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450)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졌다며 하소연을 한다.

'오르가즘 존나 느끼면 배 땅기긴 하지.'

지식의 한계.

소라로서는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것이 어떻게 키스 파업으로 이어지는지.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겠지만.

"선배가 저 자꾸 함부로 만져서 그런 거잖아요."

"뭐, 어때 닿는 것도 아니고."

"닳거든요?!"

내 탓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게 있었던 것이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화난 표정으로 쳐다본다.

볼도 살짝 부풀리고 있다.

'진짜 뒤지게 크긴 하네.'

유민도 꽤 큰 편이다.

한 손으로 다 잡을 수가 없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온다.

소라는 아예 잡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로로 잡아야 그나마 손에 들린다.

"너도 기분 좋았잖아."

"그,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좋은 거 맞네. 좋으면서 왜 빼."

"……."

감촉도 탱탱하다.

그토록 큰데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런 몸으로 섹스를 안 하는 건 인류의 손해야.'

빨리 번식을 해야 한다.

자손을 더 남겨야 한다.

한 명의 남성으로서 협력을 하고 싶은데.

"선배."

"응?"

"저한테 왜 자꾸 그런 짓 해요?"

"하면 안돼?"

"그런 건……, 원래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잖아요."

소라가 본심을 꺼내온다.

언젠가 이 말이 나오지 않나 싶었다.

'그렇긴 하지.'

단순 스킨십이라고 보기에는 선을 넘은 것도 사실이다.

담배다 뭐다 핑계를 대기에도 과하다.

용량 한계.

나와는 대체 무슨 관계지?

요 며칠간 고민을 해본 듯싶다.

"그야 좋아하지."

"저, 절요?"

"몸은."

"!!"

마음 같아서는 따먹고 싶다.

피임도 모르는 소라에게 아기부터 만들어준다.

'그럼 더 빨리 야해지지 않을까?'

21살에 유부녀의 색기를 뚝뚝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굉장히 기대가 되는 일.

하지만 진지를 많이 먹는 타입이다.

책임지라면서 분명 귀찮게 할 것이다.

"선배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었어요?"

"몰랐어?"

"……그야 알긴 알았는데 그래도."

"그래도 뭐?"

"사람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유민과 달리 능력도 있다.

먹버를 했다간 레이첼 시즌2가 열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재미는 있겠는데.'

가능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열심히 키우고 있는 애제자이기도 하다.

사내에서 섹스까지 한다면 죽여줄 것이다.

하지만 남자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혹시 오빠 좋아해?'

"!!"

"좋아하면 사귀어줄 수도 있고."

"아니거든요! 선배처럼 엉망진창에 인성 파탄 난 사람을 제가 왜."

남녀 관계.

누가 먼저 들이댔는지 결혼하고 30년 후에도 이야기가 나온다.

반드시 먼저 들이대게 할 것이다.

'그래야 바람 펴도 뭐라 못하지.'

투자자로서 분산 투자를 안 할 수가 없다.

포트폴리오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선배 진짜 실망이에요."

"나도 실망이야."

"선배가 태도 바꿀 때까지 키스 안 해줄 거에요. 흥!"

당장 여자가 고프지도 않다.

소라를 먹지 않아도 한동안은 괜찮다.

'아직 여물지도 않았고.'

재능은 있지만 스무 살.

몸도 마음도 성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질문 안 대답해줘."

"치사해."

"응 치사해."

"치사빤스."

애처럼 볼을 부풀리고 있다.

정신이 육체를 따라잡지 못했다.

당장 덮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소라는 아직 더 커야 한다.

'애를 낳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여러가지 경험을 하는 방법도 있다.

세상에 남자는 하나가 아니다.

이런저런 관계를 가진다.

그럴수록 더 성숙미가 쌓이게 된다.

"선배 아니어도 물어볼 사람 많거든요."

"그래?"

"애널리스트 선생님도 있고, 이번에 공부회도 하나 가입했어요."

"그럼 거기에 물어보면 되겠네."

"우씨!"

제대로 삐진 모양이다.

씩씩거리며 문을 쿵! 닫고 나간다.

한동안은 대화도 못 나눌지 모르겠다.

'바람 피는 소라도 흥분되네.'

여자는 외도를 해야 맛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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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내내 공부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끼익−!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소라는 개미투자증권의 사옥에 방문했다.

"트레이더가 꿈이라고 했죠?"

"네……."

"허허, 괜찮습니다. 업무는 직책별로 조금씩 다른 것 뿐이니까요."

염유안 차장의 안내를 받아서 말이다.

이전에도 온 적이 있지만.

'그때는 휴일이었으니까.'

장이 열리지 않는다.

건물 내부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네, 고객님 미팅 때 말씀드렸던 종목이……."

"종가로 어제 제가 9%가 올랐거든요. 근데 동시호가까지 좀 많이 올랐습니다."

"사모님께서 정보에 혼동이 조금 있으신데, 사모님이 가지고 계신 종목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간이 칸막이로 나뉘어진 사무실.

각각의 자리에서 직원들이 전화를 받고 있다.

목소리에서 긴박함이 느껴진다.

수십 개의 모니터는 긴장감을 더한다.

