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3
동전의 뒷면
하이볼.
위스키에 탄산음료를 섞은 일종의 칵테일이다.
꼴꼴꼴~!
즉, 다른 위스키를 써도 된다.
하지만 손님은 산토리 가쿠빈을 원한다.
'브랜드 파워라는 게 워낙 막강해서.'
하이볼=산토리.
마케팅이 되어있다.
요식업은 손님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산토리 하이볼 나왔습니다!"
"저도 산토리 주세요!"
"여기도 두 잔!"
"산토리 하이볼 세 잔 주문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산토리 위스키를 대량 공수해왔다.
"사기 아니에요?"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무슨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옆에 사기만 치는 사람이 있어서."
소라로서는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하늘을 우러러 거짓 한 점 없이 살아온 나를.
『산토리 로얄』
『산토리 올드』
『산토리 액셀런스』
『산토리 스페셜 리저브』
『산토리 크레스트 12년』
"이게 다 뭐에요."
"뭐긴 뭐야 산토리지."
"조금 이상한 산토리잖아요!"
틀림없이 산토리다.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누가 보면 중국산 짭양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엄연한 정품이다.
산토리 주류 회사에서 생산한 재패니즈 위스키.
"이런 말하긴 좀 그런데."
"음."
"병부터 구려 보여요."
"……."
단점이 있다면 조금 오래됐다는 것 정도.
혜리가 꽤 날카로운 지적을 던져온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 모르는 거지.'
특히 위스키의 세계는 그러하다.
오래된 것이 훨씬 맛이 좋은 케이스가 많다.
"이 산토리 로얄은 산토리 가쿠빈의 상위 라인업이야."
"그래요?"
"구라삘."
"애초에 가쿠빈이라는 게 이렇게 각 져있는 병을 말하는 거거든."
""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통용된다.
산토리 로얄은 가쿠빈의 상위 라인업이다.
실제 맛도 그러하다.
향도 훨씬 풍부하고, 알콜 찌르는 역한 맛 없이 부드럽다.
'특히 이러한 구형은.'
1995년 이전 보틀이다.
재패니즈 위스키에 거품이 생기기 이전.
훌륭한 품질의 원액을 사용했다.
현재는 1병에 30만 원 하는 야마자키 12년과 하쿠슈 12년이 들어가 있고.
"밤에도 해요? 밤에도 하면 또 올게요!"
"계속 하죠."
"와~ 진짜 하이볼이. 제가 일본 가서 마셔본 하이볼보다 맛있어요!"
"하이볼 너무 맛있어요!"
"하하, 그럴 겁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하이볼을 마신 손님들 대부분이 호평을 늘어놓는다.
'산토리 가쿠빈 그거 일본 소주거든.'
한국에서는 무의미하게 고급화 마케팅이 되었다.
일본 소주를 좋다고 4배씩 주고 사마신다.
"자, 이제 누가 사기꾼이지?"
"둘 다요."
"음."
그럴 바에야 나에게 당하는 게 낫다.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
『주류 메뉴』
산토리 하이볼 4,000원
조니블랙 하이볼 4,000원
셔벗 소주 5,000원
아사히 슈퍼드라이 5,000원
감성을 담아.
이자카야스러운 주류를 판매한다.
하이볼도 두 종류를 제공하고 있다.
"이 조니워커 블랙이란 것도 뭔가 이상해요."
"왜? 이 유명한 위스키가 뭐 어때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아요."
"실제로 오래됐지."
조니워커도 하이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위스키다.
판매량이 세계 1위에 해당한다.
'조니워커 블랙이 참 맛있는 술이지.'
생산된 연도별로 특징이 다르다.
1990년대 이전 생산분은 애주가들 사이에서 평이 높다.
그런 귀한 위스키들을 공수해온 것이다.
일반 가쿠빈 하이볼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이랏샤이마셰!"
""이랏샤이마셰~!""
"여기 메딕이 문 열었나요?"
음식이 맛있다.
술도 잘 넘어간다.
가게 컨셉까지 고급지니 문전성시를 이룬다.
동아리가 커지며 부스의 크기가 넓어졌다.
덕분에 많은 손님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오빠 이러다 술 부족하겠는데요?"
"괜찮아."
"또 와요?"
"어."
작년과 컨셉이 다른 이유다.
좁은 부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큐브 스테이크를 팔았다.
'본격적인 요식업이 되려면 역시 자리 장사지.'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이는 현실에서도, 인터넷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맛있게 먹은 손님들이 SNS에서 자발적인 홍보를 해줄 것이다.
"뭐, 다 이해는 되는데요……."
격의 차이.
소라도 여실히 느꼈다.
분식집이었다면 이 정도로 번성하지 않았을 테니까.
'요식업은 직접 해봐야 와 닿게 돼있거든.'
방구석에 앉아서 탁상공론을 한다고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술을 어떻게 택배로 받아요? 그것도 양주를."
"맞아. 수상해……."
"우리는 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던데!"
동아리 부원들도 말이다.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TV나 뉴스에 나오는 앞면만 알고 있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뭔데요?"
"저희도 무겁게 들고 오기 싫어요! 특히 맥주!"
"단순한 불법이야."
""…….""
동전은 양면이 있다.
* * *
상상 이상.
꿀꺽! 꿀꺽!
시원한 하이볼이 목에 넘어간다.
지친 몸을 확실하게 달래주는 한 잔이다.
"푸하!"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될 만큼.
주하는 몰래 주식 동아리 부스에 왔다.
컨셉빨이 90%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음식과 술을 시켜서 먹어보자.
"어때?"
"어땠어?"
"오래 가지 못할 거 같지? 그치?"
"그, 그게……."
ETSD의 부스로 돌아온다.
손님의 수는 낮보다 더 줄어들어있다.
