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450)

슬슬 도착할 시간이다.

"지금 뭐 해요!"

"너도 옆에 앉아."

"급한다니까요? 남들 다 일하는 거 안 보여요?"

"아 증말. 넌 접대도 못한다."

사모펀드 관계자가 앉아있으면 협력처 직원들이 알아서 쌰바쌰바해야 한다.

'가슴이라도 주무르게 해주면 손이 심심할 일이 없잖아.'

그만한 갑질.

대기업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사모펀드는 원래 좀 양아치 집단이다.

소라가 접대 재능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일단 혜리의 봉사는 받았으니.

터억!

턱! 턱!

베풀어준다.

내가 어째서 한때 사모펀드계의 전설이라고 불렸는지.

부스 앞으로 시킨 택배가 도착한다.

포장 박스가 하나둘 쌓이고 있다.

"이게 다 뭐에요?"

"고기."

"고기는 이미 많거든요? 이미 3일치 쓸 물량 다 사뒀고……."

"몰라. 회식 할 때 먹던가."

"네??"

자고로 청년 어쩌고 붙은 식당 가는 거 아니다.

열의는 인정하지만 사업성은 별개.

'만약 이 회사가 상장이 돼있었다면 난 절대 사지 않았겠지.'

주먹구구식이다.

지금 당장만 봐도 소라는 가슴을 들썩들썩하고 있어도.

치이익……!

철판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요리 인력들.

당연히 죽을 맛이다.

이 초여름에 불판 앞에 있다니.

아무리 노오오력을 해도 힘든 건 힘들다.

'게다가 고기도 질이 나쁘잖아.'

큐브 스테이크에 쓰이는 고기의 수준은 뻔하다.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신경을 써야 한다.

체력 소모.

채소까지 손수 볶고 있으니 두어 시간 지나면 정신이 하늘나라로 가있을 것이다.

"이건 뭐야?"

"양념통인데요. 굴소스랑 케첩이랑……."

"아니잖아, 쓰레기잖아. 싹 다 정리해서 버려."

"뭐, 뭐라고요?!"

요리사는 맛있게 만드는 직업이다.

하지만 투자자는 오직 효율만을 본다.

'알바들 이딴 식으로 굴리면 3일 안에 퇴사해.'

카톡도 안 남기고 사라진다고.

그 효율에는 음식점 운영 전반이 포함돼있다.

뜨드득!

박스를 뜯는다.

그 안에서 나오는 내용물을 차곡차곡 불판 옆에 쌓아 놓는다.

"고기……, 네요?"

"고기도 몰라? 동물에게서 먹을 수 있는 살점을 분리한 것으로."

"씨발놈아."

소라가 놀라는 이유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 레토르트 식품처럼 생겼다.

'그렇게 만든 거지.'

비닐 포장된 내용물.

그 안에 고기가 들어있다.

잘 보면 약간의 향신료도 첨가돼있다.

월계수 잎, 로즈마리, 다진 마늘, 후추 소금.

스테이크맛을 돋우기 위한 것들이다.

"간이라면 저희도 하고 있는데요."

"하아……."

"왜 한숨이에요."

"그런 맛없는 고기를 대충 간해서 팔아먹고 있으니 안 팔리지."

"시, 시비 걸러 왔어요?!"

"봐봐. 장사는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줄 테니까."

투자자의 장사.

철저하게 효율만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효율에는 당연히 '맛'도 해당된다.

'큐브 스테이크 따위가 아니라 진짜 스테이크야.'

칼질을 쓱 하면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그 스테이크 말이다.

고객 편의상 잘라서 내주긴 하겠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고급 스테이크를 어떻게 일일이 구워요!"

"응 그래서 대충 구워도 되게 준비해 놨어."

"네?"

이런 스테이크.

레스토랑의 로망이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다.

'셰프 관리하는 게 만만치가 않아.'

월급이 몇 배는 나간다.

