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450)

세상에 돈으로 안되는 건 없다.

만약 안된다면 돈을 덜 썼기 때문이다.

예술품 경매에서 최고가로 싹쓸이했다.

'주식 세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

작전주.

가격을 의도적으로 띄워버린다.

그러면 진짜 좋은 주식인 줄 알고 사람들이 산다.

그것과 비슷한 현상이 예술계에도 벌어졌다.

작품이 비싸게 팔리자 예술가들은 큰 돈을 벌었다.

작품도 인정을 받는다.

비싸니까 대단한 게 맞겠지?

돈 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거머쥐게 된다.

'그렇게 공산주의의 문화 침략을 막아냈다는 훈훈한 이야기지만.'

그 여파로 우리는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그림이 수백 억을 호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것이 현대 미술 하나 뿐인지.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 다른 생각도 인다.

비트코인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정부가 맘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어.'

데이터 쪼가리에 가치를 부여한다.

투자자들이 너도 나도 사기 시작한다면?

시장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다.

본래는 부동산, 주식, 채권 등으로 가야 할 돈이 비트코인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억누르는 효과가 생긴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채권을 더 발행하는 게 가능하다.

글자 그대로 돈을 만들어내는 기축통화국의 특권이다.

'그것을 남용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다.

미국은 자기들 멋대로 돈을 윤전기로 찍어내서 사용하고 있다.

1조 달러 없어?

없으면 만들면 되지 ㅋㅋ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이런 느낌이다.

당연하게도 부작용이 따른다.

시장에 돈이 미친 듯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불과 10년 전.

코로나 사태로 세계 물가가 개지랄이 난 건 120% 미국 책임이었다.

'그 칼날이 나에게만 향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최근 들어 그런 불안감이 엄습한다.

* * *

과거의 일.

"선배는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요?'

"무슨 얘기였지?"

"코인이요 코인! 사람이 얘기하는데 멍 때리고 있으면 어떡해요!"

아무래도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내가 세계 경제의 진실에 대해 눈치챈 시발점이었으니까.

'비트코인이라…….'

투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산이다.

그 정도로 가치가 폭등했던 것은 없었다.

당연히 나는 알고 있다.

비트코인이 떡상할 것도 앞으로는 더 오를 거란 사실도 말이다.

그럼에도 하지 않은 건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않았다는 표현이 옳다.

"선배는 코인 어떻게 보시는데요?"

"예쁘지."

"네?"

"가슴도 크고."

"뭐라는 거야 진짜!"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굳이 나쁜 기억은 아닌데 가능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런 거 없어도 전혀 상관없기도 하고.'

애초에 탑급 레벨이 되면 기회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요구되는 것은 오직 실력.

강자의 세계는 미래가 조금 보인다고 어드밴티지가 아니다.

원피스에서도 견문색 쓰고 개같이 처맞는다.

"제가 좀 생각을 해봤는데요."

"너도 생각을 해?"

"우씨! 저한테 그런 말하는 거 선배가 유일하거든요."

하지만 아직은 약자.

이용할 수 있는 이용해야 한다.

약간의 PTSD가 있다고 주저할 성격은 아니다.

'확실히 코인은 매력적인 자산이었지.'

단순히 가격이 오른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코인의 특수성, 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알고 있는 입장이다.

"아무튼 제가 보기에는요."

"그래, 너의 시답잖은 생각을 들어주마."

"코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 같아요."

"어째서."

"블록체인이라는 것부터 미심쩍은 것 같고……."

현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만큼 비트코인은 파격적이었다.

실물이 존재하지도 않는 자산이 있다니.

'약간 브루마블 돈 같은 느낌이지.'

씨앗은행 100만원권.

대체 이거 누가 받아줄 건데?

소라의 의문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탈중앙화도 어불성설 같고……."

"어떤 부분이?"

"비트코인의 가치를 대체 누가 보증해준다는 거에요."

"씨앗은행이 보증해줄 수도 있지."

"네?"

그것이 맞다.

코인충들의 어설픈 논리에 설득 당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기특하네.'

상담해오는 것도 귀엽다.

하지만 투자자로서는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니가 코인에 대해 몰라서 그런 게 아니고?"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인정이 빠른데?"

"아직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 안 하니까."

그래도 기본기는 되어있다.

그동안 조교.

아니, 가르쳐온 보람이 있다.

'주식 시장이라는 게 원래 그래.'

내 생각엔 이게 맞는 거 같은데!

시장은 이상하게도 반대로 갈 때가 있다.

의심 속에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틀렸다는 걸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니가 왜 모르겠는지 알아?"

"모르니까 물어보죠."

"코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함과 약함 두 가지가 전부 필요하다.

아직은 없다.

'가르쳐줄 수 있지.'

소라만 헷갈려 하는 것은 아니다.

날고 기는 월가 투자자들조차 깨닫는데 몇 년씩 걸렸다.

그런 고급 정보.

특별히 가르쳐준다.

코인은 일반적인 자산과는 궤를 달리한다.

"알아요."

"뭘 아는데?"

"대충……, 개잡주 같은 거 아니에요? 도박성 투기 자산."

간단하게 결론지어질 이야기가 아니다.

