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0
대동제
승부욕.
'맨날 선배 마음대로 해대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대체 어디서 배워왔는지도 모를 지식.
아니, 아예 차원이 다르다.
학생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문외한인 자신도 느낀다.
탁! 탁! 탁!
그 말이 두 눈 뜨고 보기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같은 선상에 서고 싶다.
'최소한.'
한 방 먹여주고 싶다.
선배가 인정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만한 메뉴를 개발한다.
치이익……!
냄비에 식용유를 두른다.
그리고 방금 썰은 대파를 한 움큼 넣고 볶는다.
'이렇게 파기름을 뽑아내고.'
그 위에 라면 스프를 넣는다.
물을 넣기 전에 최대한 불맛을 입힐 것이다.
콸콸콸!
그러고 난 후에 물을 붓는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라면을 평범한 라면보다 훨씬.
'음~ 확실히 맛있어!'
깊고 농후하다.
평범한 라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한 감칠맛이 올라온다.
후루룩!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젓가락 빨고 있을 만큼.
'헉!'
다이어트도 까먹고 그만 먹고 말았다.
마성의 맛을 지닌 라면이 아닐 수 없다.
확실히 맛있다.
하지만 적당한 정도로는 선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좀 더, 좀 더 뭔가를 넣으면 좋겠는데.'
파기름 라면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레시피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직접 끓여봤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게 이것.
조금 더 맛을 개량하면 완벽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토독, 톡!
문제는 배가 부르다.
지난 나흘간 하루 두 끼 이상은 라면만 먹은 것 같다.
'버리게 되면 아깝고.'
아무리 절반씩 끓여도 한계가 있다.
자신의 혀도 라면에 점점 무뎌져 간다.
제대로 된 테이스팅이 불가능.
아무리 맛있어도 너무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예찬이〕
−예찬아
−잠깐 시간 괜찮아?
「소라 왜?」
「당연히 시간 괜찮지 ㅎㅎ」
SOS를 요청하기로 했다.
동아리 부원들.
그중에서 한가해 보이는 녀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여자애들은 다이어트 하는 애들 많으니 안되겠고.'
먹어봤자 한두 그릇이다.
남자애들은 먹성이 좋으니 세 그릇 이상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럼 우리 집에 와서
「응!」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
−라면 먹고 갈래?
「라, 라면?」
잘 먹을 것 같은 애들로 골라본다.
가능하면 혀가 기능할 만한 애로.
'소, 소라가 나한테?'
'라면이라니……, 이거 그린라이트 맞지?'
'아 어떡하지. 나 머리 자른지 꽤 됐는데.'
카톡을 받은 남학생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지만.
* * *
경제학과 강의실.
"야! 니들 왜 그래?'
"얼굴이 팅팅 부어서……."
학생들이 조금 어수선하다.
하룻밤만에 달라진 학생들의 얼굴 때문이다.
예찬, 태우, 윤환.
등치가 산만한 남자 셋이 그러고 있으면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무슨 얼굴이 두 배가 됐네. 낯빛도 노랗고."
"뭐 어디 가서 맞았어?"
"우리가 소라 얼굴을 지켰어."
""뭐?""
변명 또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헛소리를 횡설수설 늘어놓는다.
'그래서 남겨도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얼굴이 부어오른 이유.
소라는 짐작 가는 바가 많이 있다.
라면을 먹였기 때문이다.
각자 5그릇 이상은 꾸역꾸역 목에 넘겼다.
"애들이 경쟁하듯이 먹었지?"
"어, 어떻게 알았어?"
"대충 상상 가지."
"?"
수현의 말대로다.
적당히 도와줘도 좋았는데 애들이 너무 전투적이었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그런 줄 알았지.'
지금 생각해보니 과식이었다.
그 영향이 하룻밤 지나 얼굴에 나타난 것이다.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덕분에 실험해보고 싶었던 레퍼토리를 전부 해봤다.
