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5
운명의 재회
베니스의 상인.
16세기에 쓰여진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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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샤일록,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 마음은 없는가?
샤일록: 전혀 없습니다. 저는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재판관: 그렇다면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1파운드만큼 떼시오.
샤일록: 후후…….
재판관: 가슴살을 베어내되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되오!
샤일록: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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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대충 고리대금업자를 정의구현 한다는 내용이다.
'어른이 되어서 보면 이해가 안되지.'
돈 못 갚은 게 잘못 아님?
재판관이 안토니오의 편을 들어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케인즈 학파를 부정한다는 건 자본주의를 전면 부정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요?"
"그것이 케인즈 신봉자들의 흔한 망상이죠."
"호오~ 망상이요?"
그럴 만한 시대상이 따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자를 받는 걸 불경스럽게 여겼다.
'금리라는 개념이 태어난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거든.'
종교의 영향이다.
기독교에서 이자를 받는 것은 신성 모독에 해당됐다.
합법화가 된 것은 16세기.
이슬람은 아직도 율법상으로 이자를 금지한다.
"연방준비제도가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금리를 컨트롤하는 한 문제는 없습니다."
"결국 시장에 개입을 했다는 거잖아요?"
"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요."
"그것이 망상이라는 거지."
그 여파가 남아있다.
이자 수치를 조절하는 것은 불편하고, 껄끄럽게 여겨진다.
'친구끼리 돈 빌리는데 무슨 이자냐? 그러는 것처럼.'
사익을 추구한다고 생각된다.
뿌리 깊이 박혀있는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설마 깁슨의 역설이라도 주장하고 싶은 건가요?"
"그런 우스갯소리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적절한 대응이라고 하셨는데……, 인간이 100%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게 오만이라는 생각 안 듭니까?"
유대인.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이 현대 자본주의를 주무르고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다.
'그 우스꽝스러운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게 우리들이고.'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서는 안된다.
신고전학파를 부정했던 이들이 더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를 죽인다.
"저기……, 두 분이서 무슨 이야기하시는 거에요?"
"깁슨의 역설이 뭐야?"
"걍 가만히 있어."
1, 2학년 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
나도 간만에 조금 들떠버렸다.
'지고 싶지 않은 상대라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나 일찍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이 한국대라는 장소에서.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파월 그 빌어먹을 노친네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민주당, 공화당 정권 잡은 쪽에 꼬리 살랑살랑 흔들면서 비위 맞추고."
"연방준비제도는 행정부에서 독립된 기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겠지. 실상은 정치인들이 핥으라면 핥는 애완견 같은 놈들이고."
레이첼 비거.
그녀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그 젊은 나이에 내 말을 받아칠 수 있는 암컷은.
'저 뒤지게 큰 빵댕이도 그렇고.'
음란한 엉덩이를 흔들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아주 당당한 태도로 몸매를 자랑한다.
십중팔구 내가 아는 그녀가 확실하다.
이전 생에서 악연이 있었던, 신세를 졌던 빌어 처먹을 년이다.
"미국 시스템에 대한 모독이네요."
"네, 모독하는 겁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가 완전히 익지 않아서 그런데 영어로 설명을 보충해도 되겠습니까?"
"흥분하면 모국어가 튀어나오는 타입이세요?"
"What did you say?!"
그녀와 처음 만났던 장소는 베이징이었다.
당시 그쪽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두 번째 장소는 월가.
룸빵 에이스가 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귀한 집 따님이셨다.
그런 레이첼과 재회하게 될 줄 몰랐다.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나랑 얘는 시비 거는 게 인사거든.'
이전 생에서는 말이다.
이번 생에서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단 기분상.
"그, 그럼 강의를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레이첼의 난입으로 유야무야 되었다.
눈치를 보던 교수가 다시 강의를 시작한다.
"물로켓 안 쏴?"
"에이씨, 강의 안 끝나네."
"근데 조교 누나 예쁘다.
"존나 예뻐……."
전쟁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 * *
한국대 경제학과.
하나의 일례행사가 재학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제는 연준 의원까지 모독하시는 건가요?"
"네, 모독하는 거라고요."
"근거 없는 명예훼손에 불과하네요."
"매년 최소 한 명 이상의 위원이 금융 거래 위반으로 퇴출되는데 안 걸린 새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소문난 또라이와 미시경제학 조교의 싸움.
실제로 치고 박는 것이 아닌 언쟁 뿐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기대한다.
이쪽 수업이 아닌 데도 직관하러 올 정도로.
"인간이 하는 일인 이상 때로는 욕망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 시스템이고요."
