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가 있다.
그녀가 방송에 나온 것이다.
원래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철벽.
학과 술자리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외부 활동도 거의 안 해서 아무도 노리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학과생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문제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얼굴 예쁘고, 몸매도 좋고, 주식까지 잘하니 참…….'
그녀가 너무 완벽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경제학과를 통틀어도 한 명도 없다.
외모는 물론이고 능력.
학과 수석 + 주식이라는 천부적인 재능까지 갖췄다.
장래 트레이더가 꿈이라고 한다.
그런 소라에게 어울리려면 그에 걸맞은 사람이 돼야 한다.
자신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코인으로 성공만 하면 되는데 성공만.'
자신이 앞설 수 있는 부분.
딱 하나 있다면 바로 코인이다.
코인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아봤다.
똑같이 꿈을 이룬다.
그리고 돈을 왕창 번다.
그녀의 옆에 설 자격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가격 조금 내려갔다고 이렇게 흔들리면 너희들 앞으로 투자를 할 자격이……."
"한 가지 질문해도 돼요?"
"뭔데? 해봐!"
"탈중앙화 화폐라면서 왜 거래소를 쓰고, 수수료는 수수료대로 떼요? 걔네한테 통제 받는 거 아니에요?"
"……."
지금 당장은 수치만 당하고 있다.
도경이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본 동아리원들이 혀를 차며 부실을 떠난다.
주먹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다.
자신이 대답하지 않은 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날이 온다.
비트코인의 시총이 나라 규모로 거대해지며 세계를 발 아래에 둘 것이다.
'이 믿음이 부족한 것들!'
그날을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간단한 것을 못해서 벼락거지가 되는 멍청한 놈들.
끼익−!
잔뜩 신경질이 난 도경의 눈앞에 낯선 사람이 보인다.
동아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기."
"무슨 일이시죠!"
"동아리 가입하려고 찾아왔는데요."
"가, 가입이요?"
후줄근하게 입은 남자.
복학생이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예쁜 여자 부원을 늘리고 싶던 도경은 불만이지만.
'그래,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코인의 가치와 그를 알아본 자신의 위대함을 설파하려면 부원이 필요하다.
"혹시 가입 동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꼭 필요한 건 아닌데."
"아, 그게 코인에 관심이 생겨서. 코인이 유망한 것 같아서."
"코인의 가치를 아시는구나! 혹시 모르실까 봐 설명해드리자면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화폐로서 진.짜.겁.나.좋.습.니.다."
"아, 네."
별 생각 없이 말을 걸었던 도경은 신바람이 난다.
의외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썩은 동태 눈깔만 있는 건 아니네.'
코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와줄지도 모른다.
"여러분 코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 정말요?"
"끝난 거 같은데……."
"본전 복구만 하고 싶어요."
"새로운 동료도 들어왔습니다. 믿음을 가지시면 반드시 코인은 떡상할 수 있습니다!"
기존 부원들이 나가기만 했다.
새로운 부원이 들어온 덕분에 동아리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반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잘 모아가면 돼.'
코인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가르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다.
딱 한 번만 반등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충실한 신도, 아니 투자자가 될 것이다.
"인사가 늦었네요. 제가 코인 동아리 부장 주도경입니다."
"원래 분위기가 이런가요?"
"최근에 좀 하락장이라~ 곧 상승장이 올 거니 믿고 기다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 네. 저는 초보라 구석에 짜져서 구경만 좀 할게요."
"그러셔도 돼요. 근데 혹시 이름이……?"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은 기분이다.
그런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이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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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동아리.
가입한 건 당연히 제대로 된 이유가 아니다.
'인간지표들이 알아서 모여주겠다는데.'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덕분에 데이터를 잔뜩 수집할 수 있었다.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현 시대 코인 투자자들의 수준은.
'빡대가리들 뿐이지.'
아무리 종교다 뭐다 해도 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유동성과 정부 규제가 있다.
그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차트를 분석하면 참고 지표 정도는 나온다.
그런 것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본인들 스스로 모를 뿐.
코인 동아리 애들은 사이비 종교 집단이나 다름없는 맹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지표로 삼기에는 좋아.'
심리가 보이듯이 읽혀진다.
코인 동아리는 딱 두 종류다.
신앙심이 얕은 사람과 광적인 사람.
대충 비율로 나누면 된다.
얕은 사람이 적은 것이 현재 코인 시장의 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슬슬 쏠 시기가 오는 것 같기는 해.'
코인 시장의 대략적인 역사는 기억한다.
하지만 몇 날 몇 시 몇 분 몇 초인지까지는 아무래도 모른다.
애초에 의미 없는 정보이기도 하다.
시장에 다른 참여자가 생긴다면,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나라는 노이즈를 간파할 수 있다.
큰 돈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기관 투자자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띵동~♪
여름이 끝났다.
더위 문제로 문을 열어 놓지 않는다.
틈만 나면 찾아오는 미친년 때문도 있다.
'바지 벗고 있으면 화낸다니까?'
장난삼아 하는 짓도 농담으로 안 받아준다.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화를 내고 가버렸다.
"아 뭔데. 응?"
"선배……."
문을 연다.
성희롱도 못하게 하는 주제에 귀찮게 와서 질문만 해대는데.
'뭔 일 있었나?'