"너도 참 잔인하다."
"그래도 추리고 추린 거야. 부재료 많이 넣는 건 안 했거든."
"아니, 그거 말고."
"?"
많이 고민했다.
라면이라 하면 김치라면, 치즈라면, 떡라면, 만두라면 당장 생각 나는 것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건 순수한 라면 맛이 아닌 것 같고.'
맛만을 고려한 게 아니다.
재료값, 번거로움, 만드는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지까지.
작년 대동제 때 어깨 너머로 배웠다.
음식점 운영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남자 셋을 완전히 보내 놨구나."
"뭐……, 저도 미안하다고는 생각해요."
"벌써 4P를 소화할 줄은 몰랐네."
"?"
라면 대결.
선배를 상대로 이길 것이다.
최소 한 방은 먹여줄 생각이다.
'내가 상상도 못하는 이상한 걸 할 수도 있어.'
스케일이 다르다.
선배가 글로벌 스탠다드를 가지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치이익……!
그래도 호락호락하게 질 생각은 없다.
소라는 냄비에 식용유를 두른다.
'대파랑 간 마늘. 그리고 고춧가루.'
향미가 깊은 기름을 내줄 것이다.
대파가 노릇노릇해졌을 때 스프를 붓는다.
레시피를 세워온 대로 잘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잘 풀리자 신경이 쓰인다.
선배는 어떤 라면을 만드는지.
힐끗 하고 2m 떨어진 주방의 반대편을 봤는데.
보글보글!
보이는 것은 냄비와 스프 봉지.
그 외에 재료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육개장?'
라면도 평범하다.
가장 저가의 별 특징이랄 것도 없는 국민 라면 중 하나다.
"선배는 뭐 안 넣어요? 김치라던가, 파라던가."
"내가 니 따위 상대하는데 칼까지 써야 돼?"
"진짜!"
솔직하게 긴장을 했다.
수타면이나 자체 개발한 스프를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완전 애 취급하네.'
달랑 라면 하나.
별다른 부재료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그래서 더 열 받는다.
차라리 전력으로 상대해주면 분하지라도 않을 텐데.
촤아악!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다.
방심한 선배의 큰 코를 눌러줄 것이다.
'좋았어.'
대파 때깔이 아주 노릇노릇하다.
간 마늘도 잘 풀려서 기름에 녹아있다.
그 위로 스프.
그리고 뜨거운 물.
온도가 높아야만 파기름이 잘 풀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많은 시행착오 덕분이다.
아직도 속이 느글거리다며 누워있는 학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타악!
라면이 완성된다.
두 종류의 그릇이 각각 다섯 개씩 식탁 위에 주르륵 깔린다.
"검은색? 하얀색?"
"뭐가 누구 거야?"
"공정한 심사를 위해 공개하지 않습니다!"
동아리장인 혜리의 주도로 심사가 진행된다.
자칭 맛잘알 부원 다섯 명이 자리에 앉는다.
후루룩!
검은색부터.
라면 한 젓가락이 입에 들어간다.
뒤이어 국물도 그릇째로 들이마신다.
'정말 그냥 라면일 텐데.'
물론 물 조절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단순한 육개장에 불과하다.
후루룩~!
비교를 해보면 알 것이다.
하얀 그릇을 먹어보면 분명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밍밍하네."
"파가 좀 씹힌다."
"그거 빼고는. 그치?"
'???'
0 대 5의 참패를 당한다.
* * *
라면.
누구나 만들 줄 아는 음식이다.
'요리 못하는 사람들도 이런 말은 하잖아.'
라면 정도는 끓일 줄 아는데.
만드는 과정이랄 게 없을 만큼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돈 주고 사먹는다?
그것도 원가의 몇 배를 주고 사먹게 만드는 게.
"혀가 맛이 간 거 아니에요?"
바로 요식업의 본질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라가 역정을 낸다.
