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이다.
어릴 적 장작을 피우고 싶어하던 자신에게.
'그때는 제가 고집이 셌죠.'
정 어려우면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셨다.
물론 지금은 전통적인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
혹은 토치를 쓰면 훨씬 간단하다.
그럼에도 종종 신문지를 태워서 불을 피운다.
할아버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레이첼에게 할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7년 전에 운명을 달리하셨다.
연세를 생각한다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 이후.
할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지 깨달았다.
타닥! 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이 따듯한 불길 곁에 있었던 것이다.
없어지고 나자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저 반드시 할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손녀가 될게요.'
늦은 새벽이다.
본래라면 자야 하는 시간.
하지만 레이첼은 밤을 새고 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시장의 상황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스닥은 한참도 더 전에 장 마감을 했지만.
'지금이 한국 시간으로 오후 1시인가요? 시차 때문에 제가 파악하는 게 늦었군요.'
코인 시장은 24시간 열린다.
그리고 해외에서 참여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아니, 크다.
최근에 들어서 아시아 시장 참여자의 비율이 엄청나게 늘었다.
'중국쪽 해결책을 진작에 강구해 두었는데…….'
암호화폐 시장의 큰손.
2016년 이후 코인은 대부분 중국에서 채굴된다.
그런 만큼 대비를 해뒀다.
중국쪽 물량이 쏟아질 때 프로그램의 패턴이 바뀐다.
레이첼 자신이 공을 들여 리소스 했다.
자신감도 있고, 실제로 효과도 보았지만.
─중국 큰손이 학살 중입니다!
─한국 개미가 당했습니다!
한국은 전혀 계산 밖이었다.
현재 화면으로 보이는 차트의 움직임.
대부분 중국의 것이다.
하지만 간혹 한국에서 채결되는 물량도 보인다.
'수만 따지면 더 많을 지경이네요.'
한국은 암호화폐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는 변방국.
최근 몇 달 들어 엄청나게 늘었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있을 수 없는 속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건 몰라도 별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개별 매수 규모가 작다.
이상할 정도로 단타에 집착한다.
큰 그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조.
─한국 개미가 당했습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중국 큰손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그것을 프로그램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각 거래소의 VIP 전용 호가창으로 말이다.
여러 거래소의 정보를 바탕으로 구축했다.
암호화폐 데이터의 역추적 기능도 넣었다.
'높은 확률로 큰 오류는 없을 거에요 분명.'
거시적인 흐름 예측에 도움이 된다.
본래라면 이것만으로도 차고 넘쳤는데.
─한국 큰손님이 중국 큰손님의 개미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이레귤러가 있다.
중국 세력이 숏을 넣었을 때.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방어를 해준다.
그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같이 방어를 해서 역으로 중국 세력들을 수세에 몬다.
'역공을 부었을 때도 같이 올라타서…….'
발라 먹는다.
프로그램보다 한 발 빠르게 움직여 차익을 보고 있다.
지켜보는 레이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이상한 놈이 가져간다.
꿀꺽!
울화통이 터질 일.
프로그램 방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하는 것보다 디테일이 떨어진다.
헷지라도 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서 모기처럼 빨아먹는 놈이 있다니.
'…….'
하지만 그것도 실력이다.
매매에서 비겁한 것은 없다.
레이첼도 한 명의 금융인으로서 알고 있다.
오히려 감탄이 나온다.
흐름의 변화에 올라타는 것.
어지간한 과감함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룡들 틈에서 살아남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 한 발자국만 잘못 찍혀도 납작궁이 될 수 있는 리스크를 딛고.
'1회 매매 규모는 천만에서 3천만 달러. 그렇다면 자산 규모는 최소 1억에서 3억 달러 사이겠군요. 그렇게 작은 돈으로 잘도 간 큰 짓을 해대네요.'
한 명의 투자자로서 흥미가 인다.
자신은 막대한 재정 지원으로 바탕으로 확실한 플랜을 그리는데 반해.
─한국 큰손님이 튀었습니다!
적당히 치고 빠진다.
공룡들을 희희낙락 따돌리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감탄이 나온다.
'뭐, 두고 보고 있진 않겠지만요.'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짓.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파악하지 못했을 때까지다.
프로그램을 다시 구축한다.
최적화된 대응법을 찾아낸다.
그것도 안된다면 당직을 늘리면 된다.
자신이 때 아닌 야근을 하고 있는 이유.
타닥, 탁!
덕분에 당분간은 3시간도 못 잘 것이다.
철야를 해서라도 잡아야 하는 오류다.
'당신이 절대로 싫어할 만한 짓을 해주겠어요.'
그럼에도 레이첼은 희미하게 웃고 있다.
무미건조했던 나날에 조금은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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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
후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식후땡을 조지는 건 기분이 좋다.
평소와 다른 뒷담도 말이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선배지?"
"쉿."
"존나 예쁜 벤츠녀 여친 있다는 그……."
좋은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주식의 성공과는 별개의 이야기.
'주식이 또 그런 면이 있지.'
꼭 하이에나처럼 들러붙는다.
자신도 주식을 하고 싶다면서 말이다.
배우고 싶다는 게 아니다.
오를 만한 주식을 점찍어 달라는 속 편한 소리를 해온다.
무시하는 것만으로도 미움을 산다.
째째하게 그것도 안 가르쳐주냐는 소리를 듣는다.
'달콤한 과실만 따먹고 싶은 거지.'
농사의 어려움은 뒤로 제쳐둔 채.