개인 사유로 쉬게 됐을 때 레스토랑 운영이 전면 중지된다.

스테이크 같은 고급 음식은 맛 편차가 심하다.

알바생이 구우면 티가 날 수밖에 없는데.

"한 번 구워봐."

"어, 어떻게 구워요? 이런 건 처음 구워 보는데……."

"처음 구워보는 사람처럼 구워 그냥."

아무것도 뿌리지 말고.

요리를 맡고 있는 동아리생에게 가져다준다.

처음에는 얼타다가 이내 마음을 먹었는지 불판 위에 올린다.

치이익……!

스테이크를 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이야르인지 뭔지를 일으키며 녹인 버터를 계속 끼얹어주는 등.

알면 알수록 조리 과정이 복잡한 요리다.

때문에 그것을 전부 미리 해가지고 왔다.

"다 익었어."

"네? 이거 고기가 두꺼워서 아직 안쪽이 안 익었을 거 같은데……."

"이미 다 익혀서 온 거야. 대충 잘라서 먹어.."

콩피.

기름에 장시간 끓이는 조리법이다.

내가 가지고 온 고기는 콩피로 1차 조리를 끝냇다.

안은 이미 촉촉하고, 향신료의 향까지 배어들었다.

겉을 굽기만 하면 바로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이러면 숙련된 셰프를 쓸 필요가 없잖아.'

적당히 고기 구울 줄 아는 알바생 정도면 된다.

마침 고기는 많이 구워본 모양이다.

"와, 존맛이야!"

"어디. 오오……!!"

"대박인데? 진짜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 같아."

"나, 나도 먹을 거야!"

눈치를 보던 동아리원들.

한 명이 맛을 보자 이후로는 너도 나도 시식을 못해서 난리다.

맛 평가는 따로 할 필요 없을 듯하다.

그런 것에 컷 잡아먹지 않는다.

'아, 시가가 없네.'

이럴 때 치익!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빠는 것이 업무의 보람인데 말이다.

바보들을 가르치는 보람.

소라가 입을 반쯤 벌린 채 변해버린 부스를 쳐다본다.

더 이상 원가 따져가며 가격 경쟁할 필요가 없다.

'원가가 대충 1인분에 1200원쯤 들었나.'

여러가지 수고비를 포함한 액수다.

대량 조리를 하기 위해서 근처 음식점 시설을 빌렸다.

《대학교 축제 준비를 하고 싶은데요…….》

단골 음식점.

쉬는 날에 조리 시설을 써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청년이라는 입장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그 외의 퀵택배 이용료도 포함한 액수다.

"뭘 봐. 가서 일해."

"서, 선배는요?"

"난 일하고 있잖아."

"완전 놀고 있는 거 같은데……."

"니들 수십 명이 3일 밤낮 해도 안될 거 혼자 다 해놨잖아."

엄지로 척! 스테이크 더미를 가리킨다.

불만이 있는지 주먹을 불끈 쥔다.

하지만 반박할 말.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볼을 부풀린 채 노려만 본다.

'내가 일을 왜 해. 편하게 살려고 주식 하는 건데.'

그런 직업이기도 하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 하나로 돈을 복사한다.

음식점 운영도 같은 맥락.

무능한 점주가 말아 먹은 업체를 인수한다.

그런 쓰레기 같은 폐급 업체도 내 손을 거치면 마술처럼 되살아난다.

몇 번 반복하니.

"이런 걸 대학교 축제에서 팔아?"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저도!"

"저는 두 개!"

"대학교 축제에서 스테이크라니……, 전설이다."

그렇게 불렸던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한 수익 구조를 제시만 해주면 일이 끝난다.

'일해라 노예들아.'

나는 투자자지 셰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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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스테이크 먹으러 오세요!』

스테이크 5,000원

막걸리 3,600원

참이슬 3,500원

맥주 3,500원

딱 한 단어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손님이 물 밀듯이 밀려온다.

"스테이크 주세요!"

"와……."

