명하다.

'그래, 맞잖아. 내가 어떤 사람인데.'

세세하게 엇나간 부분은 있을 수 있다.

일본 간장이 아니라 유사하게 따라 만든 한국 간장이라던지.

만약 그런 걸로 꼬투리를 잡는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엄근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교이쿠상의 눈에.

『뉴터치 돈코츠 라멘 소스 업소용』

보여서는 안될 것이 보인다.

일본어로 쓰여있지만 일본인인 교이쿠상의 눈에는 한눈에 읽힌다.

<저희가 대학 축제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스턴트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이쿠 선생님도 만족하실 만큼 맛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증오스러운 녀석의 얼굴도.

"칙쇼오오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조차 신의 혀로 다 밝혀주리라.

착각은 본질적인 것에 있었다.

〔시청자 게시판〕

─인스턴트 구별 못하는 게 전문가 맞나요?

─그냥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린 거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신라면 맛깔나게 끓입니다만

─이번 기회에 프로그램 폐지됐으면 좋겠네요

방송의 여파.

일어난 화제에 불이 옮겨 붙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린 거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탄한 게 아니라

어이가 없던 거였어~

└방송 나와서 맛 칭찬해주는데 예예 해야죠 뭐 ㅋ

└맛집의 정체가 인스턴트……

└전문가가 인스턴트도 구별 못해??

└하 참 이 프로그램을 믿고 봐도 되는 거지

맛있는 TV는 교이쿠상이 메인을 맡은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용은 미식.

시청자들은 그의 혀를 믿고 본다.

그 혀가 맛이 가있다면 신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도 신라면 맛깔나게 끓입니다만

교이쿠상이 칭찬해줄까요?

└네 가능합니다

└당신도 오늘부터 요리왕!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 고추를 갈았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으실 겁니다!

└인스턴트갘ㅋㅋㅋㅋㅋ 푹 끓인ㅋㅋㅋㅋㅋㅋ 돈코츸ㅋㅋㅋㅋㅋㅋㅋㅋ

비아냥하는 글이 올라온다.

시청자 게시판이 터질 만도 하다.

이해해줄 수 있는 수준의 실수가 아니다.

그리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교이쿠상은 이전부터 업보 스택을 차근차근 쌓아오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프로그램 폐지됐으면 좋겠네요

명색이 전문가라는 양반이

사전조사도 안 해서 맨날 틀리고

모든 음식의 기원이 일본이라고만 우기고

└저도 불편하더라고요

└교이쿠상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전문가인 줄 알죠 ㅋㅋ

└천종원이 발끝에도 못 따라가……

└전문가요? 좆문가겠죠

민감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낸다.

그마저도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다.

시청자들로서는 어이가 없을 만도 한 일.

인스턴트 사건이 도화선이 되려고 한다.

"그냥 터질 게 터진 거지."

"어차피 오래 못 갈 사람이었어."

방송팀 내부에서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다.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다.

신생 프로그램의 장기 편성 확률.

많아야 5%가 안되는 게 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천종원 선생님이 하는 프로그램들 봐봐. 다 시청률이 하늘을 뚫는데."

"뭐가 라이벌이야. 지만 라이벌이라 생각하지."

희망을 가졌다.

최근 먹방과 쿡방은 방송가의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천종원은 바쁘다.

돈 이전에 섭외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꿩 대신 닭.

평타라도 쳐주면 괜찮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건데.

'이 새끼는 방송인이 이미지 관리도 모르나.'

OBS 방송국의 PD 김연철.

작년 나락에 떨어졌던 교이쿠를 구제해준 장본인이다.

그런 그조차 더 이상 실드를 쳐줄 수 없다.

아니, 슬슬 손절을 할 때가 되었다.

"PD님 이거 큰일 난 거 아니에요?"

"뭐."

"시청자 게시판이 완전 터져 가지고……. 선생님 안 그래도 여론 안 좋은데."

"그러니까 내보낸 거지."

"네?"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다.

교이쿠상의 여론은 흉흉하지 않은 곳이 없다.

'어떻게 된 게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촬영팀 내에서도 썩창.

편집팀도 이번 기획을 아주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이 나서 최대한 맥이는 영상을 제작했다.

이는 방송사 내부 문제만이 아니다.

〔커뮤니티 반응〕

─맛서인 결국 터졌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이쿠상<<대표적인 물로켓의 예

─교이쿠상 페북 ㄹ황.jpg

─???: 인스턴트라는 게 사실 일본에서 온 거거든요

커뮤니티에선 원래 안 좋았다.

