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450)

"네?"

"실례가 안된다면 저도 써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리 피부가 고운지 궁금해서요."

아주머니들과도 친해진다.

언어는 몰라도 바디랭귀지로 대충 통한다.

'평범한 로션인데 되게 좋아하시네.'

핸드폰도 있다.

구글 번역을 통해 간단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어디에서 왔어요?"

"Korea."

"북이에요, 남이에요?"

"당연히 남쪽이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드라마가 재밌다며 호들갑을 떠신다.

독일 드라마는 도저히 볼 수준이 안된다고도.

'예의상 하신 말이겠지.'

복잡한 대화가 안되다 보니 화장품을 빌려주고 답례로 독일 과자를 받은 정도다.

하지만 재밌다.

어렸을 때 유럽을 온 적은 있다.

이렇게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선배 덕에 재밌는 경험도 한다.

사우나를 마치고 돌아가면 딸딸이라도 한 번 쳐주려고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 거 있죠?"

"오, 재밌었겠네."

"근데 그런 것보다,"

"응."

"니가 여기 왜 있냐."

조금 이르게 만났다.

사우나실에 자연스럽게 앉아있었다.

선배 한 명 뿐이라면 귀싸대기를 날렸겠지만.

'?????'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아주머니들.

왠지 같이 왔을 법한 아저씨들까지 보인다.

남자, 여자가 뒤섞여있다.

깝죽대는 선배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혼욕 몰라?"

"그거 일본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성진국이 일본만 있는 건 아니지."

그런 장소였던 것이다.

어쩐지 선배가 정상적인 여행만 하는 게 수상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남녀 따로였던 건 샤워실까지.

사우나와 목욕탕은 함께 쓰는 곳이었다.

"선배는 제가 다른 남자한테 몸 보여도 괜찮아요?"

"변태야? 그런 거 의식하게."

"진짜 씨발놈이."

의식이 안될 수가 없다.

남자들이 가리는 곳도 없이 덜렁덜렁 거리며 다니고 있다.

여자들도 말이다.

자신만 수건을 걸치고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역으로 신경  쓰인다.

'나무관세음보살.'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혼욕이 평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의식을 하면 지는 것.

"이 서양에도 너를 필적한 젖탱이가 없구나."

"아가리 꿰매줄까?"

가만히 사우나를 즐기면 된다.

온도도 높고 후덥지근한 게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쭉쭉 빠진다.

'술 빠르게 깨네.'

비몽사몽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그러고 나자 주위 상황이 괜스레 더 신경 쓰인다.

조금 다른 의미로 말이다.

자세히 보니 아저씨들만 있는 게 아니라 젊은 남녀들도 있다.

"눈에서 레이저 나가겠다."

"시꺼."

그냥 궁금할 뿐이다.

주식 시장에서는 큰 양봉을 남성의 성기 크기로 비교하고는 한다.

'백좆 크다. 오, 흑좆도 있네. 혹시 말좆은 어디 없나?'

어째서 그런 문화가 생긴 건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이해가 쏙쏙 된다.

* * *

사우나.

독일에 오면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장소다.

'그까이 거 한국이랑 뭔 차이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한국은 성진국에 비해 100년은 뒤쳐졌다.

"왜 니가 더 좋아하냐?"

"별로 좋아하는 거 아니거든요."

"존나 좋아하나 보네."

혼욕을 하니까.

일본 혼욕탕에는 할머니들만 있지만, 독일에는 젊은 여자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의외로 볼 건 없지.'

사우나실이 어둡다.

섹시한 포즈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꼴리지도 않는다.

꼬추 크기에 관심이 많은 소라만이 눈을 빛내고 있다.

이렇게 대놓고 좋아할 줄은 몰랐다.

"선배 꼬추 크기 자랑하더니 별 거 없네요."

"야, 양좆은 발기해도 더 안 커져."

"늬에늬에~."

와서 다행이다.

