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450)

눈앞에서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그냥은 안 보여줄 거지만.'

소라가 볼을 붉힌다.

배가 아픈 것 이상의 무언가를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중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최근 코인 가격이 연신 오르자 신경전이 치열하다.

'조정 구간을 만들고 싶겠지.'

너무 올라가기만 하는 것도 불안하다.

세력은 엄청난 양의 물량을 들고 있다.

개미들이 살 때 수익을 실현하는 게 세력.

코인판에서도 바뀌지 않는 법칙이다.

유기농 조정을 하고 싶다.

그래야 장기적으로도 더 큰 상승을 만들 수 있는데.

─프로그램이 존나게 단단합니다!

그것이 안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지지선을 받쳐주고 있다.

'어느 정도면 차익 실현을 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만약 더 올라가는 거면?

세력 입장에서도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더 큰 세력에게 잡아먹힌다.

세력이 개미털이를 당하는 것이다.

─중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프로그램이 무지개 반사를 시전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쯤 되면 격하게 싸운다.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방어하는 프로그램.

프로그램이 연전연승이다.

최근 코인장이 유기농 조정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이유다.

타닥, 탁!

모른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나는 이 뒷사정을 알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을 바탕으로 무제한 매입을 하고 있잖아.'

자금이 빵빵하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이 작정하고 지지해줄 수 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안심하고 올라탈 수 있다.

지지선에서 선매수를 해서 차익을 보는 것이 기본 전략.

"선배."

"응?'

"선배 침대 냄새 나요."

"……."

"이런 냄새 나는 곳에서 자는 거에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내가 바쁘게 매매를 하는 사이.

소라는 내 침대 위에서 한가롭게 뒹굴고 있다.

'냄새 나면 빨리 가던가!'

매매를 보는 것도 아니면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시하고 다시 차트를 보는데.

─중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

프로그램에게 막혀야 하는 구간.

세력이 이를 뚫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럴 수 있지.'

내가 보는 건 어디까지나 큰 그림이다.

너무 원패턴으로 가면 당연히 읽히기 마련이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2차 지지선.

일봉을 그렸을 때 최근 사흘간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던 곳이다.

여기서는 반드시 반등한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봤을 때 확신이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무지개 반사를 풀었습니다!

또다시 뚫린다.

그것도 분봉으로 잠깐 아래꼬리가 생긴 것이 아닌 쭈욱.

'…….'

200억 가량을 체결했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 * *

타닥! 타닥!

새벽 2시.

평소라면 잠들고도 남을 시간.

레이첼은 어두운 방 안에서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한국 큰손님이 중국 큰손님의 개미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전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즉각 개입을 해야 할 만큼 큰 규모는 아니다.

진짜는 이 싸움을 이용하는 사람.

세력간의 다툼에서 어부지리를 보려고 한다.

'한국 지역에서 천만 달러 매수. 이것은 일전의 한국인 A라고 봐야겠죠.'

편의상 그렇게 부르고 있다.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자신의 추측에 의하면.

─한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비슷하다.

또다시 지지선을 바탕으로 발라 먹는 매매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렇겐 안되죠.'

자신이 직접 개입한다.

프로그램의 방어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는 것이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역매도.

지지선을 무너뜨리며 조정 구간을 만든다.

그리고 진짜로 쏠 듯한 타이밍에.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한 번 더 무너뜨린다.

지지선을 매매 전략으로 삼는 것을 못하게 만든다.

'어때요? 이러면 어떻게 할래요?'

물론 자신들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쥐를 쫓으려고 집을 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매도를 하는 이유.

상대가 가진 카드를 뻔히 읽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가 1억에서 3억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그에 반해 자신이 움직이는 돈은.

'우리는 그 수백 배가 있어요. 자, 당신은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이 한 번이 아니다.

오늘의 대응을 패턴화시켜서 보다 단단한 프로그램을 구축할 것이다.

타닥! 타닥!

한국인 A와 자신의 싸움.

레이챌의 눈을 옆에서 타고 있는 벽난로처럼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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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일.

하지만 이게 당연하다.

'그래, 이게 선물 시장이지.'

고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다.

새우 등 터질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중국 큰손이 학살 중입니다!

프로그램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선물 시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

하지만 그 정도는 나에게 일상이다.

'시간 문제긴 했지.'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기관측에서 눈치챌 수 있다.

이럴 때 정석적인 대응은 손절이다.

개미가 욕심을 내다간 밟혀 죽는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정석만으로 살아남은 내가 아니다.

'한 번 얕보이면 이 노다지를 포기해야 되잖아.'

역으로 매수를 한다.

상대로 하여금 더 공격의 여지를 준다.

