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8/450)

"……."

"이런 것도 모르고 주총을 참석하다니 정말 기본이 안되어 있구나."

이런 수법을 쓴다.

한국에서 주주총회에 참석하려면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이다.

얼타고 있는 소라와 함께 바뀐 장소로 찾아간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내부가 말해주고 있다.

'주주들이 안 오면 얼마나 편해.'

참석한 주주보다 직원들이 더 많을 지경이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형씨, 애인이랑 주주총회 온 거여?"

"제 이겁니다 이거."

"크~! 나도 소싯적에는 여자들 울리고 다녔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새끼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자 내 손등을 꼬집는다.

'농담도 못하네 정말.'

대머리 아저씨는 농담이라 생각하지 않는지 옆에서 주저리주저리 열심히 떠들어 댄다.

"장소를 왜 바꿨는지 알아?"

"왜요?"

"이 새퀴들이 지역 농가를 착취하고 있는데~."

제 발이 저리는 이유가 있다.

주주총회를 몰래 하는 건 반발을 우려해서다.

지역 농가 착취.

한국의 2차 산업 기업들에게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하람 52기 정기주주총회를 개회를 선언합니다."

일이 커지는 걸 기업은 바라지 않는다.

최대한 조용하게 넘기고 싶다.

주주총회.

의결권을 행사할 주주들이 없으니 아주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물론 참석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장소가 바뀐 사실에 한 주주가 역정을 내지만.

"몇 주 갖고 있는데 남의 회사 주총 와서 행패를 부려요? 몇 주 갖고 있어요?"

"행패라뇨! 저도 이 회사 주주입니다 주주!"

힘의 논리.

소액 주주의 말을 들어주는 회사는 한국에서 흔하지 않다.

'의결권은 주식 수에 비례하니까.'

몇 주 안 가지고 있으면 무시한다.

기관들하테는 쌰바쌰바하고, 개인들은 주주 취급도 하지 않는다.

"저런 양아치 같은 사람이 회장인 거에요?"

"회장은 아니고 부회장."

"회장이든 부회장이든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소라가 화를 낼 만도 하다.

애가 좀 철이 없어서 사회가 상식대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양아치를 못 봐서 그런 거지.'

이마저도 아직은 상식의 범주라는 사실.

다양한 주주총회에 참석해보면 느끼게 된다.

끼익−!

다음 장소에 도착한다.

포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철강 회사로, 주식을 모르는 사람들도 포항 제철소라고 하면 알아 듣는다.

'포항의 기적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있잖아.'

대한민국 역사에서 큰 가지를 차지하는 것은 맞다.

제철소가 있어야 경제가 굴러가니까.

하지만 아직도 역사에 갇혀있다.

쌍팔년도식 운영으로 대표되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숨 막히는데 포스○은 미세먼지 펑펑」

「대기오염 수질오염물질 무단배출 포스○ 고발」

포스○센터 앞.

팻말을 든 시위대가 농성하고 있다.

분위기부터가 이미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진짜 나쁜 놈들이에요!"

"쟤네가?'

"아뇨, 회사요! 지역 주민들은 환경 오염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는데……."

주주총회의 순기능이다.

회사가 잘못을 하면 주주들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

의결권을 모으면 가능하다.

그래서 시위까지 하면 일을 키우고 있는 건데.

"저기 비키세요. 저희 들어갈 거에요!"

"안됩니다."

"이 회사 주식 산 주주라니까요? 주주총회 참석하려고 왔어요."

"죄송합니다."

문 앞을 틀어 막고 있다.

등치가 산만한 양아치들이 일렬로 서서 빗장 수비를 한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 수박도에도 그려져 있는 전통이지.'

고전게임 바람의 나라와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비켜주지 않는다.

"야 안 비켜!"

"너희 뭐 하는 새끼들이야? 회사에서 고용한 깡패들 맞지? 어?!"

그나마 소라니까 대답을 해주는 거지.

아저씨, 아줌마들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도 무시한다.

"이게 말이 돼요?"

"말이 되고 자시고 현실인데."

"아니이~!!"

