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450)

대략적인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아, 그래서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구나.'

가게가 간소한 게 아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차렸다.

소수의 손님만 골라서 받을 수 있도록.

"손님 운이 좋으시네요."

"네?"

"원래 저희 식당이 예약하기가 굉장히 힘든데."

"아, 그래요?"

"거의 1년 걸리거든요."

상상 이상이었다.

철저한 예약제로 검증된 손님만 받는 곳이라고 한다.

기가 죽을 정도.

그런 유민의 빈 물컵에 친절하게 물을 따라준다.

"일하다가 알게 된 친군데. 아버지가 여기 사장님이라고, 예약 캔슬 났을 때 한 번 와보라고 해서 온 거에요."

"아~ 그랬구나."

"부담 가지지 말고 즐겨주세요."

긴장이 조금 풀린다.

유민은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익숙지 않은 장소다.

'대체 어떤 것을 팔길래.'

테이블이 하나 뿐일까?

손님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가격도 비쌀 것이다.

물어볼 것도 없는 일.

어떤 음식이 나올지도 궁금하고 맛도 전혀 상상이 안 간다.

꿀꺽!

하지만 맛있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배고파요?"

"아, 그게 조금……."

"여캠도 힘들겠어요. 몸매 유지하고 그러려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을 테니까."

사실 하나도 힘들지 않다.

조금 먹는 대신 비싸고 맛있는 걸 먹으면 되니까.

그래도 자신의 직업을 인정 받으니 기분이 좋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여캠에 대한 선입견도 없고 좋은 사람이네.'

기분이 좋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

모처럼 직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놓칠 수 없다.

"찬욱씨는 무슨 일하세요?"

"아직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학생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돈을……. 아, 이런 질문 실례죠."

"아니에요. 전공을 살려볼 겸 휴학을 하고 잠깐 일을 해봤는데 그게 예상 외로 잘돼 가지고……."

처음에는 조금 미심쩍었다.

겨우 학생이?

'한국대생이면 그럴 만하지.'

명문대생.

경제학과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전공을 살려 투자를 조금 해봤더니.

"남자친구분이 엄청 대단한 분이에요."

"그래요?"

"제가 사실 주식에 좀 물려있었는데."

"헛짓 하지 말고 넌 일이나 똑바로 해!"

"하하, 아버지께 많이 혼났습니다."

성공을 했다.

지금은 일이 안정돼서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되게 능력 있나 보다. 완전 뉴스에서나 보던 삶이네.'

반대로 자신.

여캠을 한다고 대학을 쉬고 있다.

다시 다닐 생각도 없다.

취집을 해서 평생 편하게 사는 것만이 목표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저 이런데 처음 와보는데 실수해도 웃지 마요."

"오마카세 처음 먹어봐요?"

"그런 건 아닌데……."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

만약 이런 사람의 반려가 된다면 자신도.

'사모님이 되는 건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이미 절반 정도는 마음을 먹었다.

"이 정도로 비싼 것은 경험이 없어서."

"괜찮아요. 오늘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네?"

남자가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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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럼 평소에는 학교 다니시는 거에요?"

"네, 교수님도 편의를 봐주셔서 일이랑 병행을 할만 하더라고요."

"오 교수님이요?"

그렇게 느끼는 것은 여캠도 마찬가지다.

모니터 속 그녀가 대단히 고귀한 존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정말로 대단했으면 여캠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여러가지 켕기는 게 많은 직업이니까.

"이건 비밀인데."

"네."

"교수님도 잠재적인 제 고객 중 하나로서 투자 상담을 해드리고 있거든요."

"아~ 그래서!"

건실한 사회인의 모습을 동경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호감을 따낼 수 있다.

'취집이 목표일 테니까.'

신분 세탁을 하고 싶다.

수익은 여캠 시절과 동일 혹은 이상인 상태로 말이다.

"오늘도 사실 갑자기 미팅이 잡혀 가지고."

"그러셨구나……."

"그대로 오느라 답답한 차림인데 이해 좀 해주세요."

"아니에요. 잘 어울리시는데."

차려 입고 나온 이유.

돈도 돈이지만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살짝 살짝 보여주면.'

호감이 손쉽게 쌓인다.

연애 게임이었다면 거의 치트키를 치는 수준이다.

"전복찜입니다. 국물이랑 함께 드세요."

그리고 요리.

맛있는 식사만큼 분위기를 띄우기 좋은 방법이 없다.

그것도 평소 먹기 힘든 것이다.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

"입맛에 맞아요?"

"네, 맞는 정도가 아닌데……."

대충 이런 느낌이다.

여캠을 꼬시는 방법은 메뉴얼로 하나 출판해도 될 정도다.

'사실 결혼 시장에서도 통용되는 논리지.'

골 빈 년들이 많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자신도 여주인공처럼 되고 싶어한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린다.

그 백마 탄 왕자가 자신들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도 모른 채.

"옥돔 튀김입니다. 비늘 부분 식감이 좋습니다."

"청어 이소베마끼입니다. 좋은 게 들어와서."

"아귀간입니다. 맛이 진하니까 조금씩 잘라 드세요."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한 열망도 함께 꽃피고 있을 것이다.

