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공감 능력 결여된 사람처럼 그렇게 말해야 돼요?"
그냥 공감해!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라면.
'그렇게 어려운 고난과 역경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소라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투자자 이전에 한 명의 암컷이기도 하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음."
"선배도 저 덮치고 싶어요?"
"……."
소라가 진지를 먹어온다.
대답을 잘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당연히 따먹고 싶지.'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
그럼에도 길게 쭉 뻗은 아름다운 허벅지다.
그 위로 육감적인 엉벅지가 자리 잡고 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더듬고 싶다.
"그야 한 명의 후배로서 아끼고 있지."
"솔직히 말해봐요."
"바로 다리 벌리고 야스 조지고 싶지."
"조져줄까?"
그러지 못할 뿐.
경험만 있었으면 술부터 먹이고 섹스의 참맛을 가르쳐줬을 것이다.
'처음 뚫는 건 부담스럽단 말이야.'
트라우마가 있다.
어쩌면 소라도 이번 일로 거부감이 생기며 더더욱 남자를 멀리할지 모른다.
"선배랑 얘기하면 저만 바보가 되는 거 같아요."
"원래 바보잖아."
"우씨!"
조금은 진정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두근두근 댄다며 내 팔을 꼭 잡는다.
'많이 무섭긴 했나 보네.'
평소에는 안 닿도록 의식하는 부위다.
그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
소라의 탱탱한 가슴.
팔을 딱 잡고 붙어있다 보니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야 가슴 닿는다."
"근데요."
"니 젖탱이 쩐다고."
"원래 쩔거든요."
완전 파이즈리를 당하는 기분이다.
꼬추보다 팔을 먼저 당할 줄은 몰랐다.
'어휴, 정말.'
트라우마.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지금 당장은 이해를 해준다.
"원래 일정은 하루 더 있다 가는 건데."
"빨리 가고 싶어요."
"그래."
나쁜 기억은 떠나면 희석이 된다.
* * *
유럽 여행.
여러 나라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EU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있으니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여기가 이탈리아에요?"
"그래."
"이탈리아도 한 번 와보고 싶었는데……."
"니 자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도 거쳤어."
"헐."
기차를 타고 있다.
하룻밤 자고 나니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를 통과하고 있다.
'신기할 만하지.'
한국.
삼면이 바다라고 하지만, 실상은 사면이 바다인 거랑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해외=비행기가 상식이다.
유럽에서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들어는 봤지만 직접 경험하니 신기하네요."
"이러니까 EU가 가능한 거지."
"그런 것 같아요."
목적지는 프랑스 보르도 근처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술이라고 하면 맥주와 함께 와인이 꼽힌다.
하지만 소라는 미련이 남는 모양이다.
기왕 왔으니 이탈리아도 들리고 싶었는데.
"이탈리아도 와인 유명하지 않아요?"
"소위 말하는 구세계에 속하는 지역이긴 하지."
이탈리아도 와인이 유명하다.
비싼 것보다는 저가 위주로 말이다.
'요즘은 그마저도 신세계에 빼앗기고 있지만.'
프로세코와 모스카토 다스티, 아마로네 등은 지금도 잘 나간다.
와인계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작지 않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는 와인보다 다른 것들이 더 유명해."
"어떤 건데요?'
" 여기서도 주문하면 마실 수 있을 걸?"
괜히 G7이 아니다.
문화적 영향력이 일반인들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
탁!
마침 식사 시간이다.
비싼 열차답게 격식을 갖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식전주로 아페롤 스프리츠 주시고, 빵이랑 먹을 술로 아놀드 파머를 시간 차로 주세요."
"주문 받았습니다."
"칵테일이에요?"
"응."
술을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
흔히 미국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미국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겠어.'
역사가 짧은 나라다.
이민자들이 발전을 이뤄냈고, 술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주를 이뤘다.
"리몬첼로, 아마레또, 캄파리, 아페롤, 마라스키노, 브랑카 등 유명한 칵테일 기주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거거든."
"오……."
"이게 잘 모르는 술이다. 위스키도 아니고 꼬냑도 아니다. 그럴 때 이탈리아로 찍으면 반은 맞는 거지."
현대 Bar 문화에서 이탈리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와인과도 잘 결합이 돼있다.
탁!
아페롤 스프리츠.
아페롤에 스파클링 와인을 섞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식전주다.
"와인을 섞어 마셔요?"
"한국에서는 와인이 곱상한 술이라고 인식되지만, 현지에서는 그냥 전통주 중 하나거든 막걸리처럼."
유럽에서는 콜라에 섞어 마시는 게 일반적일 정도다.
그렇게 예의를 차려야 하는 술은 아니다.
꿀꺽! 꿀꺽!
쌉쌀하고 새콤한 아페롤이 화이트 와인에 녹아들었다.
식욕을 돋우는 식전주의 용도로 딱 좋다.
'오렌지맛 나는 진토닉 느낌이지.'
소라도 꽤 흥미롭게 마시고 있다.
칵테일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술이다.
"아놀드 파머는 뭐에요?"
"레몬술인 리몬첼로에 아이스티를 탄 거지. 대충 립톤 아이스티라고 생각하면 돼."
"없어 보이네요."
어른의 아이스티.
맛은 훨씬 고급지다.
소라가 홀짝홀짝 마시더니 어느새 한 잔을 다 비운다.
'이래서 칵테일이 레이디킬러지.'
여자 꼬시는데 이만한 술이 없다.
식사와 함께 즐기면 취하는지도 모른다.
탁!
본식사.
아무래도 퍼스트 클래스와는 차이가 있다.
