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450)

그 증거.

교이쿠상은 흘깃 옆 테이블을 본다.

그리고 덥썩 포크로 스테이크 한 점을 뺏어온다.

"아! 그거 제 건데요."

"실례."

우물우물 입안에서 씹는다.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맛.

굽기의 정도도 같다.

교이쿠상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 증거라면 확신을 해도 될 것이다.

"험험."

"선생님?"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말씀은!"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군요."

일단은 요리 방송.

막걸리 맛만으로 체면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이쿠상이 미식조무사인 이유

1. 평양냉면에는 양념을 넣지 않는다

→ 넣음

2. 보양식은 한국만 먹는다

→ 동서고금 막론하고 다 먹음

3. 흰 달걀이 갈색 달걀보다 더 맛있다

→ 단순한 색깔 차이

4 .명란젓은 일본 음식

→ 부산에서 건너온 명란젓 이야기가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됨

└맛성근이 또

└럭키 음식 블로거잖아 ㅋㅋ

└방송에서 은근히 일본 요리 치켜세우는 거 역겨움

└먹방 쿡방 유행에 편승해서 전문가인 척하는 아조씨

교이쿠상도 알고 있다.

일부 우매한 군중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방패삼아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것.

'네까짓 것들이 떠들어봤자.'

자신은 방송가에서 자리를 잡았다.

꾸준히 능력만 증명하면 주구장창 해먹을 수 있다.

"거기 학생……."

"이찬욱이라고 합니다."

"찬욱군의 고뇌가 느껴지는 스테이크였습니다. 한 명의 미식가로서 높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분위기.

전문가로서 신뢰를 주어야 한다.

상대의 사소한 장점을 칭찬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주목시킨다.

'한 조각 먹은 것만으로 밝혀냈다는 느낌의 편집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풍부한 육향.

촉촉한 식감.

전부 수비드를 했을 때의 특징이다.

굽기의 정도가 결정적이다.

자신의 고기와 옆 테이블 고기 모두 똑같은 웰던이었다.

"두꺼운 고기를 이렇게 안쪽까지 균일하게 익히는 건 쉽지 않죠."

"어, 그렇네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험험, 하지만 수비드를 하면 간단하죠."

"수비드가 뭐죠?"

시청자들을 위해 설명을 해준다.

수비드라는 전문 용어를 알지 못할 테니 말이다.

'물론 이것으로 끝나는 건 아니지.'

수비드는 단점이 있다.

물로 익히는 탓에 고기의 수분기가 많아져 잘 구워지지 않는다.

촤아아악……!!

단점을 시어링으로 극복한다.

토치 등 불을 일으키는 도구로 고기 표면을 직접 지진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불길.

아마 그를 위한 것일 테다.

자신이 칭찬까진 해준 이유가 있다.

"훌륭한 요리 동아리네요. 연구를 많이 했어요."

"어, 선생님……."

"고기가 육향이 진한 것 보니 호주산보다는 미국산. 그리고 부위는 마블링이 적은 것 보니 사태 근처의 부위겠죠."

제법 머리를 굴렸다.

수비드를 하면 질긴 고기도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1차 조리를 한다는 점.

대량 생산에도 특화돼있다.

스테이크 조리 시간이 줄어든다.

'가격도 말이야.'

그 모든 것을 포함해도 5천원은 말이 안되는 가격이다.

자신의 절대 미각이 2~3만원대라고 평가했다.

"기특해요 기특해."

"학생분들인데 요리에 굉장히 해박한가 봐요. 저도 모르는 조리법을 쓰고 있었군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네?"

"5천원에 단가를 맞췄다는 건 거의 원가에 제공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요리를 즐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눈을 가볍게 감으며 가슴팍에 손을 올린다.

힐끔 바라본 카메라는 자신을 찍고 있다.

감성적인 느낌이 전해졌을 것이다.

'이걸로 안방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겠지.'

인터넷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시청률은 주부층이 책임진다.

그들에게서 호감을 따내면 방송사도 자신을 거부할 수 없다.

