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
대동제
한국대.
"애들 안 와?"
"오고 있대."
"아니, 언제 오는데! 일거리가 산더미야!"
수많은 학생들로 행로가 북적인다.
이틀 후에 한국대 대동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각 학과, 동아리.
자신들의 부스와 전시회 등을 차리기 위해 분주하게 작업하고 있다.
"야 신입들 똑바로 하라고~."
""예~.""
"말 짧게 안 해?"
""예!""
전통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준비가 대대적이다 보니 학생들은 고생이다.
올해가 유별나다는 점도 있다.
작년에 한 가지 대형 사건이 터져버린 여파다.
"또 촬영 올 수 있다나 봐요."
"오던가."
"자기들도 방송 나가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동아리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나가고 싶다고 나가나."
나로 말미암아 말이다.
아주 약간 실력을 드러냈을 뿐인데 요식업계 관계자 하나를 박살내 버렸다.
'업계인이라고 치기에는 민망한 사람이긴 한데.'
한국의 낮은 요식업 수준을 생각하면 전문가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게 아주 이상하진 않다.
"저희도 해야 하는데요?"
"열심히 해. 나의 지식과 경영 노하우를 너희들에게 특별히 하사할 테니까."
"오빠도 해야 하는데요?"
"……."
겨우 대학 축제.
나에게 걸리면 흥행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올해에도 한 건 제대로 터트려줄 수 있다.
지난번과 같은 흥행은 예고된 일인데.
"선배."
"선배!"
"그래, 나 선배다."
"선배면 선배답게 해야죠!"
그 외의 작업을 요구하고 있다.
주식 동아리의 인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떠든다.
'아니, 내가 얼마나 고급 인력인데.'
각자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내가 편하게 앉아서 사업 구상하는 CEO라면 니들은 개같이 일하는 노동자.
"빨리요~!"
"안 한다니까."
"의자 채로 옮기자."
"오, 좋은 생각."
"뭐?"
""하나~ 둘~!""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음흉한 계략을 꾸민다.
천막 아래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
앉아있는 플라스틱 의자을 통째로 들어서.
'임금님 가마 타는 것 같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일터 앞까지 옮겨버린다.
한 건 했다는 듯이 우르르 도망간다.
"애들 다 일하는데."
"진정한 주식쟁이라면 평생 노동 따위 하지 않는 법이다. 니들도 배워."
"단체로 쉴까요?"
혜리만이 남아 말을 건넨다.
물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규모를 유지하려면.'
주식 동아리.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규모가 커졌다.
유령 부원을 포함해도 20명이 채 안됐다.
어느덧 100명이 넘어가는 대형 동아리로 성장했다.
"우리 이번에 동아리 부실 못 넓히면 큰일 난단 말이에요."
"왜?"
"오빠는 자주 안 오니까 모르겠지만……, 부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아요. 사람 많다고 안 오는 애들도 있고."
학과 동아리 치고 참여율도 매우 높다.
그것이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동아리실 크기.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으면 불쾌지수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축제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거고.'
한국대의 동아리 규정은 한국 대학교 치고 선진적인 편이다.
이름은 한국 대학교면서.
"조선대가 아니라 그런가?"
"네?"
동아리 부실과 활동비.
아주 공평한 방식으로 매년 다시 새롭게 배분한다.
지난 1년간의 평가, 동아리 인원 수, 그리고 축제에서의 성과가 작용한다.
하지만 작년에는.
"신생 동아리고, 동아리 인원 수도 적어서 예산안이 좋게 통과가 못됐어요."
"내가 그렇게 선전했는데도?"
"한 번 더 해주세요."
동아리가 미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혜리가 동아리장으로서 아주 칼을 갈고 있다.
'나는 머리로 한다니까 그러네.'
나의 동아리이기도 하다.
힘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을 물리적으로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그냥 내가 돈 주면 안되나?"
"되겠어요?"
"아니, 그냥 하나 세워주면 안되나?"
"오~ 부자의 사고방식."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며 청춘을 쓸데없이 소모하는 것은 사양이다.
'그러려고 돈을 버는 건데.'
막말로 말이다.
인간은 항상 기회비용을 지불한다.
그리고 부자는 그것을 돈으로 대신한다.
이사장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도게자라도 박을 것이다.
반쯤 농담이긴 하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갑분싸 나올 걸요?'
"왜?"
"자신의 노력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면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 거 아니에요."
"음."
혜리가 정색을 한다.
박힐 때는 얌전하지만 평소에는 자기 주장을 똑 부러지게 해온다.
'그래서 동아리 운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지.'
성격도 밝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다.
그런 혜리에게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저도 그렇거든요."
"너가?"
"선배가 픽을 도사처럼 꽂아주니까 주식을 공부해서 할 생각이 안 나요."
생각이 없는 아이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려가 깊은 쪽에 속한다.
'본의로 그렇게 됐네.'
과정이 아닌 결과.
돈을 버는 재미에 빠져들게 만든 것은 나의 계획이었다.
편한 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머리 아플 것 같아서 하고 싶지도 않지만요."
"잘 아네."
"그래도……, 쟤들은 그렇게 되면 안되잖아요."
