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204화 (204/450)

EP.204

동전의 뒷면

남대문.

애주가들에게는 남던이라는 명칭으로도 유명하다.

"남대문 던전의 약자지."

"던전이요?"

"웬 던전?"

"가보면 알게 될 거야."

소라와 혜리와 함께 찾아왔다.

술은, 특히 옛날 술은 직접 보고 고를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더 조심을 해야 하지만.'

괜히 던전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상가의 위치부터가 범상치 않은 자리 잡았다.

『대도종합지하수입상가』

북적이는 전통 시장.

마치 지하철 입구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통로가 있다.

처음 와보는 사람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체 왜 저런데 있는 거지?

"정말 던전 입구 같긴 하네요."

"사람도 별로 없고. 분위기도 으스스하고."

"양주 사는 사람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그래서 의아할 정도로 저기만 한산한 거지."

내부도 낡아있다.

비어있는 점포도 많다.

들어가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던전에서 가장 무서운 건 분위기가 아니지만.'

고작 그런 이유였다면 우스갯소리 정도일 것이다.

남대문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사랑스러운 형제들의 가족 같은 상회』

바로 몬스터.

들어가기가 무섭게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어온다.

"어맛!"

"여기 처음 오신 거 같은데 뭐 찾으시는 게 있나요?"

"저 처음인 건 맞는데……."

"제가 도와드리죠!"

처음이 아닌 게 없는 소라가 걸린다.

겉보기에는 친절한 인상을 가진 상인 같지만.

'그래서 많이들 속지.'

어?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네.

긴장을 푼 손님은 자신의 밑천을 전부 털어놓는다.

"저희가 술 찾으러 왔거든요."

"술이요?! 어떤 술 말씀이시죠~?"

"그게 그 산토리라고 하던데. 산토리."

"아~! 산토리! 요즘 그거 찾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네 흐흐."

정말로 처음.

술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도 않다.

두 가지가 파악된 이상 뜯어 먹힐 일만 남았다.

'덤탱이 씌우는 거야.'

용팔이의 주류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운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담아 이렇게 부른다.

남대문 던전의 세례라고.

"그래요?"

"저희 상점 오시면 싸게 드릴 수 있거든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오빠 싸게 주세요!"

굳이 맞을 필요는 없다.

소라와 혜리가 아주 보기 좋게 농락 당한다.

'워낙 예쁘기도 하고.'

사람의 악의에 노출된 적이 없을 것이다.

서비스를 받는 것이 일상.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간들이다.

"애미 뒤진 짓 그만하시고 꺼져 주세요."

"네?"

"선배 말이 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애미가 뒤져 가지고 하하!"

인간이 아니다.

몬스터 취급해야 한다.

앞면에서의 모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뒷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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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 다릅니다.

훔치면 되는데 왜 돈을 주고 사느냐는 식이죠.

범죄가 곧 생활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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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도는 그 짤방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는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기였다고요?"

"그래."

"싸게 준다고 해서 좋은 오빠인 줄 알았는데……."

"원래 던전에서도 그렇잖아. 순진한 놈이 본보기로 먼저 당하는 거."

"우씨!"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하다.

내가 괜히 부모님을 삭제시켜준 것이 아니다.

'가장 입구쪽에 자리 잡고 있는 상점이라.'

처음 오는 손님을 노린다.

살펴보고 있다가 만만하면 돈 뜯으러 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뉴비 사냥꾼.

이곳이 던전이라 불리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선배!"

"응?"

"찾았어요! 선배가 잔뜩 사왔던 술."

물론 던전에 있는 건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여행자들이 굳이 오는 이유가 있다.

'보물 상자.'

혹은 득템 찬스.

당연하게도 지하 상가에는 다른 상점들도 많다.

그중 하나를 둘러보고 있다.

소라가 무언가 발견한 듯 옷자락을 잡는다.

"안돼. 이건 오프 플레이버일 가능성이 커."

"그게 뭔데요?"

"안에 내용물이 변질됐다고."

"??"

보물상자가 쉽게 널려있을 리 없다.

그런 곳은 세상에 디아블○밖에 없다.

'상자깡 하는 게임.'

의심부터 해야 한다.

사실은 보물상자로 위장한 미믹일 수도 있다.

"봐봐. 술이 많이 증발 돼있잖아."

"어, 진짜네?"

"이렇게 많이 증발된 건 직사광선에 노출돼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그렇구나……."

올드 보틀.

오래된 술은 희소성을 지녔다.

그와 동시에 위험성도 함께 가진다.

'내용물이 맛이 가있는 경우가 많아서.'

양주를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특히 옛날 사람들은 더 그랬다.

와인 보관법이랑 헷갈리거나.

"이건요? 이건 별로 증발 안 됐어요."

"그것도 안돼."

"왜?"

"라벨이 많이 닳아있잖아. 눕혀서 보관했을 가능성이 있어."

양주는 눕혀두면 안된다.

높은 도수의 내용물이 코르크를 녹이며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뉴비 사냥꾼이 아니더라도 덤탱이를 쓸 확률이 높은 곳이 남대문이다.

술 사는 게 굉장히 어렵다.

상인은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안 좋은 보틀을 사가 준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으니까.

"그럼 이건……."

"그건 우리가 사는 게 아닌데?"

"이거 맞잖아요. 산토리 로얄."

