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450)

계좌.

한때 58억까지도 찍었다.

비트코인이 2400만원을 돌파했을 때 말이다.

너무 기뻐서 새 여자친구 예나를 불러 호텔에서 파티를 했다.

질펀하게 놀고 다음날 일어나자.

'씨발. 씨발, 씨발, 씨발…….'

20%가 날아가 있었다.

있을 수 있는 일.

최근 코인의 변동성이 워낙 크다.

하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추세가 바뀌었다.

2천만 원을 뚫었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폭락한다.

빠득!

현물이었다면 반토막이 날아갔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도 반에 반토막이 안된다.

레버리지.

도경은 코인의 상승에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하락장에서는 수십 배의 손실로 다가온다.

─프로그램이 비트코인을 매도했습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쿼드라 킬!

펜타킬……!!

하지만 괜찮다.

아직 3억원이 남아있다.

딱 한 번만 성공할 수 있으면 된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승부를 건다.

방금 전 큰 음봉이 박혔다.

일봉으로 봐도 연신 내리기만 했다.

'그래, 천만원은 절대 뚫릴 수가 없지.'

너무 가파르다.

이러면 개미들도 안 산다.

지금까지의 매매 경험이 소리치고 있다.

롱 타이밍.

자신의 예상이 맞았는지 차트가 꺾인다.

이대로 시원한 반등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프로그램님은 전설적입니다!

헥사 킬!

헵타 킬!

옥타 킬!

노나 킬!

데카 킬……!!

숨도 쉬지 않고 계속 내려간다.

오늘 하루만 20%에 가까운 폭락이 나온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도경의 숨이 가빠진다.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안 쉬어지고, 머리가 어지럽다.

눈물샘의 액체가 넘치려고 한다.

속마음이 필터링도 없이 나온다.

"내가 많은 거 바랬냐고!"

아무도 없는 방 안.

1박에 20만 원에 달하는 호텔로 자취방 대신 빌린 곳이다.

도경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친다.

한껏 소리를 질러야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딱 10%만. 10%만 오르면 안 하려고 했다고……. 내가 본전까지는 욕심도 안 내잖아. 딱 30억만 있어도 은행 이자 받으면서 쉬려고 했는데."

마지막 시드였던 3억 원.

아니, 자신이 처음 알바로 모았던 800만 원의 원금까지 증발해버렸다.

아무것도 없다.

무일푼.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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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경님의 계좌』

매수금액│0원

평가손익│0

평가수익률│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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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는 깔끔하게 비었다.

100배의 레버리지는 반드시 돈을 벌어다 주는 게 아니었다.

"기술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인륜적으로도 올라갈 타이밍이잖아 방금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

하지만 도경은 모른다.

지금까지 돈을 번 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다.

코인은 오를 거라고 생각한 확증편향이 운 좋게 맞아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니까.

뚝! 뚝!

때문에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한바탕 봄의 꿈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흐느끼고 있다.

눈물, 콧물, 침으로 어깨까지 젖었다.

하지만 질질 짠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사학과 지윤이〕

「오빠 뭐에요?」

「방금 신세계에서 전화 왔는데 카드값 납부 안됐다고 ㅡㅡ」

〔영어영문학과 예나〕

「오빠」

「저 곧 생일인데 ㅎㅎ」

「저번에 백화점에서 본 백 마음에 들더라고요 사주실 거죠?」

그런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

코인으로 돈을 벌면서 씀씀이도 커졌다.

여자친구들에게 엄청난 돈을 썼다.

앞으로는 쓸 수 없는 것은 물론.

'아, 카드값 어떡하지…….'

진짜 지옥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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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의 몰락.

"아, 진짜 어떡해……. 청자 말 듣고 물 탔다가 벌써 마이너스 1천이네."

−만수좌

−요즘 만수 안 보이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밍이 계좌 폭삭 망했구나

−어떡하긴 그냥 개처물린 거지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그것은 방송 생태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코인 방송을 하던 BJ들.

'짜증 나! 그냥 오빠 말 들을 걸.'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코인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던 유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인님♡〕

「코인 하락 추세인 거 같으니까」

「팔고 한동안 쉬던가 해라……」

−멍멍!

물론 최소화는 했다.

첫날 하락이 시작했을 때 찬욱 오빠가 알려준 덕분이다.

문제는 그 이후.

하락이 계속 이어졌다.

이 정도면 다시 들어가 볼만 하지 않을까?

─유민♡비타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만수도 안 보이는 게 느낌 싸하네

"만수도 힘들 테니 딱히 탓하는 건 아닌데……."

−무조건 오른다고 선동하긴 했지

−아 책임지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요즘 안 보이네

−그때 들어갔으면 최소 30% 물렸을 듯

유민에게 있어 코인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시청자들을 위한 컨텐츠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원했다.

열혈들도 사라며 부추기다 보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사과풍 어디 간 거야 정말.'

그 열혈 대부분이 코인 투자자다.

이번 하락장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

몇몇은 잠수를 탈 지경.

그러다 보니 최근 별풍선 수입이 줄었지만.

─숏으로돈복사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내가 코인 숏 치라고 했제? ㅋㅋ

"갑자기? 돈복사 주인님 별풍선 만 개 고마워요 멍멍!"

−좆고수

−숏으로 돈 번 사람도 있나 보네 ㄷㄷ

−열혈 물갈이각 컄ㅋㅋㅋㅋㅋㅋㅋ

−새로운 열혈은 언제나 환영이야!

