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450)

스스로에게 자부심도 생겼다.

'선배 덕분이긴 하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다.

가끔은 진심 어린 조언도 해주는 의외로 좋은 사람.

그래서 문제다.

얼마 전 축제에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갔음."

"대충 찍으면 빨리 끝난다고 좋아하더라.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몰라."

기분이 많이 들떠있었다.

선배에게 신세진 것도 많다.

막말로 뭐 닳는 것도 아닌데.

눈 딱 감고 10초 정도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저질렀다.

뭔가 유쾌한 분위기로 넘어갈 줄 알았다.

'……진짜 무슨 생각인 거야.'

감감무소식.

도리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니, 그것이 벌써 2주가 되니 불안하다.

미친 듯이 불안하다.

마치 신용미수를 쓴 듯한 기분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두 번 경험이 있다.

그 인간 때문에.

"맨날 성희롱함."

"그치, 그치!"

"그래도 선은 안 넘지 않아? 말로만 그러고."

""…….""

또 그 인간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차라리 들이댔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혹시 내가 너무 진지하게 대응한 건가?'

이성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알 수가 없다.

혹시 혜리나 수현은 알지 않을지.

수현이는 남친이 있다.

혜리는 아마도 있었다.

그래서 잘 받아 넘기는 걸지도 모른다.

"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노코멘트."

"그 선배가 이상한 말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화를 내야 될지 받아줘야 할지 모르겠어."

""…….""

'이 년도 조만간 뚫리겠구만.'

'소라 철벽 무너지면 재미있겠네.'

혜리로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것 같아 찜찜하다.

수현으로서는 학교의 여신인 그녀가 타락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짝!

친구로서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은 사실.

사이가 나쁜 것보다는 좋은 편이 낫다.

혜리가 박수 소리를 내며 상황을 정리한다.

"그냥 적당히 하면 되지 않을까?"

"적당히?"

"욱오빠 원래 좀 적당적당한 사람이잖아. 큰 의미는 없을 거야."

"으음……, 그도 그렇겠네."

솔직하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소라는 찬욱이 신경 쓰이고 있다.

* * *

여의도 증권가.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매를 하고 있는 트레이더들의 얼굴이 밝다.

최근 증시가 좋기 때문이다.

상승장.

뚜렷한 악재가 없고, 거래대금이 늘어나며,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증권가에게 있어 호황기다.

여행에 성수기가 있는 것처럼 주식에는 바로 이 상승장이 있다.

"롱이지?"

"무조건 롱이긴 한데……."

물론 이성과 감성은 다르다.

흡연실.

담배를 들고 있는 트레이더의 손이 덜덜 떨린다.

트레이딩의 긴장감이 남아있다.

오직 숫자만으로 시장의 움직임을 추측해야 한다.

"알잖아? 외인들 일부러 지랄하는 거야."

"그렇지……."

"LP 믿고 흔들면서 프로그램 매도 유도해서 받아먹는 거지. 개미도 기관도 들어오고 있는데 이 흐름을 어떻게 바꿔."

단순한 훼이크.

하지만 진짜로 맞을 때도 있다.

시장에 풀리지 않은 초고급 정보를 매동으로 읽어낸다.

톡!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고민을 하고 있던 탓에 다 타들어간 담배 끝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개스피가 무슨 2400을 돌파해 가지고."

"요즘 무슨 황스피라고 불리잖아. 좆스피는 2000이 딱인데."

'숏 마렵게 만들고 있어.'

주가가 올라가기만을 원하는 개인 투자자들과 달리 전문 투자자는 양방향을 전부 본다.

발라 먹기 위함이다.

올라갈 때는 롱.

내려갈 때는 숏.

양쪽에서 다 먹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만한 리스크도 동반한다.

이런 상승장에 숏을 치면 남들 다 먹을 때 혼자 못 먹는다.

띵동!

남들이 먹는 걸 보고 허겁지겁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현재 각 증권사들의 창구에는.

"예금 하러 오셨나요?'

"아뇨, 펀드라는 게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아, 펀드요?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호갱님!"

투자를 하러 온 사람들로 넘쳐 난다.

친척이, 친구가, 인터넷에서 들었다!

'주식 하면 무조건 돈 벌 수 있다며?'

대충 검색도 해봤다.

그래프를 보니까 우상향하더라.

투자를 해두고 잊고 살면 돈이 복사되겠지.

"개미들 또 들어왔어?"

"맞지? 무조건 롱이라니까. 조금 더 거품 만들어야지. 그러면서 천천히 물량 떠넘기고."

주식 시장이 돌아가는 이치를 전혀 모르고 말이다.

약한 자는 잡아먹히게 되어있다.

바보들도 먹을 수 있는 시기.

상승장은 유일하게 맹수도 먹잇감도 평화로울 수 있는 나날이다.

타악!

그런 상승장에도 인상을 구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일했던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이덕수였다.

'하, 씨발.'

일했던.

과거형이다.

이덕수는 고개를 올려 건물의 전체 그림을 새겨 넣는다.

30층 높이의 고층 빌딩이다.

매끈한 유리로 되어있는 고급스러운 외관은 증권사의 상징이다.

하아~

그곳의 트레이더.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가장 많은 돈을 만진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생의 자랑이었다.

'오래 해먹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았는데.'

개미투자증권 트레이더의 평균 근속 기간은 2년이다.

그마저도 괴물 같은 몇 명이 끌어올렸을 뿐.

반년도 못 버티고 잘리는 신입이 대다수다.

3년차인 자신은 중견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야!"

"어, 안녕."

누구에게나 그 날이 온다.

자신한테는 좀 더 일찍 왔을 뿐이다.

