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191화 (191/450)

EP.191

만병통치약 팝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선배 어디 갔다 이제 와요!"

"오래 찾았어?"

"아뇨."

정말로 모르게 하기 때문이다.

도박에 흠뻑 빠져든 소라가 뒤늦게 내가 없어졌단 사실을 알았다.

'드문 일도 아니야.'

카지노가 원래 그런 장소다.

시계, 창문 등이 없는 것도 시간을 모르게끔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구나……. 어쩐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니가 멍청해서도 있겠지만."

"우씨!"

그 사실을 모르는 고객들.

하루종일 도박을 하며 카지노의 영업이익을 높여주게 되어있다.

소라도 그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분기 강원랜드의 실적을 기대해보려고 했는데.

"그래서 얼마 꼴았어?"

"아닌데요."

"뭐가 아니야?"

"후후, 듣고 놀라지 마세요."

소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뒤지게 큰 가슴도 반작용에 의해 높이 올라간다.

'확실히 한국인 가슴이 아니네.'

몸매도 마른 주제에 어떻게 이런 살덩이를 유지하는지 미스테리다.

"무려 30만 원을 땄어요."

"많이 땄네?"

"그쵸? 도박을 왜 하는지 알 것 같다니까요."

물론 큰 금액도 아니다.

하지만 일반 테이블의 베팅 한도가 30만 원인 걸 생각하면.

'어떤 병신 같은 딜러가 돈을 잃어줬지?'

시말서감이다.

아니, 짐작 가는 것이 없지는 않다.

카지노에서 도는 일종의 미신이다.

"첫뻑이 잘 터졌나 보네."

"첫뻑이요?"

"한 마디로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거지."

"아 그거."

징크스.

처음 온 손님은 돈을 딴다.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의 연장선이다.

'어떻게 보면 사실에 기반한 거지만.'

악질적인 카지노에서는 일부러 처음에 재미를 보게 만들어서 도박에 중독되게 만든다.

"저도 바보 아니거든요."

"세상에."

"딱 10만 원까지 한도로 정하고 만약 잃었으면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적절히만 즐기면 좋은 오락이 될 수 있다.

카지노는 낭만이 있는 장소니까.

'그걸 지킬 수 있다면 말이야.'

따고 나가면 최고의 행복.

주식도, 도박도 공통되는 이치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기특한 일이지만.

"아씨."

"남자 있네."

"씨바……, 도박 더 안 하나?"

정작 중요한 것은 모르고 있다.

테이블에서 나왔음에도 소라 주위를 서성이는 구경꾼들이 있다.

"너 게임할 때 구경꾼 많았지? 왜 많았는지 알아?"

"가슴이 커서."

"뭐, 그것도 있겠지만."

"제가 돈을 따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아주 당당하다.

본인이 잘해서, 잘나서 주목 받았다.

푼돈 좀 땄다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강원랜드 쪽박걸이라는 게 있거든."

"그게 뭔데요?"

"그게 뭐냐 하면……."

속닥속닥 귓속말로 가르쳐준다.

꿀꺽! 침을 삼키는 것이 제대로 긴장했다.

'실제로 농담이 아니니까.'

소라의 몸매면 노리고도 남는다.

깡통을 차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돈 많은 사람들도 많은 곳이다.

"그런 건 먼저 가르쳐 달라고요!"

"그러면 배우는 게 없잖아."

"선배는……, 제가 그런 짓 당해도 좋아요?"

소라가 삐진 표정을 짓는다.

두 손을 모으고 배를 당기며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민다.

20%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 가만히 둘 수 없다.

소라를 끌고 차 안으로 들어간다.

쪼옥!

기다렸다는 듯 안겨온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입을 맞춰오는 건 소라였다.

'파인애플과 설익은 복숭아의 향, 그 아래 꿀을 뿌린 신선한 풋사과.'

한 입 베어물자 신선한 미네랄이 느껴진다.

구운 파인애플과 사과로 이루어진 달큰한 향이 올라온다.

쪼옥!

두툼한 혀로 달구어진 따듯한 침은 말린 과일을 뿌린 휘핑 크림을 마시는 것 같다.

단, 설탕이 절제된.

'거기 맛도 키스맛에 비례하는 법인데.'

매우 기대가 된다.

추가 인수의 가능성은 항상 남겨두고 있다.

"선배."

"응?"

"꼬추 고장 났어요?"

"……."

회사가 잘될 기미를 보인다.

소라가 자연스럽게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린다.

대담하게 안쪽으로 손까지 넣는다.

평소라면 좋아해야 할 시츄에이션이지만.

"어? 이상하네. 진짜 왜 안 서지."

"크흠! 오빠가 그 정도로 설 만큼 만만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서는데요?"

"꼴려야."

"우……, 그럼 더 노력해야겠다."

켕기는 바가 있다.

혀를 치덕치덕 문대며 팬티 안에서 대딸을 쳐도 서지 않는다.

'하도 시원하게 때려 박고 와서.'

스스로를 탓하는 소라에게는 미안할 노릇이다.

한 번 꼭 안아서 달래주고 떼어낸다.

"저 요가 할까요?"

"왜?"

"몸매 가꾸려고요. 야동도 보면서……, 그 하는 법도 배우고."

"절대 보지 마."

"?"

하나 뚫고 왔는데도 또 뚫고 싶어진다.

색기를 몸에 담으려는 소라를 뜯어 말린다.

끼익−!

그러는 사이에 도착한다.

오늘 강원랜드에 오게 된 진짜 이유 말이다.

"그냥 시내인데요?"

"그냥?"

"어……, 그러고 보니."

소라도 눈치챈다.