보기 드문 광경.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치며 화를 내자 동아리원들도 깜짝 놀란다.
"하얀색이 소라 거였어?"
"모양은 그럴 듯했는데……."
"모양만 그럴 듯한 거 아니거든?!"
화가 단단히 났다.
평소의 소라에게는 보기 드문 심정 변화다.
후루룩!
직접 먹어본다.
표정이 만족스러운 걸 보면 자신이 내려고 했던 맛을 낸 모양이다.
"맛있는데요."
"추하구나."
"선배가 끓인 건 단순한 육개장이잖아요!"
"너 추하다고."
소라가 입을 댓발 내밀 만도 하다.
도저히 승부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
'뭐, 육개장인 건 사실이지.'
군대 행군에서 꼭 나눠주는 그것 말이다.
600원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을 극대화했을 뿐이다.
요식업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다.
"먹어보면 알잖아."
"그냥 육개장이잖아요."
"그냥 육개장인지 아닌지."
사람들이 사먹게 만드는 사업이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이를 깨달을 때가 됐다.
마지못해 먹는다.
대체 무슨 맛인지.
어째서 자신이 육개장 따위에 진 건지.
후루룩!
맛을 본다.
면발을 삼킨 소라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진다.
"이건……."
"어때?"
"짜요."
"??!!!"
심사위원들.
발랑 뒤집어질 만도 하다.
자신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결과인데.
'조금 반칙을 했지.'
혜리에게 부탁을 했다.
내 라면이 담긴 검은색 그릇부터 시식을 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맛은 있어요."
"음."
"뭘 한 거에요? 조리실에서는 딱히 별다른 재료를 넣은 것 같지 않았는데."
맛이 강하다.
그리고 육개장을 썼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컵라면은 면이 얇거든.'
그중에서도 특히 얇다.
온도만 뜨겁지 않으면 마셔버릴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얇은 면.
면발을 먹을 때 같이 딸려오는 국물의 양도 많을 수밖에 없다.
맛이 강한 음식을 먼저 먹으면?
그 다음에 먹는 음식은 밍밍하게 느껴진다.
요리 만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전략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승리를 확신한 건 아니다.
"조미료 때문에 제가 졌다고요?"
"응."
"저는 파기름도 쓰고 그랬는데……."
"그럼 뭐해. 내 게 더 맛있는데."
"우씨."
접시에 담기 전에 약간의 조미료를 첨가했다.
라면이란 식품은 기원부터가 MSG의 집합체다.
타악!
그 정체.
꺼내 놓는다.
소라의 표정이 충격으로 물든다.
"조미료 세 숟갈."
"그게 끝이에요?"
"그거면 됐지."
"반칙이잖아요!"
"무슨 미원도 아니고 뭐 어때."
모모야 라유.
모모야 세아부라.
그리고 숨은 맛을 담당하는 것이.
'화이트 발사믹 식초.'
의외로 모르는 사실이다.
라면에는 식초가 매우 잘 어울린다.
"라면의 잡내를 제거해주고, 산미가 악센트를 더해주지."
"진짜 제대로 된 재료 하나 안 넣고……."
"어."
"조미료를 넣은 게 끝이에요?"
"충분하잖아."
이치란 라멘이라고 유명한 일본 라멘이 있다.
사이드 메뉴로 들어가는 것이 오스카란의 산미, 바로 식초다.
기름지고 맵기만 한 라면에 질리지 않는 매력이 추가되는 것이다.
그 외의 조미료도 같은 맥락에서 들어간다.
'조미료라는 게 그런 거거든.'
맛을 손쉽게 배가 시켜준다.
쓸데없이 뭐 넣고, 뭐 우리고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맛이 강해서 진 거라면……, 불공평해요."
"왜?"
"제 라면부터 먹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니가 요식업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지."
"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소비자가 사먹게만 만들면 돈을 버는 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