사우나를 안 들리고 갔으면 나중에 섭한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네들은 어디 나라에서 왔나? 일본? 중국?"

옆자리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도둑이 제 발 저린 소라가 깜짝 놀란다.

'나보다 안 크네.'

그렇다면 호기심 많은 동네 아저씨의 말동무를 해드려도 괜찮을 것이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Do you know Kimchi?"

"킴취?"

"매운맛의 사우어크라우트 같은 건데요."

"Oh~!"

사우어크라우트는 독일의 김치다.

채썬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켰다.

정말로 김치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는다.

"매운맛 사우어크라우트라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군!"

"가지고 온 게 있는데 맛보실래요?"

"그거 좋지! 나는 그럼 자네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도록 하지."

전통 음식에 대한 자부심.

없는 나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나도 김치가 낫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봐도 훨씬 맛있다고.'

김치는 발효 식품 중 유일하게 식물성+동물성 발효가 동시에 진행된다.

단무지, 파오차이, 사우어크라우트보다 감칠맛이 두 배다.

"뭐라고 하시는 거에요?"

"실례, 이 아가씨는 여자친구인가?"

"이쪽은 제 섹스 프랜드인 소라입니다. 야, 인사해."

"구, 구텐탁?"

독일어를 못하는 소라를 대신해 의사를 전달해준다.

다소 놀라시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인다.

'독일인이 꽉 막혔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혼욕으로 대표가 되듯 성문화는 꽤 발랑 까진 편이다.

적어도 한국처럼 씹선비는 아니다.

사우나에서 나간다.

약속을 지키는 독일 사람답게 정말로 집에 초대를 받는다.

"선배 저 뭐라고 소개했어요?"

"왜?"

"아저씨, 아줌마 시선이 뭔가 이상한데……."

"사소한 거 신경 쓰지 마."

꽤 그럴 듯한 2층 주택이었다.

조금 낡긴 했지만 세월이 증후하게 녹아들어 앤티크하다.

'이 정도면 독일에서 꽤 사는 편이라고 봐야지.'

중산층 이상에 해당된다.

이만한 집이라면 기대했던 그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꼴꼴꼴~!

시작은 맥주로 연다.

주인 아저씨가 안목이 꽤나 있는 편인 듯 흔한 것은 아니다.

"와……, 색이 무슨 까맣네요?"

"아가씨, 스타우트는 처음이야?"

"얘가 원래 처음이 아닌 게 없어요."

임페리얼 스타우트.

직역하면 진한 흑맥주라고 할 수 있다.

검은 정도가 아니라 새까만 먹물 수준이다.

'그래도 스팀브루는 마시기 편한 임스지. 도수 7.5%에 IBU도 23밖에 안되고.'

8%가 넘는 것이 국룰이다.

쓴맛을 나타내는 척도인 IBU도 50이 넘어가는 것이 많다.

"크~! 이거 쓰네요."

"그래도 맛있지?"

'네! 커피맛이 진하게 나고 볶은 원두향도 나는 것 같고."

그냥 흑맥주가 아메리카노라면, 이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느낌이다.

'진짜 본격적인 건 에스프레소에 뒤지지 않지.'

잘 우린 커피 같은 맛이다.

소라가 맛있게 먹자 아저씨와 부인분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김치도 맛있네!"

"슈바인스학세와 잘 맞을 거 같은데……."

"사실 한국에서도 족발이랑 같이 먹거든요."

슈바인스학세.

구워서 만든 족발이다.

껍질이 바삭해서 족발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사실 난 족발보다 이게 맛있어.'

김치를 한 점 얹어서 먹자 느끼한 맛이 줄어들어 배는 잘 넘어간다.

주인 부부도 따라한다.

집 김치는 호불호가 타지만 편의점 김치는 무난하다.

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먹힌다.

"어떻게 독일에 오게 됐어?"

"유럽에 올 거면 다른 나라도 많잖아요?"

