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450)

"……."

투자자용 노트북.

일반 노트북에 보조용 모니터를 2개나 더 달고 있으니 기괴해 보일 만도 하다.

'음.'

있는 그대로 말하는 방법도 있다.

입국 심사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서 문제다.

"그게 제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직업은 학생이 아닌가? 역시 숨기는 게 있었나?"

"학생도 할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한 번 의심을 사면 꼬치꼬치 캐물어온다.

그것에 말려서 잘못 대답하면 입국을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에 끊어내는 게 중요하지.'

입국 심사관의 언변에 말려들지 않고 핵심만 정확하게 자른다.

타닥, 탁!

HTS를 보여준다.

어째서 이 노트북을 쓰는지.

그리고 학생스럽지 않은 소비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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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금액│6,910,300,000원

평가손익│+3,550,000,000원

오성바이오로직스│22100주│+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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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할 것 없이 나와있다.

계좌와 HTS의 매매기록을 보여주기 무섭게 심사관의 태도가 급변한다.

"자, 잠시……."

노트북을 가지고 가더니 다른 심사관들과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눈다.

장이 열린 시간이 아닌 만큼 상관은 없다.

'본인들은 상관이 있겠지.'

입국 심사대 직원들이 많이 한가한 모양이다.

내 노트북을 한 명씩 돌려본다.

다시 돌아올 때가 되자.

"크흠! 심사 과정에서 피치 못할 오해가 있었군."

"오해는 좀 풀리셨나요?"

"아직 의견은 분분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서……."

고압적이었던 태도가 대단히 오픈마인드가 되었다.

자잘한 건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테니까.'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물어온다.

주식 수익을 보여주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다.

"이걸 다 주식으로 벌었나?"

"트레이딩이라고 계속 사고 팔다 보면 작은 돈도 크게 불릴 수 있습니다."

"그 월가나 런던 시티의 부자들처럼?"

"네, 규모가 좀 더 작을 뿐이죠."

런던 시티는 영국의 월가라고 할 수 있는 장소다.

2차 세계 대전 전까진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다.

'거 되게 질척거리네.'

다른 의미로 늘고 물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호감은 확실히 땄는지 입국 심사는 물 흐르듯 진행된다.

"그냥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만 하면 돈 벌 수 있습니다."

"미국 주식을 추천하고?"

"미국이 가장 안전합니다."

"근데 왜 당신은 한국 주식을 하는 거야?"

"저는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변동성이 커서 발라 먹기가 수월하거든요."

갈 때까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물어온다.

주식 하는 방법을 어지간히 궁금해 하고 있다.

'그걸 안다고 꼭 좋은 것이 아닌데.'

짧은 시간.

설명을 한다고 들을 리 없다.

그냥 적당히 물어보는 것만 대답해준다.

"당신이 산 종목 이름이 뭐였지?"

"오성바이오로직스입니다."

"오성바이오로직스, 오성바이오로직스……."

K−주식에 물릴 사람이 한 사람 많아졌다.

* * *

위스키는 현대에서 가장 재평가 받고 있는 주종이다.

"증류소가 왜 바다 근처에 있는지 알아?"

"저야 모르죠."

"바다의 영향을 다이렉트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

"바다를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술이라는 식품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다.

'옛날에는 맛 관리가 잘 안되었으니까.'

지금도 프랑스 노인들은 위스키를 싸구려 술이라고 인식한다.

그분들 젊었을 때는 정말로 그랬다.

'똥맛 나는 위스키, 토맛 나는 위스키 그런 게 많았거든."

"우웩……."

"독일에서 마셨던 람빅처럼 호불호가 많이 탔지."

"전 불호였어요."

상상을 뛰어넘는 잡맛이 배어들었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들다 보니 맛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과학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맛있는 맛을 재현해내지.'

이곳 아일라섬의 증류소.

바닷가에 세워져 있는 이유다.

바닷바람을 맞으면 술에 짭짤한 맛이 배어든다.

"그게 말이 돼요?"

"말이 되고 자시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거니까."

"그게 진짜면……, 신기하긴 하겠네요."

소고기가 숙성 방식에 따라 곰팡이 or 숙성육으로 나뉘듯 술도 마찬가지다.

위스키가 발전한 과정이다.

'그래서 재평가를 받은 거지.'

어떻게 숙성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꼬냑과 아르마냑도 훨씬 다채로운 맛을 품는다.

브랜디가 지고 위스키가 떠오른 이유.

그 외에도 가격이 오를 만한 요인이 산더미처럼 많다.

"여기 아일라 특산물인 피트 위스키가 석탄의 일종인 이탄을 태워서 만드는데, 최근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생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음……."

"셰리 위스키도 빼놓을 수 없고."

와인은 19세기 이전의 것이 엄청나게 비싸다.

필록세라 사건으로 인해 포도 품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만들기 힘들어진 것은 가격이 올라가는 법이지.'

위스키에도 그런 사건들이 있다.

미래에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게 뻔하게 관측된다.

그것을 노린 투기꾼들의 수요가 위스키에 몰린다.

흥미롭게 바라볼 투자 자산 중  하나다.

"그건 그렇다 치고요."

"응?"

"어차피 여기 있는 동안 주구장창 말할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소라가 파리에서 산 코트를 꼭 동여맨다.

쌀쌀한 바닷바람 때문에 추운 모양이다.

하지만 볼은 발갛게 피어올랐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다.

