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전체의 손실.
내년 예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탈퇴 인원이 나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처럼 마음껏 놀러 다닐 수 없으니까.
"주하야 진짜 바빠서 그래."
"저는 안중에도 없다 그거죠? 좋아요. 나중에 두고 봐요."
"……."
지 이야기기도 한데.
자존심 싸움이나 할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지금의 사태를 역전시킬 묘수가 필요하다.
'아, 그게 있었지!'
유준은 떠올린다.
이번 대동제의 스케줄.
독특한 유명인이 와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가수 누구 오는데?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겠지만 이번에는 자신들도 상관이 있다.
'음식 방송이라.'
한국대 축제는 규모가 크고 유명한 편이다.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오곤 한다.
이번 주제는 길거리 음식.
일정이 잡히고나서부터 학생회에서도 닦달을 해왔다.
《매상 №1인 ETSD는 꼭 들를 거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라고 말이다.
특히 메인 진행자에게 거슬려서는 안된다.
'유명한 사람이니까.'
음식 전문가.
따지고 보면 인연이 있다.
그도 그럴게 그 빌어먹을 음식을 만든 계기이기도 하다.
천종원의 푸드트럭을 본 적이 없었다면 따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장본인이 오는 것은 아니다.
워낙 인기인이다.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정도 인사가 온다면 학교가 뒤집어질 것이다.
'와서도 곤란하고.'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되었다.
주식 동아리의 스테이크와 자신들의 큐브 스테이크의 질적인 차이를 모르지 않다.
맛으로는 확실하게 밀린다.
하지만 오는 건 천종원이 아니다.
그와 쌍벽을 이룬다는 한 사람이다.
그의 취향을 맞춘다면 이길 수 있다.
방송의 힘으로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계획이 떠올랐다.
* * *
1일차 종료.
풍덩!
하지만 장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콩피는 조리 과정을 극단적으로 단축시켜 주지만.
"지금부터 숙련된 조교가 시범을 보인다."
"저기."
"어?"
"어려운 건 아니죠? 혹시 실패할까 봐 겁나서."
그만큼 사전에 준비를 해둬야 한다.
장사 전날에 미리 콩피를 해두는 것이다.
'뭐, 사실 과정은 꽤 간단해.'
콩피가 뭐지?
실상은 별 게 없다.
그냥 기름에 끓이는 것이다.
튀기는 게 아니라 끓이는 것.
85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저온 조리한다.
풍덩!
그러기에는 기름이 너무 많이 든다.
보관의 편의성도 떨어진다.
약간 야매이긴 하지만.
'이렇게 비닐 지퍼백에 기름을 넣고.'
물에서 끓인다.
지퍼백 내용물은 기름으로 끓이는 셈이기 때문에 콩피가 되고, 밀봉 상태라 보관도 오래된다.
"봤지? 간단해. 내가 방금 한 대로 월계수 잎, 로즈마리, 다진 마늘, 후추, 소금 레시피대로 지퍼백에 넣으면 끝. 공기 최대한 빼서 밀봉하고 이렇게."
""오오…….""
"던져두면 된다. 나머지는 자동."
아니, 수동.
동아리원들이 알아서 하도록 방법을 알려준다.
수백인분의 고기를 혼자 콩피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육체 노동은 내 분야가 아니란 말이야.'
이제는 편히 쉬면 된다.
혹시 모르니 조금만 관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실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정말로 저게 끝이에요?"
"어?"
"그게 그……, 너무 간단한 것 같아서."
간단히 풀린 것 같아서.
소라가 내 옆에 다소곳이 앉는다.
볼을 부풀린 이후로 처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거겠지.'
피똥을 싸면서 한 노력.
ETSD의 갑질 하나로 무너져 내렸는데 그것을 또 간단히 뒤집었다.
힘이 쪽 빠질 만하다.
자신이 한 건 대체 무엇이었는지.