"그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게 바로 오만이라고요."
"현재까지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의 언쟁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학생으로서 흥미가 생긴다.
"미국도 비리 정치인이 있구나."
"또라이 선배의 주장 아니야?"
"조교 언니 말하는 거 보면 진짜로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실전에 가까운 경제.
학생인 그들에게는 당연히 경험할 순간이 없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흥미롭다.
무엇보다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는 게.
"빌 카타리나 이 새끼 봐요. 일본 재단 후원 받고 성장해서 의원 배지 단 후에도 계속 로비 받고 있는데, 하는 소리는 맨날 돈 풀어도 문제 없다. 후원해준 새끼들이 원하는 바잖아요?"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입니다."
"합법인 것과 별개로 영향을 미치고 있잖아? 시장에 인위적인 손길을 가하는데 그것이 정치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니까?"
미시경제학뿐만이 아니다.
다른 경제학과 전공에서도 매번 부딪히고 있다.
교수들이 SOS를 쳤기 때문.
저 또라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너 뿐이다.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레이첼로서는 심정이 복잡미묘하다.
이렇게 빨리 그와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그것도 이러한 언쟁을 통해.
말을 섞어본 결과 어째서 또라이라 불리는지 알겠다.
"Anyway, 이런 논쟁은 교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니가 교수보다 더 잘 알아서 곤란하시겠지."
"저는 미시경제학의 조교일 뿐입니다."
"에휴, 미시 같이 생겨 가지고."
"?"
호전적이다.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언어 선택으로 상대의 적개심을 유발하고 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인다.
애시당초 자신이 한국에 온 목적은.
"수고했네! 언제 한 번 밥이라도 같이 먹지."
"식사는 혼자 할 수 있습니다."
"그, 그래? 한국에서 식사는 같이 하는 건데 말이지 흠! 흠!"
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런 늙은 교수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함이 아니다.
'거시경제학 교수였죠……. 미시경제학으로 택하길 잘했네요.'
자신은 이곳에서 대학원생에 불과하다.
그런 생활을 보내기로 했다.
예정이 되었던 일.
아시아쪽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은 중국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문에서 내려온 지시다.
유럽, 남미, 인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
각각 한 지역을 전담하게 된다.
자신에게 배정된 지역은 동북아시아였다.
'일본이나 대만쪽도 있지만.'
일본은 성장이 정체된지 오래다.
본래라면 멀티플이 더 낮게 책정되어야 하지만, 일본중앙은행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대만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 하나의 국가로 인정 받지 못하는 한 한계가 명확하다.
소거법으로 따졌을 때 중국과 한국이 남는다.
중국쪽에 보다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정재계의 추세만 봐도.'
자녀들을 중국으로 유학 보낸다.
트럼프도 겉으로는 중국을 욕하고 제재하지만, 3세들을 중국어 공부를 시키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성장이 기대되는 국가.
자신도 그런 추세에 맞춰 중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현지 분위기를 살피려고 했다.
타닥, 탁!
최종적으로는 한국에 오게 되었다.
코인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람을 만났던 게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국어사전
미시 (微視)
[명사] 작게 보임. 또는 작게 봄.
미시 (未時)
[명사] 옛 시간 체계 중 하나로 오후 1시~3시를 가리킨다.
'저한테 왜 미시라고 한 거죠? 한국식 농담인가? 혹시 다른 뜻이…….'
코인 사태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 지어졌다.
남은 시간을 한국어 공부에 쏟았다.
현지인급.
자신을 가르친 강사는 그렇게 평했지만, 실제 언어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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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갓위키』
missy
영어에서 젊은 여성을 일컫는 말
한국어에서는 기혼 여성이라는 뜻이 붙어서 (외모나 패션 등이) '미혼 여성처럼 보이는 기혼 여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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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영어 missy를 말한 거야?!'
영어로는 그냥 아가씨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품고 있었다.
까놓고 성희롱.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레이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지, 진지한 이야기하는 와중에 이런 성희롱을…….'
안 그래도 콤플렉스인 부분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것을 대놓고 지적 받았다.
그것도 신경 쓰이는 상대에게.
'그렇게 나온다 이거죠? 저도 그럼 당신에 대한 평가를 조금 내리겠어요.'
상당히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뒷조사를 해본 결과 확신으로 이어졌다.
인성만큼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꿀꺽!
맹점이 있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적으로 봤을 때 의미가 있는 대화였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현재의 시스템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빌 카타리나. 일단 보고는 해둬야겠어요.'
사람이 구멍이 될 수 있다.
무례한 남자일지언정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