'왜 자꾸 빨고 싶게 섹스어필 하냐고.'

본인만 모르고 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야하고, 색기를 흘리고 있는지 말이다.

"선배는 절 어떻게 하고 싶은 거에요?"

"그야 따먹고 싶지."

"깜빡이 씨발아."

그만 본심이 나와버렸다.

이미 알 만큼 알 테니 돌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쁘게 치장하면 얼마나 좋아.'

미용까지 신경 쓴다면 여신급도 안될 것이 없다.

이 여자를 먹기 위해서라면 얼마라도 쓰고 싶은.

짜악!

그 얼마의 상한선이 가끔씩 없어지기도 한다.

소라가 차가워진 두 손바닥을 나의 볼에 갖다 댄다.

"따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말했죠?"

"……."

"바로 적대적 인수 합병 들어갈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소라가 히죽 하며 야시시한 혀로 입술을 쓸어 담는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다.

'기분 탓이겠지.'

정말로 변할 줄은 몰랐다.

다음화는 11월 05일 22시 업데이트 됩니다.

개학.

학생들에게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다 준다.

"수현이 소식 들었어??"

"왜?"

"요즘 존나 예뻐졌다고 하잖아."

1학년은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다.

학생으로서도, 대학생으로서도 말이다.

하지만 방학을 거치며 알게 된다.

한 명의 어른으로서 성숙하게 된다.

"원래 예뻤잖아?"

"좀 무뚝뚝해서 그렇지."

"근데 이번에 모델 하면서 확 달라졌어."

"모델??"

"오~!"

이미지 변신.

성공적인 사례가 된 수현에게 눈길이 갈 만도 하다.

끼익−!

그 당사자가 들어온다.

마치 국룰이라도 되듯 강의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평소처럼 강의실 구석에서 턱을 괸 채 앉아있다.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와……."

"진짜 존나 예뻐지긴 했네."

"넌 어떻게 알았냐? 둘이 연락해?"

"나 흔우랑 친구잖아."

"흔우?"

"수현이 남친."

시크하다.

외모도 예쁘니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남자친구만 없다면 말이다.

경제학과 2학년 성승훈은 알고 있다.

'성격 안 맞아서 오래 못 갈 줄 알았는데.'

사회학과인 흔우와 친구이기 때문이다.

둘이 사귄다고 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개부럽다~!"

"완전 떡상했네."

"여친 자랑 오지게 한다니까? 모를 수가 없지."

"하긴 나 같아도 하겠다."

한편으로 헤어지길 바랬다.

실연을 당한 여자만큼 노리기 쉬운 대상이 없으니까.

'쩝.'

그림의 떡.

사실 자신이 수현과 사귈 만한 수준이 안되니 아쉬워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꿈을 꾸는 이유가 있다.

경제학과 여자 애들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혜리는 그냥 귀엽네."

"그렇지."

"성격도 좋고, 쓴소리도 안 할 거 같고……."

여학생 그룹.

침을 질질 흘리며 지켜본다.

학과 내에 꼭 한 명 있는 분위기메이커조차 예쁘다.

행복한 상상을 안 해볼 수가 없다.

누가 뭐래도 꿈을 꾸는 건 자유이니 말이다.

"우리 이제 2학년이잖아."

"선배가 됐지."

"신입생 애들도 예쁘더라~ 아직 급식티 못 벗은 애들도 있지만."

"오히려 좋아."

남학생들의 흔한 화제.

새 학년이 된 만큼 큰 포부를 가지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급이 없다.

이런 화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끼익−!

강의실 뒷문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고대하던 그 순간이 드디어 왔다.

'소라?'

'소라 맞는데…….'

'뭐지? 감기라도 걸렸나.'

한국대 경제학과 2학년 수석.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닌지 본인에게 꼭 물어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소라다!"

"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오늘 부실하게 먹고 나왔거든."

소라가 왔다.

몸매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학교를 다닐 보람이 나고, 없던 밥맛도 생길 지경이었는데.

후우~!

남학생들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복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추운 건 맞는데.'

'스웨터 하나면 되는 거 아니야?'

'최소한 패딩은 좀 벗고 다니지!'

검은색 패딩.

그 안에 오리털이 들어있든, 거위털이 들어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다른 것을 보고 싶다.

강의가 시작해도 절대 벗지 않는다.

"소라는 더 예뻐질 줄 알았는데……."

"원래 예쁘긴 하지."

"애초에 그런데 관심이 없어."

"방학 동안 달라질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린 그냥 패싱 당한 거야."

강의 첫날부터 안타까운 참사.

남학생들의 사기가 단체로 내려갈 만하다.

* * *

개학.

사실 1년 더 다닐지는 몰랐다.

'수확이 없을 수도 있다고 감안했으니까.'

애시당초 자퇴를 했던 학교다.

큰 기대가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렸다.

동아리도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러게."

"그러게가 아니죠! 동아리 MT도 제가 준비부터 인솔까지 다 해야 했는데."

혜리 덕분에 말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동아리를 열과 성을 다해 관리해주고 있다.

'그래서 내가 편하지.'

진지하게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귀찮은 일은 질색이니까.

타악!

돈으로 처리하는 것이 편하다.

여행을 간 김에 혜리의 선물도 사가지고 왔다.

"와 귀걸이!"

"혜리 주려고 사왔지."

"다른 여자랑 가놓고요?"

"……."

혜리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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