"제가 맥주를 좋아하거든요. 기왕 맥주를 마실 거면 독일 말고는 없지 않겠어요?"

"Oh~!"

"뭘 좀 아는 친구네."

국뽕 좀 자극해주면 빠르게 친해질 수 있다.

주인 부부의 환심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사실 독일 맥주는 쇠퇴의 길을 접어들고 있지만.'

바이엔슈테판 훌륭하다.

스팀브루도 괜찮은 브루어리다.

그 이상으로 전세계에는 도전적인 브루어리가 많다.

그럼에도 가볼 가치가 있는 나라다.

내가 괜히 첫 번째 여행지로 독일을 선택한 게 아니다.

"선배 저도 이 정도면 맥주 맛을 알게 된 거죠?"

"아다 뚫렸다고 바로 섹스마스터냐?"

"선배 건 짜낼 자신 있는데."

다시 취해버린 소라가 실실 웃어 댄다.

그 정도로 알 수 있을 만큼 술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다.

'맛을 모른다. 더 마셔봐야 한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깊다.

일반인은 아예 존재조차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 편린은 알고 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대접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치도 맛있었어."

"사우어크라우트보다 나은 거 같은데?"

"그런데 제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한국은 전통주의 명맥이 끊긴 나라다.

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집집마다 그 가문의 전통주가 하나씩은 있었거든.'

다른 나라에는 보존이 돼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곳 독일이 그런 나라 중 하나다.

"혹시 람빅이 있나요?"

"람빅을?"

"한국 사람이 람빅을 알아?"

맥주의 원형.

독일의 진짜 전통주다.

다음화 보기

독일의 주거 양식.

한국과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끼익−!

바로 지하실이 있다는 부분이다.

주인 부부가 지하 창고의 문을 연다.

"여기서부터는 따라오면 안돼요."

"네."

"우리가 보여주기 싫어서 따라오지 말라는 게 아니라……."

"람빅인데 당연하죠."

'흔히 와인만 고상하고, 대단한 술이라고 대중 매체에서는 설파하지만.'

옆 나라다.

비슷한 문화가 없을 수가 없다.

집집마다 지하실이 존재하는 것도.

"뭔가 쾌쾌한 냄새가 나네요."

"더 가면 안돼."

"왜요?"

"람빅은 정말 예민한 술이니까."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람빅도 와인처럼 오랜 세월 잠을 자는 술이다.

'숙성 창고지.'

와인 이상으로 민감하다.

외부인이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술이 죽어버릴 만큼.

끼익−!

두 병의 람빅을 꺼내오신다.

딱 봐도 하나는 자가 제조를 한 듯 민무늬 병이다.

"이건 우리 부부가 만든 람빅인데……."

"제가 다 만들었죠."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한국에서도 매실주를 담그듯 아저씨, 아줌마들의 흔한 취미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만드는 과정이 복불복이라.'

와인이나 청주처럼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는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효가 된다.

공기 중의 야생 효모가 들어간다.

외부인의 출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꼴꼴꼴~!

야생 효모가 죽을지도 모른다.

람빅을 더 이상 만들 수 없고, 만들더라도 맛이 변한다.

"엄청나게 복잡한 술이네요."

"그래."

"향은 썩 좋은 느낌이 아니지만."

"크흠."

정말 귀한 술이다.

너무 귀하다 보니 상업적으로는 많이 애매하기는 하다.

'QC도 안되고, 대량 생산도 힘들고.'

자연 발효에 의지하다 보니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품질의 물량을 생산하기 힘들다.

꿀꺽!

맛도 애매하다.

좋게 말하면 새콤하고, 나쁘게 말하면 쉬어버린 식초 맛이 난다.

"저한테는 쪼금……."

"음~ 제대로 만들어진 건데 말이지."

"본고장 람빅은 얘한테 아직 이른가 보네요."

그래서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논쟁거리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