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450)

윤곽을 보니 그녀가 확실하다.

마음을 먹은 염유안은 조용히 옆자리에 앉는다.

"촬영으로 오신 분이죠."

"예, 저는……."

"동아리 부장은 혜리에요. 실례가 안된다면 저쪽으로 가주실 수 있을까요?"

가시 돋친 말투.

유려한 외모만큼이나 벽이 높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 학생이 그 유명한…….'

수개월 전 유튜브에서 소란이 있었다.

한국대의 한 학생과 교수가 싸운 것이다.

그 내용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염유안의 눈길을 잡아 끈 건.

꿀꺽!

엄청난 가슴.

딱히 성희롱이 아니다.

해당 영상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눈에 띈다.

"저는 학생분에게 볼 일이 있거든요."

"저는 볼 일이 없는데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셨던 한국대생 맞으시죠?"

"……."

경제학과.

조금 더 조사해보니 신입생이라는 정보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 문제였고.'

증권사는 경제학과 졸업생의 취업 3지망 안에 든다.

개미투자증권에도 여럿 있다.

염유안 자신도 한국대 출신.

후배들을 닦달해 수소문을 하자 어렵지 않게 범위를 좁혔다.

"SNS도 하시죠?"

"그걸 어떻게……."

"아! 다른 게 아니고요. 저도 여기 대학 나왔거든요. 유능한 졸업생분을 모셔가기 위해 교수님께 매년 추천을 받는데, 그중 한 명이 소라 학생이었습니다."

"서, 선배님이셨구나……. 안녕하세요."

쑥스러운 듯 가볍게 목인사를 해온다.

방금 전 말한 것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교수님께 추천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전후 과정이 조금 바뀌어있다.

아무리 그래도 SNS를 일일이 찾아보진 않으니까.

'그걸 봤어? 회사들이 입사 지망생들 SNS까지 체크한다더니 정말이었구나…….'

소라로서는 당황스럽다.

유능한 졸업생.

자신이 교수님의 추천을 받은 것도 받은 거지만 SNS에 적은 내용은.

"수익이 상당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겸손하시네요. 그렇게 몇 배씩 수익을 봤으면 자랑을 하실 만도 한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개미투자증권의 염유안 차장이라고 합니다."

"염유안 차장님이요?!"

허영심이 포함돼있다.

자신의 실력으로 본 수익이 아니다.

찬욱 덕분에 벌었다는 걸 알지만, 알지만.

'나도 가끔은 자랑하고 싶었는 걸.'

소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그것을 증권사 관계자가 봤다.

심지어 염유안 차장.

염차장은 인기 애널리스트다.

자신도 예전에는 그의 시황 방송을 많이 참고했다.

"절 아시나요?"

"네, 경제 방송에서 많이 봤어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러시구나~ 제가 절대 미심쩍은 의도를 가지고 말을 건 게 아니라는 오해는 풀리셨는지."

"그럼요!"

찬욱을 만나며 기존의 주식 세계관이 완전히 깨졌다.

그렇다 해도 한때 존경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두근!

인정욕.

솔직하게 없을 수가 없다.

업계 선배인 그가 알아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아 그래서 반도체를!"

"네, 코인을 채굴하는데 그래픽 카드 같은 게 많이 들잖아요? 그러면 반도체 시장이 좋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와~ 이런 말을 어디 애널리스트분도 아니고 학생분께 듣는다는 게 확실히 한국대가, 한국대인 이유가 있네요!"

바로 옆에서는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소라의 귀에는 그런 것이 들릴 턱이 없었다.

'혹시 다른 내용도 봤으려나? 내가 분석한 거.'

SNS에 올린 내용.

그날의 과오를 매일매일 일기 형식으로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스스로 말하긴 뭣하지만 맞은 것도 꽤 있었다.

만약 봐줬다면 영광인 일이다.

"학번을 몰랐다면 최소한 졸업생, 혹은 경력이 있으신 분일 줄 알았을 거에요."

"그런가요?"

"이른 나이에 벌써 투자자의 에고가 잡히신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늦은 나이에 알게 된 저로서는 부러울 지경이에요."

"투자자씩이나……."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찬욱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차게 말아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투자자, 투자자.'

칭찬을 받는 건 역시 기분이 좋다.

맨날 누군가한테 구박만 받다 보니 더 사무치게 된다.

'음~ 훌륭해. 사진으로 봤던 것 이상이야.'

하지만 염유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기 애널리스트로 바쁜 자신이 한국대까지 온 이유.

그럴 만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유안은 상당히 진지하게 소라라는 인재를 눈여겨보았다.

"장래희망이 트레이더라는 것도 보았거든요."

"그것도……, 보셨어요?"

"어때요? 졸업 후 개미투자증권에서 일해보시는 건. 다만, 트레이더가 아니라 애널리스트입니다."

"애널리스트요?"

예쁘기 때문이다.

정말 다른 이유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간판 애널리스트로 밀 이유는 충분하다.

'아저씨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주식 방송의 시청자층 절대 다수는 아저씨들이다.

젊은 세대, 여성도 종종 있지만 소수.

그 아저씨들에게 안 먹힐 수가 없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해도 아가씨가 나오면 환장한다.

"네, 저 같은 애널리스트요. 혹시 애널리스트쪽은 생각이 없으셨다거나?"

"그건 아닌데 당황스러워서. 너무 갑자기라."

"그렇겠죠. 소라 학생이 아직 1학년인데."

그리고 이번 취지.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재가 필요하다.

'말만 잘 따라준다면.'

오늘 촬영으로 나올 뉴스를 이용한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어줄 수 있다.

졸업 후에는 애널리스트.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상부에 적극 추천할 것이다.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니까 재학 하시는 동안 천천히 고민해보세요."