"생산연도가 다르잖아."

"네?"

그 뿐만이 아니다.

같은 술도 생산된 년도마다 차이가 뚜렷하다.

소라가 잡은 산토리 로얄 12년은.

'2000년도 이후 생산 물량이라서.'

희귀한 원액이 들어가 있지 않다.

맛으로 봤을 때 뒤처지는 것이다.

"오빠 이건요?"

"오 그건 좋다. 혜리가 보는 눈이 있네."

"헤헤."

"……."

혜리는 괜찮은 보틀을 찾아냈다.

차후에는 가격이 크게 오르는 물건이다.

『산토리 로얄 15년』

1997년 이후 생산분으로 기존 로얄의 상위 라인업이다.

야마자키 15년 셰리가 키몰트라 애주가들 사이에서 평이 높다.

"선배 저도 찾았어요!"

"그건 안돼."

"일부러 그러는 거지?"

"제발 아니고 싶다."

뒷면의 성분표.

야마자키가 들어있다는 문구가 삭제된 버전이다.

야마자키 위스키의 인기가 높아진 여파다.

'골드 버전이기도 하고.'

코르크를 만져보자 조금 흔들거린다.

10개 중 7개는 맛에 문제가 있는 불량 버전이다.

여러가지를 따져보면서 사야 한다.

환불을 해줄 만큼 마음 따듯한 동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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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구○ 쇼타: 시장은 양쪽 모두 일종의 승부를 하는 세계인 거야!!

세키구○ 쇼타: 나쁜 물건을 팔았다 해도 그걸 모르고 산 쪽의 잘못이 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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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의 명대사처럼 말이다.

이곳 남대문 주류 시장에서는 진짜 현실이다.

"술 한 번 사기 되게 어렵네요."

"그게 양주야. 올드 보틀이고."

"아 네~."

"흥미로운 세계지."

그래서 던전.

위험 부담은 확실히 따른다.

그와 동반하는 재미도 있는 장소다.

'모험하는 맛이 나잖아.'

이곳 말고도 있다.

풍물시장도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그쪽은 상권이 작아서 전화로도 충분하다.

남대문을 싹 쓸어간다.

장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술이 좀 많이 필요하다.

"선배가 제일 좋아하는 양주는 뭐에요? 엄청 비쌀 거 같은데."

"막 100만 원 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조니워커 블랙."

"그건 우리도 판 거 아니에요? 그렇게 안 비싼 걸로 아는데……."

조니워커 블랙도 사간다.

여자들이 산토리를 좋아한다면, 남자들은 조니워커를 더 선호한다.

'실제로 맛도 더 좋고.'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조니워커로 시작해 조니워커로 돌아온다.

"안 골라줄 거에요."

"응 필요 없어."

"우씨."

마트에서 파는 조니워커가 전부가 아니다.

아는 만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술이다.

생산연도별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1990년대 보틀링이다.

'검은색 뚜껑의 43도짜리.'

셰리 함량이 높고 피트도 뚜렷하다.

과일과일함과 스모키함의 조화가 일품이다.

키몰트도 라가불린.

원액의 품질이 훌륭하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거 말하는 거 맞죠?"

"아닌데."

"씨발련아."

1990년 후반 생상분은 영 좋지 못하다.

그때를 기점으로 싱글몰트 붐이 일어나면서.

'라가불린 같은 좋은 원액을 안 쓰게 됐거든.'

몰트의 비율도 줄어들었다.

마셔보면 바디감이 가볍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근데 피트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반금뚜로."

"반금뚜가 뭐에요?

"금색이랑 검은색이 반씩 섞여있는 뚜껑."

"찾아볼게요!"

"확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평판이 높은 보틀이다.

셰리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개인 취향은 별개인 일.

하지만 요식업은 대중성을 신경 써야 하는 직업이다.

반금뚜의 조니워커 블랙을 사간다.

그리고 입고가 되면 추가로 산다고도 해둔다.

'어차피 창고에 더 있을 테니까.'

택배로 받아보면 된다.

내가 호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켰으니 어설픈 사기는 못 칠 것이다.

"결국 불법 맞잖아요."

"알빠임?"

"대학 축제라 망정이지. 진짜 주점이었으면 장사도 못했을 거에요."

"원래 요식업이 그런 거야."

중급 닌자시험 같은 것이다.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요식업은 손에 피 묻힐 자신 없으면 하면 안돼.'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은 가장 먼저 당한다.

남대문의 뉴비 사냥꾼은 애교일 정도로.

사업이라는 게 그러하다.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잡아먹히게 되어있다.

"그래도 재밌긴 했어요."

"술이 진~~~짜 많아요! 세상에 저렇게 술이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세상에 있는 술의 1/1000밖에 안될 테지만."

"그렇게나요?"

던전 탐색을 마치고 나온다.

다섯 박스의 술을 당당히 트렁크에 넣는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것들.

전리품이 훌륭하다는 건 우수한 모험가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량품은 있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손님에게 서비스하기 전에 한 번 테이스팅을 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래서 더 재밌는 거지."

"뭐가요?'

"생돈 버리는 셈이잖아요!"

"이렇게 고르고 골라도 꽝이 뽑히는데 안 고르는 애들은 어떻겠냐?"

""아.""

인생의 교훈을 배워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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