성장을 한 것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그로 인한 결과에 차이가 없었다면 다행인 일이지만.
'나머지 애들은.'
목적을 가지고 키우는 것이다.
장래에 나의 펀드에서 일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리가 번성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제가 붙는다.
"괜히 밉상 이미지 박혀서 좋을 거 없잖아요."
"정론이네."
"헤헤."
"가끔은, 아주 가끔은, 핼리 혜성의 공전 주기당 1번 정도는 해도 되겠지."
"얼마나 하기 싫은 거에요."
존경 받는 선배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싫어하는 사람을 CEO로 두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귀찮구만.'
실제로 작업 능률에 영향을 준다.
계산적으로 따져도 혜리의 말에서 틀린 바를 찾을 수 없다.
"저도."
"응?"
"오빠랑 추억을 더 쌓고 싶고요."
"그렇게 말하면 거절을 하기가 힘드네."
"♡"
감성적인 부분으로도 말이다.
내가 아무리 계산적이라고 해도 인간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약 순수한 학생이었다면.'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근본부터가 남들이 정해주는 상식 따위 따르지 않는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로망이라는 측면.
일반적인 대학 생활을 한다면 혜리 같은 귀여운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오~!"
"선배도 일하네."
"불만 있냐?"
"같이 해요!"
그러니까 들어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속담이지만.
'추억이라.'
함께 땀을 흘리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인 것도 사실이다.
부원들과 함께 부스를 꾸민다.
면적.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넓어졌다.
동아리 인원과 성과에 따라 더 넓은 부지를 배정 받은 것이다.
"개 같이 힘드네."
"뭘 그거 갖고 엄살을 부려요."
"닌 항상 젖통 4L씩 들고 다니니까 안 무겁겠지."
"야."
그만큼 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소라도 노가다 목장갑을 낀 채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공격력 +15라도 되나.'
어떻게 그리 힘이 좋은지 모르겠다.
평소에 우유통을 열심히 들고 다녀서 그럴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힘들다."
"힘들었다!"
수십 명의 부원들이 달려든 끝에 부스의 대략적인 형태가 완성된다.
아무리 힘든 작업도 결과가 나오면 보람이 생긴다.
'주식은 그렇지 않지만.'
존나 열심히 했는데 돈만 잃을 수도 있다.
주식에 비하면 훨씬 가시적이고 묘미가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존나 힘들어."
"선배는 겨우 하루 했잖아요."
"겨우 하루."
"단 하루!"
"빅뱅의 하루하루."
그런 단순 작업.
나에게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괜히 안 도와준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은.'
내용물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음식이 맛없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
"저희도 생각을 해봤는데요."
"생각?"
"네."
"너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구나."
"우씨."
내가 나서면 실로 간단한 일이다.
실전 테스트를 마친 업계 최고 수준의 식견을 끌어다 쓴다.
단순 맛뿐만이 아니다.
가성비, 조리 과정, 인력의 효율까지 고려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음식점을 차리는데.
"분식점도 괜찮을 거 같거든요. 라면이라던가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너무 좋아!"
자신들끼리도 생각을 해본 모양이다.
최근 방송 출연, 여행 등으로 바빠서 동아리를 못 들리긴 했다.
대학 축제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주점 컨셉과 메뉴까지 구상하고 있었던 것은 기특하지만.
'떡볶이 안 나오나 했다.'
은근히 여성 비율이 높다.
동아리장이 혜리인 영향이다.
그리고 여자는, 한국 여자는 떡볶이를 못 먹으면 뒤지는 병에 걸렸다.
"떡볶이 만들라면 하루종일 젓고 있어야 되는데?"
"하루종일 떡볶이를 보고 있을 수 있는 거에요?"
"행복."
"꿈."
"유토피아."
"미친년들."
실제 OECD 국가(37개) 중 한국 여성의 떡볶이 의존도는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녹서스 의과대학 유전공학과의 미드 탈론 교수가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여하튼.'
손이 많이 가는 음식.
겉보기는 그럴 듯해 보인다.
실제 장사에서는 180도 다르다.
손이 많이 갈수록 해당 식당이 망할 확률이 올라간다.
이는 전문 인력인 셰프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초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젓고 있어봐라 죽을 맛이지."
"우……."
"그렇긴 하겠네요."
"여기 에어컨도 없는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그제서야 꿈과 행복, 유토피아에 가득 차있던 학생들이 정신을 차린다.
누구라도 개고생은 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쉽게 설득이 돼가는가 싶었는데.
"그래도 라면은 끓일 수 있거든요."
"넌 라면도 못 끓일 거 같은데."
"뭐요?"
소라가 삐진 표정을 짓는다.
제딴에는 동아리 부원들과 열심히 브레인스토밍을 해본 모양이다.
'내 아이큐 150, 네 아이큐 150. 총 300의 머리로 완벽한 작전을 짜는 일은 김성○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야.'
그래봤자 한 명의 전문가에 비할 수는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을 가르쳐줘야 하는 모양이다.
"제 라면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요?"
"라면 먹고 가자고?"
"?"
소라의 라면을 먹고 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