"제대로 된 스테이크 같은데?"

"일단 보기는 맛있어 보인다~."

스테이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호불호를 떠나서 입안 가득 고기를 베어무는 만족감.

와구!

행복하다.

다만, 그 행복과 맞바꾸는 주머니의 무게가 감당이 안된다.

"너무 맛있다."

"솔직히 얕봤는데……."

"이걸 5천원 받고 팔아도 되는 거야??"

싸게 판다면 안 먹을 이유가 없다.

시장하지 않아도 뱃속 가득 채우고 싶다.

고기는 비싸니까.

그 상식을 파괴하는 가격이다.

말이 1인분이지.

"어떻게 5천원에 팔 수 있지? 적자 안 나나?"

"원가율을 높게 잡나 보지."

"그런가? 그래서 가능한가?"

한국 고깃집의 1인분은 200g은 상식.

그 양을 훌쩍 넘는 넉넉한 사이즈다.

퀄리티는 스테이크 전문점 수준이다.

큐브 스테이크처럼 가위로 자르는 게 옥의 티였지만.

서걱! 서걱!

시간이 지나며 개선된다.

식칼로 한 점 한 점 자르자 모양도 그럴 듯하다.

"뭐야, 쟤네?"

"스테이크?!"

"아무리 이기고 싶어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

손님이 모이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

경쟁점은 당연히 피해를 입는다.

같은 아이템이라면 더더욱.

"스테이크를 어떻게 팔아요? 쟤네 우리 엿 맥이려고 악 쓰는 거라니까요!"

"동의."

"말도 안되지. 단가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ETSD는 비상이 걸렸다.

상대가 갑자기 고급 스테이크를 팔고 있다.

큐브 스테이크 따위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손님의 수가 팍 줄었다.

'아니, 이건 상도덕이 없는 거지!'

음식 가격은 동아리별 재량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득을 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스테이크를 5천원에?

자신들한테 복수하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요?"

항의하러 찾아간다.

유준과 주하.

그런 그들을 소라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맞잖아!'

동아리 부장으로서 모든 재료의 구입에 관여한다.

돈이 쓰이는 일인 만큼 당연하다.

고기를 얼마에 사는지.

그리고 어디서 사야 가장 싼지.

설사 자신들보다 염가의 루트를 확보했다고 해도.

"값싼 목살이나 윗등심도 아닌 거 같은데. 이게 5천원이라고? 원가만 5천원이 넘을 텐데?"

"무슨 부위에요 오빠?"

"채끝살!"

자릿수가 다르다.

최고의 큐브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 부위별 가격을 찾아본 자신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다.

'우리도 부챗살을 겨우 겨우 쓰고 있는데.'

가장 가성비가 좋다.

마지노선.

이 이상으로 급을 높이면 원가도 남기기 힘들다.

대량 구매로 그나마 싸게 들여왔다.

하지만 채끝살은 가성비가 가능한 부위가 아니다.

"내,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거든?"

"뭐죠?"

"축제 끝나면 학생회에 구입 내역서 영수증 정리해서 보고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출혈 경쟁이라고 확신한 이유.

유준도 믿는 구석 없이 적진에 온 게 아니다.

룰이 있다.

이런 전례가 없었던 게 아니다.

동아리간의 원한이 싸움으로 번진 경우가.

"원가 상한을 50%로 규정하고 있는 거 알아?"

"네, 알아요."

"뭐, 뭐라고?"

"저희도 그래서 큐브 스테이크를 6500원에 판매했던 거니까요."

그런 짓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둔 것이다.

반협박삼아 꺼낸 이야기였는데.

'…….'

자신들도 했던 짓이다.

사실 원가율 50%를 아슬아슬하게 넘는다.

파전 가격에 맞추기 위해 5천원으로 설정했다.

작정하고 속이려고 들면.

"오빠 어떻게 된 거에요. 쟤네 왜 이렇게 당당해!"

"아 씨 몰라 가자."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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