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사라진 열혈들의 빈 자리를 새로운 열혈들이 채운다.

그것이 가능할 만큼 판이 커졌다.

역베팅으로 돈을 딴 코인 투자자들.

'운 좋게 돈 좀 벌어 놓고 꺼드럭거리더니 꼴 좋다. 이제 유민은 내 차지야.'

상승에 베팅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락에 베팅하는 사람도 있다.

큰 돈을 벌자 쓰고 싶다.

인정 받고 싶다.

자신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벼락부자들이 파프리카TV에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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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TV』

26,100 ▲6,850 (+35.58%)

[최근 1주일간 떡상한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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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문화는 파프리카TV에 정착된다.

그들이 쓴 돈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진짜네?"

"내가 말했잖아! 매집 구간이라 위아래로 흔드는 것 뿐이었다고."

"사라고 했던 건 혜리지만요."

"……."

실제 현실에 말이다.

한국대 주식 동아리는 코인 유행을 투자에 참고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

명품 기업.

그리고 현재는 파프리카TV로 수익을 보는 중이다.

'사실 전부 욱오빠 덕분이지.'

동아리장인 혜리만 알고 있다.

든든한 조력자가 조언을 해준 덕분이다.

동아리원들이 한 건 없다시피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자신감을 얻은 건 사실이다.

"파프리카TV도 좋지만 화학쪽 섹터는 어때?"

"난 그냥 포지션 유지할래."

"투자는 도전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지!"

"도전도 포트폴리오 관리하면서 해."

주식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전보다 활기차고, 진지하게 한다.

인원도 크게 늘었다.

코인 사태를 계기로 투자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다른 학과에서도 유입이 되고 있다.

주식 동아리는 이전 이상으로 더욱 흥행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그 외 알트코인까지 전부 처분 완료했습니다."

"예상 평단가는 상회했나요?"

"네! 저희가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긴 셈이 되어서……."

레이첼의 패밀리 오피스도 말이다.

최근 코인 폭락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야 그렇겠죠. 타이밍 맞게 뉴스를 터트리겠다고 했으니.'

동시에 주동자.

버블을 쌓아 올리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동반하는 행위다.

다른 세력이 먼저 판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며 천문학적인 손해를 떠안는다.

그럴 걱정이 없다.

이번 1차 코인 버블은 자신의 가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다.

"그래도 너무 빠르게 처분한 건 아닌가 했는데."

"흠! 뭐, 문제 있나요?"

"이사님의 말씀대로 한국 마켓을 동시 공략한 덕분에 예상 이상의 차익을 거뒀습니다."

자신의 매도 타이밍에 맞춰 악재가 퍼진다.

그것을 만들고, 전파할 힘이 가문에는 있다.

자신이 맡은 것은 매집과 처분이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수익을 보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당신에게 그동안 양보를 해줬으니 이 정도 정보는 받아가도 되겠죠.'

그것을 상회했다.

한국인 A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과정에서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김치 프리미엄.

일종의 인플레이션이다.

한국 마켓의 코인 시세는 글로벌 기준과 차이가 있었다.

"대놓고 매도 신호를 줘도 득달같이 달려들어요. 한국 투자자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파비안."

"네, 이사님."

"사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자리는 아닐 텐데요."

"시, 실례했습니다!"

다른 지역 마켓에서도 있는 현상이다.

국가별 정책과 환율에 따라 시세 차이가 생긴다.

한국은 그것이 유독 심하다.

전체 코인 거래량의 20%를 차지할 만큼 규모도 크다 보니.

'저희가 한국 마켓을 통해 이득을 본 건 맞지만, 그것이 그들을 비하할 이유가 되진 못하죠.'

물량을 처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시세 차익은 물론이고 속전속결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저희 팀은 한동안 휴식에 들어갈 겁니다. 파비안 당신도 쉬세요. 상사로서 명령입니다."

"그, 그래도 될까요? 아직 계약상의 업무 기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만."

"그렇게 업무가 좋으면 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금융계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다른 쪽으로 활용하거나 조기 상환으로 이자를 줄일 수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

한국인 A에게서 비롯되었다 보니 한국에도 조금은 애착이 생겼다.

파비안의 차별적 발언을 가로막은 이유다.

스스로도 이 기분을 잘 알 수 없지만.

"혹시 이사님께선."

"할 말이 남았나요?"

"휴가를 어떻게 보내실 예정이신지 헤헤. 제 지인이 플로리다에 전망 좋은 비치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데……."

"적어도 시시한 농담 따먹기를 할 것 같진 않군요."

호기심은 인다.

레이첼은 휴가를 보다 유의미하게 활용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 * *

한국대.

"시간 되었습니다. 딱 10초 더 드릴 테니 마무리하세요."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 끝이 난다.

경제학과 학생들도 한숨 돌리고 있다.

"5번 뭐라고 썼어?"

"아 몰라."

"시험 끝났잖아! 나 불안해서 그래."

"그런 것보단 코인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가 더 궁금해."

대부분 썩은 안색.

어지간히 잘 본 게 아닌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이번 기말고사는 특히 더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코인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토독, 톡!

토독, 톡!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폰을 두들긴다.

돌려받은 학생도, 몰래 숨기고 있던 학생도 목적은 같다.

코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의 가격이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나 개망했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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