구운 치킨과 파스타로 짐작되는 것이 나온다.
"이건 술 없어요?"
"알중이야?
"선배 때문이거든요!"
든든하게 채우고 간다.
그러고 나서야만 마실 수 있는 술이 있다.
'식후주.'
식전주가 있으면 식후주도 있다.
음식을 먹고 난 후에는 독한 술이 어울린다.
"이게 뭔지 알아?
"모르죠."
"젓지 말고 흔들어서."
"아, 마티니!"
마티니 자체는 영국 것이다.
007 시리즈와 킹스맨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같이 들어가는 베르무트가.'
이탈리아의 리큐르다.
유럽의 문화가 녹아든 칵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맛없어요."
"그렇긴 하지."
맛은 별개.
그래서 사실은 턱시도를 시키고 싶었다.
'체리 리큐르인 마라스키노가 베이스라 잘 넘어가거든.'
체리가 가니쉬로 들어간다.
함께 깨물어 먹으면 체리를 뼛국물까지 맛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주문이 불가능했다.
기차 안이다 보니 복잡한 것은 시킬 수 없었다.
"점심부터 또 취하게 생겼어요."
"뭐, 어때 기차 안인데."
"또 덮쳐지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요."
소라의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왜인지 취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팔짱을 껴온다.
식사 테이블이 치워진 의자 옆에서 또 껌딱지처럼 달라붙는다.
"선배가 꼭 지켜주셔야 돼요?"
"내가 왜."
"선배 때문이잖아요. 일어날 때까지 꼭 잡고 있을 거에요."
그리고 새근새근 잠이 든다.
드럽게 큰 가슴으로 팔을 압박한 채.
'얘 왜 이러냐 정말.'
여행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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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의 나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지금 보이는 곳이 전부 포도밭이야."
"지나가고 있는데요?"
특히 보르도 지역의 것이 유명하다.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 생산지다.
'우리나라 안동 소주처럼.'
그 지역에서 만든 와인이 특별히 인정 받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안 간다.
"이미 해먹을 만큼 해먹은 곳이거든."
"아."
"고점 찍고 내려오는 주식 같은 거지."
가장 유명하다는 것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옛적에 분석이 끝났다.
'프리미엄도 있는 대로 붙었고.'
약간 카카오……, 아니 거품 주식이다.
맛보다는 브랜드 때문에 고평가된다.
와인 하면 프랑스 아님?
프랑스 와인 하면 보르도산 와인 아님?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팔리고는 있지."
"가격은 안 오르고요?"
"그래."
폭탄 돌리기 수준이다.
그 가격의 1/5만 내도 더 맛있는 신세계 와인을 살 수 있는데.
'그럼에도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술은 사치품이다.
마시기 위한 용도가 아닌 자랑하기 위해서도 소모된다.
실제로 효과가 있다.
샤또 어쩌고 하는 와인은 일반인들의 눈에도 고급스럽다.
"그 샤또를 붙이는 문화가 이곳 보르도에서 파생되었고, 지금도 5대 샤또는 보르도 지역 와인이지."
"들어본 거 같아요!"
"오래된 포도나무, 올드바인도 굉장히 많고."
그래서 그런 말은 있었다.
장기 숙성형 와인은 보르도가 가장 우수하다.
'신의 물방○ 같은 데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인데.'
그것도 옛날 이야기.
이제는 미국을 필두로 한 신세계에도 올드바인들이 많다.
투자 가치로 봤을 때 끝물이다.
같은 결에서 꼬냑도 그렇게 해석된다.
"꼬냑도 한때 붐이 일었었지."
"이제는 아니에요?"
"그래, 소장 가치가 많이 떨어져."
술도 주식과 비슷하다.
지금 유명한 것은 대부분 고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되팔이가 안돼.'
레미마틴, 까뮤, 헤네시 등.
면세점에서 XO급이 3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리셀가는 그 반도 안된다.
심지어 옛날에 나온 구형이 훨씬 맛있는 데도.
"주식과 달리 처분하기 쉬운 것도 아니라 물리면 굉장히 골치가 아프지."
"그럼 꼬냑은 투자 가치가 없는 거에요?'
"몇몇 것들만 빼고."
5대 꼬냑은 너무 상업화가 되어있다.
만드는 방식에서도 현실과 타협을 많이 했다.
'캐스크에 물을 타거나, 설탕을 넣는 등.'
애주가들이 질색하는 짓을 해버렸다.
맛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뉴비 곤약 사고 싶어!
까뮤나 레미마틴 사면 되는 거야?
헤네시는 너무 비싼 거시야……
└까뮤는 기합이야
└5대 꼬냑은 설탕이랑 색소를 넣을 수 있게 규정을 바꾸었어. 기열인 거시야
글쓴이− 그럼 뭘 먹어야 되는 거야?
└장퓨는 진실이야!
꼬냑 매니아들은 장퓨, 폴보, 라뇨 등을 찾는다.
그리고 더 신선한 것은.
"아르마냑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지."
"아르마냑은 처음 들어보는데."
"그냥 생산지가 다른 거야."
꼬냑은 꼬냑 지방에서 생산하는 브랜디다.
아르마냑은 아르마냑 지방에서 생산한 것이다.
'만드는 방식도 달라서.'
증류를 한 번만 한다.
맛이 거칠어서 단점이었지만, 최근에는 다른 해석들도 생기고 있다.
꼬냑에서 아쉬운 바디감.
그리고 다채로운 맛과 향.
아르마냑에서는 종류에 따라 생기기도 한다.
"유명하지 않아서 값도 싸거든. 좋은 거 잘 잡으면 나중에 떡상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