─프로그램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개미 주제에?

마지막까지 간다면 이기는 건 당연히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개미라고 말을 했던가?'

그것이 통상적인 예측.

하지만 실제 매매에는 한 가지가 더 적용된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바로 뻥카다.

포커, 화투뿐 아니라 매매도 도박의 연장선이다.

'구라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것도.'

자신의 패를 들키는 건 위험하다.

상대가 승리 100%의 싸움을 걸어온다.

주식도 마찬가지.

자산 규모를 들키는 순간 '돈찍누'를 해버릴 수 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하지만 뻥카를 친다면?

상대 입장에서도 베팅을 하기 난감해진다.

'혹시 또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 심리니까.'

역으로 잃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가진 전력을 더 고평가하게 된다.

압도적인 강자에서 내려오는 순간 생각도 바뀐다.

세력도 당연히 돈을 잃기 싫다.

─중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강자를 나와 동등한 위치까지 끌어내리는 건 말이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렇겠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프로그램의 지지선과 싸우는 녀석들이다.

그것이 뚫렸다.

그들의 목적을 이룬 셈.

하지만 정도가 조금 과하게 되면.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내려간다.

매도 세력 입장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일 것이다.

'아, 이게 아닌데 하는 거지.'

코인은 실물 가치가 없는 자산.

따라서 심리가 상당히 중요하다.

단기간에 폭락을 한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트코인 갤러리〕

─이더리움 망했냐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재 이더 급락 이유.txt

─아 시발 청산 당함

─내가 코인은 폰지 사기라고 했제?

설사 문제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한 번 매수 심리가 꺾여버리면.

'거래량이 확 줄어드니까.'

코인의 기본 원리는 결국 폰지 사기다.

사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사는 사람이 없어지면?

받아줄 개미가 없으니 세력들도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

─개미가 손절했습니다!

─개미가 튀었습니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

이미 공포 매물이 나오고 있다.

설사 다른 코인은 괜찮더라도 이더리움은.

─현재 이더 급락 이유.txt

이더가 올랐던 이유?

비트코인 대체제라는 건데 ㅋㅋ

비트코인이 이미 있는데 왜 대체제가 필요함?

이더가 더 뛰어난 게 근거면 더 뛰어난 코인 나오면 버려지겠네?

└ㄹㅇ 걍 비코 쓰고 말지

└심지어 이더는 발행량이 무제한이라 희소 가치도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력들도 그거 아니까 판 거지

└이더리움 사는 흑우 없제~?

한 번 깨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단순히 가격이 내려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2위 코인의 입지가 흔들린다.

투자자들에게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 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장대 양봉.

풀매수를 갈긴다.

그것도 레버리지를 100배나 활용한다.

'20억의 100배면 대략 2000억원 어치.'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리스크다.

조금만 떨어져도 청산.

글자 그대로 알거지가 된다.

개미인 내가 단 한 방 쓸 수 있는 승부수다.

* * *

새벽 3시.

잠이 쏟아져야 하는 시간.

하지만 레이챌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또렷하다.

─중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도했습니다!

─한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수했습니다!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

현재 호가창의 움직임은 대충 훑어봐도 정상은 아니다.

타닥, 탁!

시시각각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다른 코인의 움직임까지.

'비트코인 선매도로 헷지를 걸죠.'

이더리움에는 더 큰 매도 주문을 넣는다.

전형적인 바스켓 매매의 방식이다.

코인들끼리 서로 가격에 영향을 준다.

이를 이용하면 손실을 최소화시키면서.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더리움에 더 많은 낙폭을 줄 수 있다.

자산이 많은 것이 유리한 이유.

'자, 한국인 A씨 1억 달러 남으셨죠?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한국인 A의 추정 자산은 1~3억 달러다.

하지만 2억 달러가 채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5천만 달러 이상 매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코인까지 합한다면.

'더 이상 수를 쓰기 힘들 거에요. 아니, 애초에 깨닫고 있겠죠.'

자신이 하던 행위.

주포 세력에게 읽혔다.

한 발 빼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마지막까지 싸우면 어떻게 될지.

수천만 달러를 운용할 정도면 모르지 않을 텐데.

─한국 큰손이 이더리움을 매수했습니다!

갑자기 대량 매수가 들어온다.

한국 지역.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단위가 달랐다.

'이, 이억 달러?!'

그것도 한 방에 밀어 올린다.

이더리움 차트에 장대 양봉이 꽂힌다.

─개미가 튀었습니다!

─개미가 본전을 건졌습니다!

물론 대세가 변한 것은 아니다.

개미의 매도.

아직 시장은 공포에 남아있다.

'여기서 내가 더 대량의 숏을 쳐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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