소라가 먼저 흥분하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
볼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묘한 색기를 흩뿌리고 있다.
원래부터 섹스 머신 같은 몸매이긴 하지만.
"잠깐만요. 조금 흥분해서."
"응?"
"저 현직자한테 직접 들었는데요."
"뭐, 뭘?"
"애널리스트의 소질이 있대요."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맞아. 기 센 년은 소질이 있다고들 하지.'
주식을 배울 때 알랑방구를 껴서 그렇지.
평소에는 스킨십도 잘 허락해주지 않는다.
다른 남학생들 앞에서는 여전히 철벽을 치고 있다.
그 현직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개발됐어?"
"네? 아직 채용은……."
"뚫린 거야? 나도 써도 돼?"
"뭔 개소리야 이 새끼는!!"
빼액 소리를 지른다.
여성 호르몬 높아 보이는 가느다란 고음이 고막을 찢으려고 한다.
'아니, 뭐 애널 소질 있다며.'
맨날 지가 해놓고 지가 화를 내.
소라가 말하려는 애널은 다른 곳이었다.
"아 경제 애널리스트?"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어쩔 수 없지."
"뭐가 어쩔 수 없는데 이 정신병자야."
"니 몸매가 야하잖아."
"!!"
애널리스트.
경제 분석가를 칭하는 용어다.
보고서를 올리는 사무직도 있고.
'경제TV에 나와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는 인간도 있고.'
업계에서는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애널리스트라고 포괄해 말한다.
"역시 선배 절 그런 식으로."
"뭐가?"
"성적인 눈길로 보고 있었냐고요."
"당연하지. 처음부터 그랬는데."
"^#&!#%!#!"
소라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냥 별 의미 없이 색기가 흐르는 거였나 보네.'
잔뜩 흥분해서 왔길래 몸의 잔열을 식히기 위해 나를 덮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 거면 땡큔데.
"뭐, 어때. 이제 익숙하잖아."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소름 돋는데."
"프렌치 키스도 하면서?"
"그건 선배가 담배 펴서. 아니, 설마 그것도 일부러……."
"당연하지."
소라를 만난지 어언 반년.
결코 짧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지만.
'되게 빠르게 성장하더라고.'
처음에는 딱딱하기만 했다.
침대에서 재미없을 것 같은 여자.
조금씩 문을 열어젖혔다.
특히 키스맛을 알게 된 이후로는.
벅벅!
소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팔목으로 입술을 부빈다.
나를 째려보고 있다.
"첫키스였는데 이 개새끼. 나쁜 새끼."
"왜 너도 즐겼으면서."
"그게 무슨 성폭력 범죄자 같은 소리야!"
"그렇게 내숭 떨 필요 있어?"
아주 지긋이.
이내 다른 생각도 드는 듯 날카로웠던 눈길이 조금은 풀린다.
그래도 지 입으로는 못 말하겠다.
볼을 부풀린 채 화났다는 표시를 틱틱 낸다.
'여자는 솔직하지 못하는 생물이라니까.'
고고한 자존심.
소라는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은.
"어디 가서 소문 낼 것도 아닌데 뭐."
"정말 비밀로 할 거죠?"
"솔직히 키스 기분 좋았잖아."
"사실 조금 좋았어요."
"오."
"꼽냐?"
엎질러진 물
한 번 뺏겨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다.
본인도 썩 즐기고 있다.
만약 정말 싫어했다면 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질이 있다니까.'
내가 괜히 착각을 한 게 아니다.
현직자분이 친절하게 가르쳐준 줄 알았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요?"
"안 말해. 오빠랑 비밀친구 하자."
"키스 이상은 안 할 거에요. 절대."
"소라가 안 내키면."
어떤 일이든 처음이 가장 어렵다.
그 첫 단추를 어떻게든 꿰맨 상황이다.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좋아.'
욕망에 솔직한 여자.
두꺼운 가면 아래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간신히 갇혀있던 색기가 뚝뚝 떨어진다.
볼이 발갛게 상기돼있다.
"나 담배 피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니까요 정말……."
필요한 건 계기.
앉아있는 내 위에 아주 자연스럽게 올라탄다.
가까이서 보자 알겠다.
흥분해서 온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뭔 일 있었어?"
"말했잖아요. 현직자분 만났다고."
"여기?"
"만지면 뒤진다."
소라의 꿈.
트레이더가 되는 것이다.
관계자를 만났다면 흥분할 만하다.
맥박이 빠르다.
체온도 평소보다 높다.
뛰어온 것인지 땀도 조금 나있다.
"인터뷰도 그분 부탁으로 했던 거거든요. 고맙다면서 본사에 초청해주셨어요."
"그래서?"
"가서 구경도 좀 하고, 애널리스트분들 밥도 같이 먹었어요."
"소라의 꿈 아니야? 좋았겠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머리도 복잡하고……."
"오빠한테 풀어봐. 받아줄게."
"네."
정신적인 흥분과 육체적인 흥분.
어느 쪽이든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 수 있다.
소라의 에쁜 혀가 넘실거린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뱀처럼 내 입술을 노려온다.
할짝!
쪼오옥~!
확실히 잘한다.
가르친 보람이 있다.
하지만 너무 틀에 얽매어있다.
"너무 정해진 대로 할 필요 없어."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