아니시에이팅을 걸어도, 떼를 써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소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쿵쿵 걸음으로 가슴을 흔들며 걸어간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따져 보았지만.

"아 말씀은 알겠는데."

"어떻게 좀 빨리 해주세요!"

"어쨌거나 개인 사유지거든요. 아가씨 집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아가씨가 막을 수 있듯이, 저 건물도 주인이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저희도 중재할 수가 없어요~."

커넥션이 있다.

기업도 다 믿는 바가 있으니까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회사의 진짜 주인은 주주인데 말이지.'

그 당연한 기본 개념이 없다.

한국 회사에 상식을 요구하면 안되는 이유다.

"주주총회인데. 내가 주주인데."

"니가 생각하는 건 일반적인 주주총회고, 여기는 K−주주총회고."

"……."

'앞에 K 들어가면 이상해지는 걸 몰라?'

순진무구하다.

뒷다리가 살짝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올챙이.

"진짜 기업들이 문제인 거 같아요. 기업들만 달라지면 우리나라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아니에요?"

소라도 때가 탈 때가 됐다.

여행.

투자자라면 가끔씩 떠나보는 것이 좋다.

'기분 전환이라는 게 필요해.'

특히 하락장에는 말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모니터 앞에서 하루종일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긴 해요."

"주식에서 멘탈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거든."

"그런데 꼭 둘이 올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

소라와 강원도 속초에 왔다.

해외에 가기는 좀 그렇고, 먼 곳에는 가고 싶을 때 괜찮은 선택지다.

'이쪽 지역이 꽤 미래가 유망하기도 하고.'

투자의 관점에서도 좋다.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라 해변가가 흔할 거라고 생각이 돼도.

"해수욕장으로서 이상적인 곳은 바다가 깊어야 되고, 모래도 고와야 되고, 바닷물도 맑아야 돼."

"그래요?"

"그 3가지가 충족되는 곳이 동해밖에 없어."

"오~ 그러고 보니."

유명 해수욕장은 다 동해에 있다.

다른 데는 보통 해산물 먹으러 가지 해수욕을 하러 가진 않는다.

서해는 그 나라에서 흘러온 물 때문에 바닷물이 탁하다.

남해는 모래가 아닌 자갈이 깔려있는 해변이다.

'동해에서도 해수욕장이 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고.'

동해도 인간이 즐기기에 썩 좋은 곳만은 아니다.

경사가 급해서 조금만 들어가도 발이 안 닿는다.

한국신문− 「[강릉]동해안 관광객 안전사고 비상」

그래서 옛날에는 이런 기사가 여름마다 난리였다.

요즘은 해수욕장마다 안전 요원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

"이곳 속초가 그 얼마 안되는 곳 중 하나야. 여기서부터 양양까지."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 괜찮겠네요."

"오빠랑 오니까 이런 거 아는 거야."

못 미더워하는 눈치.

하지만 정말 오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뚫릴까 말까, 뚫릴까 말까, 뚫릴까 말까, 뚫릴까 말까 뚫 뚫 뚫 뚫. 이런 느낌 아닐까?'

아다라고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장소와 분위기, 상대를 가리고 싶을 뿐이다.

1차는 통과됐다.

2차는 이곳 속초에서 어떤 추억을 만드냐에 따라 갈렸는데.

"선배 이거 봐요!"

"개불이네."

"완전 꼬추 같아요."

"……."

그냥 박아도 될지 모르겠다.

수산시장에 오자마자 섹드립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꼬추처럼 생기긴 했지.'

노포쪽.

하지만 나랑 비교하기에는 크기도 포경의 유무도 차이가 있다.

"아가씨 개불 처음 봐?"

"처음은 아닌데 신기해요."

"한 번 만져봐. 만져보면 더 신기해."

여자들이 좋아하는 외형은 아니다.

꼬추를 닮았다는 건 호감형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풍덩!

상인 아저씨.

수족관에서 개불 한 마리를 잡아 올리더니 소라의 손에 얹어준다.

보통 여자들이라면 꺄! 꺄! 거린다.