"맨날 원가율인지 뭔지 따지는 어떤 요식업 전문가와는 차원이 다른 마인드에요. 이 교이쿠상, 감동했습니다."

"그런가요?"

"물론 장사는, 진짜 장사는 이렇게 하면 안되기 때문에 학생 시절의 추억으로 남겨뒀으면 좋겠네요."

훈훈한 마무리.

푸드트럭인지 뭐시기에서 훈수질을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장면이 나왔을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천종원을 끌어내린다.

미식계의 대부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려고 했는데.

"분에 넘치는 평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별건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동아리를 대표해 몇 마디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까지 맞춰주면 금상첨화.

이 교이쿠상이 고작 학생의 요리를 칭찬해줬으니 눈물이라도 흘릴지 모른다.

"선생님께서 수비드를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험험, 그렇죠. 일반인들은 모르는 조리법이지만……."

"네, 그래서 선생님도 헷갈리셨나 봐요. 저희는 수비드가 아니라 콩피를 했습니다."

"……."

그런 그림.

와장창 무너진다.

당황한 교이쿠상이 채 생각을 고르기도 전에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미국산 고기라고요?"

"아니, 그……."

"아쉽네요.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일본산 와규를 대접해드렸는데 말이죠."

"와, 와규?!"

"경산우를 숙성시킨 겁니다. 워낙 저렴한 고기다 보니 교이쿠 선생님의 미식 여행길에는 없었나 보네요."

경산우.

들어는 보았다.

송아지를 너무 낳아 더 이상 출산할 수 없는 암소다.

'보통은 쓰이지 않을 텐데……!'

가격이 매우 싸다.

나이, 그리고 출산의 과정에서 육질이 상한다.

고작해야 분쇄육으로 햄버거 패티가 될 뿐이다.

하지만 일부 셰프들은 쓴다는 소문이 있다.

숙성의 방법에 따라서는 고급육 이상의 포텐셜을 지녔기 때문.

"그,그걸 자네가?"

"네. 그리고 부위는 채끝살을 썼습니다. 육향이 진했던 건 숙성 과정에서 증폭되었기 때문이고요."

그만큼 어렵다.

단순히 난이도가 높다의 수준이 아니다.

숙성과 부패는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숙련된 셰프가 평생을 쏟아부어야 이룰까 말까.

장사 밑천이다 보니 절대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 어려운 걸 이 꼬맹이가??'

믿기지 않는 일.

하지만 생각을 고를 여유도 없다.

눈앞의 학생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늘어놓은 소리는.

"저희는 충분히 수익을 추구하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요리 동아리가 아닌 주식 동아리고, 따라서 영업이익률 계산은 확실하게 합니다."

"……."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단 하나도 맞는 게 없어 부득이 정정해드렸습니다. 죄다 틀렸으니 음식만 맛있게 드십시오."

목구멍에 넘어갈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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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여파.

〔예능 갤러리〕

─페북에 올라온 교이쿠상 영상 풀버전.avi

─아니, 찍어도 하나는 맞을 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킹국대 ㄷㄷ

─그래서 방송 몇 시에 하는 거임?

 아니, 송출이 되기 전부터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난다.

세상은 정보화 시대.

─페북에 올라온 교이쿠상 영상 풀버전.avi

[페이스북 영상.avi]

판단은 알아서

└조용히 올라가는 추신수

└존나 자신감 있게 말하는데 하나도 안 맞네 ㅋㅋ

└학생도 어이가 없겠다

└교이쿠상 인성은 방송 컨셉이 아니었구나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휴대폰 하나로 파파라치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축제의 거리

방송 촬영의 현장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아니, 찍어도 하나는 맞을 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산 → 일본산

수비드 → 콩피

사태 → 채끝살

2~3만원 → 5천원

요리 동아리 → 주식 동아리

단 하나도 안 맞은 게 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방송에서는 편집 버프 얼마나 받는 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입으로만 전문가였네

└교이쿠상 이 새끼 이럴 줄 알았음

└수비드가 뭔데 씹덕아

교이쿠상.

팬보다 안티가 더 많은 방송인이다.