꿀꺽!

증권가의 일상.

상상만 해보았던 것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때요?"

"많이 바쁘신 것 같아요."

"허허! 그렇지 않습니다. PB들의 업무는 고객 상담이 메인이니까요."

"PB요?"

염유안 차장이 설명을 해준다.

증권사의 업무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금융 부서, 보조 부서, 정보 부서, 통제 부서.

각각의 부서가 상호 보완하는 관계다.

'그렇구나.'

트레이더는 금융 부서에 속한다.

직접적으로 회사를 위해 돈을 벌어다 준다.

PB (Private Banker)도 마찬가지.

하지만 업무의 난이도라는 측면에서 좀 더 여유롭다.

"증권사에 입사하면 대부분 이 PB에서 시작합니다. 소라씨도 그렇게 될 거에요."

"네."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내 공모를 통해 팀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시, 실망까지는."

고객과 상담을 하고, 고객이 원하는 주식을 매입한다.

상대적으로 책임도 가볍다.

그렇게 업무 내용을 숙지해나간다.

연차가 쌓이면 다른 부서로 옮겨갈 수 있다.

"여기가 소라 학생이 목표로 하는 트레이딩 부서입니다."

"와……."

"공기가 다르죠?"

위층의 사무실.

어째서 PB가 여유롭다고 한 건지 알 것 같다

대부분 표정이 굳어있다.

몇몇은 안색이 걱정이 될 지경이다.

모니터도 기본 6개.

어떤 자리는 10개도 넘게 있어 보기만 해도 아득하다.

타닥, 탁

타다닥! 탁!

아이러니하게도 숨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하다

키보드 소리만이 드문드문 들려올 뿐이다.

그 이유.

투자자로서 모를 수가 없다.

소라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큰 소리 내면 안됩니다."

"네."

"엔터 한 번에 10억 단위가 오가는 곳이니까."

"!!"

화려할 필요가 없다.

단 한 번의 엔터를 위해 몇 시간씩도 심사숙고하는 직업이다.

'정말 살 떨리겠지…….'

차트가 떠있는 모니터 화면.

뚫어져라 바라보는 트레이더의 심정에 공감이 안 갈 수가 없다.

실제 업무 현장을 보자 와 닿는 정도가 다르다.

피 말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어땠어요?"

"생각보다 많이 힘든 직업 같아요."

"허허! 조금 극단적인 예를 보여드렸는데. 만약 처음 업무를 배운다면 작은 금액부터 시작하게 돼있어요."

언젠가는 저렇게 해야겠지만.

염유안 차장의 말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아빠가 계속 말리셨던 거구나.'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니까.

차근차근 배워갈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최고의 환경도 주어졌다.

"공부회는 참석해보았나요?"

"아직이요. 모처럼 추천까지 해주셨는데……."

"허허. 조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한참 배울 시기잖아요?"

"네."

염유안 차장님이 도움을 주고 계신다.

졸업 후 이곳 취직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는 조건.

소라로서도 바라지 마지 않던 일이다.

증권사 취업은 자신의 꿈을 향한 첫걸음이다.

'그만큼 더 열심히 하라는 거겠지.'

공부회도 주선해주셨다.

증권사 취업 지망생들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한다.

업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지식들을 공부할 수 있을 거에요."

"네."

"저번에 했던 이야기도 한 번 생각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주는 이유.

순수하게 인재 영입을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라도 들은 바가 있다.

트레이더가 아닌 애널리스트 쪽도 생각을 해달라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자신의 후계자가 될 재능이 보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셨던 이야기다.

어느 쪽 진로가 맞는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참가하게 된 윤소라라고 합니다."

그 인간의 도움이 필요 없다.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환영합니다!"

"와 여성 멤버~."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 드릴 수 있을까요?"

공부회.

일주일에 두 번씩 증권사 업무를 배우기 위해 모이는 모임이다.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다.

남자 5명, 여자 2명으로 자신보다 전부 연상만 있다.

"한국대 경제학과 재학 중이에요. 졸업 후 트레이더……, 증권사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더 좋죠."

"훌륭합니다."

소라는 평소처럼 말을 고른다.

하지만 괜한 짓이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여기선 이게 당연한 거구나.'

트레이더라는 목표를 꺼내도 아무도 어색해 하지 않는다.

증권사 취업 지망생이니까.

"한국대? 가만 한국대면 지영이랑 같은 대학 아니야?"

"어. 글치?"

"둘이 몰라? 한 번도 안 만나봤어?"

"혹시 학번이 어떻게 되세요?"

"17학번입니다."

""17학번?!""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만 조금 화제가 된다.

하지만 걸림돌이 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는 졸업반이라 요즘 애들은 모르지."

"화석이야?"

"화석이지. 그래도 듣긴 들었어. 17학번 수석이 진짜 예쁜 애라고. 걔가 얘인가 보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선배님."

"내가 영광이지. 와~ 학과 수석에 염차장님 추천까지 받을 정도면 인생이 탄탄대로겠네."

수준이 높다.

염유안 차장님이 말씀해주신 그대로였다.

'다들 좋으신 분들이네.'

진지하게 증권사를 목표로 한다.

처음 들어온 자신도 배려해준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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