'인당 100만원을 쓴 보람이 있어.'

어중간하게 할 바에는 확실하게.

오늘 볼 재미를 내일로 넘기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먹어본 일식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

"찬욱씨랑 친구분 덕분에……."

"걔는 그냥 연수 받는 거라서 요리는 아버지가 다 하나 봐요."

식사를 하고 나온다.

원래라면 거기까지.

그러니까 식데, 식사 데이트인 것이다.

'안 보내주는 건 내가 아닌 것 같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눈치를 보낸다.

"그래도 언젠가 요리사가 되겠죠?"

"네, 뭐 또 한눈 안 팔면."

"다음에 왔을 때는 그랬으면 좋겠네……."

택시를 부른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나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좀 더 뜸을 들이는 게 좋겠지.'

식사 한 번 한 정도로 모든 걸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어장을 칠 생각.

지켜보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다.

역으로 나에게 호감작을 할 생각이겠지만.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시간이요? 특별히 예정이 있진 않은데……."

"어제 백화점을 갔다 왔는데 유민씨에게 어울리는 목걸이가 있더라고요. 못내 마음에 걸려서."

오늘 안으로 클리어한다.

세상에 선물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끼익−!

강남 구세계.

혜리와 수현과도 왔던 곳이다.

구매 실적도 쌓을 겸 찾아간다.

"어때요?"

"와……."

"제가 보기엔 어울리는 거 같은데."

"정말 마음에 딱 들어요. 제가 받아도 될까요?"

280만원짜리 목걸이.

싼티 나는 브랜드 중에서는 나름 괜찮은 것이다.

직접 목에 걸어준다.

화면으로 봤던 것처럼 가슴이 하얗고 크다.

'소라만큼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뒤지게 크진 않아도 꽤 있는 편.

큰 진주가 가슴에 안착한다.

본인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남이 사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때요?"

"예뻐요. 근데."

"?"

"이러면 전체적인 코디가 좀 틀려지네."

물론 과하다면 부담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자신을 좋아하니까 사준다고 생각하겠지.'

어제 쏜 액수.

30만 개의 별풍선을 생각한다면 별 게 아니기도 하다.

슬며시 눈빛을 본다.

눈동자 안에 욕망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괜찮으시면 옷도 한 벌 맞추실래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제가 좋아서 사는 건데요 뭐."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꼭 힘을 주어 잡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허락.

식사 데이트에서 그냥 데이트가 된다.

그대로 명품 매장을 둘러본다.

"너무 파이지 않았어요?"

"평소에는 더 심하면서."

"아앙~ 그건 방송이고!"

조금씩 스킨십을 늘려나간다.

허리에 손을 얹고 살살 쓰다듬는다.

'물렁하네.'

촉감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탄탄한 편을 좋아한다.

그래도 얇은 편.

통짜 허리가 아니라는 것은 합격이다.

"힐 신으니까 라인이 확 사네요."

"이렇게 높은 건 처음인데……"

"뭐 어때요. 제가 잡아주면 되지."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준다.

끌어 당기자 고개를 내 쪽으로 슬며시 기울인다.

'이미 보픈했네.'

조금 더 과감하게 해도 될 것이다.

오히려 그 편을 좋아하겠지.

백 매장을 지나친다.

헤르메스.

눈길이 가는 것을 보았다.

"갖고 싶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맞는 거 같은데~."

"이건 좀 비싼 거라서."

"그러니까 가져야지. 내 여자는 이 정도는 매야 돼."

"내 여자……."

헤르메스 매장에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턱을 끌어당겨 입술을 뺏는다.

"저, 저기요 손님."

"야!"

눈치 없는 신입이 제지하려 한다.

곧장 고참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입막음을 당한다.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올 때마다 비슷한 짓을 하다 보니 알아서 잘 대응을 해준다.

탁!

커튼을 내린다.

사각지대를 만들어주기 위함.

남사스러운 장면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가장 큰 건 사주기 때문이겠지만.'

매상을 올려주는 VVVIP.

비싼 것을 덥썩 사주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쪼옥!

나도 좋다.

내가 먹는 여자를 자랑한다는 건 흥분되는 이벤트다.

'아 순진한 척하네.'

가벼운 겉키스.

청순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다 보니 잘 못하는 척하는 애들이 있다.

가면을 깨뜨려준다.

뒤통수를 꽉 잡고 안쪽 깊은 곳까지 혀를 넣는다.

쭈와왑!

한 번에 먹다 보니 공간이 빈다.

입가로 침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맛은……, 그냥 그렇네.'

사실 맛있다.

최근 몸에 좋은 것만 골라서 먹다 보니 기준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다.

입을 떼자 쩌억 실이 이어진다.

뒤늦게 움직이려는 혀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차가운 공기.

뒤늦게 주위의 상황을 인지한 유민이 가슴팍을 밀친다.

"잠깐, 잠깐만요 키스는……."

"왜? 싫어?"

"여기는……, 사람 있잖아요."

다 알면서 내숭을 떠는 것이다.

스킨십도, 입술도 허락한 주제에 호들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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