어쩌면 1년 전까지는 소라도 그랬을지 모른다.

"꼬추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징그럽지도 않네요."

"그거 대단한 역발상이네."

"이거 보세요. 물대포 찌익!"

"어허, 그런 말하면 안돼."

완전히 친숙해진 모양이다.

손에 힘을 주자 물을 발사하는 모습을 아주 흥미롭게 바라본다.

'입에 넣을 날도 머지않았겠네.'

안 그래도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다.

동해에 왔으면 해산물을 먹어야지.

"선배 이건 꼬추가 아니고 자지에요!"

"그래."

"선배보다 더 크고 굵은 것도 있어요!"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왠지 스끼다시는 못 먹을 것 같다.

동질감이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멍게, 개불과 함께 스끼다시 대표 메뉴인데.'

사실 해외에서는 고급 식재료다.

짱깨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

전복과 같은 대우.

그런 해삼을 마음껏 먹고 갈 수 있다.

"꼬추 마음껏 먹고 가겠네."

"예전에는 징그러워서 못 먹었는데 이번에는 먹어보고 싶어요."

"오빠 꼬추도 먹을래?"

해삼, 개불과 함께 메인으로 먹을 전복치도 산다.

동해 특산물로 맛이 좋다.

소라 많이 먹으라며 꼬추도 더 챙겨주신다.

제철 오징어도 서비스로 받았다.

써걱!

식당에 가지고 가자 바로 조리해준다.

손질하는 과정을 소라가 흥미롭게 지켜본다.

"와 자르니까 피랑 내장이 엄청 나와요."

"저건 다 버리고 껍질만 먹는 거야."

"선배 꼬추도 저럴까요?"

"음."

개불은 안쪽의 내장을 다 버린다.

해삼은 오히려 내장이 별미에 속한다.

'왜 내가 아프지.'

이어서 전복치도 손질한다.

안타깝게도 암컷이 아닌 수컷이었다.

"저거 하얀 게 내장이에요?'

"아 이게 내장은 내장인데 정소."

"정소?"

"사람으로 따지면 아기씨 말이야."

요리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냥 정액이라고 하면 좋아 죽을 텐데.

'쪽쪽 빨아 먹을지도 몰라.'

종족 번식의 본능 때문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씨라도 남기고 가는 것이다.

"선배도 목 조르면 평소보다 많이 나올까요? 그냥 궁금해서."

"그딴 거 궁금해 하지 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주식 처물려서 우울하게 있다가 여행을 오니 살 맛이 나나 보다.

이윽고 손질이 전부 완료된다.

상차림비는 냈으니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이거 맛있어요!"

"꼬추만 먹지 말고 전복치랑 오징어도 먹어."

"네!"

입에 맞아서 다행이다.

혹시 해삼을 산 채로 빨아 먹고 싶다고 했으면 곤란했을 것이다.

'해삼이 맛있긴 하지.'

오독오독해서 씹는 맛이 있다.

내장은 뜨거운 밥 위에 올린 다음.

톡!

계란 노른자를 얹는다.

참기름과 김을 뿌리고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자꾸 내 꼬추 보지 마라."

"후후, 싫죠?"

"좋겠냐."

"그러니까 선배도 성희롱하면 안되는 거에요."

소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따먹어 달라고 시위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까불까불하고 다녀야 기분 전환이 되지.'

주식을 물린 투자자의 심정.

특히 하락장에는 죽을 맛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상승장에는 기다리면 올라간다.

하락장에는 어디가 바닥인지 예측이 안된다.

"좋네요. 이렇게 바다에 오는 거."

점심을 먹고 해변가를 거닌다.

강한 바닷바람에 소라의 긴 머리가 흩날린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입을 다물고 있으니 영화 속 배우 같은 느낌이다.

"와 뭐야? 연예인인가?"

"연예인은 아니지. 가슴이 뒤지게 크잖아."

"그렇네."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이 쏠릴 만하다.

특히 남자들은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겨울 바다라 수영복은 아니지만.'

겨울에는 겨울 나름의 감성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기분이 풀린다.

"당일치기인 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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