강원랜드 근처의 시내다.

시골답게 별다른 건 없지만.

'특정 업군이 눈에 띄게 많지.'

전당포.

마사지샵.

재능의 소유자에게 후자를 가르쳐주려는 건 아니다.

"전당포가 무슨 한두 개가 아닌데요?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그만큼 손님이 많으니까."

"아."

강원랜드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찾는 곳이 바로 전당포다.

'물건 맡기고 돈 빌리는 곳.'

당연하게도 정상적인 배율은 아니다.

결국 아쉬운 건 돈이 필요한 도박꾼이니까.

"그럼 돈 엄청 많이 벌겠네요?"

"글쎄."

"아니에요?"

"틀린 말은 아니지."

투자자로서의 감각.

소라도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돈을 보는 능력을 키웠다.

'하지만 감정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야.'

투자에서 심리는 매우 중요하다.

마침 한 아저씨가 전당포로 들어간다.

"바, 방금 봤어요?"

"안 봐도 뻔하지."

"얼굴이 무슨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도박장에서는 그나마 다음이 있으니까.

혹시 모를 대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생기가 조금이라도 돌지.'

카지노에서 나오면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답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말이다.

소름 돋을 정도로 수척해져 있다.

눈에서도 생기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야! !이 씨발 돈 따서 다시 가져온다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한 차선 떨어진 전당포인 데도 귀가 찢어질 지경이다.

"정상인이……."

"있을 리가 없는 곳이지."

"그렇긴 하겠네요."

분위기를 파악한 소라가 침을 꿀꺽! 삼킨다.

이곳은 장소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어째서 기인지 뭔지 선무당 같은 걸 따지는지 단박에 이해가 가지.'

기가 부족해서.

기가 너무 세서.

거의 모든 것이 기로 설명이 된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랬던 사람들조차 미쳐 돌아가는 곳.

끼익−!

소라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강원랜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지역에 마을이 위치해있다.

"여긴 어디에요?"

"대충 눈치 챘지?"

"네……."

"너 버려두고 가려고."

"씨발놈아."

조금 낡았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한 마을.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밖에 없지.'

지역 주민이 아니다.

전재산을 날린 도박꾼들이 모여사는 도박촌이다.

"여기서도 못 사는 사람들은 카지노 노숙자가 되는 거고."

"이런 걸."

"응?"

"이런 걸 왜 보여주는 거에요……."

소라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걱정 안 해도 안 버리고 간다.

'주식 투자자라면 한 번쯤 보고 가는 게 좋아.'

주식과 도박은 한 끗 차이.

실패한 투자자의 말로는 이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런 정신론을 떠들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다.

이곳 강원랜드에 온 진짜 목적은.

똑! 똑!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창문이 울린다.

도박촌의 주민이 나의 아우디를 눈치채고 온 것이다.

뒤가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차에다가 테러를 하고 도망가도 이상하지 않은데.

"젊은 사람들 여기 오지 마. 인생 끝나는 거야."

쩍쩍 갈라진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심기는 죽어있지 않은 듯한 아저씨였다.

"저 다시는 강원랜드 안 올 거에요. 저 아저씨 말 들을 거에요."

"가끔 오면 재밌는데."

"선배 같은 사람이 제일 나빠요!"

사람이 꼭 삐뚤어지란 법은 없다.

도박을 안 할 때는 저 사람들도 정상인이다.

'롤 안 할 때는 정상인인 것처럼.'

차를 몰고 다시 서울로 되돌아간다.

도박도 하고, 연예인도 먹고 보람 있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하루 아니었어?"

"트라우마가 되겠는데요."

"평소에는 볼 기회가 없는 것들이지."

"네."

주식과는 상관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사실은 이곳이 주식 시장을 축소해 놓은 곳이다.

'세력과 개미를 실물로 볼 수 있잖아.'

모니터 안에서 펼쳐지는 세상.

모니터 밖으로 나온다면 저런 느낌일 것이다.

"그래도 주식은 도박이……."

"바이오주가 사기인 걸 알면서 왜 하냐고 물었지."

"네, 그랬었요."

"왜 하는지 알 것 같지 않아?"

"아."

그리고 도박과 바이오주는 굉장히 닮아있다.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데도.

'계속 하게 되잖아.'

기술특례 상장 기업.

얘네들이 신약 개발을 한다는 건 열에 아홉도 아니고 100% 사기다.

강원랜드에서 부자가 된 사람?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도박꾼들이 더 잘 안다.

"하지만 이미."

"잃은 게 있으니까 벗어날 수가 없는 거네요. 새 출발을 하는 게 낫다는 걸 알아도."

"그런 자금이 몰리는 곳이야."

주식을 하는 사람과 바이오주를 하는 사람은 구별이 된다.

이성과 상식을 갖춘 투자자라면 바이오주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런데 선배는 왜……."

"모르겠어?"

"알겠어요. 이성과 상식이 없으니까."

"음."

바이오주를 하는 이유.

개미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원리가 그렇다는 뜻이다.

'버는 원리는 또 다르지.'

주식이다.

환수율이 있는 도박과는 다르다.

이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하면 돈을 벌 수 있다.

꿀꺽!

그러한 리스크.

크면 클수록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게 된 소라다.

"그래도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뭐가?"

"결국 신약 개발이 실패하면……."

"아니지. 애초에 신약을 보고 투자를 하는 게 아니니까."

"??"

도박꾼들의 머리 꼭대기에 서야 한다.

바이오주는 신약의 성공을 보고 사는 게 아니다.

'예로부터 약팔이는 약장수 하기 나름이거든.'

만병통치약은 꼭 병을 고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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