놀랍게도 세상에는 그런 인간들이 있다.
의외로 꽤 흔한 일이다.
그렇다 보니 일부 학과생들에게 미움을 받았는데.
"나도 돈 많이 벌면 존예녀 사귀고 싶다."
"저 형도 가능한데 뭐."
"……."
여자 하나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예로부터 예쁜 여자는 성공의 상징이다.
'액세서리로 분류하기도 하니까.'
실제로 말이다.
남녀 차별적인 관점을 떠나서 인간이 가진 순수한 욕망이다.
위아래로 욕망을 가득 담은 년이 보인다.
흡연장을 나가자마자 소라와 마주치게 된다.
"삐졌어?"
"안 삐졌거든요."
"100% 삐졌네."
"안 삐졌다고!"
평소였다면 달려와서 떽떽 댔을 것이다.
최근 들어 나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속 보여서 귀엽네.'
어째서 갑자기 이러는지.
그렇게 유추하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빠랑 저기 가서 얘기 좀 할까?"
"전 할 말 없는데요."
"소라가 요즘 뽀뽀 안 해줘서 담배 피잖아."
"피던가 말던가 죽던가."
차가운 표정.
처음 만났을 때는 이랬다.
말도 걸기 힘든 아우라를 풍긴다.
'간만에 이러니까 흥분되네.'
소라를 데리고 빈 강의실로 간다.
축제 때 혜리와 쏠쏠히 썼던 곳이다.
"왜 삐진 건데?"
"안 삐졌다니까요."
"화난 건 맞잖아. 왜 화났는지 말은 해줘야 오빠가 고치지."
구석진 벽에 소라를 몰아세운다.
분위기를 만들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조금씩 달랜다.
팔짱을 낀 채 꼭 닫고 있던 마음이 스물스물 열린다.
"어디서 들은 건데."
"뭘 들었는데?"
"오빠 여친 있다면서요."
"내가?
"그럼 아니에요? 친구가 직접 봤다고……."
찔리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유민에 관한 것이었다.
'질투를 하나 보네.'
스스로 의식하는진 모르겠지만 명백히 질투라는 감정이다.
지난 섹스는 아니고 야스 이후 심정의 변화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여자친구 아니야. 그냥 콜걸이야."
"콜걸……?"
"콜걸 몰라? 콜걸이 어떤 거냐면."
소라의 귀에 대고 속닥속닥 알려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소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존나 귀엽네 진짜.'
조금 더 골려준다.
어째서 콜걸을 불렀는지.
소라와의 하룻밤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가슴 크고 쭉빵한 애 골라서 즐겼지."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따지고 보면 니 잘못이잖아. 이 야한 몸으로 본방까지 안 해주니까."
심장 고동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다.
이 이상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홍당무가 된 얼굴이 소라의 심정을 반영한다.
쪼옥!
굳어있는 소라를 덮친다.
기습 키스를 당하고, 당황해서 뭐라 하려는 걸 다시 한 번 입으로 틀어막는다.
"근데 별로더라."
"!!"
"니 허벅지가 훨씬 조여. 가슴도 크기만 하고 물렁해서 소라랑 비교가 안돼."
그리고 속삭인다.
애써 눈길을 피하지만 완전히 마운트가 잡혔다.
마무리.
가슴을 꽈악 잡는다.
이미 마음은 반쯤 풀어져 있다.
"이 괴물 젖통만한 게 없다니까."
"야."
"오해 풀렸어? 가슴 주물러도 돼?"
"……풀렸어요. 가슴은 주무르지 마요."
평소 같았으면 만지지 말라고 떽떽 댔을 소라가 얌전하다.
화를 냈던 반작용.
더 들이댄다.
남녀 관계는 서로 몸을 겹치면 겹칠수록 더 끈끈해지는 법이다.
"담배 냄새 나요."
"……."
"어쩔 수 없네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키스를 나눈다.
나의 취향대로 깊고 찐득한 입맞춤이다.
'내 걸작인데.'
소라의 부드럽고 두꺼운 혀가 들어온다.
쪽! 하고 빨아먹자 더 깊게 얽힌다.
안쪽을 알뜰살뜰하게 핥아 먹는다.
내 침을 먹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아……, 하아……."
입을 떼자 새침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철벽 같던 가드가 무너진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
"오빠 발딱 섰어."
"!!"
"소라가 저번처럼 물 한 번 빼주면 가라앉을 텐데."
"^@#%$#@!"
그리고 타락시킬 때.
소라의 손에 내 고간을 쥐어준다.
벽에 몰아붙인 자세라 도망갈 수가 없다.
소라의 눈길이 아래로 내려간다.
피한다기 보다는 신경 쓰여서.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날은 제가……, 술김에 실수했어요."
"실수 한 번만 더 하자."
"야."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또 콜걸 불러야겠다~."
콜걸이란 단어에 민감히 반응한다.
질투심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지 꽤나 효과가 좋다.
"사실은 소라랑 하고 싶었는데 콜걸이랑 하니까 만족스럽지 못했거든."
"아, 진짜 더럽게!"
"소라가 빼주면 콜걸 부를 일 없잖아. 응?"
꼬신다.
여자는 비교해서 치켜세워주는 걸 좋아하는 동물이다.
소라도 예외일 수 없다.
찌익!
지퍼를 내려 손에 잡아준다.
이미 반쯤 서있는 그것이 소라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에 둘러 쌓인다.
"꼬추를 부끄럼도 없이 꺼내 놓네요."
"꼬추 말고 자지."
"뭐가 다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