젊은 시청자들은 그를 코 큰 만화가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교이쿠상<<대표적인 물로켓의 예

90년대에

아무도 맛 칼럼니스트 같은 거 안 할 때 혼자 시작함

업계 최초라고 하니 ㅎㄷㄷ 빨아줌

방송 출연시켜 보니 아는 거 하나도 없음

미각도 신의 혀인지 병신의 혀인지 구분 안됨

└물로켓 찌익~!

└아 라떼는 50m만 쏴도 우승했다고 ㅋㅋ

└저거 웃긴 게 푸드 칼럼니스트는 원래 있었는데 지 혼자 맛 칼럼니스트라고 자칭하고 다닌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

└맛을 모르는 미식가라니 이거 귀하군요……

물론 방송 업계에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아무리 비호감이라도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노년층에게 인기가 많은 케이스.

TV의 주시청자층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너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잖아.'

방송사에서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괜히 자신들까지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다.

적당한 계기로 쳐내는 게 최선.

방송사 때문이 아닌 교이쿠상 개인 잘못으로 돌린다.

"뭐, 뭐라고요?"

<자네와의 고문 계약을 오늘부로 종료하겠네.>

그리고 이는 방송 하나 잘린 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업계에서 신뢰를 잃는다.

'고문 계약은 왜!'

교이쿠상의 주수입.

방송이 아닌 자문쪽이다.

기업과 프로그램에 음식 지식을 조언해준다.

방송 출연이 전문가라는 명함을 만들어준 덕분이다.

높은 사람들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제가 지금까지 한 일이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통보를 하시면……."

<위약금은 내주지. 대신 어디 가서 우리 회사의 자문을 맡았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주게.>

"잠깐만요 사장님!"

신뢰가 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일이다.

인스턴트 사건은 그것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

하루아침에 실업자.

아니, 쌓아왔던 모든 경력이 제로가 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할 처지가 돼버린다.

─교이쿠상도 병신이지만 인스턴트 라멘집도 대박이네

[한국대 이자카야 SNS 반응.jpg]

맛집이라고 소문 났었는데

코건 인스턴트 라멘이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유튜버들 호평하던데 ㅅㅂㅋㅋ

└양심 터진 거 아니냐?

└대학생들한테 수준을 바라면 안되긴 하지만……

└대학 축제라 망정이지 음식점이었으면 선 넘는 거임

물론 손바닥은 마주치는 법이다.

이자카야에 대한 비판도 일부 일어나고 있다.

인스턴트.

손님들 입장에서 좋아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했다.

'인스턴트로 맛집 흉내를 냈다고?'

'그래도 교이쿠상이 우리 회사 고문까지 하던 사람인데…….'

'원가율을 대체 얼마나 뽑아낼 수 있는 거야.'

기업들.

돈만이 전부인 그들에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비춰지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 * *

3일간 진행된 대동제.

주점의 운영도, 방송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뭐, 방송이 나가면 난리가 날 테지만.'

그때는 이미 축제가 끝난 후다.

벌써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남은 몇 시간.

더 할 일도 없으니 먼저 귀가를 하려고 했는데.

"형님!!"

몰래 부스를 빠져나가기 직전.

갑자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해운대에서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니야.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바빠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흔우였다.

애정하는 후배로 학교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잘생겼다."

"아는 사람?"

"어떻게 저 오빠 따위랑."

"……."

재수 없는 녀석이다.

수현을 꼭 허벌로 만들어줄 것이다.

"니 여친 쩔더라."

"걔가 성격이 좀 드세긴 해요. 하하."

"그러게 고생했어."

이미 만들었을 수도 있고.

다시 화해를 하고 잘 지내는 모양이다.

'그래, 싸우면서 크는 거지.'

나의 존재가 두 사람의 사이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볼 일은 그게 끝이야?"

"형님 생각이 나서요. 지금이라도 시간 나시면 저희 부스 한 번 들려주십시오."

"에이, 귀찮게 뭘."

"꼭 오셔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흔우가 온 이유.

별거 아닌 것이었다.

그냥 예의상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유튜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흔우의 사회복지학과에 유튜버가 신입생으로 왔다고 한다.

워낙 바쁘다 보니 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다.

3일차에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다.

"저희 메이드 카페 하거든요. 귀엽다고 난리에요."

"그렇게 예뻐?"

"이쁜 건 모르겠고……, 엄청 귀엽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애들 중에서 최고로!"

"수현이가 서운하겠는데."

"수현이랑은 타입이 달라서 하하…….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것도 여자.

흔우가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괜찮다면 보러 갈 가치가 있다.

'돈 많은 오빠 좋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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