뺏겼기 때문이다.
하이볼이 전화위복의 한 수가 되어줄 줄 알았는데.
'그걸 어떻게 말해!'
자신도 마음 같아서는 욕을 늘어놓고 싶다.
쟤네는 이래서 저되고 그래서 망한다는 둥.
그럴 수가 없다.
직접 경험한 현실은 상상하던 것이 이상의 것이었다.
"뭐, 먹을 만하더라."
"진짜?"
"아~! 어디서 구한 거야 대체!"
웬만한 라멘 전문점 이상의 퀄리티다.
그 외 사이드 메뉴는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하이볼이.'
술을 잘 넘어가게 만든다.
하이볼의 맛도 자신들이 만드는 것 이상이었다.
장사가 잘될 만도 한 일.
괜히 가서 기만 죽고 돌아온 것이 현실이다.
〔지혜련〕
「내가 몰래 봤는데……」
「술을 막 택배로 받고 있더라?」
「술도 너희가 산 그게 아닌 것 같고」
하지만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술을 살 수 있었는지 알아냈다.
"술을 택배로 받았다고?!"
"안되는 거 아니었어?"
"안되는 거 맞아. 그건 확실해."
첩자.
친구가 주식 동아리에 소속돼있다.
반쯤 협박해서 내부 정보를 뽑아내고 있다.
「확실한 건 아닌데」
「남대문? 이란 데서 술을 산다고 하더라」
「배달도 거기서 받는 것 같고」
닦달한 보람이 있다.
몇몇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보자.
〔알콜 중독 갤러리〕
─남대문 요즘도 배달해줌?
집은 연희동이고
요즘 날도 넘 더워서 남대문까지 가기 넘나 귀찮은데
상회 전화해서 뭐 사고 싶다 물어보면 해주나?
└되는 곳도 있오
└안면 틔어놔야 택배로 팔아줌
└주류의 통신판매는 불법인데요? ㄷㄷ
└ㅇㅇ 남던 지하에서 만든 정품 보내준다
대략적인 정보가 나온다.
아무래도 '남대문'이라는 곳에서 양주를 배달해주는 모양이다.
"진짜?"
"그럼 우리 헛고생한 거네."
"지금 집에 술 산더미라고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엄마가 맨날 뭐라 하는데……."
산토리 가쿠빈을 매점매석 했던 전략.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괜히 고생만 사서 했다.
부원들이 동요할 만도 하다.
그렇게까지 일을 벌였는데 성과가 하나도 없다니.
'아니야. 의미는 있었어.'
동아리장인 유준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다.
ETSD의 파전집은 충분히 장사가 잘 되고 있다.
같은 메뉴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에서 따져도 상위권에 드는 매출이다.
"어르신들은 오히려 파전을 많이 드시러 오고 있어."
"그렇긴 하지."
"이자카야 같은델 가지 않을 테니까."
"내일부터는 가족 단위 손님도 많이 오니까……."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단골들이 든든하다.
어르신들의 입맛에 파전이 더 잘 맞는다.
'젊은 층만 좀 더 끌어모으면 돼.'
많이도 아니다.
아주 조금만 발길을 돌리면 된다.
딱 그 정도만 해도 자신들이 앞설 수 있다.
이자카야.
앉아서 먹는 곳이다.
큐브 스테이크처럼 찍어내서 팔 수가 없다.
"그러네?"
"부스는 우리가 훨씬 더 넓어."
"실제로 줄이 길다고 우리쪽으로 오는 손님들도 있고."
승산은 충분하다.
대동제 매상 1위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도 같은 급의 하이볼을 만들어서 팔면.'
그 길이 보인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고생해서 찾아온 정보는 의미가 있었다.
"들어보니까 오래된 술이 맛있다고 하더라."
"그래?"
"가격도 더 싸다고 하고."
"우리도 그럼 오래된 술을 찾으러 남대문으로 가자!"
조금만 격차를 좁히면 된다.
솔직하게 음식 승부로는 자신이 없지만.
'하이볼 그까이 거야 뭐.'
하이볼은 만들 수 있다.
산토리를 토닉에 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술이다.
더 맛있는 산토리를 쓴다면?
하이볼도 맛있어질 거라는 게 쉽게 상상이 간다.
"쟤네도 술을 계속 시키고 있대. 물량이 넉넉하진 않나 봐."
"또 싹 쓸어올까?"
"좋은 생각이다. 빨리 가자!"
상대가 술을 못 사게 만든다면 금상첨화.
오래된 술이라면 물량도 많이 없을 것이다.
'마트에서 산 산토리도 많지 않았는데 말이지.'
유준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상대의 예상을 벗어난 기행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더 싸고 좋은 술을 살 수 있다.
매상 1위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 보이고 있다.
부우웅~!
자신의 애차.
쏘렌토를 타고 부원 두 명과 함께 남대문으로 향한다.
숭례문 근처에 있는 곳으로 멀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들어간다.
"지하 상가라고?"
"어, 여기 맞아. 사진도 나와있어."
"빨리 가서 보이는 대로 싹 쓸어오자!"
인터넷에서 사전 조사는 끝마쳤다.
상점에 가서 사기만 하면 된다.
『사랑스러운 형제들의 가족 같은 상회』
마침 간판이 보인다.
유준이 용기를 가지고 상점 주인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혹시 술 사러 오셨어요? 처음이신 거 같은데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나요~?"
알아서 반갑게 맞이해준다.
웃으면서 다가오는 게 아주 싹싹해 보인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긴장을 좀 했는데.'
쉽게 풀릴 모양.
유준과 일행은 상인에게 찾고 있는 술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아~ 그러셨구나. 산토리! 산토리 있죠 네."
"있어요?"
"전부 주세요 그거!"
"근데 손님."
"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
세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