인생 허무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렇게 시스템화 하면 간단하지."
"그래 보여요."
"하지만 거기에 드는 노력은 결코 간단한 게 아니다."
콩피.
요리사라면 고기의 풍미를 증폭시키기 위해, 그리고 사전 준비를 다소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다.
'근데 내가 보니까 대량 생산쪽으로 특화시킬 수 있더라고."
하지만 나는 투자자.
같은 대상도 다르게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고 유레카를 외쳤다.
스테이크를 초간단 레시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실전에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콩피의 기원이 보존식이었던 데서 재고 관리의 이점을 착안하고, 대형 수비드 머신을 간이로 만들어 초기 투자금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원숭이가 해도 맛있는 레시피를……."
"선배?"
'아무튼 나도 꽤나 고생을 했단 거지."
시행착오 반년.
자리가 잡히는데 1년.
그 이후로는 승승장구하며 잘 나갔다.
'그래서 월가에는 내 이름을 딴 스테이크 프랜차이즈가 있었는데 이번 생에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심플 이즈 베스트란 말이 있지만 그건 소비자를 위한 말이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플한 게 몇 배는 어렵다.
"알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 개척자들의 수고.
아주 조금 정도는 알게 된 모양이다.
고개를 숙인 채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만져도 되나?'
하루종일 일을 한 탓인지 가슴 밑이 흠뻑 젖어있다.
땀이 쪽 빠진 미끈미끈해진 피부에 손을 올리고 싶다.
"선배."
"……."
"선배?"
"뭐, 뭐, 뭐였지?"
"마지막으로 하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욕망.
지금은 푸는 게 힘들어 보인다.
아쉬움을 다시며 귀찮은 후배의 질문을 받아준다.
'그래, 질문이 하나 있지 두 개 있을 순 없잖아.'
내용은 다름이 아니었다.
조리법은 확실히 놀랄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아, 그거."
"진짜 1200원이에요? 100g에 600원이라는 건데 말이 안되지 않아요?"
"그걸 말이 되게 하는 게."
"네, 네~ 능력이란 거죠? 그 능력이 무엇인지 얼른 가르쳐주시죠."
조리법은 1차원적인 것이다.
실제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난관이 있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면 금상첨화란 거지.'
헐값인 고기를 최고급 스테이크로 둔갑시킨다.
겸사겸사 재고 관리에도 이점을 더한다.
"정말이에요?"
"내가 거짓말을 왜 해."
"그게 사실이면 그분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데."
"그분? 누군데?"
"몰라요? 이번 축제에 아주 유명한 분이 오시거든요."
진짜 전문가라면 알아볼 것이다.
* * *
2일차.
조금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뭐야? 뭐야?"
"CBS에서 왔대."
"무슨 촬영하는 거야?"
행인들이 소란스러울 만도 하다.
방송 카메라.
이질적인 장비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서 오세요!"
길거리 음식점들도 예의가 발라진다.
그도 그럴게 진행을 맡은 듯한 사람.
"음~ 맛있네요."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대학교 학생 치고 잘 만들었어요. 근데 그거 알아요?"
"네?"
TV에서 익히 본 사람이다.
미식계의 선구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프로미식가인 그가 대학교 학생들의 음식을 먹는다.
그런 느낌의 콘텐츠.
"파전은 사실 일본에서 온 거거든요~."
교이쿠상이 상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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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이쿠상.
"그, 그런가요?"
"학생은 오코노미야끼도 안 먹어봤어요~?"
"오코노미야끼요?? 뭐……, 일본 여행 가서 먹어는 봤는데."
요리 방송의 흥행과 함께 떠오른 방송인이다.
천종원이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 전문가라면, 그는 일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방송 캐릭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572, 아니 조나단이 유색인종을 대표하는 것처럼.
"먹어봤으면 설명도 쉽겠군요. 일본의 오코노미야끼가 파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죠."