능글맞은 입사 동기의 얼굴이 보인다.

눈치챘을 것이다.

아니, 모를 리가 없다.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갈색의 종이 박스는.

"얌마 말은 하고 가야지."

"퇴직하는 거 한두 명 보냐."

"아니, 뭐 그렇기는 하다만……."

퇴사 박스니까.

동기이기에 더 보여주기 싫은 것도 있는 법이다.

지금의 초라한 자신을 말이다.

'볼 낯도 없고.'

자신 말고는 같은 기수가 없다.

동기를 남겨두고 떠나는 건 여러모로 마음에 걸린다.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까치 정도는 괜찮잖아?"

"사원증도 반납했는데?"

"됐어, 따라와."

한 가지 전해줄 말도 있다.

사원증은 없지만 안면은 있다 보니 프론트에서 통과를 허락해준다.

'미스김도 못 보게 생겼네 참.'

그 시발점.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다.

퇴직까지 당할 만큼 심각한 손해는 아니었다.

복구하고 싶다는 본능이 문제가 되었다.

가능하면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어쩌다가 니 정도 되는 애가……."

"이 바닥 다 알잖아."

"뭐?"

"자존심이 문제라는 거."

딸칵!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인다.

큰 돈을 만지는 중압감을 떨쳐내기 위해 달고 살았다.

'한동안 금연 할 수 있겠구만.'

뇌동매매라고 부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안되지만, 안되는 걸 알고 있지만 반드시 겪는다.

초보 투자자든, 숙련된 투자자든 마찬가지다.

후자에 속하는 자신도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길 때가 있다.

"그 불개미."

"혹시 내가 짚어준……?"

"그래, 따라가다 쪽박 찼어. 보통 놈이 아니더라고."

이기려고 했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더 옭아맨다.

상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다는 느낌.

'은퇴한 관계자? 최소 이쪽 정보를 알고 있어.'

고작 개미 한 마리가 말이다.

울화통이 터지고, 승부욕이 발동된 것은 반쯤 필연이다.

"그러게 적당히 먹고 나오지."

"자존심."

"하기야 니가 몰라서 실수를 했겠냐만은."

물량 털기.

존버.

물량 털기.

존버.

작은 몸집을 약삭빠르게 이용한다.

고양이를 쫓던 쥐는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았다.

'아니지.'

주식 시장이라는 야생에는 고양이와 쥐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이상의 거대한 맹수들이 득실거린다.

틈을 보이니 뜯어 먹힌 것이다.

개미한테 속기는 했어도 당한 것은 결국 이 거대한 세상이다.

기관 투자자.

트레이더라고 으스댔을 뿐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한 마리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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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타닥, 탁!

소라가 대학교에 들어간 이유다.

누구나 공부를 하기 위해 들어가는 장소지만.

'확실히 학점이랑 주식은 연관 관계가 없겠지.'

주식을 배우는 곳은 아니다.

1학기.

짧은 기간이지만 그 정도 사실을 깨닫는 데는 충분했다.

어느 정도 참고는 된다.

전문 용어라던지, 시장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라던지.

그것도 주식을 할 줄 알 때나 도움이 되는 것이다.

모르고 알아서야 죽은 지식이다.

'교수님도 주식은 딱히 특기라고 하지 않으셨고.'

스포츠학을 배운다고, 룰북을 달달 외운다고 스포츠를 잘해지는 게 아니다.

해봐야 한다.

그 이상의 해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멋모르고 도전해도 될 만큼 만만한 시장은 아니다.

배우는 방법.

머리를 굴려봐도 단 한 가지 뿐이다.

본의치 않게 여전히 하고 있다.

─주식존예여신 이장님이 주신 고기 먹는뒈

싸구려 고기가 너무 마슀는 거야

왜 이럭훼 마슀는지 물었더니 숙성을 했뒈

아줬씌드라 왜 고기는 숙성하면 마슀써지는 거야?

└맨날 먹는 얘기여

└이장님이 개 잡아줬어?

글쓴이− 주식존예여신에게 예우를 갖춰라 ㅗㅗㅗ

└묵은 김치가 겉절이보다 부드럽잖아. 숙성을 하면 감칠맛도 생기고 고기 본연의 맛도 강해지는 거지

'오……, 그래서 선배가 만든 스테이크가 맛있었구나.'

주식 공부에 도움이 된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실제로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다.

눈팅만 해도 얻어가는 자연스럽게 지식을 얻어간다.

물론 공부만 한다면 지루하겠지만.

─삼전 51층 투자자의 점심

[삼다수.jpg]

배부르다

└51층이 삼다수를 마셔??

└수돗물 마셔라

└물 탈 돈을 처먹고 있누

└돈 주고 물 사먹는 꼬라지 보니까 아직 먹고 살만한가 보네

커뮤니티.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노는 곳이다.

'깔깔!'

재밌는 글들도 보인다.

어디까지나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통할 유머 코드.

─실패한 투자자의 저녁

[설렁탕 사진.jpg]

동네 국밥집 ㅠ

└자산가임?

└기만자 새끼……

└생일이냐?

└최후의 만찬이네

'댓글이 더 웃기단 말이야.'

웃을 수 있다는 건 자신도 투자자가 되었다는 것일 테다.

오도독!

당근 스틱을 오물오물 씹으며 보고 있다.

이런 잡소리에 가까운 글들도 있는 반면.

─애들아 주식 샀다가 물렸는데……

한일전자 한 종목 보유 중이고 평단 5500원대야.

여름주인데 올해 아직 안 올랐거든?

이거 올해 가망 없어 보이냐

└좀만 더 버텨봐

└선반영인 주는 미리 사야지

└형씨 여름옷은 겨울에 사야 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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