"아, 네……."

"그리고 한 가지 부탁 드릴 게 있거든요."

"부탁이요?"

그 선행.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

염유안도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다음화 보기

9시 뉴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코인 투자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코인 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성 언론답게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코인으로 돈을 잃은 사람.

일상 생활이 안되고 있는 사람.

코인이 유행을 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코인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코인을 이용한 역발상 투자로 수익을 본 학생들이 있어 화제입니다!》

합리적인 투자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증권사의 입김이 섞여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국 주식 갤러리〕

─유사 도박이나 진짜 도박이나 시발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대생 왜케 예뻐

─CBS에서 섭외한 배우 아님??

─증권사들 요즘 똥줄 좀 타나 보네 ㅉㅉ

 합리적인 의심 정도는 들 수 있다.

닳고 닳은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유사 도박이나 진짜 도박이나 시발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인 까면서 주식 빠는 기자들 수준 wwwwwwwwww

└ㄹㅇ 어차피 도박인데

└증권사에서 돈 받은 거겠지

└학생 투자자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

└우리야 뭐 주식 시장 유입들 많아지면 만족햐

주식 시장이 침체기일 때.

호재 뉴스를 띄워 개미 투자자들을 꼬시는 건 흔한 레퍼토리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닌지?

인터뷰를 한 학생들이 비주얼이 좋다 보니 의심을 사고 있다.

─CBS에서 섭외한 배우 아님??

[한국대 주식 동아리 부장 인터뷰.jpg]

공부만 한 년이 저렇게 예쁠 리가 없잖아

└귀염상이네 내 취향

└ㄴㄴ 학과에 1명쯤은 있을 만함

└지잡대면 이해하는데 한국대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 다음에 나오는 년이 말이 안됨

주식을 하면 할수록 의심병이 깊어진다.

기관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는 진작에 사라졌다.

그렇기에 생긴 오해.

하지만 투자자들의 착각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지금까지 본 수익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운 좋게 조금 잘 돼 가지고…….》

《그 조금이?》

《원금 800만원에서 2700 정도까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주식 동아리에서 가장 큰 수익을 본 학생으로 소개되었다.

외모가 워낙 눈에 띄거니와.

─얘가 현실판 주식존예여신 아니냐??

[소라 인터뷰 캡처.jpg]

저 외모+가슴에

시드 3배로 불리는 수익률이면

유튜브 책팔이 새끼들 왕복 싸대기 때리는 각인데

└연예 기획사 애 하나 알바로 쓴 거겠지

└우유통 뒤지게 크네 진짜 ㄷㄷ

└현실판이면 현실 아닌 판은 누구냐?

└음식 짤만 올리는 그 돼지년이랑은 비교하지 마라

수익률도 어처구니가 없다.

주식을 하는 사람이기에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안다.

개미 꼬시기용 짜고 치는 쇼 아니냐?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

김흰둥이 1일 전 乃 1025

이분 물로켓 교수 영상에서 본 거 같은데!

────────────

신귀공자 1일 전 乃 892

한국대 ㄱㅅ녀

────────────

누나쭈쭈줘 1일 전 乃 711

진짜 존나게 크다

물론 수익이 ㅎ

────────────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집단지성에 의해 밝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유튜브〕

「이슈킹. 한국대 가슴녀 최신 근황」 − 조회수 51만회 · 3일 전

「TV병신. 이 외모에 주식까지? 현재 난리 난 존예여신」 − 조회수 29만회 · 1일 전

「괴인박제. 스무 살에 수익 2천만원 찍은 여대생 (개이쁨)」 − 조회수 12만회 · 2일 전

상반신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흔히 보기 힘든 몸매와 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공개된 것이다.

유튜브 렉카들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어제 뉴스 봤어?"

"안 봤는데 왜?"

"지금이라도 봐! 유튜브에서도 난리 났는데……."

그 여파.

경제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같은 학과 학생이 뉴스에 나왔다.

자랑스럽다는 이유도 있지만.

"와."

"와!"

"진짜 뒤지게 크다……."

"이런 애가 우리 학과에 있었어?"

"얠 몰라? 17학번 수석인데."

"실물로 보면 더 쩔어."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학과생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이 익은 사람이다.

신입생 수석.

환영회 자리의 당찬 포부도 인상이 깊다.

그 이상으로 눈에 띄는 건.

꿀꺽!

아리따운 외모.

그리고 신체 기관의 한 가지 특징이었다.

눈길이 안 갈 수가 없다.

남자로서 욕망에 솔직해지고 싶다.

"선배님들 무슨 일이에요?"

"그게 그……."

"동아리 가입하려고 왔지!"

"하준 선배 3학년이잖아요. 취업 준비 바쁜 거 아니었어요?"

"바쁜 건 맞는데 주식에 관심이 좀 생겨서 그렇지."

"혹시 엄한데 관심 생긴 건 아니고요?"

""…….""

주식 동아리에 가입 희망자가 대거 몰려온다.

원래라면 환영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동아리 같이 하다 보면 꼬실 수 있지 않을까?'

'친구만 돼도 행복할 거 같은데.'

'4살 차이면 선도 안 본다고!'

흑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혜리에 의해 그런 인원들은 걸러지고 있다.

남은 인원들로도 충분하다.

뉴스를 탄 이후 주식 동아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소라야."

"응?"

"남자 애들 신경 꺼."

"지들은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난리야."

하지만 장본인으로서는 불편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유명한데 이슈로 또 떠들썩하다.

힐끗힐끗 바라보는 시선이 더 잦아졌다.

여자 동기들이 둘러싸고 수호하고 있지만.

'왜,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당사자는 조금 다른 심정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