"……."
"애초에 밀가루를 먹지 못했던 가난한 한민족이 1960년대 미국의 대량 원조를 받고 혼분식 장려 운동을 한 게 시발점이라~."
방송가에는 필요하다.
해당 문화의 입장에서 해설해주는 사람.
문화가 다르다는 건 관점 또한 다르다는 이야기다.
시청자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인데.
"이건 방송으로 못 내볼 것 같은데요."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아뇨, 선생님 말씀이 물론 옳겠지만! 불편해 하는 시청자분들도 있을 수 있어서."
"험험! 또 하나의 진실이 무지한 시청자들로 인해 알려지지 못하겠군요."
"하하……."
불편만 야기한다면 말짱 도루묵.
하지만 현재 교이쿠상의 위상은 대단하다.
한국 최초의 푸드 칼럼니스트다.
미식에 대해 수십년 전부터 기사를 써왔다.
"일본 음식을 보면 한식의 과거와 미래가 보이죠. 이를 테면 이 막걸리도."
"일본술인가요?"
"아쉽게도 원형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일반인은 알지 못하는 전문 지식도 알고 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다.
그러니까 맞지 않을까?
권위의 법칙은 설사 알아도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단 걸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설탕을 넣었죠. 설탕이라고 하니 어떤 요식업 전문가가 떠오르지 않나요~?"
"그, 그렇네요."
"천종원 선생님!"
"건강을 생각 안 하고 설탕을 폭포수처럼 넣으시는 분이죠. 그런 분이 과거에도 한 명 있었나 봅니다 허허."
""…….""
교이쿠상의 설명.
일본술인 니고리자케에 희석시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으로 보인다.
'니고리자케가 뭐야?'
'누룩은 뭐고, 입국은 뭐고?'
'우리나라 막걸리가 일본 효모로 만들어졌구나…….'
그럴 듯하기도 하다.
한국 막걸리에는 일본식 효모인 '입국'이 사용된다.
일본술이 맞다는 교이쿠상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꿀꺽! 꿀꺽!
알기 쉬운 임팩트.
이 사람이 전문가라는 사실을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와 닿게 만든다.
"이 대중적인 맛은 장수 막걸리군요?"
"맞습니다 선생님! 주전자에 담아 드렸는데 어떻게……."
"저 정도 전문가가 되면 한 입만 마셔봐도 아는 법이죠. 험험!"
따라다니는 방송사 직원들.
자꾸 이상한 헛소리만 해대니 미심쩍은 기류가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짜고 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이런 대본 없었지?'
'학생을 일일이 섭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단하긴 대단해. 진짜 일본술인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부스 한 켠에 쌓여있는 장수 막걸리 박스들을 보지 못했을 뿐.
'박스 따위 없어도 나의 절대 미각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우매한 대중도 자신의 위대함을 알아볼 것이다.
그것을 대놓고 못 말해 답답함이 차올랐던 차.
"역시 교이쿠 센세시네요!"
"험……, 자네는?"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동아리 ETSD의 부장 차유준이라고 합니다."
예의 바른 학생도 있었다.
일본식 표현을 쓰는 것이 썩 마음에 든다.
'교이쿠상은 중증 일뽕이니까.'
유준은 알고 있다.
아니, 알게 되었다.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파다하다.
교이쿠상의 특징.
일본 관련된 이야기에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 말이다.
"저희도 파전을 만들 때 오코노미야끼처럼 두껍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쩐지 그리운 맛이……, 아니 학생이 뭘 좀 아네요."
"과찬이십니다!"
"오코노미야끼에도 오징어가 들어가는데 한국의 해물파전은 양배추 대신 파를 넣은 것으로……."
인터넷에서 봤던 것이 사실이었다.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니 말이 많아진다.
'그래, 점수 좀 따놓고.'
ETSD의 해물파전.,
괜히 수년간 매출 1위를 지키고 있던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