그의 실력에 의문을 품는 시청자들도 많다.

정말 미식가인 거 맞아?

방송에서도 완전히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있다.

<내, 내, 내 맛 평가가 틀렸다고?!>

<그렇습니다 호갱, 아니 고객님>

<말도 안돼! 이건 다 모함이야!>

카메라 밖에서는 어떠한지.

그 실상을 엿볼 수 있었다.

후속편이 존재했다.

벌컥! 벌컥!

전부 다 시원하게 틀려버린 이후.

타는 속을 달래기 위해 진짜 시원한 걸 찾는다.

같이 나온 막걸리를 들이킨다.

쓱 입가를 닦은 교이쿠상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 새끼 이거 봐라.'

자신이 정말 틀린 건지.

아니면 역을 맥이려고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이쪽을 지켜보는 눈들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봐봐!>

<뭘 말이죠?>

<이 막걸리! 앞전과는 다른 걸 내왔잖아!>

방송 카메라.

길거리 행인들도 있다.

휴대폰으로 이쪽을 촬영하고 있다.

SNS인지 뭔지에 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박할 근거도 하나쯤 만들어야 탈출구가 생긴다.

<다른 거라고요?>

<그래! 처음부터 나를 음해할 생각이었겠지. 네가 어떤 원한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의도가 음흉한 사내였다.

그렇다는 걸로 만들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타악!

눈이 큼지막하게 떠진다.

막걸리 병.

거기에 써있는 네임드명은.

<제가 어찌 선생님을 속이겠습니까.>

<…….>

<속은 게 있다면 선생님의 혀겠죠.>

느린마을.

똑같은 막걸리다.

교이쿠상은 길길이 날뛰며 현실을 부정해보았지만.

─교이쿠상 막걸리 사태에 대한 주류 갤러리 공식 입장.txt

[주류 갤러리 개념글.jpg]

1. 교이쿠상이 마신 건 느린마을

2. 느린마을은 다른 막걸리와 달리 아스파탐을 타지 않음

3. 쌀의 당분으로만 단맛을 내기 때문에 유통기한에 따라 맛이 달라짐

4. 최근 생산분일수록 달고, 보관을 할수록 드라이하며 감칠맛이 강해짐

5. 한국대 학생이 의도한지는 불명

└국내 알콜중독 갤러리가 또

└알중은 ㅇㅈ이지

└이게 사실이면 학생이 다른 막걸리를 준 건 아니라는 거네

└맛서인이 맛서인 했구나

집단지성.

인터넷에 올려진 영상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정황이 유추된다.

글자 그대로 정황에 불과하다.

하지만 막걸리에서 틀리게 된 건 결정적이었다.

이종격투기 − 「교이쿠상 한국대 축제 사건 요약.txt」

樂 SOCCER − 「드디어 밑천 드러나 버린 그 미식조무사」

카오스(CHAOS) − 「하다하다 학생과도 싸우는 교이쿠상 ㅋㅋ」

긴가민가하던 여론.

확실한 근거를 계기로 돌아선다.

애시당초 미운털이 톡톡히 박혀있다.

커뮤니티에 일파만파 퍼진다.

인터넷상의 작은 소동으로 끝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요……?"

CBS 방송국.

촬영 전 사전 미팅을 나온 교이쿠상은 당황스런 표정을 감출 수 없다.

"무, 무슨 문제라도."

"아, 다름이 아니고요. 저희 프로그램과 선생님의 캐릭터가 다소 방향성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어떤 부분이요?"

"그건 저희가 회의 끝에 결정한 내용이라 선생님께서 납득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교이쿠상도 모르지 않다.

지난 한국대 축제의 방송 회차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편집.

해당 스테이크의 집을 들린 촬영분은 잘랐지만, 인터넷에서의 큰 소동은 막을 수 없었다.

'…….'

평판이 떨어졌다.

방송사에서 자신을 밀어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다.

겨우 이런 소란 때문에?

그렇다면 자신이 사양해준다.

미식전문가 교이쿠상의 이름을 빌릴 곳은.

위이잉……!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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