월가 투자자들도 당연히 개잡주 정도는 알고 있다.

'코인을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지.'

그 정도로 결론이 났다면 사태가 오래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테마주도 몇 년씩 가지는 않으니까.

"코인은 도박이 아니야."

"그럼 정말 미래 화폐로서 가치가……."

"그것도 아니야."

"그럼 뭔데요 대체!"

"종교지."

신앙심부터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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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당연히 숏이 이겨야 하는데!"

흔히 있는 이야기다.

확신을 가지고 투자했던 자산이.

"왜? 생각대로 일이 안 풀려?"

"그게, 그게 말이에요. 시간만 조금 더 있으면……."

"현재는 물려있다는 거잖아."

반대로 움직인다.

귀신이 곡할 노릇.

사람들이 이성이 있다면 이런 판단을 할 리가 없는데?

'그래서 재밌는 게 코인이지.'

코인판이 멸망할 악재가 떴다.

대규모 숏을 쳤던 앤드루가 도리어 손해를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정상화되겠지."

"보스 아직 숏커버링을 할 만한 상황은……."

"니 생각대로 내려갈 거라는 말이야."

당황할 만하다.

특히 주식 투자자들은 더 그러하다.

코인판이 가진 특수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공포는 제대로 줬거든요."

"그래?"

"한 번에 쏟아서 피 말리고 살려주는 척하면서 다시 말려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를 잘못 본 거지."

"네?"

일반적인 개미들이라면 리스크가 커졌을 때 겁을 먹는다.

이거 진짜 떡락하면 어떡하지?

'공포가 생기는 게 당연하잖아.'

돈이 걸린 일이다.

모의투자를 하는 것처럼 아님 말고식의 생각을 할 수 없다.

돈이 많은 기관이 유리한 이유.

하지만 세상은 넓고, 예외는 있다는 이야기다.

딸칵!

시가에 불을 붙인다.

상당히 쓸만한 녀석이 새로 들어왔다.

"저도?"

"돈도 못 벌면서."

"시가 한 대 가지고 째째하게."

앤드루에게도 하나 건네준다.

어떤 시가인지 알면 까무러칠 것이다.

'물어보면 알겠지.'

입안 가득 차는 연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오 이거 위스키 숙성 시가죠? 꽤 좋은 걸 쓴 거 같은데……."

"패피 밴 윙클."

"네? 콜록! 콜록!"

"귀한 거야 아껴서 펴."

어른의 장난감.

시가도 숙성을 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피고 있는 건 위스키를 사용했다.

'엄청나게 좋은 위스키거든.'

한 병에 억 단위를 호가한다.

아니, 돈이 있어도 구하기가 힘든 버번계의 하이엔드다.

그런 위스키를 숙성한 오크통에 담뱃잎을 재웠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시가로 재탄생했다.

후우~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것.

진득한 바닐라 향과 노골적인 우디함이 느껴진다.

새콤달콤한 과일향이 뒤따른다.

이렇게 다채로운 향의 시가는 드물다.

워낙 좋은 위스키에 숙성한 덕분이다.

특별한 루트를 거쳐서 겨우 손에 넣었다.

그 가치를 모르지 않다.

앤드루가 손을 덜덜 떨며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너는 니가 왜 실패했는지 알아?"

"……."

"윽박지르는 거 아니니까 대답해."

"모, 모르겠습니다 보스!"

딱히 이별 선물을 주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후우~

시가 연기를 들이마시니 진정이 된다.

덜덜 떨던 손이 멈춘다.

동시에 무언가 떠오른다.

앤드루가 알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한다.

"혹시 마약이라도 한 걸까요?"

"뭐?"

"그 정도는 해야 공포에서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국이었다면 농담.

미국에서 마약은 일상적이다.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투자자들 중에는 특히 그렇고.'

내 직원들 중에도 담배 대신 마리화나를 태우는 애들이 있다.

뉴욕에서는 일부 제품이 합법이다.

"좀 센 걸로 피면……."

"아니야."

"역시 아니겠죠 헤헤."

"마약보다 더 심하지. 어떤 의미에서는."

"?"

앤드루의 말도 일리는 있다.

실제로 최전방의 군인에게는 마약이 투여된다.

무슨 스팀팩 용도가 아니라 공포 때문.

마약 없이는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어.'

그 이상으로 군인들이 목숨 걸고 싸우게 만든다.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된 방법이다.

* * *

"종교요?"

"그래."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를 하려는 거에요."

"……."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을 투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투자자는 합리적인 동물이니까.'

코인.

굉장히 특수한 자산이다.

돈을 버는 회사도, 가치 있는 원자재도 아닌데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아무리 봐도 저는."

"도박이라고?"

"네."

"개잡주처럼?"

소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하기도 전에 대답을 하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물론 주식에도 그런 케이스가 있지.'

작전주, 밈 주식.

본래의 가치보다 몇 배, 많으면 몇십 배까지도 가격이 뛴다.

완전히 도박 같다.

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주가가 올라가는 원리가 존재한다.

작전주는 세력이 매집을 했기 때문이다.

밈 주식은 유동성+숏커버링에 근간을 둔다.

"그래도 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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